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103화 (10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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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환향

일행 모두의 시선이 궁금증을 담고 세이지를 향했다. 쏟아지는 시선에 살짝 민망함을 느낀 세이지가 볼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그 분지호수에 신룡님이 산대요.”

“……신룡?”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명칭에 다들 곁에 있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먼 옛날 하늘에서 내려온. 그러니까 신의 대리자 같은? 생긴 건 드래곤을 닮았다는데 진짜 드래곤일지는 모르겠고요.”

「그럴 리는 없어. 드래곤들은 모두 옛날 옛적에 용계로 떠났거든. 만일 남아 있다고 해도 드래곤이 호수 따위에 산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는걸.」

유니가 단호하게 세이지가 전달하는 내용을 부정하며 추가 정보를 붙였다.

정령에게 태클이 걸린 줄도 모르고 세이지는 계속해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무튼 그 신룡님이 호수에 살기 시작하면서 마을에 좋은 일도 많았나 봐요. 마을을 습격하는 산짐승이나 몬스터들도 싹 사라지고. 사람들은 신룡님이 마을을 지켜준다고 믿었대요. 근데 이 신룡님이란 존재가 백 일마다 산 제물을 바쳐야 해서.”

처음엔 염소 한 마리로도 충분했던 제물은 세월이 흐를수록 점점 그 양을 늘려야만 했다. 마을 조상이 하던 풍습대로 백 일마다 가축을 잡아다 바치긴 했지만 어느 선부터는 그게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제물을 바쳐야 하는 주기도 한 달에 한 번으로 짧아졌다.

최근엔 염소 다섯 마리를 바쳐도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한 달마다 제물을 바치는 건 작은 산골 마을 사람들에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양이 채워지지 않자 화가 난 신룡은 호수는 물론이고 산에 흐르는 물길을 모조리 막아버렸다.

거기까지 들은 바이칼이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예? 세이지 님, 물길을 막았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세이지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대신 쥬다스의 어깨에 앉아 있던 유니가 다시 추가 정보를 붙였다.

「그 신룡이란 녀석 제법 힘이 대단한가 봐. 화가 나면 불을 뿜어 그 큰 호수를 냄비 끓이듯 팔팔 끓여버린대.」

말로는 대단하다 하면서도 유니는 쭈욱 기지개를 켜며 날개를 팔랑거렸다.

「끄응차. 이 산맥 수원지가 거의 그놈이 살고 있는 호수인가 본데. 물이 끓어 증발해버리거나 아예 물길이 뚝 끊기곤 해서 사람 살 환경이 못되나 봐.」

「으잉? 불 속성 몬스터다요? 근데 왜 호수에 산다요?」

「낸들 아니? 취향인가 보지. 존중해 줘.」

정령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듣는 쥬다스의 표정엔 큰 변화가 없었다.

대신 무언가 깊이 생각에 잠긴 채 침묵을 지켰다.

“……저기, 여행자님들.”

그때, 그들의 주변으로 다가온 여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룡님에 대해서는 더 궁금해 하지 않으시는 게 좋답니다.”

조금 전 쥬다스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던 아기엄마였다. 엄마 품에 안겨 있는 아기는 축 늘어졌던 때와는 다르게 까불까불 손장난을 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를 본 쥬다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아이는 좀 괜찮습니까?”

“아! 덕분에 아주 건강해졌어요. 술사님께 인사해야지, 시엘.”

“우?”

여인이 아기를 고쳐 안으며 쥬다스를 볼 수 있도록 엉덩이를 받쳐 안아주자, 아기는 파란 눈동자를 휘며 말갛게 웃었다.

산 아래 드넓은 해안의 지명을 따서 지은 시엘이란 이름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아기였다.

“꺄아.”

시엘은 짧은 팔을 뻗어 바둥거렸다.

쥬다스에게 가고 싶어 하는 몸짓에 시엘의 엄마가 당황하여 얼러보았지만 아기의 고집은 제법 셌다.

결국 울먹울먹 눈시울이 촉촉해지는 아기를 보며 쥬다스는 부드럽게 양해를 구했다.

“안아 봐도 되겠습니까?”

“아, 얘가 정말 왜 이러지……. 죄송하지만 그래주시겠어요?”

여인은 미안한 얼굴로 아기를 쥬다스에게 넘겼다. 익숙한 손길로 안아다가 느릿느릿 등을 토닥여 주자 시엘은 금방 또 꺄르르 웃었다.

