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68화 (68/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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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허물벗기

오늘 점심을 함께 먹는 인원은 쥬다스와 아벨, 바이칼, 그리고 에단까지 넷이었다.

에단 역시 다시 만나게 된 거울정령이 껄끄럽기는 매한가지였으나 어디까지나 기분상의 문제였다.

효율과 관계 측면에서 생각해 봤을 때 쥬다스가 직접 거두어 재능을 키워주고 있는 아벨에게 악감정은 없었다. 오히려 에단은 호의적인 편이었다.

개인적인 감정을 뒤로 미루고 주군의 뜻에 관점을 맞추는 철저한 모습에 바이칼은 질렸다는 듯 포크를 입에 물었다.

“예에~ 뭐, 격려 좋죠.”

“……실천은.”

“그럼 에단 님이 격려하는 시범을 좀 보여주시죠. 저는 그날 이후로 거울 알레르기가 생겨서.”

잿빛 머리칼을 하나로 묶어 내린 투르키가 바이칼과 에단을 멍하니 번갈아보다 아벨을 향해 물었다.

「격려?」

“투, 투르키. 그건 그러니까……. 힘을 내란 뜻에서 하는 으, 응원 같은 건데…….”

「응원?」

“기운을 북돋는…….”

「북돋는?」

어버버 말을 더듬던 아벨이 도와달란 눈빛으로 에단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에단은 강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격려했다.

“……꾸준히 훈련하다 보면 사람다워질 거다.”

이를 본 바이칼은 생각했다.

아, 이 양반도 진짜 더럽게 요령 없네.

점심 식사를 마친 학생들은 저마다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각자 신청한 과목이 다르기도 하고, 아벨은 이제 학생이 아니었기에 연구소로 돌아갈 차례였다.

쥬다스는 에단과 함께 체육관으로 향했다.

오늘 봉술 수업은 늘 하던 페어 대련이 아니었다.

지금껏 일대일로 대련을 하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짝과 같은 팀을 이루어 교사팀을 상대로 2:2전에 돌입했다.

본래 봉술 교사를 맡고 있던 메이란과 보조 교사로 불려온 그녀의 여동생 수란이 교사팀이 되었다.

학생들은 콜로세움처럼 둥글게 자체 관람석을 만들고 앉아 흥미롭게 제 차례를 기다렸다.

2:2 팀전이라는 새 형식을 구성한 메이란은 경쟁 유도를 위해 실기 가산점을 상품으로 걸어두었다.

교사팀을 상대로 승리한다면야 물론이고 채점 기준으로 보았을 때 가장 훌륭한 성과를 낸 상위 세 팀을 꼽아 가산점을 부여한다는 조건이었다.

물론 이제 기본기와 방어를 익힌 학생들이 봉술 전문 무예가로 이름을 날린 두 자매를 그냥 이길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래서 교사팀에게는 ‘자리에서 한 발짝 넘게 이동해서는 안 된다’라는 조항이 붙었다.

단 한 발자국, 교사 둘이 움직일 수 있는 반경이었다.

움직임이 고정된다면 아직 배움이 짧은 학생들이라도 도전해 볼 만했다.

학생들은 에단과 페어인 쥬다스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입학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모든 무예과 수업에서 최고점을 찍고 있는 에단이라면 수월히 가산점을 받아낼 수 있으리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의 불만을 잠재울 조항이 하나 더 덧붙었다.

<2:2는 팀워크를 중심으로 채점함. 같은 팀원이 봉을 놓치거나 쓰러질 경우 그 팀은 자동으로 대련 종료.>

어느 하나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봤자 팀플레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생각보다 까다로워지는 가산점 쟁탈전에 학생들은 안도함과 동시에 무거운 한숨을 뱉었다.

에단뿐 아니라 모든 학생이 팀전에 익숙하지 않았다. 짝이 제대로 못할 걱정보다는 스스로가 걸림돌이 될까 걱정하는 아이도 많았다.

팀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부담을 안겨주기도 한다.

자기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잘 파악하고 있어야 했으며 또한 평소 짝과 얼마만큼 정확히 합을 맞춰 보았느냐가 이번 2:2전의 관건 중 하나였다.

가산점이 걸려 있는 만큼 대련에 임하는 학생들, 지켜보는 학생들 할 것 없이 모두 정규 시험과 맞먹을 정도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자, 시작.”

메이란이 씨익 웃으며 봉을 세워 바닥을 텅 찍었다.

체육관에 울려 퍼진 둔탁한 소리와 함께 첫 도전자들이 교사팀을 향해 달려들었다.

메이란과 수란은 서로 등을 맞대고 서 있었다. 그런 그녀들을 향해 첫 팀은 각자 찢어져 맞붙었다.

