소설리스트

이그레트-18화 (18/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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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진명식

그러자 헤브가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크르르르.

“히익.”

남아서 기웃거리던 이들은 헤브를 보고 기겁을 하고 쫓겨나듯 밖으로 뛰쳐나갔다.

살기등등한 헤브를 곁눈질로 확인한 에단이 조심스럽게 쥬다스를 불렀다.

“……쥬다스 님.”

“그래, 내 한 가지만 묻고 가도 괜찮겠습니까?”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위그드라실이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신이라면 얼마든지.”

“포탈 관리실의 통제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관리실 안팎으로 보초를 서고 있어요. 허가 없이는 출입하지 못하도록 강력한 신성 결계도 설치되어 있고요. 결계가 깨지면 자동으로 경보가 울리도록 알람도 지정되어 있습니다.”

말하자면 3중 보안 체계였다. 보초들이 직접 관리실을 지키고 선 데다, 결계도 쳐두었으며, 그 결계가 깨어질 경우 알람이 울려 즉시 대응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한데 범인을 본 이가 아무도 없었다?”

“……단순한 고장이 아님을 이미 알고 계셨군요. 맞아요, 포탈은 침입자에 의해 고의적으로 훼손되었어요. 하지만 어젯밤엔 아무도 그 침입자를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해요. 알람 마법 역시 발동되기 전에 그 수식을 파괴해 버린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침입자의 실력이 몹시 뛰어났다.

교황청에서 엄중히 관리하고 있던 시설을 단순히 침투한 정도가 아니라 소리 소문 없이 훼손할 정도가 되려면 제국 내에서도 알아주는 능력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교황청의 안보가 뚫린 문제였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에단과 크리스티나의 표정도 단단히 굳었다. 상황은 꽤나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침입자를 찾고자 새벽부터 사제님들이 사방으로 알아보고는 있지만,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아 어렵게 되었다고 해요. 이는 흡사…….”

위그드라실은 세 사람을 향해 진지한 어조로 말을 맺었다.

“대현자 이그레트를 의심해 볼 만한 실력입니다.”

***

포탈 관리실에서 나온 셋은 그대로 갈 길을 잃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직 외출을 허가받은 날짜가 좀 여유 있는 편이라 크게 불안할 이유는 없었다.

더군다나 포탈 문제로 복귀일자가 늦춰진다면 그 점은 학원 측에서도 감안할 터였다.

평소와 다르게 가만히 턱을 짚은 채 상념에 빠져 있는 쥬다스를 힐끗 쳐다본 크리스티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대현자의 이름이 거론될 상황이라. 그 정도의 실력자가 굳이 이 시점에 이곳의 포탈을 훼손했다는 건 명확한 이유에서겠지.”

에단도 작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이게 끝이 아닐 겁니다. 아마 노리는 이가 있어 포탈을 먼저 닫아놓은 것일 테고, 그렇다면 대상은…….”

둘의 시선이 쥬다스에게로 모아졌다. 정작 다른 생각을 하느라 흐름을 놓치고 있던 쥬다스는 뒤늦게 쏠린 시선을 느끼고 둘을 의아하게 올려다보았다.

“음?”

“높은 확률로 당신이겠죠, 쥬다스 님.”

“……조심하셔야겠습니다.”

사뭇 진지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둘을 번갈아 쳐다본 쥬다스는 이내 분위기를 파악하고 빙그레 웃었다.

“호오, 그럴 수도 있겠구만. 걱정해 주어서 고맙구나.”

“딱히 걱정이라기보단 경고를 드린 것일 뿐.”

크리스티나는 눈을 내리깔며 차갑게 정정했다. 그래도 그녀를 향한 기특하다는 눈빛은 바뀌지 않았다.

쥬다스는 웃음기를 매단 채 턱을 매만졌다.

“이것 참, 차라리 목표가 나라면 일이 수월할 터인데.”

“예?”

“가만두어도 제 몫조차 해내지 못하는 치를 노려 얻을 게 무어 있겠느냐. 방문객 중 하나를 노린 것인 만큼 지위가 높은 이를 노릴 법하긴 하다만. 아무래도 나보단 너희가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야.”

그의 말에 에단과 크리스티나는 허를 찔린 듯한 눈을 했다.

과연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긴 했다. 1황자는 아직 황태자 자리조차 올라앉지 못한 반푼이 황자였다.

정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건 물론, 그를 총애하던 황제조차도 더 이상 손쓰기 힘들 정도로 침몰한 존재.

7살의 외형에서 더 이상 자라나지 않는 나약한 신체는 그가 곧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란 소문마저 떠돌게 했다.

실제 몸의 기능이 정지하다시피 하였기에 아주 틀린 소문도 아니었다.

그나마 지금의 쥬다스가 꾸준히 몸을 단련시키며 회복의 의지를 다졌기에 상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놀란 건 그 내용보다는 쥬다스가 스스로를 평가한 부분에 있었다.

