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109화 (109/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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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장. 환향

함선은 마력을 전투 에너지로 사용한다.

따라서 배에 설치된 포구는 전부 다양한 마법진이 기록된 마동(魔動)장치였다.

단순한 파괴력만을 뿜어내는 마력포가 있는가 하면, 필요에 따라서 바닷물을 얼리는 냉각포나 적을 속박시키기 위한 그물포도 있었다.

그중 선제공격은 늘 파괴적인 마력포를 발사해 전장을 울렸다.

갑자기 날아든 마력포에 바위가 퍽 깨어지며 바닷물이 화산 분출하듯 치솟아올랐다.

와이번 두 마리가 직격탄을 맞아 크게 비틀거리며 울음소리를 내질렀다.

“캬아아아!”

“께루룩!”

공격을 받자 와이번 무리도 협곡으로 다가오는 함선을 발견했다.

잔뜩 흥분하여 끼룩거리던 와이번들을 보며 전투태세에 돌입한 군사들이 긴장의 끈을 조이는 찰나였다.

퍼드득!

블루 와이번 무리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도주를?!’

예기치 못한 모습에 크리스티나는 당황하여 멈칫했다.

비둘기 떼가 놀라 달아나듯 와이번들은 깜짝 놀라 날개를 퍼덕여 대고 있었다.

흉악해 보이는 생김새와 달리 블루와이번은 본디 유순한 성질이었다.

물이 충분히 제공되는 환경이라면 배를 채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따로 사냥을 하거나 포악하게 굴지 않는다.

마치 초식동물처럼 겁이 많고 순하여 궁지에 몰리거나 알을 품고 있을 때가 아니면 일단 도망가고 보는 게 블루와이번의 특징이다.

그러나 크리스티나는 그들을 순순히 도망가게 놔두지 않았다.

“그물포 전환, 포획하라!”

그녀의 명령에 따라 포병이 포구에 깔려 있던 마법진을 변경했다.

화력이 강한 마력포 대신 그물처럼 촘촘하게 짜인 마력덩어리가 펑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그리고 번개처럼 빠르게 와이번들을 뒤덮었다.

“캬아앙.”

그물에 걸린 와이번이 눈을 번뜩이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옴짝달싹못하게 거대한 몸통을 옭아맨 마력그물이 제대로 놈의 심기를 거슬렀다.

후욱 숨을 들이켠 와이번이 아가리를 쩍 벌리는 순간이었다.

“실드 개방!”

예민하게 낌새를 알아차린 크리스티나가 재빠르게 지시했다.

그러자 각 전함에 설치된 실드파일런(Shield Pylon)에서 푸른 장막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블루와이번의 뜨거운 브레스가 전함을 향해 내리꽂혔다.

콰과과과― 쿠웅!

푸른빛 실드에 막혀 브레스가 직접적으로 함선에 닿진 못했지만 선체가 지진 나듯 뒤흔들렸다.

몇몇 병사는 무기를 놓치고 넘어지기까지 한 충격이었다.

브레스를 뿜어 마력그물을 찢어버린 와이번은 그대로 홱 방향을 틀어 하늘로 도주했다.

싸우다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도주할 생각뿐인 날개 달린 적을 함선이 따라가 붙잡긴 어려웠다.

더구나 바다의 제왕이라 불리는 블루와이번 무리가 마음먹고 발악해 대자 파도가 마구 요동쳐 타깃을 잡을 수 없었다.

군사들은 허탈한 눈으로 멀어지는 와이번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때, 누군가 큰 소리로 보고했다.

“아직 한 놈 남아 있습니다!”

무리에 섞이지 못한 와이번이었다.

날갯짓을 배우지 못한 어린 와이번은 갑작스런 전투 상황에 놀라 두리번거리고만 있다가 갑작스레 폭격이 날아들자 깜짝 놀라 물속으로 뽀그르르 잠수했다.

“……놓칠 수야 없지.”

기습한 보람도 없이 허무하게 와이번 무리를 날려 보낸 크리스티나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대기하던 부관이 새의 깃털 모양으로 조각한 거대한 활을 건네주었다.

공작가 대대로 내려오는 신물, ‘페어리 보우’.

이는 주인을 정하는 신물로, 델피아가의 혈족만이 발동시킬 수 있다.

활만 가지고 있어도 마력만 주어진다면 무한한 화살을 발사할 수 있는 편리한 기능이 탑재되어 있었다.

일반 활과 달리 거의 사람 키 정도로 커다란 활은 보는 이로 하여금 하프를 연상케 했다.

백금으로 조각된 깃털이 활대에서 서늘하게 번뜩였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시위를 잡자 허공에 팟 하고 진청색 마력화살이 생성되었다.

