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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Chicken Game : Ending
그런 그가 3황자에게까지 독침을 날린 이유는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살짝 비껴서 날리기도 했지만 어차피 최상급 정령술사가 곁에 있는 이상 독침 따위에 순순히 당하지 않으리란 생각도 한몫했다.
결과적으로는 쥬다스의 개입이 있었지만 어쨌든 라한은 자신이 모시는 주인에게 의심의 화살이 돌아가지 않도록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한 셈이었다.
화악.
순간 눈앞이 번쩍했다.
단순히 ‘불’이라는 속성으로 칭하기 어려울 정도의 어마어마한 화기가 침입자를 한순간에 태워 버렸다.
마치 전쟁용으로 압축된 고성능 마력포에 의해 존재 자체가 지워진 느낌이었다.
“…….”
암살자의 흔적이라곤 바닥에 떨어진 독침 3개뿐이었다.
같은 정령술사로서 왕이 다루는 불의 기운에 전율하면서도 스승에 대한 걱정이 앞선 콜은 황급히 쥬다스에게로 다가갔다.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그래, 도와주어 고맙구나.”
“험, 당연한 것을요.”
손을 내저으면서도 고맙다는 말에 기쁨을 드러내는 콜이었다.
나이가 들었어도 스승의 칭찬에 반색하는 것은 예전과 같았다.
그런 제자의 등을 두들겨 준 쥬다스가 여전히 방문 앞에 못 박힌 듯 서 있는 세이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대충 아이의 생각이 짐작이 갔지만 그는 모르는 척 말을 붙였다.
“세이지, 괜찮은 게냐?”
“……아. 네, 괜찮아요. 형님, 무사하신 듯하니 전 그럼 다시 가볼게요. 쉬세요.”
세이지는 허둥지둥 자리를 떠났다.
머릿속이 터질 것같이 복잡했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다는 충격보다는, 그자가 자신이 알던 이였다는 게 훨씬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세이지를 괴롭게 만든 사실은.
‘어머니의 사람이 형님을 죽이려고 했어!’
라한은 말하자면 황후의 그림자 무사였다.
그리고 축축한 이끼를 닮은 암녹색 눈동자는 틀림없이 그 라한의 것이었다.
“……우윽.”
세이지는 문에 등을 기댄 채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밤새도록 떨림이 멎지 않았다.
동이 트자마자, 세이지는 먼저 첫 포탈을 타고 교황청에서 떠났다.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막무가내로 혼자 떠나 버린 세이지에 대해 콜이 보고하자 쥬다스는 쓰게 웃을 뿐이었다.
그들도 더 이상 교황청에 머물 이유는 없었기에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포탈 관리실에 도착하자 성녀 위그드라실이 헤브와 함께 그들을 배웅하러 나와 있었다.
“이제 황궁으로 가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그간 편의를 보아주어 고맙습니다, 위그드라실.”
“후후, 다시 만나 반가웠어요.”
성녀는 쥬다스의 앞에서만큼은 완전히 평범한 소녀처럼 보였다.
방긋이 웃는 위그드라실에게 쥬다스도 역시 따뜻하게 미소 지어주었다.
두 사람이 훈훈하게 인사를 나누던 사이, 정령들은 나름대로 그를 수호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우앙? 이게 뭐다요?」
문득 토니가 쥬다스의 머리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포탈기기에 박혀 있는 정령석 앞으로 날아간 토니가 의문스레 고개를 기울이자 그 곁으로 유니가 포로록 날아들었다.
「왜 그러는데?」
「돌에 막 금이 가 있는 거다요! 여기 여기.」
「응? 진짜네?」
정령석에는 평범한 인간이 육안으로 알아채기 어려운 미세한 흠집이 나 있었다.
그 흠집은 사실 포탈의 목적지를 강제로 바꾸어버리는 정교한 마법 주문이었다.
누군가 쥬다스가 황궁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출발 직전 교묘하게 손을 써놓은 함정이었으나 정령석도 돌의 일종.
땅 속성에 관련된 모든 것을 관장하는 정령왕 토니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고쳐 놔야겠다요!」
쥬다스의 허가가 내려지기가 무섭게 정령석은 토니의 힘에 의해 말끔하게 복구되었다.
다른 이들은 눈치채지 못한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본래대로라면 포탈을 타는 즉시 오지로 떨어져 즉사하거나 즉위식 날짜가 지나도록 방황하게 되었을 흉악한 함정이었다.
말끔히 고쳐진 포탈을 타고 쥬다스와 콜은 황궁으로 이동했다.
황태자 즉위식까지 앞으로 7일.
1황자 쥬다스가 황궁의 땅을 다시금 밟았다.
목숨을 건 게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 * *
루바르잔 제국의 황후, 사야 D.캐슬롯은 현재 몹시 애가 달아 있었다.
작금의 사태를 제외하고선 여태껏 그녀가 직접 손을 쓰는 일 중 성사되지 않은 일이란 없었다.