“오냐, 아가. 이름이 시엘이라 하였지. 너는 웃는 얼굴이 아주 어여쁘구나.”

“우아?”

“옳지. 이제 기분이 풀어졌는고?”

“아부부!”

전혀 말이 통할 상대가 아닌데도 시선을 맞추고 따뜻하게 기분을 물어주는 쥬다스의 모습에 그의 일행들은 하나같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가만, 이거 뭔가…….’

‘……기시감이…….’

바이칼과 에단이 동시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마치 할아버지가 손주 다루듯 어여삐 여겨주는 태도에, 금방 울음을 거두고 방긋방긋 거리는 아기의 모습까지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또 다시 동시에 생각했다.

어쩐지.

‘그동안 쥬다스 님 앞에선 다들 저 아기나 다름없었던 게 아닌가?’

그러다 무심코 눈이 마주친 둘은 피식 허탈한 웃음을 머금었다.

서로 같은 생각을 했다는 걸 확신한 바이칼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맞죠?”

“그럴지도.”

에단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 사이 기분 좋게 방실거리는 아기를 도로 여인에게 넘겨준 쥬다스는 다시 본래 이야기하던 주제로 돌아와 물었다.

“헌데 그 ‘신룡’에 대해서 궁금해 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건.”

여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신룡님께서 노하시면 아무도 막을 수 없어요. 물이 용암처럼 끓고 땅이 갈라지며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질 것이라 전해 내려오니……. 실제로 마을에 더 이상 마실 물이 없어 다 같이 먼 길을 떠나던 참입니다.”

“마을을 떠나는 중이었다는 말입니까.”

“네. 신벌을 받아 더 이상 제물로 바칠 가축도, 마실 물도 없는 땅이 되었으니까요. 그러니 얼른 이 산을 벗어나세요. 저희도 여행자님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찌 되었을지.”

“어려운 선택을 하셨군요.”

그들은 피난민들이었다.

쥬다스는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곤 턱을 짚었다.

‘신룡, 신벌.’

대충 어떤 상황인지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마을 사람들이 예부터 신의 대리자라 철썩 같이 믿는 신룡은 아마 가짜일 것이다.

충분히 경고를 전했음에도 쥬다스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여인은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부디 오래 머물지 마세요. 저희도 한시 바삐 떠나려 합니다.”

여인이 그들에게 말을 건 이유는 이 때문이었다. 신룡의 분노를 피해 마을을 버리고 떠나던 사람들은 기운을 차릴 틈도 없이 빨리 이곳을 떠나려 했다.

그때 쥬다스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신룡을 만나보고 오겠습니다.”

후두둑.

여기저기서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가 났다.

그들의 대화를 주시하고 있던 피난민들이 일제히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에 반해 쥬다스를 따르는 일행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여상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호수에 있다고 했으니 그리 멀지 않겠군요. 충분한 식수와 식량을 두고 갈 테니 이곳에서 좀 더 피로를 풀고 계십시오.”

“아, 아니…….”

말문이 막혀 아무 소리도 못하는 여인과 그녀가 안고 있는 아기에게 한 번씩 눈을 맞춰준 쥬다스가 살짝 미소 지으며 당부했다.

“안위를 지켜줄 자들을 두고 가겠습니다. 혹 우리가 저녁이 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지체 말고 출발하십시오.”

“가지 마세요. 신룡님이 분노하면 여행자님들께 어떤 일이 생길지―.”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쥬다스는 마치 산책이라도 나가듯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쓰고 있던 모자를 매만져 정돈한 그는 에단과 바이칼을 제외한 나머지 친위기사들을 전부 피난민을 지키도록 명령했다.

콜은 자연스레 뒤를 따랐고 세이지에게는 남아서 기다릴 것인지 함께 신룡을 만나러 갈 것인지에 대해 선택권을 주었다.

그러자 세이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형님을 따라가겠어요.”

“그러겠느냐? 신벌을 내린다는 용을 만날지도 모르는데도, 아주 용감하구나.”

이미 씩씩하게 말에 오르고 있는 열네 살짜리 동생을 향해 쥬다스가 다독거렸다.

그 말을 들은 세이지는 말고삐를 잡으며 무슨 소리냐는 표정을 했다.

“형님이시잖아요.”

“음?”

“형님은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시는 분이 아니니까. 분명 무슨 방법이 있으실 테죠.”