마법사들이 띄운 램프로 인해 바닷물은 투명하게 그 안이 비쳐 보였다.

바들바들 떨며 물밑으로 가라앉은 와이번의 꼬리를 발견한 그녀가 정확히 활을 조준했다.

바다를 닮은 푸른 눈동자에 놈의 그림자가 비쳤다.

물속에서 빠르게 움직이곤 있었지만 크리스티나의 조준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조준을 마치자마자 망설임 없이 시위를 놓았다.

슈우욱!

강력한 힘을 실은 푸른 마력화살이 물살을 뚫고 날아갔다.

“……!”

날카로운 화살촉이 어린 와이번의 비늘을 막 뚫고 박히려던 순간이었다.

화살은 간발의 차를 남기고 시간이 멈춘 듯 물속에서 우뚝 멈춰 버렸다.

화살이 제 스스로 의지를 갖고 멈춘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이를 본 군사들 사이에 술렁임이 일어났으며 크리스티나는 천천히 들고 있던 활을 내렸다.

‘이런 일이 가능한 건.’

크리스티나가 다루는 페어리 보우는 일반적인 마법으로는 막을 수 없는 강력한 마력이 담긴 화살을 쏘아낸다.

제아무리 단단한 와이번의 비늘이라 해도 뚫어버릴 수 있는 그 화살을 막아내려면 그와 맞먹는 힘이 필요했다.

그런 힘을 가진 자가 적이라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그리 여긴 크리스티나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방해꾼을 찾으려 주변을 훑는 순간이었다.

“그 아이는 아무 상관이 없단다.”

그럴 리 없다 여기면서도 그녀는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델피아 영지로 돌아온 순간부터 한순간도 잊은 적 없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크리스티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차가운 바람 사이로 하얀 입김이 흩어졌다.

“그릉.”

허공에서 물거품을 일으키며 나타난 푸른 늑대가 제 계약자의 손에 살짝 머리를 비볐다.

“네가 찾는 적은 그 아이가 아니다. 훼방을 놓아 미안하지만 잠시 기다려 주지 않겠느냐.”

“…….”

척!

차갑고 오만하던 자태가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크리스티나는 그 자리에 무릎 꿇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델피아의 딸 크리스티나가 황태자전하를 뵙습니다.”

사령관이 무릎을 꿇자 그녀를 따르는 수하들은 당황했지만 이내 우르르 자세를 낮추었다.

그러는 사이 어린 와이번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오랜만이구나.”

마법으로 머리색이 바뀌었을 뿐 진작 알아보지 못한 게 한스러울 정도로 예전 그대로인 금안이었다.

크리스티나는 천천히 일어서며 그를 바라보았다.

“전하께서 어찌 이런 곳에…….”

“그 이야기는 나중에. 우선 여기 온 목적부터 해결하자꾸나.”

크리스티나는 힐끗 시선을 돌려 협곡을 훑었다.

와이번이 사라진 협곡에선 거친 파도만 남았을 뿐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신뢰 어린 눈으로 쥬다스를 다시 응시했다.

“블루와이번은 본래 온순한 종이란다.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공격하고 배를 파손시키지 않아.”

“하면.”

“아예 헛짚은 건 아니야. 마침 진짜 범인이 근처에 있는 모양이니.”

“……예?”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거라.”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크리스티나는 파도 소리에 묻혀 작게 들려오던 노랫소리를 감지했다.

라라라― 라라라라―

「……달도 별도 잠든 까만 새벽에 너만은 깨어 있었지…….」

어린 소녀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는 동굴 안처럼 웅웅 울려 어디서 들리는지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처음엔 웅얼웅얼거리던 게 조금씩 커지고 선명해지는 탓에 곧 함선에 오른 모든 사람이 노래를 듣고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약속해, 너는 나의 바다가 되고 나는 너의 파도가 되기를.」

노랫소리는 아주 아름다웠다.

크리스티나는 시원한 물로 귀를 적시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잠시 몽환적인 분위기에 신경을 빼앗기던 찰나 갑자기 여기저기서 털썩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무슨?!”

「혹시 바다를 찾아 헤매는 파도를 본다면 말해주겠니. 그 아이가 어디로 가버렸는지를.」

크리스티나는 쓰러진 수하들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깊은 수면 상태에 빠져 미동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큭.”

상황은 쥬다스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온몸의 통제권을 빼앗긴 느낌에 친위대를 비롯한 그의 일행이 전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잇새에서 피가 흐르도록 버티려 노력하던 에단마저도 결국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그 결과 자리에 멀쩡히 서 있는 건 크리스티나와 쥬다스뿐이었다.

삽시간에 침묵으로 물든 함선 세 척은 그대로 갑자기 방향을 틀어 협곡 안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저절로 돌아가는 키, 제멋대로 펄럭이기 시작한 돛을 보며 크리스티나가 차분히 쥬다스의 곁으로 다가섰다.

