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27화 (27/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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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통과의례

다행히 아직까진 폭발이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달려간 메이란이 학생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 아래를 살폈다.

“첼피! 로하만! 다들 괜찮나?!”

“예, 예.”

“괘, 괜찮, 저희는 괜찮은데…….”

뜻밖에 멀쩡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밑에 깔릴 뻔한 건 그 두 명이었다. 놀라 주저앉았을 뿐 다친 구석은 없어 보이는 그들을 보며 메이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그들의 말에 피가 싹 마르는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 저, 저분이.”

“……저분?”

두 사람이 가리키는 곳엔 어느 틈엔가 에단이 서있었다. 그가 바닥에 꽂다시피 한 봉이 지렛대처럼 작용하여 조명장치를 살짝 떠받치고 있었다. 떨어지기 직전 밀어 방향을 틀어낸 모양이었다.

물론 여기엔 숨겨진 힘이 하나 더 작용했다.

「저 인간도 참 겁이 없네. 이그레트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쩌려고 저랬을까?」

「우웅, 그만큼 믿고 있었던 거 같은데.」

「뭐를?」

보통사람 눈엔 보이지 않지만 바람의 힘이 장치를 감싸 떨어지는 충격을 흡수한 상태였다. 아무리 에단이 빠르게 움직였다 해도 그의 힘만으로는 추락하는 조명장치를 안전하게 받아낼 수 없었다. 정령의 힘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장치가 폭발해 함께 다쳤거나 제대로 구해내지 못했을 것이 분명했다.

에단은 짧게 한숨을 후 뱉으며 쥬다스를 돌아보았다.

「이그레트가 절대 이 상황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 거다요. 저 인간.」

「가만? 그렇다는 건 오히려…….」

당연히 에단이 나서지 않더라도 쥬다스는 분명 학생들이 다치도록 두지 않았을 것이다. 힘을 숨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명이 걸린 일이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몸소 뛰어든 건 그가 정령의 힘을 사용했다는 걸 숨기도록 도와준 셈이기도 했다.

“자네! 위험하게 이게 무슨, 다쳤지 않나!”

메이란은 큰소리를 내면서도 학생들을 끌고 사고구역에서 벗어났다. 정작 위험했던 두 학생보다 몸을 던져 상황을 타개한 에단이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봉을 꽂으면서 추락한 장치에 손목을 세게 부딪친 듯 피가 꽤 흐르고 있었다.

에단은 곧장 양호실로 보내졌다. 봉술수업만 들었다하면 문지방이 닳도록 찾아오는 두 사람 덕에 그들의 방문이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치료사는 느긋한 태도로 그들을 맞이했다.

“오늘은 꽤 일찍 오셨네요. 언제 오시나 시간 재던 중이었는데요. 그런데…….”

치료사의 시선이 멀쩡한 쥬다스로부터 에단에게 옮겨갔다.

“이번엔 환자와 보호자가 바뀌었습니다?”

“사고가 있었습니다.”

“…세상에.”

따뜻하게 소독된 물수건을 가져온 리이나가 에단의 핏물을 닦아내며 안타까운 눈길을 보냈다.

“이, 이거 위험했어요……. 자칫 했으면 인대에도 손상이 갔을 텐데. 다행히 상처가 깊지는…….”

“리이나. 진료를 보고 싶다면 네가 치료사를 하도록 하렴.”

“아, 아, 아니요―! 죄송해요!”

“얼른 치유술로 회복부터 해드려.”

치료사는 간결하게 지시하고 상처주변에 소독약을 뿌렸다. 아무리 치유력이 대단한 힘이라 한들 근본적으로 상처 자체를 없애주진 못했다. 말끔히 상처를 회복시킬 정도의 치유력은 교황청이나 황궁 정도에 상주하는 고위 치유술사들만이 가능한 이능이었다.

이제 겨우 10살 난 리이나가 완벽히 치유를 해낼 리가 없었기에 상처에 대해 기초적인 치료가 함께 들어갔다.

리이나가 에단을 치유하는 동안 쥬다스는 그를 향해 넌지시 말을 건넸다.

“많이 아팠느냐.”

