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22화 (2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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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통과의례

그로부터 하루가 더 지나서야 포탈수리가 완료되었다.

다시 왔던 것과 같은 길로 학원 루바흐에 돌아온 세 사람은 진명식에 참가했다는 교황청의 인증과 레포트를 제출하여 무사히 일정을 끝마칠 수 있었다.

프리드와 비밀리에 접선을 약속했던 바이칼은 며칠간 더 교황청에 남겨졌다. 제대로 접선이 이루어진 것도 아니며 프리드의 행적을 도왔다는 증거도 없었기에 별다른 처분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필수적인 검문과정이었다.

그리고 다시 학교에 복귀한 쥬다스에게는 한 가지 시선을 끌만한 변화가 생겼다.

그 자체만으론 여전히 작고 볼품없었으며 두드러지게 대단한 부분도 없었다. 하지만 자연스레 학생들의 관심을 모으는 한 존재가 있었다.

“…쥬다스님.”

“허허. 부지런하구나. 좋은 아침이야, 에단.”

“식사는 하셨습니까.”

“오냐.”

많은 학생들이 눈독들이고 있던 신입생, 에단 헤이가가 그 곁에 붙어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에단은 진명식을 다녀오자마자 즉각 본래 신청했던 과목 중 일부를 철회하고 쥬다스와 같은 과목을 신청해 들어왔다.

보란 듯이 곁에 붙어 1황자를 챙기고 다니는 모습에 주변의 시선도 날카롭게 그들을 향했다.

“설마 1황자를 선택한 건가……?”

“그럴 리가. 하필이면 저 유약하고 보잘 것 없는 ‘백로황자’를.”

“혹, 저자도 뭔가 모자란 게 아닐까?”

그들을 중심으로 둔 수군거림은 부정적인 분위기가 주를 이루었다.

에단은 학원 루바흐에 입학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그 진가를 입장해낸 공작가 장남이었다. 무가의 핏줄답게 선천적으로 감각이 뛰어났으며 도(刀)에 대한 능력이 출중했다. 뿐만 아니라 무에 치우치지 않고 학문을 익히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으니 훗날이 기대되는 유망주였다. 성격이 과묵하긴 했으나 큰 짐을 질 이로서는 오히려 득이 되는 무거움이었다.

그에게 부족함이 있다면 단 하나, 사교였다. 물론 뭇 어른들이나 손위 사람들에게는 인정받고 있었다. 그가 먼저 전전긍긍해하지 않아도 몰려드는 사람이야 많았다. 하지만 또래 귀족자제들과는 이렇다할만한 교류가 없었다.

그랬기에 잘난 공작가 도련님에 대한 호감은 그가 쓸모없는 황자에게 관심을 갖는 순간 함께 추락했다.

그를 목격한 루바흐 학생들은 자신들이 버린 백로황자를 선택한 에단의 안목을 폄하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황자를 배척하고 침몰하도록 내버려둔 그들 자신이 틀렸다는 반증이 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드륵

교실 문이 열리자 수군거리던 학생들은 일제히 입을 닫았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게, 늘 제 시간에 맞춰 수업에 참석하는 크리스티나였다. 늘 그렇듯이 싸늘한 표정으로 자기자리를 찾아가던 크리스티나는 쥬다스와 에단을 힐끗 돌아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쥬다스가 빙긋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로구나, 크리스티나.”

“……네, 뭐.”

작게 고개를 까딱이는 크리스티나를 본 다른 학생들이 눈을 둥글게 떴다. 못 볼꼴이라도 본 듯 입을 헤 벌리기까지 했다.

크리스티나 델피아가 어떤 인물이던가! 그녀는 결코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이에겐 관심을 내어주는 일이 없었다. 황자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처음 그를 마주한 순간 크리스티나는 이미 그를 자신의 위에 설 군주로 인정하지 않았다. 괴롭히거나 싫은 티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 그저 관심 한 톨 주지 않고 지나쳤었다.

그랬던 그녀가 쥬다스의 인사에 대충이라도 반응했다는 사실은 학생들 사이에 큰 파란을 일으켰다. 하필이면 에단과 크리스티나, 둘 모두 권력의 큰 축에 해당하는 가문이었기에 그 여파는 서로 잘 맞물려 상승효과를 일구어냈다.