“이것이 말씀하신 진짜 적이군요.”

“그래. 이런 식으로 뱃사람들을 홀려 잡아먹은 모양이다. 곧 만나게 되겠지.”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요사스런 노랫소리와 함께 악마의 이빨처럼 뾰족하게 솟은 바위 사이로 배가 서서히 진입했다.

아무리 강심장인 크리스티나라도 갑자기 사람들이 모두 잠들고 으스스한 협곡 안으로 들어서게 되자 등골이 오싹해져 왔다.

그녀는 태평한 얼굴로 갑판 난간을 잡고 선 쥬다스를 다시 쳐다보았다.

“그럼 함선의 모든 인력이 저 노랫소리에 홀렸단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지금은 그저 단순히 잠든 것뿐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그런데 저는 왜.”

쥬다스는 자연계 4속성 정령의 가호를 받고 있으니 그러려니 생각할 수 있어도 크리스티나 자신은 무슨 이유로 노래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가 더 묻지 않고 거기서 입을 다물자 쥬다스는 난간에서 손을 놓으며 여유로운 어조로 대답해 주었다.

“글쎄다. 그건 노래를 부른 자의 마음에 달렸으니 직접 가서 물어보아야 알 수 있지 않겠느냐.”

“……혹 이곳에 이런 괴물이 산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갑작스레 기이한 현상에 휘말린 사람치곤 마치 산책 나온 노인네마냥 느긋했다.

크리스티나의 당혹 섞인 물음에 쥬다스는 작게 웃어 보였다.

녹색 바람이 그들의 주변을 산들산들 맴돌았다.

“배를 타고 오는 도중에 알았다.”

“제가 아는 전하께오선 꼭 스스로의 안위 때문이 아니더라도 이 수많은 사람이 위험에 처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실 분이 아니십니다.”

“미리 위험을 알렸어야 했다는 말이더냐. 듣고 보니 그 말도 옳구나.”

“하나 일부러 언급하지 않으셨다는 건 즉 이번 사안이 그리 위험하지 않다 판단하셨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흠.”

“마지막으로 추측컨대, 미리 위험을 알리셨더라면 제가 맡은 임무를 뒤로하고 전하의 안위를 걱정하느라 뱃머리를 돌렸을 거라 여기셨기에 일부러 모른 척하신 거라 보여집니다.”

“그도 맞는 이야기다. 영특하구나, 크리스티나야.”

크리스티나는 불안에 떠는 대신 체념한 얼굴로 작게 한숨을 뱉었다.

“하. 정말……. 전하께선 참으로 여전하십니다.”

“우연이구나. 나도 널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배가 멈추었다.

동시에 줄곧 이어지던 노랫소리도 뚝 끊겼다.

바위로 둘러싸여 여기저기서 작은 폭포가 콸콸 쏟아져 내리는 협곡 한가운데였다.

닻을 내린 것도 아닌데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못 박힌 듯 멈춰 선 함선을 둘러본 크리스티나가 활 대신 대검을 들어 올렸다.

그때 깎아 지르는 듯한 절벽 위에서 노래 부르던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크리스티나가 움찔 놀라 고개를 들자 바위에 걸터앉은 작은 소녀가 보였다.

밤하늘을 닮은 새까만 원피스에 제 키보다 더 기다란 하늘색 머리카락, 그리고 검게 물들어 흰자를 찾아볼 수 없는 섬뜩한 눈알이 돋보였다.

크리스티나는 대검을 쥔 손아귀에 힘을 꾹 주며 서늘한 어조로 물었다.

“그대가 그동안 이 바다에서 무고한 생명을 해친 자인가.”

「라일러스……?」

“……?”

묻는 말엔 대답하지 않고 엉뚱한 이름을 꺼내 부르는 소녀로 인해 크리스티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러자 소녀는 절벽에서 휙 뛰어내려 함선에 탁 착지했다.

아직 열 살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는 작은 키의 소녀는 늘씬하게 쭉 뻗은 크리스티나를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했다.

「라일러스! 정말이야. 내 라일러스가 맞잖아! 어째서 이제야 온 거야?」

올려다보는 소녀의 검게 물든 눈에서 먹물 같은 눈물이 주륵 볼을 타고 흘렀다.

「기다렸어. 줄곧 기다렸어. 라일러스. 너를 만나기를.」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수도관 동파, 욕조에서 찬물이 나오지 않고 뜨거운 물만 나오기도 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는 강추위입니다. ㅠ.ㅠ;;; 덜덜덜...

독자님들 모두 건강 잘 챙기시고, 힘세고 강한 한 주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늘 응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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