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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환향
“어, 근데 저 블루와이번은 물에서 나오면 죽습니까?”
바이칼이 와이번을 가리키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상한데요? 원래 날아다니기도 한다는 걸 보면 아예 물 밖에 못 나오는 종은 아닌 것 같은데. 저놈은 왜 호수에서 안 나오고 버틴 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와이번은 여전히 얼음에 끼인 채 축 늘어져 있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채 가만히 놈을 바라보고 있는 쥬다스 대신 콜이 대답했다.
“블루와이번은 개인 의지로 물길을 멈추고 펄펄 끓게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물과 밀접한 속성을 가지고 있소이다.”
“……그 정도는 딱 봐도 아는 사실이지 말입니다, 영감님.”
너무 당연한 사실을 읊는 콜을 향해 바이칼이 울컥하여 구시렁거렸다.
콜은 허헛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중요한 설명을 덧붙였다.
“짐작하신 대로 물 밖으로 나온다고 해서 죽지는 않소이다. 다만 핸디캡을 적용받지요.”
“핸디캡?”
그때, 생각을 마치고 그들을 돌아본 쥬다스가 와이번의 머리를 톡톡 두들겨 주며 입을 열었다.
“이는 간단한 원리야. 블루와이번의 몸체는 마치 스펀지와 같아서 끊임없이 물을 흡수할 수 있단다.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힘이 세지고 몸이 자라나지. 그럼 반대로 물을 뱉어낸다면 어찌 되겠느냐?”
“물을 뱉어내기도 하나요?”
세이지도 궁금한 눈으로 끼어들어 물었다.
“보거라.”
쥬다스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와이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계약자의 소망에 따라 루니가 힘을 발현했다.
파스슷!
얼어붙은 호수 한가운데에 끼인 채 눈알만 데록데록 굴리고 있던 어린 블루와이번은 갑작스레 몸에서 빠져나가는 수분에 놀라 끼에엑 비명을 질렀다.
와이번의 몸통에서 연기처럼 물안개가 일어나 사방을 뒤덮었다.
그 바람에 기껏 호수를 얼려 맑아졌던 시야가 도로 뿌옇게 흐려졌다.
일행은 훅 온몸을 적시는 습기에 움찔했지만 별도로 쥬다스의 명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습기는 오래 지나지 않아 천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주홍빛 눈망울 가득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찜통 속에 들어간 미꾸라지마냥 펄떡거리던 와이번의 머리를 따뜻한 손바닥이 토닥거려 주었다.
“괜찮다. 널 해치려는 게 아니야.”
“……삐이이?”
“자, 자. 이제 다 끝났단다. 진정하렴.”
넘어진 채 고개만 빠끔 들어 올린 와이번이 서럽게 코에서 삐익거리는 소리를 내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 모습에 쥬다스의 오른쪽 어깨를 늘 차지하고 있던 카니가 볼을 감싸며 감탄을 흘렸다.
「어머나.」
「헤에~ 이렇게 보니 제법.」
유니도 포로록 날아 와이번의 주둥이에 내려앉았다.
신이 난 정령들을 보며 쥬다스가 와이번의 통통한 앞발 사이에 손을 넣어 놈을 들어 올렸다.
갑작스레 붕 떠오른 시야에 놀라 흠칫하던 와이번은 같은 높이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맑은 금안을 발견하고 눈을 끔뻑거렸다.
“옳지, 착한 아이구나.”
“…….”
블루와이번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때 안개가 완전히 걷혀 시야를 확보한 바이칼이 쥬다스에게 들려 있는 와이번을 발견하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쥬다스 님, 그 땅콩만 한 게 뭐랍니까? 겁내 쬐끄만…….”
인형인가. 바이칼이 현실 부정을 하는 사이 세이지가 놀라움이 가득한 얼굴로 외쳤다.
“형님! 맙소사! 설마하니 아까 그 와이번이 그렇게 작아진 건가요?”
“그래, 몸에서 물이 빠져나가면 이렇게 작아진단다. 충분한 물만 주어지면 다시 본래 크기로 돌아갈 수도 있지.”
“그게 진짜 와이번이라고요!”
바이칼은 여전히 믿기 어렵다는 표정으로 쥬다스와 그의 손에 들린 와이번을 번갈아 보았다.
거대했을 적의 공포스러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남은 건 성인 남성 기준으로 무릎까지밖에 닿지 않을 작은 키의 오동통한 미니 와이번뿐이다.
환상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이래서 용이 환상의 종족이라고 했던 건가……!’
진지하게 고찰에 빠진 바이칼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에단이 쥬다스에게 앞으로의 의견을 물었다.
“바다까지 손수 데려가실 생각이십니까.”
“으음, 일단 내게 물의 정령이 함께하고 있으니 물이 없어 말라죽진 않겠지.”
“……그 점을 걱정하는 게 아니오라.”
에단이 진지한 눈으로 입을 다물자 쥬다스는 들고 있던 블루와이번을 아기 안듯 어깨에 걸쳐 안았다. 그리고 다시 제대로 답했다.
