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19화 (19/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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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진명식

쥬다스는 감시를 위해 띄워놓았던 바람을 불러들였다.

후웅

그의 손바닥에 몰려든 작은 정령들이 까르륵 웃었다.

“자, 아이들아. 안내를 부탁한다.”

손을 떠난 바람이 훅 하고 한 방향으로 향했다.

에단과 크리스티나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세기였기에 그들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허공을 훑었다. 정령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람이 가리키는 방향이 뚜렷했다.

“…정말 편리하군요.”

이 한 가지 쓰임새만으로도 제국에서 정령술사를 귀히 취급하는 이유를 알만했다. 찾고자 하는 이를 간단히 추적할 수 있다니, 간편하기 그지없는 능력이었다.

“너무 멀리 떨어지거나 오래된 정보는 찾기 힘들단다.”

쥬다스는 느긋하게 걸으며 덧붙였다. 일반적으론 그랬다.

하지만 그는 정령왕의 술사.

시간은 좀 걸릴지 몰라도 그가 찾고자 하는 이는 어지간해선 전부 찾아낼 수 있었다. 상대가 흔적을 지우는 데에 특출난 비법을 갖고 있지 않는 한에서긴 했지만 그럴 일은 거의 없었다. 정령왕의 눈을 속이려면 인간 이상의 힘을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단순히 그를 정령술에 자질이 있는 12세 소년으로만 알고 있는 두 사람은 그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교황청은 작은 도시와도 같은 구조였다. 각 목적별로 지어진 예배당만 열 군데가 넘었고 숙소나 식당을 비롯한 편의시설들과 각종 업무를 처리하는 기관까지 합치면 그 규모가 상당했다.

학원 루바흐에 비하자면 작은 편이긴 했으나 일일이 뒤져보기엔 무리가 있는 넓이였다. 바람의 정령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데에도 꽤 시간이 걸렸다. 물론 이는 쥬다스의 느린 걸음 탓이기도 했다.

그들이 대략 목적지에 도착할 무렵에는 석양이 완전히 하늘을 붉히고 있었다.

그들은 노을의 적광을 받으며 조그마한 성전의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모양인지 불은 꺼져있었고, 약간의 먼지가 공기 중에 날아다녔다.

막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으려던 순간이었다.

쉬익

“……!”

누군가의 접근을 가장 먼저 눈치 챈 에단이 번개같이 검을 뽑아들고 상대의 목에 겨누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이는 목에 닿은 칼날을 인지하고 우뚝 자리에 멈췄다.

“웬 놈이냐.”

에단의 낮은 목소리가 헛헛한 예배당을 울렸다.

검은 비둘기가 새겨진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상대가 움찔 몸을 떨었다. 쥬다스가 로브에 새겨진 검은 비둘기를 물끄러미 응시하는 사이 크리스티나 역시 차갑게 입을 열었다.

“범인은 너인가.”

“……크리스티나?”

놀란 목소리가 로브 속에서 흘러나왔다. 제 이름을 알고 있는 상대방을 보며 크리스티나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상대는 서둘러 뒤집어쓰고 있던 후드를 휙 벗어 제꼈다.

“게다가 쥬다스님까지? 당신이 여기에 왜, 아니, 겁도 없으십니까?!”

“겁이 없는 건 네놈의 혓바닥인 것 같군.”

에단이 검을 든 손에 힘을 주며 사나운 기세를 뿜었다. 학원 신입생인 그는 잘 모르는 얼굴이었지만 나머지 둘은 안면관계가 있는 상대였다.

쥬다스가 난감한 미소를 매달고 고개를 저었다.

“진정 하려무나, 에단. 우리가 찾던 이는 그가 아니야. 그는 바이칼, 나와 같은 수업을 듣는 학우란다.”

“…….”

여전히 경계어린 시선이었지만 에단은 순순히 검을 거두었다. 간소한 차이를 두고 목에 직접 닿지 않았던 탓에 상처는 없었다. 바이칼은 찝찝한 표정으로 멀쩡한 제 목을 매만지며 물었다.

“…이런 곳엔 어쩐 일입니까?”

“교황청엔 진명을 받으러 왔을 뿐이야. 그러는 너야말로 여기서 수상쩍게 무얼 하고 있던 거지? 낌새를 보니 진명을 받으러 온 것 같진 않은데.”

쥬다스 대신 답한 크리스티나가 팔짱을 낀 채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으로 그를 추궁했다. 바이칼은 황당하단 표정으로 세 사람을 번갈아보았다.

“……진명? 그렇게 셋이 말입니까?”

“팀이다.”

에단의 짤막한 대꾸에 바이칼은 납득한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헝클어진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저는, 만나기로한 사람이 있어서.”

“만나기로한 사람?”

“가문이 속해있는 학파 수장이 이곳에 계신다하여 왔습니다. 가문의 일이니 다른 건 따로 밝히지 않겠습니다.”

목적은 달라도 묘하게 동선이 겹쳤다. 에단과 크리스티나의 시선도 로브에 새겨진 검은 비둘기로 향했다.

‘학파라…….’

학원 루바흐에서 공동의 교육을 받은 자라 할지라도 각 가문마다 추구하는 학파는 다양했다. 전통에 따라 그저 의무적으로 학파에 가입하거나 자신의 세대에서 다른 학파로 옮겨 가치관을 정립할 수도 있었다.

