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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재회
“익스플로션.”
속삭이듯 읊조린 시동어에 따라 그들의 몸에 새겨진 마법진이 작동했다.
몰려든 마력이 진동했고, 곧이어 굉음과 함께 세 자객이 폭사했다.
콰쾅!
자폭이었다.
그러나 폭발의 여파는 쥬다스에게까지 미치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물과 바람의 동조술로 만들어진 차단막이 직육면체의 형태로 폭발을 가두었다.
충격은 차단막에 흡수되었지만 그들이 서 있던 자리는 새까맣게 타올랐다.
벌컥!
“무슨 일이십니까!”
소리까진 완벽히 차단하지 못한 터라 시종 로한이 예를 차리는 것도 생략하고 곧장 문을 열고 달려들어 왔다.
바닥을 구르는 날붙이, 카펫과 함께 까맣게 불타 재가 되어버린 자객들의 잔해를 발견한 로한이 놀라 숨을 삼켰다.
그를 따라 들어온 호위병과 마법사들이 즉각 쥬다스를 옆방으로 피신시키고 사건을 수색했다.
정작 습격을 당한 본인은 멀쩡히 소파에 앉았는데 시종만 혼비백산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진정하거라, 로한. 별일 아니었으이.”
“예?”
황당할 정도로 태연한 말에 로한은 뒤늦게 흐트러진 정신을 수습하고 주인의 안위를 살폈다.
“다치신 곳은 없으시옵니까, 전하.”
“그래.”
대수롭지 않은 기색이었다. 로한은 멀쩡하다 못해 심지어 자객의 습격을 받고 놀라지도 않은 것처럼 보이는 주인을 당황하여 바라보았다.
“머릿수는 셋. 암기를 다루는 실력이 오랜 훈련을 거친 솜씨더구나. 암습에 실패하자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과감히 자폭을 택하였다. 미리 몸에 마법진을 새겨놓았던 모양이야.”
“……전하.”
“음?”
시종은 ‘정녕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라는 물음을 목구멍 아래로 간신히 삼켜냈다.
1황자에 대해 공공연히 좋지 않은 소문이 떠돌곤 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목숨을 위협받은 적은 지금껏 한 차례도 없었다.
상해 여부와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침입한 쪽이 실패 시 자폭을 감행하면서까지 흔적을 지우고 목표물을 사살하려는 지독한 살수들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눈앞에서 사람이 터져 나가는 걸 봤을 황자는 지나치게 태연했다.
이 부분을 지적하자니 주제넘은 것 같았고 묻지 않자니 정녕 괜찮은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로한이 할 말을 고르느라 선뜻 입을 열지 못하자 쥬다스가 미안한 어조로 먼저 지시했다.
“그래, 많이 놀랐겠구나. 소리가 꽤 컸으니 다른 방에 있던 아이들도 듣고 놀랐을 수도 있겠지. 그 아이들에게 상황을 알려주고 너도 가서 쉬려무나.”
“……예, 전하.”
로한이 걱정하는 쪽은 오히려 쥬다스였건만 그는 다른 쪽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공포에 사로잡혀 떠느니 차라리 이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에 로한은 일단 자리에서 물러났다.
시종이 자리를 떠나자 쥬다스는 옮겨온 방을 멍하니 둘러보았다.
고급 양모가 깔린 소파와 장인의 손길로 다듬어진 조각상, 화려한 꽃을 피우고 있는 화분과 티테이블 등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손님용으로 쓰이는 방이 차라리 본래 그의 방보다 더 사람 사는 분위기가 났다.
「이그레트.」
유니가 가만히 서 있는 그의 어깨위로 포로록 날아와 안착했다.
“……황실의 일들이 생각보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양이로구나.”
이미 ‘쥬다스’라는 인물이 범상치 않은 배경을 가졌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그 깊이가 예상했던 것보다 깊은 듯했다.
유니는 그의 뺨에 찰싹 달라붙어 위로하듯 토닥였다.
「걱정하지 마. 내가, 우리가 반드시 지켜줄게.」
“으음……. 고맙다만 유니. 걱정되는 건 그 부분이 아니라.”
「아니, 지금은 너 자신만 생각해. 이그레트.」
「맞다요! 지금도 다른 인간들을 걱정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요.」
모처럼 토니가 유니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카니는 조용히 웃었고 가만히 엎드려 있던 루니도 끼어들었다.
