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108화 (108/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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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환향

거칠게 꿀렁이는 파도와 달리 날씨는 계속 맑았다.

풍랑을 맞는다 해도 크게 위협으로 느끼지 못할 만큼 튼튼한 함선이긴 했지만 기왕이면 날이 맑은 편이 바다를 수색하기 편했다.

구름만 조금 낀 허여멀건 하늘 밑에서 거칠 것 없이 망망대해를 가로지른 세 척의 배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목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었다.

출항한 지 이틀째 되는 날, 그들은 문제의 해역에 도착했다.

날씨는 여전히 맑았고 바다에는 딱히 문제 될 만한 점이 보이지 않았다.

직접 갑판에 서서 상황을 확인한 크리스티나가 명령을 내렸다.

“정지! 여기부터 더 이상 들어가지 않는다. 각 함선은 삼각대열을 유지하고 전원 전투배치. 정찰조는 해마를 이용해 탐색하되, 중앙함선 시야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주의하도록. 이상 징후가 발견되면 그때 다 같이 움직인다. 마법조, 시야 추가 확보 지속해.”

그녀의 지휘에 따라 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마법사들이 허공에 램프를 띄우자 바다 속까지 투명하게 밝혀지며 시야가 확보되었다.

마치 깨끗한 연못을 들여다보듯 훤히 드러난 물 아래에는 갖가지 바다생물이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배를 끄는 해마와 다르게 정찰조 대원들을 위해 따로 준비된 해마들은 몸집이 작고 날렵했다.

비교적 힘은 약한 편이었지만 속도는 훨씬 빨랐다.

정찰조들은 해마에 올라 지상에서 말을 타듯 고삐를 잡았다.

위치를 표기한 노란 부표가 수면 위에 둥실 떠올랐고 정찰조들은 해마를 탄 채 부표를 기준선 삼아 근처 해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배에 남은 병력은 각자 위치에서 망을 보거나 포를 준비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이 해역에서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긍지를 가지고 출발하긴 했으나 언제 어디서 어떤 적이 나타날지 모르는 미지의 공간이니 맑은 날씨마저도 되레 공포로 다가왔다.

바다에서 한결같은 날씨란 없다.

이렇게 맑다가도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칠 수 있는 게 변덕스런 바다의 성질이었다.

전투 배치에 들어가면서 민간지원군도 갑판에 나와 발리스타를 설치하고 무기를 점검하는 등 싸울 준비를 했다.

쥬다스 일행도 자연스럽게 그 틈에 섞여 전력을 가다듬었다.

이틀간 멀미에 시달려 해쓱해진 바이칼이 비틀거리며 스태프를 꺼내 균형을 잡았다.

그리곤 지팡이에 기댄 노인마냥 스태프를 짚고 푸념했다.

“와, 죽겠다…….”

“엄살떨지 말고 제대로 서라. 언제 적이 덮쳐올지 모르지 않나.”

“……적이요? 지금으로선 파도가 덮쳐오는 게 더 끔찍합니다.”

에단의 핀잔에 바이칼은 희게 질린 낯빛으로 중얼거렸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추는 맑은 날씨와는 별개로 근방 해역은 본래 유속이 빠르고 거칠게 일어나는 파도로 유명했다.

실제 그들이 타고 있는 배는 2m도 넘는 파고로 인해 널뛰듯이 출렁이고 있었다.

하늘로 쑥 치솟았다가 이내 다시 밑으로 쑥 가라앉기를 무한정 반복하고 있는 배 위에서 내륙에서만 살다 온 평범한 사람이 적응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세이지 역시 널뛰는 파도에 괴로운 얼굴로 한숨을 푹 쉬었다.

“바다란 정말 힘든 곳이군요. 이런 걸 보면 참 대단해요.”

쥬다스가 돌아보자 세이지는 뱃머리 쪽을 눈짓하며 말을 이었다.

“형님의 학우였던 저 공녀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의 몸으로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군사를 지휘하다니.”

세이지의 시선을 따라 쥬다스도 거센 바닷바람에도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크리스티나를 바라보았다.

예전과 비슷한 느낌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확실히 성숙해져 있었다.

여전히 길게 늘어뜨린 바닷빛 머리카락과 좀 더 자란 키, 남색 장교복과 백색 갑주를 걸친 크리스티나는 파도 사이 굳건히 솟은 바위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주변을 아우르는 포스와 서늘하지만 강한 어조, 오만함이 깃든 푸른 눈동자는 군사들을 지휘할 사령관으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부하들에게 다시 이것저것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확인한 쥬다스가 대견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아주 멋지게 자랐어.”

‘……맞는 말씀인데 뭔가 어감이 좀.’

실제 연령은 쥬다스가 크리스티나보다 2살 어렸다.

