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20화 (2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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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진명식

“프리드……?”

그럴 리가 없다. 쥬다스는 혼란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자신이 알고 있는 프리드라면 이미 이그레트와 마찬가지로 호호 할아버지가 되었어야 정상이었다.

그런 그가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젊은 시절 그대로의 얼굴을 유지한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다.

“…….”

쥬다스가 침묵하자 자연히 나머지 둘도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았다.

대화를 하고자 한 건 쥬다스였으니 굳이 끼어들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쥬다스의 반응이 영 깔끔하게 진행되질 않았다.

표정은 차분했으나 황금색 눈동자 너머로는 혼란이 일렁였다. 침묵이 길어지자 프리드는 더 기다려줄 생각이 없었다.

“따로 더 할 말이 없다면 나는 이만 가보도록 하지.”

“예? 수장님, 그럼 저는……?”

부름을 받고 찾아온 바이칼이 당혹스런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지만 프리드는 귀찮음을 가득 담아 파리 쫓듯 손을 휘저었다.

“아~ 됐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찾는 손님이 많으면 짜증난단 말이지.”

그대로 몸을 돌려 스쳐지나가려던 프리드를 향해 쥬다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얼 위해 이곳 사람들의 발길을 묶었는가.”

멈칫

발길을 세운 프리드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호오, 이것 봐라. 알고서 찾아왔단 말이냐?”

“…….”

“큭큭큭. 제법 영리한 꼬마로구나. 네 말이 맞다. 목적이 있어서 포탈을 건드렸지.”

프리드는 깔끔하게 제 소행임을 시인했다.

포탈은 국가재산 중 엄중히 관리되어지고 있는 국보급 시설이다. 특히 신성의 중심인 교황청 포탈은 그 무게가 여타의 것들보다 막중했다. 그러한 포탈을 허가 없이 침입한 것도 모자라 훼손까지 한 일은 중범죄에 해당하는 크나큰 죄질이었다.

만약 제대로 처벌을 받는다면 끔찍한 중형을 받거나 심할 경우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런 죄를 저토록 순순히 시인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뜻했다.

첫째는 흥미였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누구의 방해도 없었던 일을 눈치 챈 자가 고작 저런 코찔찔이 어린아이. 불쾌함과 더불어 그에 대한 흥미도 스멀스멀 스며왔다. 그것도 하필이면 제국 내에서 가장 빛을 받지 못한 불운의 제 1황자였다. 여러모로 재밌어질 예감에 프리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다른 하나는, 그만큼 자신이 있단 뜻이었다.

저가 범인임을 알려도 잡히지 않고 유유히 이곳을 떠날 수 있다는 자신이 충만했다. 자기 실력에 어지간한 신뢰가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행위였다.

“이제 되었나? 그럼, 또 보지.”

프리드는 배부른 사자처럼 낮은 웃음을 흘리며 어슬렁어슬렁 성전을 빠져나갔다. 너무도 당당한 작태에 누구도 그를 붙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포탈? 수장님이?”

바이칼이 침묵을 깨고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은 크리스티나가 사납게 그를 홱 돌아보았다.

“학파의 수장이 저자라고? 그렇다는 건 너 또한 공범인가?”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공범이요?”

“저자와 손을 잡고 포탈을 건드린 게 같은 루바흐 학생이라면…….”

뒷말은 생략되었으나 크리스티나의 표정은 그 이상 냉랭할 것도 없이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혐오마저 깃든 바다색 눈동자를 마주한 바이칼이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

“결코 아닙니다. 포탈이라뇨. 수장님을 만난 건 방금이 처음입니다. 그 전엔 서신으로만 연락을 드렸기에.”

“그렇다면 왜 하필 여기서, 그자를 만나기로 한 거지?”

“……가문의 일이라 자세히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아니, 대략 이야기하자면 그분의 연구에 관심이 있어서요. 수장님은 천재십니다. 저분이라면 정말 대현자 이그레트와도 견줄 수 있을 지도 모르는, 그런 굉장한 분이시라고요.”