「과한 욕심을 부리는 자는 자멸하게 되어 있다. 네가 굳이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정령들의 말을 들은 쥬다스는 난감한 표정으로 턱을 짚었다.
“글쎄, 자멸이라. 설령 그렇다 한들 가만 두고 볼 수만은 없겠지.”
보복이나 응징 같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번 건드렸을 때 반응이 없으면 그 뒤로는 점점 건드려지는 강도가 세지는 법이었다.
실제 ‘백로황자’가 루바흐에서 받아온 조롱과 멸시는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커진 부분도 있었다.
아량을 베푸는 것과 입 다물고 당하기만 하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휘오오.
그의 손끝에서 맴돌던 녹색 바람이 훅 하고 흩어졌다.
때로는 이빨을 드러낸 적에게 상대가 쉬이 건드릴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직접 깨우쳐 줄 필요도 있었다.
밤새 일어났던 사건으로 인해 그가 머무는 궁은 완벽히 통제되었다.
심지어 대귀족 출신인 에단이나 크리스티나조차 쥬다스가 머무는 방에는 출입이 허가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를 찾아가 상태를 확인하지도 못한 채 심각한 분위기로 모여 있던 아이들은 쥬다스가 말끔한 차림으로 나타나자 황급히 다가가 정황을 물었다.
“간밤에 습격이 있었다 들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아무 이상 없단다. 많이 놀랐느냐?”
“당연히……!”
감정적으로 반응하려던 바이칼이 후 심호흡을 하고, 마저 말을 이었다.
“무사하셨을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여.”
“걱정해 주었단 뜻이구나. 고맙다, 바이칼.”
“아니, 꼭 그런 건…….”
당혹스레 웅얼웅얼 얼버무리는 바이칼 대신 크리스티나가 나서서 재차 물었다.
“전원 자폭하여 배후를 찾긴 어렵다 들었습니다. 괜찮으신 건가요?”
“흠.”
아예 존재가 사라져 버린 사람에 대해 정보를 읽기란 바람의 정령에게도 어려운 일이었다.
황궁 소속 정령술사가 있으니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자폭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물론 정령왕의 힘이 개입한다면 결과는 달라지지만 이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었다.
쥬다스는 살짝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배후를 캐는 건 어려울 듯하구나.”
“아뇨.”
크리스티나는 단호하게 그의 대답을 부정했다.
“전하께서 지금 괜찮으시냔 뜻입니다.”
“으음, 내 그리 상태가 안 좋아 보이더냐. 너희가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왜 자꾸 큰일이 아니라고 하시는 겁니까?”
쥬다스의 대답에 크리스티나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썹을 치켜 올렸다.
“물론 전하께서 지닌 이능은 대단합니다. 하지만 무려 제국의 1황자 궁에 잠입한 자들, 어젯밤엔 엄연히 위험에 노출되셨던 겁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1황자 궁은 황궁 안에서도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황궁을 지키는 호위 인력이 거저 놀고먹기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고위급 실력을 가진 선별 인원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세 명이나 황자의 거처를 침입했다는 건 굉장히 큰 문제였다.
“그렇구나. 그 말이 옳다. 내가 안일했으이.”
쥬다스가 깔끔히 인정했음에도 일행의 표정은 쉬이 풀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그를 추궁하려던 게 목적이 아니었던 만큼 크리스티나는 이마를 짚으며 작게 한숨을 뱉었다.
‘분명 두려우셨을 텐데도.’
황자는 아직 12살이었다. 14살에서 16살 사이에 있는 그들조차 목숨이 노려지는 상황이나 눈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본다면 태연하게 견딜 자신이 없었다.
뛰어난 무술을 익히고 마법을 학습했다 한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도저히 써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아직 그들 사이에서도 제일 어린 12살에 불과한 저 황자는 어땠을까.
크리스티나를 비롯한 아이들의 마음이 무거워진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하, 티를 내지 않으시려 노력하는 거겠지.’
생각해 보면 쥬다스는 언제나 그랬다. 늘 느긋했고 부드럽게 그들을 다독여 주었다.
지금껏 그를 알게 된 이후 단 한 번도 분노하거나 표정을 일그러뜨린 전례가 없었다.
아이들은 새삼 쥬다스에 대해 안타까움을 느꼈다.
군주의 혈통은 그 자리의 무거움을 안다.
그러므로 아랫사람들 앞에서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거나 동요해서는 안 됐다.
특히 공포나 슬픔 따위는 더욱 금기와도 같았다.