이미 성년식을 치른 19살의 크리스티나를 17살의 쥬다스가 잘 자란 아이 취급하자 세이지는 어벙해진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스태프에 의지해 서 있던 바이칼이 피식 어깨를 들썩였다.

“가끔 말이죠. 쥬다스 님은 주변인들을 너무 어린아이 취급하십니다.”

“음? 그리 느꼈단 말이더냐. 이거 미안하구나. 이제 너희도 다 컸는데 그래선 안 되지.”

“아니, 그러니까, 그 말씀부터가 이미…….”

바이칼이 이게 아닌데 싶은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렸지만 쥬다스는 진지하게 자신의 태도를 되짚어보며 반성했다.

사실 노인으로 살아온 기억이 있는 쥬다스에게는 에단이며 바이칼, 크리스티나 등 루바흐에서 만난 학우들이 전부 여전히 아이들로 느껴졌다.

하지만 아이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자라났고,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는 아이들을 마냥 어리게만 보는 자신의 주책에 미안함을 느꼈다.

‘이제부턴 조금 달리 대해주어야 하나.’

쥬다스가 이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자 그의 감정을 공유하는 정령들은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그를 말렸다.

「킥킥, 뭐 어때. 넌 우리들도 애로 보면서.」

「맞다요! 나이로 따지면 우리가 훨씬 고연령층이다요!」

「뭐래. 토니 넌 애 맞잖아.」

「……?!」

실제 탄생한 나이로 따지자면 자연계 4속성 중 가장 연장자는 바람속성 유니였다.

그다음이 물속성 루니, 땅속성 토니, 불속성 카니 순이었다.

순서는 그랬지만 세상에 태어나 존재한 시간은 누구 하나만 꼽을 수 없을 정도로 전부 인간이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길었다.

다만 정령이란 계약한 술사로부터 이름을 부여받는 순간 외형과 성격이 새롭게 형성되었다.

본체 모습과 성격과 별개로 술사가 바라거나 무의식적으로 그려둔 이미지로 현계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쥬다스가 그들에게서 투영하고 있는 이미지는 순수하고 귀여운 아이나 동물이었다.

그중 가장 아이 같은 성격을 지닌 토니는 또다시 유니의 작은 도발에 넘어가 빼앵 반격했다.

「그렇게 치면 유니도 카니도 전부 애다요!」

「응, 어리게 봐줘서 감사.」

「딱히 애로 보아도 상관은 없지만 토니가 말하니까 조금 부정하고 싶어지기도 하네요.」

「…….」

씨알도 먹히지 않는 반격이었다.

루니는 그들의 투닥거림에 끼지 않고 한심하다는 눈으로 앞발에 턱을 괴었다.

그때였다.

막 함선으로 복귀한 정찰조가 상황을 전달했다.

“앞으로 좀 더 들어가면 바다협곡이 있습니다.”

정찰조장이 대표로 크리스티나에게 보고했다.

그리고 뒤에 이어진 사실에 지켜보던 모든 군사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그 협곡에서 서식 중인 블루와이번 무리를 발견하였습니다.”

“……!”

함선 위로 소리 없는 술렁임이 퍼져 나갔다.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고요했다.

어수선한 고요 속에서 정찰조장이 보고를 마쳤다.

“개체숫자는 파악된 것으로만 약 여섯에서 일곱 마리, 물속에 깊이 잠수하여 서식하는 특성상 그 두 배 이상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필 상대가 블루와이번이라니!’

해양몬스터 토벌을 위해 참전한 모든 병사의 머릿속에 같은 탄식이 떠올랐다.

블루와이번은 바다의 제왕이라 불리는 종족이다.

오랜 옛날 드래곤이 세상에서 모습을 감춰 버린 이후로 그나마 용족의 명맥을 대신 이어온 게 바로 와이번이었다.

와이번은 용족으로 분류되긴 했지만 생긴 것만 용이었지 드래곤에 감히 비할 바 못 되는 몬스터의 일종이었다.

다만, 각 속성 별로 최적화된 환경에서만큼은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고 수족처럼 사용할 수 있는 블루와이번은 바다에서만큼은 가히 최강이라 불릴 만 했다.

풍랑을 일으키고 물을 끓게 만들며 빠르게 날아다니거나 물속 깊이 잠수하는 등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게다가 무리 지어 움직이는 특성이 있어 한 번에 다수의 와이번을 요격해야 했으니 이능력자를 포함한 해군이라 해도 상대하기가 아주 까다로웠다.

보고를 들은 크리스티나는 서늘하게 표정을 굳혔다.

“하, 와이번이라. 한 번 고기를 맛 본 동물은 먹이로 고기만 찾는다더니 바로 그 짝이로군.”

그녀는 겁을 집어먹는 대신 곧장 지시를 내렸다.