그녀는 간교했지만 그만큼 영리한 두뇌를 가지고 있었으며 눈치가 빨라 남들보다 두셋은 수를 앞서 두었다.
지금 1황자 건만 해도 그랬다.
사야 황후는 쥬다스가 정령술에 뛰어난 자질을 가진 사실도 알았고 몇 년 전 보았을 때와 달리 힘없는 어린아이가 아니란 사실도 눈치챘다.
그는 지난 귀환 때에 황후에게 숨겨 두었던 발톱을 드러냈다.
생쥐인 줄 알았던 꼬마가 알고 보니 웅크리고 있던 어린 사자였다.
꼴에 위대한 통치자의 피를 이었다는 걸 증명하기라도 하듯 쥬다스는 비범한 이능과 지력을 차례차례 선보였다.
독에 잠식되어 가던 생명은 도로 활기를 되찾았고 도리어 그전보다 훨씬 튼튼하고 건장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그도 모자라 황태자 자리를 놓고서 황후를 도발하기까지 했다.
참으로 발칙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황후는 섣불리 도발에 응하지 않았다. 아니, 응하지 않는 척하면서 때를 살폈다.
그간 다리 부러진 병아리처럼 비실비실하여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해 보이던 것과 달리 아직 새끼더라도 맹수의 피를 제대로 이은 작태였다.
그래서 황후는 더욱 신중을 기해 1황자를 압박했다.
경고 차원으로 보낸 사령에 그가 당하지 않으리란 건 이미 알고 있던 일이었으니 당황할 것도 없었다.
다만 그녀는 1황자가 사령에게 괴이쩍은 방식으로 공격당하고 나면, 적어도 겁을 먹고 주춤거리거나 제 어미의 마지막을 되새기며 분노해 날뛸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1황자는 지나치리만큼 태연했다.
그 뒤로도 그는 비웃기라도 하듯 황후가 놓은 덫을 유유히 밟아 부숴버리고 지나갔다.
‘……어째서?’
사야 황후는 엄지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며 초조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녀가 알기로 1황자는 연금술이 개입된 부정한 존재가 맞았다.
아들인 세이지에게 했던 ‘가짜’라는 말이 근원 없는 생거짓말은 아니었다.
전 황후인 하윤이 살아 있을 적에 그녀를 겁박한 연금술 자료들은 조작이 아니라 실제로 황비였던 사야가 직접 손에 넣었던 진짜배기였다.
단, 그 출처는 전 황후 하윤 리가 아닌 황제 레위스였다.
누가 어떤 목적으로 연금술을 사용했든 간에 1황자의 존재 자체는 부정한 것이 틀림없었다.
부정한 방법으로 태어난 육신에 영혼 따위 있을 리가 없었다.
‘그 아인 정화 세례를 받고 죽었어야 해.’
하지만 어쩐 일인지 1황자는 아주 멀쩡했다.
게다가 혹시나 하여 붙여 놓은 그림자는 암살에 실패하고 죽어버렸다.
겨우 사람을 매수해 바꿔치기한 포탈 정령석은 발동조차 하지 않았다.
뭐가 이리도 행운유수(行云流水)인지 도무지 그 행보를 막을 방도가 없었다.
“마마, 안으로 드시옵소서.”
그래서 일단 황후는 3황자 휘하 귀족들을 비밀리에 소집했다.
그녀는 검은 베일이 달린 울 모자를 마지막으로 한 번 눌러 가볍게 고정시켰다.
얼굴을 덮은 검은 베일이 그녀의 흔들리던 표정을 가려 주었다.
황후는 우아하게 접선 장소로 들어섰다.
겉보기로는 평범한 저택이었지만 회의장에 모인 자들은 전부 3황자를 차기 황제로 지지하며 황후의 손과 발이 되어주던 패들이었다.
“그래, 모두 모였는가.”
“그것이…….”
빈자리가 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모여 있는 귀족들도 썩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를 확인한 황후의 표정이 굳었다.
“상관없네. 앞으로 나눌 이야기에는 그만한 각오가 된 자들만 있으면 될 일이지.”
황후는 분을 삼키며 담담한 척 이를 넘겼다.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었으나 모인 이들은 이날따라 말을 아꼈다.
이렇다 할 방안은 내어놓기는커녕 이 귀족들이 정말 3황자를 차기 황제로 지지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지지부진한 태도를 내보였다.
흘러가는 분위기를 귀신같이 눈치챈 황후가 찻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단호히 말했다.
“분위기가 어수선하군. 내 분명히 말해두지. 명심하시게, 이대로 1황자를 황태자로 올려선 아니 될 일이야.”
“외람되오나…….”
내내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던 한 귀족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미 델피아와 헤이가, 두 공작가문에서 1황자에게 후계의 칼을 바치겠노라고 공표했사옵니다. 마마.”
“……!”
칼을 바치다.
이는 귀족들이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 사용하는 오래된 표현이었다.
제국의 양대 산맥이 1황자를 차기 군주로 인정하고 후세대의 충성을 맹세했다.
