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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재회
“제1목적지를 투르케 사막으로 변경해 주십시오.”
“……투르케 사막 말씀이십니까? 그곳은 거리가 멀어 곧장 이동하실 수는 없습니다. 중간에 포탈을 2회 더 갈아타셔야 할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니, 그럴 필요 없이 좌표 설정을 투르케 사막으로 잡아주시면 됩니다.”
사륵.
관리자가 의문을 표할 새도 없이 루니가 어슬렁거리며 포탈 옆에 섰다. 그와 함께 실체화한 유니가 포로록 날아올라 포탈을 녹색 바람으로 휘감았다.
은은하게 감싸오는 정령의 힘을 알아차린 포탈 관리자가 서둘러 동력 장치를 확인했다.
평소 표시되던 에너지양의 5배 이상의 수치가 차오르고 있었다. 마법력이 아니라 정령이 다루는 자연의 힘이었기에 안전적인 문제도 전혀 없었다.
실제 제국에서 관리하는 유능한 정령술사들은 포탈을 이용할 때 이런 식으로 포탈의 효율을 높여 이동하곤 했으니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관리자는 최종 점검을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라면 충분히 무리 없는 장거리 이동이 가능했다.
“제1목적지는 투르케 사막 포탈입니다. 탑승해 주십시오.”
쿠우우우.
포탈 안에서는 공간이 갈라져 우레 같은 굉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쥬다스를 선두로 에단, 크리스티나, 바이칼, 마르젠까지 5명의 루바흐 학생이 한 사람씩 포탈에 발을 들였다.
마지막으로 포탈의 경계를 넘은 아벨은 공포에 희게 질렸으면서도 꿋꿋이 멈추지 않고 뒤를 따랐다. 이로써 6인 모두 포탈 탑승을 완료했다.
곧이어 먹물 같은 에너지파가 그들을 집어삼켰다.
“학우 여러분의 안전한 외출을 기원합니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 포탈 관리자의 사무적인 인사말만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 * *
학원 루바흐와 투르케 사막은 굉장히 멀었다.
만일 말을 달려 도착하려 한다면 5일 밤낮을 쉬지 않고 이동해도 닿지 못할 거리였다.
그 정도의 거리를 정령의 기운을 더한 포탈은 겨우 몇 초 만에 뛰어넘었다.
먹물 같던 검은 장막이 사라지고 다시 시야가 밝아졌다.
달라진 점이라면 루바흐의 고풍스럽고 고고한 포탈 관리실 디자인과 달리 투르케 사막의 포탈 관리실은 허름하고 휑한 느낌을 주었다.
도착하자마자 싸늘한 한기가 먼저 팔뚝을 감쌌다. 살면서 한 번도 고향에서 느껴본 적 없는 한기에 아벨이 가만히 팔을 쓸어내렸다.
이유 모를 소름이 팔뚝을 타고 등줄기까지 죽 돋았다.
“어서 오십시오. 여기는 투르케 사막입니다. 사령술사의 침공으로 인하여 영지가 완전히 붕괴되었으므로, 귀한 분들이 머무실 공간은 따로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현재 재건작업 중이니 불편하시더라도 근방에 설치된 간이 숙소에 머무시길 바랍니다. 포탈 재이용 시간은 내일 오전 10시부터입니다. 그럼 편안한 하루 보내십시오.”
현재 투르케는 모든 시설이 파괴된 상태였다.
거기다 원주민이 한 명도 남지 않고 전멸하였으니 재건이라기보단 거의 신축에 가까웠다. 심지어 이 포탈 관리실 자체도 급조된 상황이었다.
새로 배치된 관리자는 애도의 뜻을 담은 검은 로브를 걸친 채 현 상황에 대해 짧게 안내했다.
확인증에 관리자의 도장을 받은 쥬다스가 고개를 돌려 아벨을 바라보았다.
“아벨.”
“……네.”
“이리 가까이 오거라.”
일행의 가장 뒤에 서 있던 아벨은 쥬다스의 부름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쥬다스는 굳게 닫혀 있는 포탈 관리실의 문을 가리켰다.
“네 손으로 열어볼 테냐.”
질문을 들은 아벨의 잿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황자는 지금 선택권을 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와서 자신의 손으로 문을 열고 나가 현실을 마주할 것인지, 혹은.
“…….”
망가진 제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저 강인한 황자의 등 뒤에 숨을 것인지.
여전히 상냥한 배려에 아벨은 울컥 치솟아오른 감정을 가까스로 삼켜내고 대답했다.
“네. 제,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황자의 손에 맡겼을지언정, 스스로 감당해야 할 무게까지 떠넘기고 싶진 않았다.
「헤에, 저 인간도 제법이네.」
쥬다스의 어깨에 빨래집게처럼 달라붙은 유니가 턱을 괸 채 중얼거렸다.