군주는 강해야 하고 어느 때나 흔들림이 없어야 했으니 지금 쥬다스가 보여주는 태도는 이에 아주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물론 이는 실제 그의 내면이 매우 강하기 때문이었지만, 아이들의 눈엔 마음껏 두려움을 표현하지 못하고 의지할 곳이 없는 쓸쓸한 모습으로 비추어졌다.
“……?”
정작 쥬다스는 아이들의 복잡한 시선에 대해 의문을 품을 뿐이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그가 가라앉은 분위기를 어려워한다고 느낀 에단이 화제를 돌렸다.
“그래, 시장할 시간이긴 하구나. 혹 꽃놀이를 좋아하느냐?”
“예?”
“네?”
황궁에서 들을 거라곤 생각도 못한 단어에 침울해 있던 아이들이 하나같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쥬다스는 빙그레 웃으며 빙글 발길을 돌렸다.
“내 보아둔 자리가 있으이.”
자리란 다름 아닌 1황자 궁 뒤편에 위치한 벚나무 아래였다.
가지가 크고 높게 뻗어 그늘이 질 정도로 우람한 나무였다. 손톱만 한 꽃잎이 살랑살랑 흩날렸다.
날씨는 아주 맑았고 농익은 봄바람은 따사로운 햇살을 식혀 주었다.
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꽃나무였기에 그 밑에 자리를 잡고 간단한 피크닉 식사를 즐기게 된 아이들은 신기한 눈으로 만개한 벚꽃을 올려다보았다.
문득 크리스티나가 꽃잎을 손바닥에 받으며 말했다.
“……‘해동’은, 사방신을 믿는 국가라 했던가요.”
쥬다스의 생모 하윤 리가 왕녀로 자라온 모국이 바로 ‘해동’이었다.
해동은 대륙 동쪽 제일 끄트머리에 위치한 나라였으며 루바르잔 제국과는 그 사상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제국이 교황청을 세우고 국교로 유일신을 섬긴다면, 해동은 나라를 지키는 4명의 수호신인 사방신을 믿었다.
여기서 신이란 개념도 제국과는 달랐는데 전지전능한 존재라기보단 말 그대로 인간 이상의 힘을 가지고 나라를 수호하는 영적 존재를 뜻했다.
「걔들도 정령이야. 자연계가 아닌 동물계라 우리랑은 좀 다르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유니는 코웃음 치며 덧붙였다.
다른 아이들은 카니를 제외한 세 정령의 모습은 볼 수 있었지만 소리는 듣지 못했다. 정령이 직접 말을 걸지 않는 이상 정령이 하는 말을 엿듣는 건 불가능했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끼리 해동에 대해 아는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놓았다.
“왕족 대대로 사방신 중 하나의 가호를 타고난다고.”
“하나 최근엔 사방신의 존재가 묘연해졌다고도 하더군요.”
「계약을 맺을 만한 친화력을 가진 적합자가 태어나지 않은 모양이야. 계약자가 없으면 그 해동이란 나라에 묶일 이유도 없겠지. 그래서 그런 걸 거야.」
「근데 왜 그동안 왕가라는 한 핏줄에 묶여 있던 거다요?」
「낸들 아니? 걔네만의 특이한 습성인걸.」
토니의 의문대로 정령은 보통 술사와 일대일 계약 관계를 맺었다.
계약자의 후손은 정령 입장에서 볼 때 큰 의미가 없는 존재였다. 신체적인 특성이 닮았을 뿐 인간의 영혼은 전승되지 않는다.
카니는 알 것 같다는 듯 배시시 웃었다.
「계약자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할까요.」
「……충성심?」
「그를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다면 그를 닮은 아이라도. 한 번 사랑했던 계약자를 도저히 놓지 못하는 충성심인 게 아닐까요.」
「헤에.」
조곤조곤한 설명에 유니가 솔깃한 반응을 보였다. 카니는 동글동글한 눈망울에 웃음기를 담고 쿡쿡 웃었다.
「난 그 마음, 좀 알 것 같은데.」
「……으음.」
4속성 정령의 시선이 한 존재를 향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카니의 말에 부정하지 못했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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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드린 3연참은 오늘 중으로 전부 올라갑니다. ^^
아마 5분안에 다음 편이 올라올 것 같으니 여유되시는 독자님은 잠시만 기다려주세요ㅎ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 내용수정과 용량조절을 함께 적용하였으므로 코멘트 및 작가후기가 본 내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