‘스스로의 부족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거리낌이 없어.’

‘……목표가 자신이라면 수월했을 것이라니.’

그들이 느낀 쥬다스는, 매사에 온화함을 품고 있었으나 자신에 대해서는 소름 끼치도록 이성적이었다.

게다가 위협을 별로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해 보이는 무사태평한 태도가 더욱 위화감을 들게 했다.

두 사람은 또다시 같은 결론을 내렸다.

‘역시 그동안의 백로황자는 단순히 그가 만들어 낸 이미지였나.’

몸이 허약한 것은 사실이었겠지만, 아마도 그가 살아남기 위해 발톱을 숨긴 게 분명했다. 그리고 언젠가 분명 그 발톱을 드러낼 날이 올 테였다.

그동안의 황자를 떠올린 크리스티나는 분함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했다.

이 결론대로라면 학원 루바흐의 전교생이 그의 손에 놀아난 셈이다.

아니, 학원뿐 아니라 황권을 둘러싼 전부가!

물론 이는 실제 쥬다스와 아무 관계없는 상당히 엉뚱한 결론이었다.

“그래서 말이다. 누군가 침입자에게 피해를 보기 전에 미끼를 놓아볼 생각인데. 너희가 도와주지 않으련?”

“……예?”

“……미끼?”

의아한 눈빛들을 마주한 쥬다스가 말 대신 살짝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짓에 따라 은은한 바람이 몰려들어 주변을 빙빙 돌았다.

“정령이란 자연의 힘 그 자체. 사람의 흔적을 좇아 침입자를 찾아내는 정도는 쉬이 할 수 있단다. 단 무작정 찾아가서 그를 제압하기란 어려울 터.”

여기서 어렵다란 단순히 실력 차이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 범인을 찾는다 해도 도통 그를 증명할 거리가 없다면 말짱 도루묵인 셈이다.

물론 다른 이들이 보는 앞에서 제 힘을 온전히 드러낼 생각도 없었기에 상대하기가 껄끄러운 점도 있었다.

“내 그와 직접 대화를 해볼까 싶으이.”

“그렇지만 쥬다스 님. 정령술은 굉장한 이능이나, 지금 상황에선 위험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독이 되지 않겠느냔 뜻으로 에단은 난색을 표했다.

“혹 정말 대현자 이그레트라도 나타난 거라면…….”

“…….”

이쯤에서 쥬다스는 매우 난처해졌다.

생각해 보니 정작 ‘이그레트’가 죽었음을 세상은 모르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과 어울려 살기를 포기하고 정령들과 함께 자연 속을 떠돈 세월만 해도 수십 년이었다.

그러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세상은 그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다만, 그가 보여준 강대한 힘이 평범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섰기에 막연히 죽는다는 가정을 염두에 두지 않을 뿐이었다.

살아 있다고 해도 늙을 대로 늙어버린 노인. 하지만 세상은 끝까지 그를 인간답게 취급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쥬다스는 굳이 ‘이그레트가 늙어죽었을 가능성’을 끄집어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글쎄……. 정령을 다루는 술사였다면 애초에 추적할 수 없게끔 손을 써놨을 게다. 그러나 그치는 정령술사가 아니야.”

그 답에 안도를 하면서도 에단은 여전히 굳은 얼굴을 피지 않았다.

“굳이 쥬다스 님께서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나설 가치가 있는 일입니까?”

그 말대로 이건 교황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포탈을 고장 낸 침입자가 아직 별다른 위해를 가하지 않았으므로, 쥬다스가 먼저 움직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쥬다스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포탈의 설계에 직접 관여했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해야겠다는 의무감은 둘째 문제였다.

자만은 아니나 그가 언급될 정도의 실력을 가진 이가 누군가를 목표로 한다면 쉬이 막아내기란 어려울 테였다.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있고, 충분한 힘이 있으며, 무슨 짓을 할지 예측이 가는 데에도 그를 막지 않는다면 그건 방관자일 뿐이다.

‘또 전과 같은 실수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실수를 반복한다면 이는 더 이상 실수라 부를 수 없다. 쥬다스는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것뿐이란다.”

하는 김에 ‘이그레트’로서의 오명도 좀 벗기고. 그리 여기며 멋쩍게 웃는 그를 두고 에단과 크리스티나가 시선을 교환했다.

“……그럼.”

“저희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군요.”

크리스티나가 손을 털며 가뿐히 결론을 내렸다.

세 사람은 일단 날이 조금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석양이 질 무렵, 모든 예배가 끝난 교황청은 마침내 한산해졌다.

포탈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간혹 돌아다니며 기웃거리긴 했지만 신경 쓰일 만한 숫자는 아니었다.

순행절 예식과 더불어 본격적인 예배가 진행되는 낮 시간에는 복잡하기도 복잡할뿐더러 통제되는 구역이 많아 움직이기 불편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리를 비운 지금이 적기였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여러모로 오해받는 이그레트. (...)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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