홀로 실체화를 하지 못해 시무룩해 있던 토니가 그 혼잣말에 반응했다.
「우웅? 뭔 말이다요?」
「보통 사람은 저 정도 불행을 겪으면 무너지잖아. 나쁜 마음먹기도 쉽고 말이야. 인간의 정신은 나약하니까. 거기다가 저 아벨이란 인간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훠얼~ 씬 더 나약한 축이었거든.」
「그래 보이긴 한다요.」
「근데 지금 봐. 불행해하면서도 결코 그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있잖아.」
약하면서도 강하다. 아벨이 가진 그 모순적인 성질에 유니는 흥미롭게 눈을 빛냈다.
「신기해. 이것도 이그레트 효과일까?」
본래대로라면 꺾였어야 할 나뭇가지였다. 버드나무처럼 휘기만 했을 뿐 다시 튼튼히 자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슨 정령들 사이에서 공신력 있는 이론명처럼 거론된 자신의 이름에 쥬다스는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사이 아벨은 포탈 관리실의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짧은 심호흡과 함께 이를 앞으로 밀었다. 그러자 문은 소리 없이 스르륵 열렸다.
찬바람이 불어와 그의 얼굴을 할퀴고 지나갔다.
사박사박.
아벨은 모래를 헤치고 몇 걸음 걸어 나왔다.
본래대로라면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고 있어야 할 사막 하늘엔 새까만 먹구름이 몰려들어 뒤덮고 있었다.
투르케 사막 전역을 뒤덮은 요사스러운 공기는 입김이 얼 정도로 차가웠다.
아벨의 뒤를 따라 쥬다스 일행도 함께 포탈 관리실에서 나왔다. 신발아래 밟히는 모래의 질감이 얼음 알갱이와 뒤섞여 몹시 단단했다.
“…….”
아벨은 더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자리에 못 박힌 듯 정지했다.
“맙소사.”
“……그 사령술사란 놈, 더럽게 질 나쁜 녀석이군.”
마르젠이 탄식했고 바이칼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에단과 크리스티나는 가만히 쥬다스의 곁에 선 채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전멸’, ‘파괴’ 등으로 표현되고 있던 투르케는 무엇 하나 바뀐 것 없이 그대로였다.
때 묻은 천막이나 하얀 돌판 위에 새겨진 안내 문구, 낙타를 보관해 놓은 나무 우리며 작은 오아시스, 관상용으로 꽃을 피운 커다란 선인장까지 무엇 하나 달라지지 않았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아벨이 얼어붙은 모래 위로 주저앉았다. 한 발짝 뒤에서 그와 같은 풍경을 담아낸 쥬다스의 금안이 짙게 가라앉았다.
‘프리드.’
투르케의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었다.
드넓은 사막 영토 전체가,
마치 얼음으로 조각된 하나의 예술품과도 같았다.
제국 재난 기구에서 파견된 대원들에 의해 사람들의 시신은 공동묘에 안치된 상태였다.
멸망한 지 5일이나 지난 후였지만 여전히 사령술의 잔재는 남아 있었다.
사령이란 죽음을 매개로 하여 힘을 발휘하는 영적 개체였다.
사령술사 프리드가 펼쳐 놓고 간 사령술은 마치 저주처럼 그 땅에 남아 끊임없이 한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태양광을 차단한 시커먼 먹구름에선 음습한 바람이 흘러나왔으며 얼어붙은 대지는 시간이 지나도 녹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반적인 자연현상이 아닌 순리를 거슬러 발동된 힘이었기에 오물을 뒤집어쓴 스웨터처럼 쉬이 그 여파가 가시지 않았다.
「이그레트, 이건.」
“……그래, 사령의 힘이다. 일반적인 힘으로는 절대 녹지 않겠지.”
아벨은 가족과 영지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투르케 공동묘로 갔다.
다른 일행들은 모두 그와 함께 애도를 표하러 묘지로 향했지만 쥬다스는 조금 있다 합류하겠다는 말을 남기곤 홀로 얼어붙은 사막 마을을 거닐었다.
프리드가 사용한 사령술이 정확히 어떤 힘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쥬다스는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바닥으로 차가운 모래를 짚었다.
「……이미 죽은 자들을 되살릴 수는 없을 테지만. 불의 힘이라면 얼어붙은 사막을 되돌려 놓을 수는 있을 거야.」
쥬다스는 침묵으로 유니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그레트’로 사는 동안 한평생을 자신 옆에 묶어둔 정령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자유를 주고자 했던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다.
그는 다시 눈을 뜬 이후로도 기꺼이 부름에 응해 다시금 곁을 지켜주는 정령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결국 언제나 내 필요에 의해 너희를 부르게 되는구나.’
정령왕을 뜻대로 부릴 수 있는 존재는 현재로선 그뿐이었다.