1황자와 어울리는 무리 중에 공작가의 자제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고작해야 아이들 놀음 정도라 보고 있었다.
하나 무려 가문과 황실이 얽히는 충성이었다.
아직 황태자 즉위식을 마친 것도 아닌 1황자에게 자제들 개인의 선택이 아닌 가문의 공식 입장이 발표되다니.
어지간한 신의 없이는 이리도 빨리 결정 날 리 없는 사안이었다.
“또한 하쉬 백작가를 선두로 중립에 서 있던 자들이 전부 이에 동요하여 황태자 전하를 모시고자 서로 앞다투어 나선다 하니…….”
바로 마르젠의 물밑 작업의 성과였다.
이어지는 보고를 들으며 황후는 눈앞이 아찔해지는 걸 느꼈다.
베일로 가렸게 마련이지 지금 그녀의 표정을 본다면 다들 비웃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황후는 자신이 1황자를 너무 얕보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게다가 이능마저도 워낙 뛰어난지라, 마마께서도 손을 못 쓰고 계신 듯 하온데…….”
“…….”
“이 이상 견제하는 것은 소용이 없질 않나 싶습니다.”
“허흠, 흠.”
여기저기서 헛기침 소리만 들려왔다.
누구 하나 반대하거나 목청을 높이는 자가 없었다.
암묵적인 동의였다.
황후가 침묵을 지키자 모였던 귀족들이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소인은 다른 회의가 잡혀 있어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아, 저도 역시 이후 일정이 있어.”
“……그럼 소인도 이만.”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귀족들을 바라보는 황후의 눈꺼풀이 바르르 떨렸다.
그녀의 명이라면 구둣발이라도 핥을 것처럼 굴던 치들이 전부 강 건너 불 보듯 태도를 바꾸었다.
그녀는 차기 황제의 모후라는 신분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추락했다.
얻을 꿀이 없는 꽃에 머무르는 벌은 없다.
텅 빈 회의실에 홀로 남은 황후의 어깨를 누군가 두들겨 주었다.
“다음 기회를 도모하십시오.”
“……아버지.”
캐슬롯 후작이었다.
후작은 황후에게 일단 한발 물러설 것을 제안하고 있었다.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는 법입니다, 마마. 일단 일 보 후퇴하여 후일을 위해 힘쓰셔야 할 것입니다.”
“후일이라니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마마.”
“아버지!”
황후는 소리 높여 후작의 청을 잘라냈다.
“아버지도 보고 들으셨지요. 1황자의 기세가 날로 높아져만 가고 이능마저 강력하니 날이 지나면 지날수록 강건해질 뿐입니다. 그 애는 지금 숨겨 두었던 발톱을 하나둘 꺼내 사냥을 하려 들고 있어요. 제 어미와 자신을 궁지로 몰았던 그날을 잊지 않고서……!”
“……마마, 소리를 낮추셔야 합니다.”
“소리를 낮춘다고 숨겨질 일이겠습니까. 그 아이가 황태자가 된다면 곧바로 제 목을 조이려 들 겁니다. 황위에 오른다면 세이지의 목을 베려하겠지요.”
“으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1황자는 전 황후 하윤 리의 죽음과 관련되어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인물이었다.
그대로 둔다면 자칫 현 황후인 사야가 금지된 사령술을 익혔음은 물론 전 황후를 시해한 장본인임이 밝혀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나 마마, 지금은 때가 아닙니다. 판세가 기울었으니 이만 여기서 접고 다시 천천히 판을 벌이도록 해야.”
“아뇨, 이 판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놓지 않을 겁니다.”
사야 황후는 독하게 눈을 빛냈다.
“내 이 목숨과 설령 더한 것을 걸어서라도.”
후작은 더는 그녀를 만류하지 못했다.
황후는 차갑게 돌아 회의장을 나갔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오늘의 팁 : 프리드가 사기캐인 이유 -> 재료만 준비되어있다면 신체재생가능 및 몇번이든 부활이 가능하다. 말그대로 언데드. (단 재료가 부족하거나 이를 찾아내어 손상시킬 시엔 주술이 실패하여 그냥 죽습니다.)
사족으로, 많은 분들이 예상하신 대로 이그레트를 힘으로 이길 수 있는 존재는 이 세계관에 없습니다. 어...4:1이라서가 아니라요.... (...)
어쨌든 각자 목적을 달성한 셈입니다.
'? 대체 뭐를 달성함?'이라고 물으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게 인지상정! 이지만 스포니까 넘어가겠습니다.ㄷㄷ(..코난은 자유..)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시고 선호작, 추천, 코멘트, 후원쿠폰 등 보내주신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참, 어워드투표... 저거 뭔진 모르겠..는데... 그래도 투표해주신 800분 감사드립니다! 순위목록에서 이그레트보고 놀랐네요 ㅎ)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이 글은 2016.01.10 수정되었습니다. 내용수정과 용량조절을 함께 적용하였으므로 코멘트 및 작가후기가 본 내용과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