각자 한 명씩 상대할 셈이었으나 확연한 실력 차 탓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두 학생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교사팀과의 대련에서 패배했다.

“여러분. 오늘 보려는 건 팀워크라니까, 팀워크.”

명심하라며 찡긋 웃는 교사를 보고 학생들은 잠시 술렁였다.

그리고 두 번째 팀이 앞으로 나섰다. 이번에는 찢어져서 싸우는 게 아니라 동시에 한 명을 노렸다.

표적은 수란이었다.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카리스마를 보여 온 메이란보다는 보조로 불려온 동생 쪽이 그나마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이루어진 판단이다.

의논을 마친 두 학생은 신중하게 수란의 틈을 노리며 정자세를 취했다.

어차피 한 발짝밖에 움직이지 못하는 교사팀은 선공을 할 수 없다. 공격 타이밍을 먼저 잡을 수 있다는 건 학생들에게 굉장한 이득이었다.

게다가 이번 팀은 에단만큼은 아니어도 두 학생 다 무예과에서 인정받고 있는 실력파들이었다.

수업 중 배운 동작을 충실히 재현해 낸 그들은 교사팀을 상대로도 안정된 합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들이 둘이다시피 교사팀 역시도 두 사람이었다.

수란을 2:1로 집중 공격하려던 작전은 금방 수포로 돌아갔다.

등을 맞대고 섰던 메이란이 틈틈이 지원을 해왔던 것이다. 한 발짝이라도 축이 되는 발을 놓고 빙글 돌리면 정반대로 설 수 있게 된다.

교사 자매는 필요한 순간마다 서로 위치를 바꾸어 학생들을 상대했고 기가 막히게 동작을 연계했다. 마치 한 사람을 상대하듯 자연스러운 팀워크였다.

지켜보던 학생들은 일제히 감탄했다. 지금껏 일대일 구도에서만 다루던 ‘봉술’이란 무예가 색다르게 보인 것이다.

검보다 훨씬 길고 무거운 봉을 가지고도 오히려 더욱 빠르고 유연한 연계가 가능했다.

봉은 하나의 지형물로도 이용 가능한 무구였기 때문이다.

두 번째 팀도 역시 쉽게 패배했다.

속수무책으로 밀린 두 팀을 보고 나니 이제 누구도 섣불리 도전하려하지 않았다.

메이란은 허리에 손을 얹으며 주변을 빙글 둘러보았다.

“뭐야, 여러분. 더 없어? 설마 여기서 끝은 아니겠지?”

침묵이 내려앉은 학생들 사이로 누군가 당당히 손을 들고 일어섰다.

“도전하겠습니다.”

세 번째 도전 팀을 발견한 메이란이 손을 까딱여 들어오란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에단과 쥬다스 페어였다. 스승을 향해 가볍게 목례를 한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봉을 쥐었다.

사실 이 둘도 팀전에는 생소했다.

검술을 연마하며 개인 실력만 갈고 닦은 에단도 에단이었지만 워낙 강한 힘을 손에 쥐고 있어 딱히 협력이란 개념이 필요하지 않았던 전생을 살아온 쥬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사팀에게 예를 차린 둘은 시작하기 전 서로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한단다.”

이 2:2 팀전에서는 혼자 잘나서야 의미가 없었다. 대신 각자 잘난 부분을 활용할 필요는 있었다.

쇄액.

선공은 에단의 몫이었다.

찌르기 형식으로 파고든 에단의 공격을 가볍게 탁 밀어낸 메이란이 빙글 몸을 돌려 수란과 자리를 교대했다.

기다렸다는 듯 빈자리를 메워 봉을 휘둘러오는 수란의 공격에도 에단은 꿈쩍 않고 봉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

그 사이에 끼어든 건 쥬다스였다.

무기를 다루는 힘 자체는 약했지만 빠른 판단력과 봉에 대한 이해력이 예상치 못한 속공을 가능하게 만들고 있었다.

탁.

에단이 바닥에 꽂다시피 한 봉을 지지대 삼아 붙들고 빠르게 방향을 전환한 쥬다스가 수란을 향해 일격을 날렸다.

깡 하며 쇠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체육관을 울렸다.

수란은 루바흐의 정식 교사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언니인 메이란에 비해 방어 측면에서 솜씨가 더욱 탁월했다.

빠른 속공에도 당황하지 않고 봉을 한 바퀴 돌려 막아낸 수란의 악력은 쥬다스가 버틸 만한 강도가 아니었다.

쥬다스는 뒤로 퉁겨난 봉을 그대로 손에서 놓았다. 대신 떨어지기 전 에단이 탁 이를 잡아챘다.

동시에 망설임 없이 각자 들고 있던 자기 봉을 놓음으로 인해 두 사람의 무기가 바뀌었다.