“정찰조가 발견한 협곡으로 배를 돌려라.”

“예!”

스릉-

크리스티나는 바닥에 내려두었던 검을 빼 들었다.

하얀 자태를 드러낸 대검이 번쩍 햇살을 받아 빛났다.

그녀가 주력으로 다루는 검술은 대검류였다.

가늘고 늘씬한 팔뚝으로 대검을 거뜬히 지탱한 그녀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델피아 영지민들을 슬픔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은 원흉을 찾았다는 생각에 푸른 눈동자가 더욱 서늘해졌다.

정찰조의 말대로 얼마 가지 않아 거대한 바위산과 그 사이로 이어지는 협곡이 나타났다.

악마의 입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온 바윗돌을 바라보며 크리스티나가 정지 명령을 내렸다.

“께르르륵.”

“크워엉.”

아직 자신들을 해치러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와이번들은 바위에 앉아 햇볕을 쬐거나 몸에 물을 끼얹는 등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푸른 비늘을 온몸에 두른 와이번들이 한두 마리도 아니고 떼로 몰려 있는 모습은 신비로우면서 심지어 마냥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엇, 뱀대가리 꼬마.”

바이칼이 문득 낯익은 블루와이번을 발견하고 난간을 붙들었다.

워낙 멀어서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오리처럼 물에 동동 뜬 채 무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어린 와이번이 보였다.

쥬다스도 이를 알아보고 함께 난간에 손을 올렸다.

“그때 그 아이로구나.”

“예! 다행히 자기 무리를 잘 찾아갔나 봅니다. ……근데 저놈 왜 저렇게 비실비실하지?”

분지호수에서부터 억지로나마 어린 와이번을 맡아 돌봐왔던 바이칼은 금방 놈의 상태에 대해 눈치챘다.

기껏 바다에 방생해 준 어린 와이번은 무리에 끼어들지 못하고 조금 떨어진 바위에 올라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친 것 같은데요?”

“흠.”

바이칼의 말대로 무리에 끼지 못한 어린 와이번은 아름답던 비늘 사이로 여기저기 상처가 나고 벌어져 붉게 속살이 드러나 있었다.

축 늘어뜨린 날개는 찢어진 부분이 있었으며 무척 의기소침한 분위기였다.

홀로 무리를 바라보며 끙끙대던 어린 와이번은 이내 쓸쓸히 바위 위에 몸을 말고 누웠다.

“동족인데도 끼워주지 않나 보군요.”

“어어, 저놈들 괴롭히기까지 하나 봅니다!”

바위에 웅크린 어린 와이번의 곁으로 다가온 다른 와이번이 놈을 향해 크고 촘촘한 이빨을 쩍 드러냈다.

크워어엉!

흡사 사자의 포효와도 같았다.

화들짝 놀란 어린 와이번이 더 멀리 피신하자 그제야 와이번 무리는 놈에게서 신경을 끄고 일상을 즐기기 시작했다.

“제군들.”

쥬다스 일행이 와이번에 집중해 있는 사이 델피아 군은 블루 와이번 무리를 적으로 판단했다.

현재로서는 문제가 일어나는 해역에 서식하는 와이번 무리가 가장 사태의 원흉에 근접해 있었다.

만일 아니라 하더라도 저렇게 위험한 몬스터 떼를 그냥 내버려 두고 갈 순 없었다.

부관들과 간략히 회의를 마친 크리스티나가 대검을 번쩍 하늘로 치켜 올렸다.

“건투를 빌지. 전원 전투태세!”

“전투태세!”

군사들은 마치 한 몸처럼 전투태세를 따라 외쳤다.

그들의 눈에서 타오르는 결의를 확인한 크리스티나가 전투명령을 내렸다.

“마력포을 발사하라!”

출항하던 때와 같이 군더더기 없고 빠른 명령이었다.

슈우우, 콰앙-!

대포 소리가 천둥처럼 협곡을 뒤흔들었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사실 2부들어오면서 쥬다스 말투에 묘하게 변화가 있습니다.ㅎ 허허거리지 않는다든지 조금 아이같이 말한다든지 하는 식인데, 문제는 아직 애들은 애들로만 보고 있다는 점이죠.ㅎㅎ

사족으로 저도 직업상 가끔 십대 친구들과 슬쩍 섞여 놀곤 하는데 어이쿠.... 그냥 다 예쁘더라고요. 늙은이(?)앞이라고 다들 예쁜짓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ㅠ.ㅠ 적어도 20대 초반까지는 해맑고 에너지넘치고 아이같고 그리 느껴집니다(...)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셨길 바랍니다!

주말 쉬고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뵙겠습니다.ㅎ 무지무지 춥다는데 감기 조심하시고, 건강 잘 챙기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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