세이지의 용기는 다름 아닌 쥬다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땅을 가르고 물을 펄펄 끓이는 신룡에 대한 두려움보다 쥬다스의 선택을 믿었다.

신뢰가 가득 담긴 대답을 들은 쥬다스는 잠깐 멈칫 했다가 이내 웃음을 풋 터뜨렸다.

“……형님?”

“하하하.”

그가 이렇게 소리 내어 웃는 건 평소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세이지는 물론이고 지켜보던 일행 전원 놀라움에 물든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형의 생소한 모습에 놀라 졸린 코알라처럼 눈을 끔뻑거리는 사이, 쥬다스는 훌쩍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그렇지. 이제 나는 늘…….’

믿어주고 있는 사람들이 곁에 있구나.

그는 갑작스레 웃음을 터뜨린 이유를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웃음기가 남아 있는 부드러운 눈을 들어 동생을 돌아보았다.

“믿어주어 고맙다, 세이지.”

그야말로 17세 소년다운 얼굴로, 쥬다스가 씩 미소 지었다.

***

쥬다스는 에단과 바이칼, 콜, 그리고 세이지와 함께 말을 달려 분지호수에 도착했다.

호수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목적지까지 착실히 안내해 준 유니가 포로록 날아 호수 면을 확인했다.

「우와, 이거 진짜 부글부글 끓고 있어!」

「진짜다요. 꼭 용암같다요?」

그들이 발견한 건 부글부글 끓고 있는 호수였다. 아직 늦겨울이었는데도 훅 열기가 밀려 왔다.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호수 위를 날아다니는 유니, 토니와 달리 카니는 쥬다스의 어깨에 꼬옥 붙어 있었다.

열기에 익숙한 불의 정령은 다홍빛 눈망울로 호수를 바라보며 제 의견을 보탰다.

「으응, 그러게요. 되게 귀여운 용암 같아요.」

「……별로 귀염성 있게는 느껴지지 않는다만.」

루니가 귀를 까딱이며 중얼거렸다.

본래 차가워야 할 겨울 호수가 부글부글 끓으면서 활화산처럼 하얀 증기를 내뿜어대어 주변이 온통 안개로 가득했다.

바이칼은 시야는 물론이고 숨쉬기마저 버거워지는 수증기를 스태프로 휘휘 저으며 말했다.

“무슨 온천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이거 때문에 기온이 올라갔었나봅니다? 전 또 제 로브가 보온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셀프 고문을 받는 건가 싶었더니만…….”

“바이칼, 시야 확보.”

“예이. 예이.”

그는 단칼에 감상을 싹둑 잘라내는 에단을 향해 마치 엄마 잔소리를 들은 사춘기 아들처럼 대꾸했다.

그리곤 안개를 헤치는 용도로 흐느적거리던 스태프를 한 바퀴 휘릭 돌려 잡았다.

탁.

제대로 손아귀에 잡힌 스태프로 반짝이는 작은 마력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사이트 램프(Sight Lamp).”

시동어와 함께 배열이 완료된 마력이 마법으로 발현되었다.

스태프 끝에서 나타난 건 투명한 호박 모양 램프였다.

두둥실 떠오른 램프가 허공에 자리 잡았다.

마법사가 아군으로 지정한 인원에게 어둠은 물론이고 안개나 장벽 등으로 가려 불분명한 시야를 꿰뚫어 볼 수 있도록 특수한 시각 능력을 부여해 주는 버프 마법이었다.

작은 마력입자가 민들레씨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러자 짙은 안개 속에서도 어느 정도 시야가 확보되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호수를 발견한 일행은 정령들과 다르게 움찔 놀랐다.

“허. 이 온천 완전 죽이는데요?”

바이칼이 마른침을 삼키며 농담을 던졌다.

호수는 자칫 발을 헛디뎌 빠지기라도 한다면 삶은 칠면조처럼 익어버릴 무시무시한 기세로 끓고 있었다.

흡사 지옥에 온 기분이었다.

농담을 들은 유니가 심드렁하니 이를 받아쳤다.

「그러게. 뜨끈뜨끈한 게 레드드래곤 목욕물로 딱이겠다.」

어차피 바이칼에겐 들리지 않을 농담이었지만 들었더라도 웃을 리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제가 직접 업로드하는 건 조아라뿐이라 다른 곳과 업로드시각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ㅠㅠ; 그 점 죄송합니다!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ㅎ 늘 보내주시는 응원과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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