“…별 것 아닙니다.”

뼈나 인대까진 이상이 없다하더라도 깊게 파여 살점이 떨어져나간 상처였다. 피를 철철 쏟아놓고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는 에단을 보며 쥬다스는 난감한 어조로 말했다.

“네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구나.”

“…….”

에단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빼도 박도 못하게 그 자리에서 정령의 힘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더 고마운 사실은, 에단이 그를 믿어주었다는 점이었다. 쥬다스가 타인의 죽음을 방관하지 않고 도울 것이란 확신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그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달받은 에단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로서는, 제 확신을 증명해주신 쥬다스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역시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에단의 입가에 조그마한 미소가 맺혔다 사라졌다. 그는 진지하게 표정을 굳히며 쥬다스를 쳐다보았다.

“…그보다 쥬다스님. 이 사고는 분명 누군가 일부러 한 짓일 겁니다.”

“나도 그리 생각한단다.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던 시설이 급작스럽게 허물어지려면 그만한 조작이 가해졌을 터. 아마 학원 측에서도 조사를 해볼 요량이긴 하다만.”

이번 사고에서 큰 피해가 없었다한들 범인을 찾는다면 루바흐에서는 이를 간단히 두고 보진 않을 것이다. 자칫 학원의 명예가 떨어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리고 쥬다스는 이미 그 범인들을 알고 있었다. 은은한 바람이 그의 손끝을 휘감았다.

「이그레트.」

유니가 걱정스런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겉으로 태연해보여도 현재 쥬다스는 약간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였다.

이유도 알겠고, 무얼 노리는 건지도 짐작이 갔다. 하지만 방법이 잘못됐다.

‘차라리 정당하게 나만을 노렸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번 사건이 뜻하는 바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타인에게 해가 되는 일쯤은 가볍게 이용할 수 있다는 알림과도 같았다. 그리고 그런 식의 사고방식은 쥬다스가 가장 거북하게 여기는 종류였다.

물론 그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행동을 결정짓지는 않았다. 그가 다루는 것은 자연의 4속성, 자칫 잘못 다루어진다면 천재지변을 일으킬 재앙과도 같은 힘이었다. 직접 경험한 바 어떤 일이든 간에 무력에 의지한 해결은 옳지 못했다.

하지만 필요에 의해서라면 적절히 입장을 취해야할 때도 있었다.

마침내 생각을 정리한 쥬다스는 쓰게 웃었다.

그의 손끝에서 한기를 품은 바람이 휙 허공으로 흩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텅 빈 교실에서 책상을 하나 쾅 걷어찬 펠리엇이 분개하여 소리쳤다.

함께 모여 있던 다른 4명의 학생이 서로 시선을 회피하며 우물쭈물 대답했다.

“분명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손을 봤었는데…….”

“맞아, 신호를 주면 그때 조명이 추락하도록 해서.”

“그럼 그렇게 됐어야지! 젠장.”

펠리엇은 쓰러진 책상을 발로 짓이기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체육관에서 수업이 끝난 후 교사와 학생이 전부 해산할 때, 백로황자만 따로 붙잡아두고 일을 벌일 셈이었다.

혼자 있을 때를 노려 조명 장치를 폭발시켜 적당히 다치게 만든다.

그리고 혼자 남았던 그에게 장치를 훼손한 죄를 뒤집어씌우면 간단히 끝날 일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도, 상황이 너무 일찍 벌어졌다.

아직 십 대인 그들이 정확히 실행에 옮기기엔 애초부터 무리인 일이었다.

자신들의 역량을 넘어서는 엄청난 일을 꾸며놓고도 그들의 표정에는 죄책감이란 없었다.

“근데 이거 걸리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

“큰일? 큰일은 이미 났지. 이제 루바흐에선 범인을 찾으려 할 거야. 정작 그 백로황자에겐 아무런 타격도 못 입혔고.”

“그, 그럼 어떻게 해야.”

“약한 소린 작작해, 크레비.”

다른 학생의 일침에 크레비의 입이 다물렸다.

여전히 불안한 듯해 보이는 친구의 표정을 비웃어주며 펠리엇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시작되기 전에 증거부터 없애.”