봉을 떨어뜨리면 패배로 간주하는 규칙이었지만 지금처럼 서로의 무기를 교환해 든다면야 상관없었다.

이를 본 메이란은 속으로 감탄했다.

‘오, 제법.’

방금 전 상황은 서로가 서로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임기응변이었다.

무인이 자기 무기를 손에서 놓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검술보다 자유도가 높은 봉술이라지만 무기에는 자존심과 숨통이 걸려 있었다. 무인은 손이 비는 순간 무인이 아니게 된다.

그 틀을 깨고 자유롭게 무기를 바꿔들 수 있다는 건 저 두 사람이 그간 그만한 신뢰를 쌓아왔다는 증거가 되었다.

메이란은 교사로서도, 1황자를 염려하던 제국민으로서도 흡족한 마음이 들어 웃었다.

“하지만 그건 곧…….”

작게 중얼거린 그녀는 휘릭 봉을 돌려 잡고 빠르게 쥬다스를 향해 겨눴다.

“자네의 치명적인 약점도 될 수 있다는 거겠지? 평범한 동료가 아니라 모시기로 한 주군이라면 아무리 팀전이라 해도 위험에 처하게 두진 못할 테니까.”

“……!”

그 말대로였다. 상대를 신뢰하는 것과 별개로 충성하는 대상에게 들어오는 공격을 방치할 수는 없었다.

에단은 선봉의 공격 포지션에서 벗어나 그를 돕고자 방향을 틀었다. 때를 노려 수란이 그의 옆구리를 가격했다.

빠악.

“충성도 과하면 팀에 붕괴를 일으키는 거야, 에단 님.”

“…….”

에단은 표정 변화 없이 내렸던 봉을 들어 올렸다.

수란이 가격한 것은 옆구리가 아니라 쇳덩어리였다.

어느 틈엔가 봉을 돌려 수란의 공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알고 막았다기보단 동물적인 감각으로 일어난 방어 행동이었다.

그는 더 생각하지 않고 곧장 몸을 움직였다. 강한 힘으로 휘둘러온 일격에 수란이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이는 수란을 지나쳐 그 뒤에 있던 메이란에게로 향했다.

훙.

봉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흡사 커다란 관악기에서 나는 음파와도 같았다.

검술 천재가 휘두르는 봉격은 교사인 메이란이라 해도 위협을 느낄 수준이었다.

그녀는 수란을 지나쳐 자신에게로 향한 봉을 막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 찰나 차분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쥬다스가 개입하여 합공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공격만으로는 메이란을 꺾을 수 없었다.

꽤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하며 차례로 봉을 막아낸 메이란이 쥬다스가 들고 있던 봉을 강하게 쳐 냈다.

악력에서 밀리는 쥬다스는 봉을 놓치고 비틀거렸다. 그가 놓친 봉은 메이란의 힘에 의해 허공에 붕 떠올랐다.

너무 손쉽게 거리를 내준 쥬다스에게 의아함을 느낀 그녀의 시야에 에단의 움직임이 재차 들어왔다.

‘아차!’

메이란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자신에게 공격이 집중되었다고 느낀 건 일종의 함정이었다.

덜그럭!

땅에 떨어져 데굴데굴 구르는 봉은 총 2개였다. 방어면에선 최고라고 생각했던 수란의 봉이 맥없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수란은 봉을 놓친 손바닥을 내려다보다 작게 숨을 내뱉으며 돌아선 에단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에단 헤이가, 헤이가 가문의 신체 능력과 정통 무술을 물려받아 그 위명을 떨친 소년. 직접 상대해 보니 정말이지 괴물 같은 힘과 움직임이었다.

“……와.”

지켜보던 학생들 중 누군가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를 시작으로 멍하니 대련을 바라보던 아이들 사이로 술렁임이 번져 나갔다.

쥬다스가 봉을 놓치긴 했지만 동시에 교사팀의 수란 역시 봉을 손에서 놓쳤기 때문에 비긴 것과 다름이 없었다.

에단은 쥬다스에게로 다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합니다.”

“아니, 충분히 잘해주었단다. 팀전이었지 않느냐.”

팀이란 서로에게 짐이 될 수도 있는 관계지만, 결국 힘이 되어주는 게 그 근골이다.

“훌륭했다.”

바로 지금처럼.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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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어제는 컨디션이 매우 악화되었던 바람에 오지 못했습니다. ㅠㅠ

시간 여유가 있으신 독자님들께서는 약 5분 가량만 기다려주세요.

바로 연참으로 이어집니다.ㅎ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 내용수정과 용량조절을 함께 적용하였으므로 코멘트 및 작가후기가 본 내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 헉헉 수정작업이 꽤 힘드네요. 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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