거의 살의마저 느껴지는 눈빛화살에 바이칼은 은근슬쩍 말을 늘렸다. 찬사에 가까운 설명을 들을수록 크리스티나와 에단의 표정은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에단이 불쾌감이 깃든 어조로 찔러물었다.

“그 굉장하다는 분이 왜 저렇게 당당히 포탈을 망가뜨렸는지 이유를 말할 수 있겠나.”

“……그건 저도 모르던 일입니다. 다만 수장님이라면 교황청의 포탈을 손쉽게 망가뜨릴 수는 있겠지요.”

단순히 발뺌하는 것인지, 진실을 말하는지를 알고자 둘의 시선이 날카롭게 바이칼을 훑었다.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어설픈 침묵만이 잠시 그들 사이를 감돌았다.

잠시 후 크리스티나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그 침묵을 깼다.

“흥, 적어도 이 내게 범죄자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수치는 느끼고 싶지 않으니 잘 처신해. 아무튼 범인은 알아냈으니 이제……?”

쥬다스를 돌아보며 의향을 물으려던 크리스티나였으나 그대로 굳어버렸다. 혹시나 싶어 시선을 이리저리 옮겨보았지만 찾는 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사실을 동시에 알아차린 에단 역시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쥬다스님?”

분명 그들과 함께 서있던 쥬다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있었다. 남은 셋은 망연히 그가 있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성전에서 빠져나와 어두운 길목을 걷던 프리드는 돌연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후드를 쓰고 있느라 근질거리는 뒷머리를 벅벅 긁어내린 그는 정면을 응시하며 킬킬거렸다.

“허, 이건 또 뭐지. 아까 그걸론 썩 만족이 안 되었나 본데. 꼬마황자.”

“…….”

후웅

붉은 눈동자에 눈앞에 있는 작은 소년이 비쳤다. 쥬다스가 어느 샌가 먼저 와서 그 길목을 막아서고 있었다. 그의 주변을 감도는 산들바람을 느낀 프리드가 흥미와 불쾌가 섞인 시선으로 그를 빤히 내려다보았다.

“…목적이 있어 포탈을 건드렸다고 하였지. 그래, 누구의 발길을 묶고자 한 겐가. 프리드.”

“그건 정령이냐? 기분 나쁜 재능을 가지고 있구나. 글쎄, 하나 알려주자면 단순히 발길을 묶으려고 한 짓은 아니야.”

프리드는 여유로운 태도로 로브 후드를 도로 눌러썼다. 그럼에도 붉게 빛나는 안광만은 가려지지 않고 남아 어둠 속에서 넘실거렸다.

“단지 내게 필요한 걸 구했을 뿐이지. 큭큭.”

그가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흔들었다. 작은 구슬이 담긴 유리병이었다. 구슬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본 쥬다스가 표정을 굳혔다. 보통 사람의 눈에는 단순히 반짝이는 구슬처럼 보이지만, 실은 포탈에 박혀있던 정령석이었다.

정령석이란 자연의 정령으로부터 그 힘을 끌어 쓸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아티팩트다. 제국의 포탈이 안전하게 운영되고 것도 다 이 정령석이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었다.

정령 하나를 그 안에 가둔다는 개념이 아니라 주변에 존재하는 정령의 힘을 빌려 원소를 다루기 때문에 부작용도 없었다.

하지만 그 정령석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도 역시 이그레트가 유일했다. 포탈이 손상될 경우를 대비해 여분을 만들어두긴 했지만 그 하나하나가 굉장히 귀중한 국가재산이었다.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네가 어째서.’

쥬다스는 작게 탄식했다. 프리드는 그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료였었다. 그런 만큼 가장 뜻이 맞았으며 포탈개발에도 함께 이바지했던 뛰어난 인재 중 한 사람이었다.

쥬다스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프리드가 재밌다는 듯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아, 그렇지만 여기에도 목적은 있지. 연구에 쓸 만한 재료가 아직 남았거든.”

“정령석을 훔친 걸로도 모자라, 재료라니. 설마 처음부터 네 목적은……인간이 아니었던 게야.”

“이야, 정말 눈치가 빠른데―? 이런 녀석이 어째서 쓰레기취급을 받고 있는지 영문을 모르겠군그래. 뭐, 내숭이라도 떨었나?”