이 얼어붙은 대지를 망가뜨리지 않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릴 수 있는 것도 자연계 4속성 힘을 한꺼번에 사용할 수 있는 그가 유일했다.
죽어버린 사막을 도로 생명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되돌리기 위해선 4속성 정령 동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지를 다듬고 식물을 자라게 하며 깨끗한 물이 흐르고 따뜻한 온기를 품을 수 있도록, 동시에 자연계의 모든 속성이 개입해야 했다.
“……?”
멈칫.
땅을 짚고 있던 손바닥이 천천히 거두어졌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쥬다스에게 세 정령의 의아한 시선이 몰려들었다.
「이그레트? 왜 그래?」
「어디 아픈 거다요?」
「……?」
무릎 꿇은 그에게 다가선 루니가 살짝 엎드려 그 안색을 살피던 순간이었다.
울컥.
갑작스레 터져 나온 붉은 핏물이 손바닥을 가득 적셨다. 이를 본 유니가 황급히 날아올라 그 뺨을 짚었다.
「이그레트!」
톡, 토옥.
턱 선을 따라 흐른 핏방울이 손바닥을 적시고도 넘쳐 차가운 모래 알갱이를 붉게 물들였다.
갑작스럽긴 했으나 쥬다스는 지금 토혈의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정령 역소환.
어느 특정한 제3자의 강력한 힘이 개입하여 술사와 정령 사이에 이어진 계약을 강제로 가로막거나 정령을 크게 상처 입힐 경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정령은 술사의 부름에 무조건 응하게 되어 있다.
영혼과 영혼이 이어진 계약을 가로막으려면 그만한 힘과 정령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다.
혹은, 정령이 술사의 부름에 응할 수도 없을 만큼 큰 손상을 입고 ‘수면’ 상태에 들어갈 경우에도 역소환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럴 경우, 정령을 소환하려던 술사는 역으로 데미지를 입었다.
소환에 실패함으로 인해 계약에 대한 불이행 책임이 전부 술사에게 쏠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정령의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정도가 강했다.
꽈악.
눈앞이 흐릿해질 정도로 큰 충격이 그를 덮쳤다.
쥬다스는 피에 물든 손으로 주먹을 쥔 채 내장을 통째로 뒤흔드는 고통을 감내했다. 곧바로 정신을 잃지 않은 게 용할 정도의 강렬한 타격이었다.
‘카니.’
늘 그를 보며 행복하게 웃던 사슴같이 순한 눈망울이 환각처럼 떠올랐다 사라졌다.
맥없이 모래 위에 무릎 꿇고 있는 그의 근처에서 한 사내가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죽음의 기운이 뒤덮인 음산한 바람이 그를 감돌고 있었다.
“여, 꼬마 황자. 묘한 우연이군 그래.”
터벅터벅.
프리드였다. 후드를 눌러쓴 채 지척까지 걸어와 멈춘 그는 빙글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자 온 게냐?”
“…….”
“배짱도 좋구만. 명색이 1황자란 녀석이 호위도 두지 않고 이런 델 혼자 나다니다니. 같이 다녀줄 네 편이 없는 거냐, 아니면 그만큼 자기 실력에 자신이 있는 거냐?”
“…….”
쥬다스는 답하지 않았다. 모래를 적신 핏물에 잠시 시선을 준 프리드는 별 상관없다는 듯 그를 무심히 내려다보았다.
“흠, 전보다 조금 컸군? 그래 봤자 꼬마는 꼬마지만 말이다.”
프리드는 쥬다스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후드 아래 드러난 적안이 또렷이 그를 바라보았다.
쥬다스는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피를 닦을 생각도 않고 그를 마주했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카니, 돌아와! (몬스터볼)
가라 루니, 너로 정했다!
...이런 느낌이지만 아무튼 순순히 제것을 빼앗길 정도로 약하면 먼치킨 이그레트가 아니죠...ㅎ
주인공에게 최강의 힘을 쥐어준 건 새드물을 쓰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의 발로였습니다. 하하; 아무튼 너무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악역후보1인 프리드가 재등장했으니 슬쩍슬쩍 뿌려두었던 떡밥회수할 날도 머지 않았네요.
오늘 13일의 금요일이었다는데,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것이 분위기가 참 좋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셨는지요~ ^^ 저야 술자리에서 잠깐 빠져나와 업데이트 누르는 거라 다시 복귀하러 가지만은... 음. 이 추세라면 내일은 하루 쉴 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 혹은 모래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ㅎ
오늘도 재미있게 봐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선호작, 추천, 코멘트, 후원쿠폰 등 보내주시는 관심과 응원에 언제나 깊이 감사드립니다. 건강한 불금+토 보내세요!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 내용수정과 용량조절을 함께 적용하였으므로 코멘트 및 작가후기가 본 내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