“이 아이는 사람 손에 먹이를 받아먹고 자랐다질 않느냐. 배가 고파 흉포해지긴 했어도 진정 사람을 해칠 생각까진 없었을 게다. 아마 자신이 물길을 막아 먹이를 주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겠지.”
“하면…….”
“그래도 바다에 방생하기 전까진 사람에게 이빨을 드러내지 않는 훈련을 시킬 필요는 있어.”
“알겠습니다. 그럼 그 일은 누구에게 맡기는 것이?”
그 물음에 쥬다스가 힐끔 누군가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와이번은 그에게 안긴 채 꼬리만 살랑거렸다.
“아마도. 적임이라 생각이 드는 참인데.”
“흠흠, 나쁘진 않겠군요.”
“……불안하긴 합니다만, 쥬다스 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쥬다스의 말에 콜과 에단이 동의를 표했다.
주어 없는 대화였지만 눈치 빠른 세 사람 사이에 훈훈한 기류가 감돌았다.
본의 아니게 그 기류에서 제외된 바이칼과 세이지는 멀거니 서로를 돌아보았다.
“보셨죠? 매번 이렇게 됩니다, 세이지 님. 이거 보통 사람은 어디 서러워서 살겠습니까.”
“……아하하.”
서럽다는 말과 달리 몇 년간 저들 사이에서 이와 같은 경험을 밥 먹듯 겪어온 바이칼의 표정에는 허허로움이 감돌았다.
아예 그 부분에 대해선 득도한 사람과도 같았다.
“바이칼.”
“옙?”
그가 밤색 머리카락을 긁적이며 다가오자 쥬다스는 안고 있던 와이번을 넘겨주었다.
얼떨결에 매우 어색한 포즈로 조그만 와이번을 받아 들게 된 바이칼이 ‘응?’ 하는 표정을 지었다.
“……?”
“……?”
한 와이번과 한 사람의 얼굴에 같은 감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내 둘은 또다시 동시에 몸부림쳤다.
“삐애액!”
“으아아아니, 뱀 비늘! 뱀 눈! 저 이런 거 딱 질색이라고요!”
“원 녀석들, 짝이 참 잘 맞는구나.”
“저으은하아아!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아!”
바이칼은 거의 울기 직전의 달아오른 얼굴로 눈물 없이 통곡했다.
심지어 바깥에서는 사용하지 않기로 약속한 전하 소리까지 튀어나온 지경이니 싫기는 정말 싫었다.
불쾌하긴 그에게 어설프게 날갯죽지와 꼬리를 붙잡힌 와이번도 마찬가지였다.
와이번은 갓 잡은 물고기처럼 퍼덕거리며 바이칼에게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다.
서로가 서로를 싫어하면서도 막상 쥬다스가 직접 건네 준 와이번을 집어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바이칼은 와이번을 붙들려 애썼다.
‘아오, 이 빌어먹을 뱀대가리.’
차마 밖으로 표현하지 못한 욕설을 목구멍 아래로 삼킨 바이칼은 스태프를 꺼낼 생각도 못하고 맨손으로 마법을 시전했다.
“섀클(Shackle).”
우뚝!
와이번의 몸 위로 마력이 배열되면서 속박 마법이 발현되었다.
마력을 증폭시켜 주는 스태프가 있다면 사슬 모양으로 나타난 마법진으로 온몸을 칭칭 감아둘 수도 있지만 아쉬운 대로 발버둥치는 날개와 몸통 힘부터 속박했다.
거대한 몸뚱아리였다면 이 정도 마법에 꿈쩍도 안 했을 테지만 지금은 몸에서 수분이 빠져나가 작아질 대로 작아진 미니사이즈였다.
와이번은 속수무책으로 마력에 휘감겨 움직임을 봉쇄당했다.
그러자 와이번은 마법에 속박당하지 않은 주둥이 사이로 톱니 같은 촘촘한 이빨을 뽐내며 크르릉 목을 울렸다.
바이칼은 와이번의 목덜미를 홱 잡아 대롱대롱 들어 올렸다.
“음, 생각보다 더 잘 다루는구나. 부탁하마. 바이칼.”
“……그리 말씀하시면 할 수밖에 없잖습니까?”
“하라고 맡기시는 거다. 실수 없이 잘 훈련시키도록.”
“아니, 그러니까 왜 하필 제가.”
“주군의 명에 토를 달셈인가.”
“…….”
에단에게 핀잔까지 듣고만 바이칼은 억울한 심정으로 손에 대롱대롱 잡혀 있는 블루와이번을 슥 쳐다보았다.
와이번 역시 잔뜩 불편한 심기를 품고선 주홍색 눈알을 굴려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삐이이…….”
“하아아.”
닮기는 참 닮은 둘이었다.
바이칼에게 와이번을 맡긴 쥬다스는 정령들에게 부탁해 막힌 물길과 망가진 호수 등을 원래대로 복구시켰다.