프리드는 진심으로 그를 재미있게 여겼다.

예전부터 그런 성미였다. 그는 ‘보통’이 아닌 존재를 가치롭게 여겼다. 뒤집어 말하자면, 보통에 속한 범주는 전부 자갈밭에 깔린 돌멩이 취급을 했다.

뛰어나지 않은 것은 쓸모없다.

그의 지론이 그러하였으므로, 신이 내린 재능을 타고난 이그레트를 광적으로 따른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끝이 파국에 이르렀을 지언정, 젊은 시절 이그레트는 프리드의 우상이었다.

“네게 흥미는 있지만, 오늘 수다는 여기까지다. 여기까지 온 이상 나도 할 일은 해야 하니까….”

“…….”

“비켜.”

권유가 아닌 명령이었다. 그럼에도 흔들림 없이 저를 바라보는 금안을 확인한 프리드가 쯧 혀를 찼다.

“거 귀찮게 구네. ‘소돔’.”

단조로운 부름이었으나 쿵 하고 땅이 울렸다. 흡사 지진이 이는 것도 같았으나 움직이는 부분은 그들이 서있는 좁은 면적뿐이었다.

땅이 갈라지며 그 속에서 돌과 뼈로 이루어진 괴생물체가 튀어나왔다. 마치 무덤을 열고 걸어 나온 시체처럼 음산했으며 뻥 뚫린 눈구멍에서는 끊임없이 죽은 흙이 흘렀다.

그 흉물스런 형태의 소환수를 확인한 쥬다스가 작게 침음했다.

“……사령술.”

살아 있는 것을 죽여 그 영혼과 생기를 흡수해 힘으로서 이용한다.

이는 정령술사가 자연에 퍼져 있는 생명에너지를 다루며 살아 있는 것들에게 힘을 부여해 주는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흑마법사 혹은 네크로맨서라고도 불렸다.

샘물처럼 솟아 흐르는 검은 흙은 컴컴한 눈구멍을 통해 도로 흘러나오길 반복했다.

뼈와 흙으로 이루어진 소환수는 인간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몰골이 기괴하여 흡사 유령과도 같았다.

그 소환수의 양손에는 각각 검은 연기가 넘실거리는 검과 방패가 쥐어져 있었다.

무덤에서 기어 나온 기사를 연상시키는 모습에 쥬다스가 가여운 눈을 했다.

“허어……. 사령술은 모든 나라에서 금기한 악마의 술법일 터.”

그 말에 프리드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그에게 있어 금기란 마치 에덴의 선악과처럼 매혹적인 대상일 뿐이었다.

“금기? 그딴 걸 따라야할 이유가 있나.”

“그 ‘소돔’을 불러내기 위해 당최 얼마만큼의 생명을 꺼뜨린 겐가?”

“거기까진 세어 보지 않아서 모르겠군. 아마도 백? 이백? 흐음~ 듣고 보니 궁금하긴 하군,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게까지 해서 그 힘을 가져야만 했나.”

거기까지 들은 프리드의 안색이 묘하게 굳어졌다.

입매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눈이 진득한 살기를 담았다.

형형히 안광을 번뜩인 그가 쥬다스를 향해 천천히 손을 내뻗었다.

“큭큭……. 그래, 아까부터 왜 이렇게 짜증이 나나 했더니만. 과연 그렇구나.”

콰가가각-

그 손짓에 따라 소환수 ‘소돔’이 검은 연기를 흩뿌리며 달려들었다.

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네놈은 그 이그레트를 닮았어.”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프리드는 일단은 명백한 '적'입니다. 이 파트 뿐 아니라 앞으로도 종종 등장할 녀석이니 잘 기억해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이그레트'가 사망한지 얼마나 지났느냐...하는 부분은 곧 본편으로 확인해주세요. ㅎ 별 건 아니지만 어째 스포같은 기분이 들어서....?ㅎㅎ

아, 내일은 제가 1박2일로 여행을 갈 것... 같습니다. 되도록 써서 올려보려고 노력은 하겠습니다만, 아마도 내일 하루는 연재를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ㅠㅠ

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혹은 모레 이 시간에 뵙겠습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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