보통은 같은 이념을 좇는 이들끼리 모이게 되기 때문에, 학파란 정치적 색을 띄는 경우가 허다했다. 벌써 1황자가 아닌 다른 황자를 지지하는 세력의 경우 몇몇 가문이 동질의 학파에 모여 있었다.

아직 학파를 정하지 않은 에단과 크리스티나에게도 많은 제의가 들어오고 있었다. 자라는 새싹이긴 하나 차후 귀족체계에서 큰 기둥이 될 두 인물에게 흑심을 품는 세력은 많았다.

또래의 바이칼이 벌써부터 학파활동을 하고 있었던 것은 몰랐던 사실이기에 그들은 미심쩍은 시선으로 바이칼을 바라보았다.

‘하필 왜 이런 인적이 드문 곳에서?’

그런 의문은 당연한 것이었다. 포탈이 의도적으로 파괴된 지금, 바이칼의 행동은 수상쩍기 짝이 없었다.

“어쨌든 세 분은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차피 이 성전은 최근 잘 쓰이지 않아 예배도 드리지 않는다고…….”

“아니. 예배를 드리러 온 건 아니지만 우리도 찾을 게 있다. 안을 확인해야겠군.”

“그, 그건.”

“왜 당황하지? 그 수장이란 자가 우리가 봐선 안 될 사람인가?”

크리스티나가 싸늘한 눈으로 바이칼을 쳐다보았다. 또래 여학생 중에서도 늘씬하게 키가 자란 크리스티나는 바이칼과 눈높이가 같았다. 깔아보진 못하더라도 충분히 냉기를 품은 오만한 눈빛이 그를 마주했다.

바이칼은 쉽사리 답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크리스티나의 입가에 조소가 지어졌다.

“그럼.”

“……위험할 수도……!”

바이칼이 자신을 제치고 들어가려는 크리스티나를 다시 막으려던 찰나였다.

“이거, 이거. 꽤나 시끄럽군. 날 찾아온 손님이 하나가 아닌 모양이지?”

성전 안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듣고 모두 예배당으로 들어서자, 성전 깊숙한 곳에 앉아있던 그림자가 몸을 일으켰다. 촛불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성전 내부에는 작은 창으로 새어 들어오는 빛줄기가 조명의 전부였다.

바이칼과 마찬가지로 로브를 걸치고 있던 사내는 큭큭 낮은 웃음소리를 흘렸다.

“내가 초대한 건 한 명뿐인데.”

“당신은……?”

사내는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왔다. 워낙 어두워 후드를 뒤집어쓴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이그레트, 저 사람이야.」

심증뿐이던 사내의 정체에 유니가 확증을 얹어주었다. 쥬다스는 유심히 사내를 바라보았다. 평범한 체격에 분위기도 꽤 유했다. 그럼에도 뭔가 자꾸 걸리는 구석이 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분명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내가 가진 분위기가 묘하게 익숙했다.

“오호라, 이거 전부 귀하신 루바흐 학원생들 아닌가? 무슨 일이지. 그렇게 무서운 얼굴들을 하고서.”

능청맞은 어조로 하나하나 눈을 맞추던 사내는 이내 쥬다스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예상 밖의 인물도 하나 끼어 계시는군. 바이칼, 네놈이 다 모셔온 게냐?”

“아, 아니요! 저도 몰랐습니다.”

바이칼은 평소와 다르게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기가 눌린 표정이었다. 언제나 빳빳하게 콧대를 치켜들고 다닐 것 같던 바이칼의 태도가 아니었다. 꼬리만 짐승처럼 주눅이 든 그를 힐끗 쳐다본 쥬다스가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갑작스레 찾아와서 미안하이. 나는 쥬다스라 한다네. 실례가 되는 줄은 아네만, 몇 가지 물어도 괜찮겠는가.”

“흐음?”

사내는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살짝 꺾었다. 관찰하듯 내려다보는 시선과 똑바로 마주한 쥬다스는 그의 눈이 피처럼 붉은 색임을 알아차렸다.

“…….”

섬찟한 기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바람에 쥬다스는 할 말을 놓치고 멍하니 그 눈을 올려다보게 되었다.

‘저 눈은.’

왜 바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선명했다. 저 핏빛의 눈동자는 그에게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쥬다스가 침묵하자 사내는 흥미가 담긴 어투로 말했다.

“‘쥬다스’라, 아주 마음에 드는 이름이야. 신분도 알만 하지만, 뭐. 내가 예를 차리는 존재는 몇 안 돼서. 별로 바라는 것 같진 않지만 미리 양해를 구하지. 하고 싶은 말은?”

“…….”

“뭐, 자기소개부터 해야 하려나? 큭큭. 좋아. 나는 프리드. 성은 옛날 옛적에 버렸으니 프리드가 전부다. 그럼 이제 만족하시는지, 꼬마황자전하.”

사내, 프리드가 킬킬거리며 후드를 벗었다. 어둠 속이었지만 확연히 드러난 윤곽을 마주한 쥬다스의 금안이 작게 일렁였다.

프리드 길리아노. 쥬다스의 기억 속에 있는 사내의 풀네임이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그 얼굴까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진정한 회춘이 여기에...

벌써 20편까지 왔네요. 얼른 이 파트 끝내고 학원생활 좀 진행시키고 싶습니다. ㅎㅎ

전 편에서 성녀가 말한 '이그레트 의심설'은 진짜 의심한단 뜻이라기보단...

그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굉장한 실력자란 뜻이었습니다. 물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었지만요.

오탈자 지적해주신 덕에 매번 부끄러워하며(...) 고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ㅠㅠ

그럼 내일 또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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