“증거를 없애라니?”

모두의 눈이 그를 향했다. 펠리엇은 위험스레 눈을 빛내며 말을 맺었다.

“어차피 우리가 저질렀다는 증거는 남기지 않았으니까 대타를 만들면 돼.”

무죄를 입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죄의 발생지를 아예 옮겨 버리는 것이다.

미리 입을 맞춰 다른 유력한 용의자를 만들어내고, 한번 여론이 그에게 몰리게 되면 진짜 일을 저지른 장본인들은 안심할 수 있게 된다.

“백로황자를 싫어하는 놈들은 차고 넘치니까. 분명 밟아주고 싶을…….”

“그럴 필요 없으이.”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언제부터 와 있었던 건지 쥬다스가 문가에 서 있었다.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모의 중에 괴롭히던 대상이 나타나 버린 엉뚱한 상황에 학생들은 당황하여 입을 열지 못했다.

심지어 조금 전까지 그에 대해 좋지 못한 대화도 나누고 있었던 탓에 그 당황은 배로 찾아왔다.

그들에게 있어 정말 예상대로 풀리는 게 아무것도 없는 하루였다.

무겁게 침묵이 깔린 교실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선 쥬다스가 그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마침 볼일이 있어 찾아왔거늘, 너희도 이에 관해 할 말이 있던 모양새로구나.”

“그건…….”

갑작스러운 상황에 뭐라 답해야 할지 망설이던 펠리엇은 쥬다스의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혼자인가?’

하긴 펠리엇은 입안으로 중얼거리며 납득했다.

아무리 요즘 평판이 좋아지고 있다 한들 상대는 ‘백로황자’였다.

흥미를 보이는 이들은 생겨났지만, 정작 이런 때에 그를 도와줄 학생은 단 한 명도 없을 게 분명했다.

그렇게 확신한 학생들은 긴장했던 표정을 점차 풀고 쥬다스를 마주 바라보았다.

“수업도 없는 교실에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으음? 이런, 헷갈리게 했는가. 내가 찾아온 건 이 교실이 아니란다.”

“그럼……?”

쥬다스는 천천히 그들 앞으로 다가섰다.

비슷한 또래라 해도 겉보기엔 마치 유아나 다름없었기에 쥬다스는 고개를 들어 한참 올려다봐야 했다.

작지만 흔들림 없이 그들을 향하는 금안에 학생들은 움찔했다.

“두렵더냐.”

적막하던 빈 교실에 쥬다스의 목소리가 힘 있게 울렸다.

그 바람에 잠시 멍해 있던 학생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고 입을 열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너희가 저지른 행동이 말이다.”

‘일부러, 알고서 찾아왔다고?’

5인의 안색이 동시에 확 굳어졌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주말에 너무 격하게 놀았는지 아직까지도 몸이 힘드네요. ㅠㅠ;

비몽사몽간에 작성한지라 오타나 비문이 좀 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외 어색한 부분은 내일 중 확인 후 수정하겠습니다.

나쁜일은, 정말 그렇게 저지르려고 마음 먹은 경우는 사실 별로 없습니다.

아직 십대 초반인 아이들이니 성인들과는 다르게 판단능력도 떨어지는 편입니다. 하지만 몇몇분들이 말씀하신 대로, 어리다는 것이나 고의성이 없었다는 건 면죄부가 되지 않죠. ㅎ (그렇다고 저 단순한 이들이 이그레트가 만나게 되는 주요 악인이란 뜻은 아닙니다.; 소제목 그대로 통과의례의 일종이므로, 그냥 지켜봐주시면 되겠습니다(...))

나이 얘기가 나와서 정리하자면,

쥬다스 : 12세

에단 : 15세

크리스티나 : 14세

바이칼 : 14세

입니다. ...루바흐 입학기준이 10세이상부터니 뭐... 대부분 어립니다. ㅎㅎ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선호작, 추천, 코멘트, 후원쿠폰 등 보내주신 사랑과 응원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 내용수정과 용량조절을 함께 적용하였으므로 코멘트 및 작가후기가 본 내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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