“…….”

“…….”

학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죄 입을 다물어버렸다. 등장만으로 어수선하던 분위기를 제압해버린 크리스티나는 그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자리로 가 앉았다.

곧 수업이 시작되고, 마무리할 때 쯤 교사는 안 그래도 심난한 학생들에게 정신이 번쩍 들 만한 공고를 칠판에 적어두고 사라졌다.

<290th, 1학기 중간고사 일정.>

큼지막한 글자 밑으로 세부사항이 주르륵 나열되어있었다. 수업이 끝났어도 학생들은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머리를 싸맸다.

“한 것도 없는데 벌써 중간고사라니!”

여기저기서 탄식의 소리가 흘러나왔다. 말마따나 시험을 치르기엔 아직 일렀다. 그러니 교사가 적어둔 시험예정일은 약 2주 가량 뒤였다.

시험공고에도 태연히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서는 건 쥬다스 뿐이었다. 아무런 긴장도 느끼지 않은 채 필요한 정보만 적어 교실을 나서는 그를 에단이 따라 나왔다.

‘그저 성적에는 관심이 없으신 건지, 아니면 아직 때가 아닌 건지.’

들리는 소문보다야 눈에 보이는 걸 우선시하는 에단이었으나, 단순 소문이 아니라 그간의 행적을 증명하는 명백히 드러난 결과도 존재했다. 알아본 바 쥬다스의 지난 학기 성적은 처참했다.

몇 과목 듣지도 않는데 그마저도 출석점수에서 다 깎아먹은 데다, 시험 성적도 좋지 않아 겨우 낙제만 면한 수준이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백로황자.

하지만 에단은 그 결과가 전부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

‘일부러 낙제하지 않는 선에서 최하급의 평가를 받았다. 그건 모두의 눈을 속이기 위한 작위적인 결과였나. 하지만 지금은.’

단 한 번의 지각결석 없는 출석률부터가 차이 났다. 그간 미비하던 존재감이 점차 수면위로 부상하고 있었다. 에단은 그를 좋은 징조로 여겼다.

황자가 발톱을 숨긴 목적은 아직 미지수였다. 역으로 쓸 만한 인재를 골라내고자 루바흐 학생들을 평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혹은 1황자를 위협하던 모종의 무리로부터 자신을 지키고자 한 보호책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조금씩 드러내기 시작한 이상, 그가 수면 위로 떠오를 만한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으리란 사실만큼은 명확했다.

침몰했던 황자가 비로소 재기를 원한다면, 에단은 기꺼이 그를 돕고자했다.

아직은 그를 ‘군주’로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그 가능성만큼은 충분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봉술은 배우기에 어떻더냐?”

“…예?”

상념에 빠져있던 에단에게 쥬다스가 부드럽게 물어왔다.

뒤늦게 질문의 의미를 알아챈 에단이 망설이다 대답했다.

“……활용이 조금 어렵습니다. 검과 달리 찌르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휘두르거나 퉁겨내기도 하니, 매순간 움직임이 예측되지 않아 적응이 힘듭니다.”

힘든 소리를 했어도 그간 그의 수련을 지켜봐온 쥬다스로서는 그 말이 겸손임을 알았다. 단기간 기초만 배운 학생치고는 상당한 수준까지 따라잡은 상태였다.

비록 흉내일 뿐이라 해도 교사 메이란이 보여준 모든 동작을 오차 없이 재현해냈으며 적재적소에 활용할 줄도 알았다.

과연 무예에 능통한 명가의 핏줄답다 여겨지는 솜씨였다.

세상엔 천재라 불리는 인물이 종종 태어난다. 이그레트도 정령술과 학문에 능통한 천재였다. 같은 맥락으로, 에단은 무의 감을 타고난 천재라 볼 수 있었다.

쥬다스는 그 사실을 굳이 언급하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체육관에 도달해있었다.

“배움에는 늘 어려움이 따르는 거란다. 어려움을 느낀다는 말인즉 제대로 산을 오르는 중이라는 뜻이지. 그 산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기도 하니 참으로 재미있지 않느냐.”