산맥을 따라 물줄기가 다시 흐르기 시작했고, 말라붙었던 계곡에 청명한 폭포 소리가 타악기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거기에 더해 루니와 유니의 동조술로 불러온 구름에서 큼직한 함박눈이 송이송이 지상에 내려앉았다.
기사들과 함께 길목에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마을 사람들은 하얀 눈송이를 향해 너도 나도 손을 뻗었다.
“눈……?”
“세상에, 이게 몇 년 만의 눈이야?”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블루와이번의 특성상 온도가 올라간 산에선 수년째 눈이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가 내린 것도 아니었다.
빗물을 비롯한 모든 물줄기는 호수에만 집중되어 왔다.
와이번이 고픈 배를 채우고 힘을 얻기 위해선 그만큼 많은 양의 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을 보고 놀란 사람들은 어린아이 엄지만 한 눈송이를 입으로 받아먹기도 하고 손바닥 위에 쌓기도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수로 떠났던 쥬다스 일행이 말을 타고 무사히 복귀했다.
제법 쌓이기 시작한 눈밭을 박차고 달려온 말들이 힘차게 울었다.
히히힝!
“이제 신룡은 없습니다.”
놀라 다가온 사람들에게 쥬다스가 불쑥 선언했다.
“네? 신룡님이?”
“여러분이 터전을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더 이상 호수에 신룡은 없으며, 이 산맥에 물길이 돌아올 것입니다.”
“……!”
마을 사람들은 쉽사리 그 말을 믿지 못했다.
수년 만에 처음으로 눈이 내리고는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장 타는 듯한 갈증으로 고통받았던 터전에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눈치만 살피고 머뭇거리는 사람들을 한 차례 훑어본 쥬다스가 모자를 눌러쓰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흠…… 어쩔 수 없나.”
어차피 해야 할 일을 했고, 전할 사실을 전했으니 나머지는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었다.
“여행자님들! 무사하셨군요.”
아기를 안은 여인이 뒤늦게 그들의 무사를 확인하고 달려와 크게 기뻐했다.
여인에게 안겨 있던 아기, 시엘도 방긋방긋 웃으며 쥬다스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신룡님이 사라졌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주, 죽으셨나요? 아니면 노하셔서 산맥을 떠나신 건가요?”
“죽은 것도, 화가 난 것도 아닙니다. 그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마을 사람들이 신룡이라 떠받들었던 블루와이번은 지금 바이칼의 로브 속에 꽁꽁 숨겨져 있었다.
쥬다스보다 좀 더 뒤쪽에서 그를 따르며 말을 몰고 있던 바이칼은 답답함에 바둥거리는 와이번의 머리를 꾹 눌러 더 안으로 집어넣었다.
“……얌전히 좀 있어라. 너는 눈 맞으면 몸이 불어나서 무겁다고.”
“뿌엑.”
조그맣게 옥신각신하는 그들을 힐끗 보곤 조용히 미소를 지은 쥬다스의 곁으로 친위기사들이 전부 집결했다.
재난 아닌 재난을 해결했으니 더 이상 피난민 행렬과 함께 있을 필요는 없다.
쥬다스는 그들을 향해 살짝 목례했다.
“그럼, 조심히 귀향하시길.”
“예, 예…….”
멍하니 서 있는 마을 사람들을 남겨두고 쥬다스 일행은 힘찬 말발굽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멀어졌다.
언덕 내리막을 따라 달리는 특이한 여행객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아기 어머니는 문득 이상한 점을 깨닫고 중얼거렸다.
“응? 귀향……?”
피난 가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었다.
오히려 마을로 돌아갈 것을 확신하는 인사말이었다.
멀어지는 여행객들의 뒷모습과 이를 찬찬히 가려주는 눈송이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서둘러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신룡이 떠났다는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이 판국엔 그저 빨리 이동하는 게 답이었다.
그렇게 다시 짐을 챙겨 이동하기 시작할 즈음, 선두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냇물! 냇물이 흐른다!”
누군가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소리를 듣고 너도 나도 몰려가 물줄기를 확인했다.
그러자 그들의 눈앞에 힘차게 굽이치며 내려오는 맑은 냇물이 보였다.
우아아아!
사람들 사이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아기를 안은 여인도 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곤, 이내 고개를 숙였다.
“시엘. 아가야, 집에 가자.”
“우아?”
“다시 집으로 가는 거야.”
헤헤 웃는 아이를 향해 마주 웃음 지은 여인은 이미 실루엣조차 남지 않은 여행객들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그들은 더 이상 피난민이 아니었다.
겨울바람은 차가웠고 이고 진 짐들은 무거웠지만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발걸음만큼은 가벼웠다.
흐르는 시내 위로 큼직한 눈 결정이 꽃잎처럼 흩날렸다.
그들의 환향(還鄕)을 축복하기라도 하듯.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이렇게 이그레트는 포켓X마스터가 되기 위한 여정을 떠납니다...
...쿨럭.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셨길 바라며, 보내주시는 응원에 늘 감사드립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