“산을 오른다……?”

“네게 비할 바는 아니긴 해도, 나 역시 나름대로 산을 오르고 있지. 보려무나, 이젠 제법 균형도 잡게 되었어.”

제대로 들기도 힘들어했던 봉을 양손으로 잘 붙든 채 기본자세를 취하는 쥬다스를 보며 에단도 역시 봉을 꺼내들었다.

쥬다스가 처음에 비해 체력이 조금 붙긴 했으나 말 그대로 정말 조금일 뿐이었다. 그걸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건 오로지 그의 정신력에 달려있었다.

탓!

처음으로 둘의 무기가 맞부딪히고도 낙오되는 이가 없었다. 에단의 힘을 이기지 못할 게 뻔한 쥬다스가 뒤로 봉을 넘기며 흘려냈기 때문이다. 기지는 좋았으나 그마저도 무리였던 듯 이마선을 타고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하나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으음?”

“신체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왜 무예과 수업을 선택하셨습니까.”

연이어 두 번째 봉격도 큰 무리 없이 소화해냈다. 쥬다스는 저릿거리는 팔에 가까스로 힘을 주며 대답해주었다.

“글쎄다. 하고 싶었기 때문이려나.”

하고 싶은 게 많았을 아이. 본래의 쥬다스가 무슨 생각으로 봉술수업을 신청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아이가 하고 싶었던 일이라면 힘들다고 해서 철회하고 싶지 않았다.

“…하면, 한 가지만 더 여쭙겠습니다.”

“……!”

터엉

세 번째까지는 쥬다스의 가느다란 팔뚝이 채 견디지 못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굴러간 봉을 내버려둔 채 그는 비어버린 손을 가만 바라보았다.

무리한 결과답게 손바닥이 잔뜩 까져 벌겋게 부어올라있었다.

“당신의 몸은, 왜 자라지 않는 것입니까.”

7살의 몸에서 전혀 성장하지 못한 12살 소년의 모습은 부자연스럽다 못해 기이할 정도였다.

처음엔 그 자신도 그 원인으로 단순한 영양부족이나 선천적인 성장지연을 예측했었다.

하지만 루바흐 학원에서 제공되는 식사는 절대 부족하다볼 수 없었다. 가짓수도 다양할 뿐더러 양 또한 먹고 싶은 만큼 무한정 제공된다. 또래 학생들이 그를 꺼려한다 해도 식사를 못하게 훼방을 놓거나 대놓고 폭력을 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병’인가.

거기에 대해서도 아직 의문점은 남았다. 병이 있다고 하기에 딱히 아프거나 문제를 보이는 부위는 없었다. 선조 중에 같은 병을 앓았던 이도 없었으며 움직이고 사고하는 데에 이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보에 의하면 몸이 허약하긴 했어도 7살까지는 정상적으로 성장을 했던 아이였다.

이는 마치, 몸이 스스로 성장을 거부하는 것만 같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이그레트는 현자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지식과 능력을 가져 제국발전에 기여를 했던 인물이지만, 정작 인간으로서는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ㅎㅎ

인연을 과할 정도로 소중히 여겼고, 배신자들을 쳐내지 못할 정도로 잔정이 많았기 때문에 그 판단이 독이 되어 돌아온 경우가 수도 없었죠.

상처받는 것에 익숙하지 못하여 결국엔 도망치기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단, 다른 삶을 살게 되었으므로 예전과 마냥 같은 행보를 걷진 않겠죠. ㅎ 똑같이 당하기만 하면.....의미가 없으니(...)

아참, 그리고 질문주셨던 것 중 하나 답해드리자면...

제 세계관에서 정령술사는 '마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라 부작용도 거의 없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차후 스토리상 나오겠지만 정령을 다루는 건 술사의 '정신력'입니다. 정신력이 한계에 달해도 힘을 계속 사용한다면 기절하거나, 정신이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릴 수 있습니다.

...어쩐지 설명하다가 미묘하게 스포하게 될까봐 자제중입니다. ㅠㅠ 일일히 적합한 답을 드리지 못한 점 죄송합니다!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내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후원쿠폰 등 보내주신 애정에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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