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115화 (115/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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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장. 맹세

바이칼은 당장 비둘기 떼 사이에서 플루비를 달랑 집어 짐짝처럼 옆구리에 끼고 돌아왔다.

“아무래도 실패인 것 같군.”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에단의 말에 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그냥 페가수스 훈련소를 찾아가 봐야겠습니다. 아무래도 그쪽은 전문가니까 뭔가 도움 될 만한 정보를 알고 있겠죠.”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그랬나.”

“번거롭게 시간만 낭비했군.”

‘이 양반들이 진짜 아까부터…….’

바이칼은 한 쌍으로 잔소리를 해대는 에단과 크리스티나를 보며 조용히 인내를 키웠다.

“그럼 다녀오거라. 우린 탑에서 나가 근방을 둘러보고 있으마.”

“옙, 다녀오겠습니다.”

어린 페가수스와 그들이 선택한 파일럿을 함께 교육하는 훈련소는 탑 중간층에 위치해 있었다.

탑에는 별도의 계단이 없고 층간이동마법진이 존재했다.

마법진에 올라간 뒤 자판에서 원하는 층수를 선택하면 포탈의 원리를 응용하여 간단히 이동할 수 있는 장치였다.

층별 안내판을 통해 훈련소 위치를 확인한 바이칼은 홀로 마법진을 타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훈련소는 마치 놀이방처럼 운영되고 있었다.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고 안에서는 바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일방경으로 가로막힌 상태였다.

관광객이 출입할 수 있는 구역은 이 일방경 바깥쪽뿐이다.

어린 페가수스 망아지들은 고삐와 안장을 찬 채로 자유롭게 뛰어다녔고 훈련생들은 그런 망아지를 쫓아 올라타는 연습을 하거나 그 위에서 균형을 잡고, 또 원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등 호흡을 맞추려 노력했다.

“이곳은 페가수스 훈련소입니다! 아직 어린 페가수스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안전사고방지를 위해 관계자 외 출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관광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바깥에서 구경해 주세요.”

여성 안내원이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워낙 관광 인파가 많은 장소다 보니 불미스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하여 시설마다 안내원과 경비요원이 붙어 있었다.

“훈련에 대해 질문드릴 게 있습니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내원은 생글생글 웃으며 씩씩하게 질문을 요청한 바이칼에게로 다가왔다.

훈련소 내부에 돌아다니는 어린 페가수스들은 평범한 망아지보다 몸체가 훨씬 크고 길며 때 묻지 않은 새하얀 털에선 윤기가 번들거렸다.

옆구리에 달린 날개는 몸을 가릴 정도로 컸으며 새의 깃털처럼 폭신한 깃이 자라 있었다.

“혹시 페가수스가 아닌 녀석도 비행 훈련을 받을 수 있습니까?”

“네에?”

바이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안내원을 향해 품에 안고 있던 플루비를 들어 보였다.

“삐이익.”

주홍빛 눈을 깜빡이는 자그마한 블루 와이번을 마주한 안내원의 얼굴에 당황이 번지기 시작했다.

“세상에, 용……! 이 맞나요? 근데 왜 이렇게 작은…… 어, 키메라?”

“블루 와이번입니다. 근데 이놈이 나는 법을 몰라서요.”

“와, 와이번이요? 나는 법을 모른다구요?”

하늘도시 엘리아의 베테랑 안내원조차 이런 어처구니없는 문의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당황하여 말을 버벅거리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우리 훈련소는 오로지 페가수스를 대상으로만 훈련에 임하고 있습니다. 다른 종족의 비행법과 습성에 대해서는 무지하니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너무 단칼에 거절해 버린 탓에 더 부탁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바이칼은 훈련소에서도 아무런 결실도 얻지 못하고 허무하게 플루비를 데리고 탑에서 나와야 했다.

“하아아, 생각보다 쉽지 않네, 이거.”

그는 긴 한숨과 함께 볼을 긁적였다.

옆구리에 끼워든 플루비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놈과 눈이 마주친 바이칼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 주군께 돌아가 봤자 드릴 말씀도 없고. 플루비, 일단 너 몸 크기부터 원래대로 키워서 뭐라도 시도해 보자. 이 섬 테두리를 따라 죽 강이 흘렀지? 아마.”

하늘도시 엘리아에선 페가수스가 날아다니는 풍경이 일상이었다.

심지어 그중엔 택시라고 하여 비용을 받고 원하는 목적지까지 태워다주는 페가수스도 있었다.

보통 페가수스는 주인 외에는 태우려하지 않지만 특별히 택시용으로 훈련받은 녀석들은 주인 외 1인을 추가로 태우고 다녔다.

‘제길, 걸어서 가려면 너무 오래 걸릴 텐데.’

비행장 중앙탑에 말들을 맡기고 나왔기 때문에 이동수단이 딱히 없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바이칼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눈을 딱 감고 택시를 잡아탔다.

그가 푸릉거리는 페가수스의 손님용 안장에 올라 안전벨트를 매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하던 순간이었다.

“저기, 좀 낮게 비행해 주시면 안 될…… 히이이익!”

푸드득!

파일럿과 바이칼을 태운 새하얀 페가수스는 눈 깜짝할 새 허공으로 치솟았다.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바이칼은 하얗게 질린 채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안장에 달린 손잡이를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밑을 보지 말자. 밑을 보지 말자. 밑…….’

“삐이!”

앞에서 페가수스를 조종하는 파일럿의 뒤통수를 보며 정신통일을 하고 있던 바이칼의 귓가로 겁에 질린 플루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품안에 넣어둔 플루비에게 시선을 내리자 놈은 바들바들 떨며 울먹거렸다.

“쁘에에.”

“너 인마, 와이번 주제에 고소공포증이란 건 아니겠지 설마.”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맞아떨어지는 법이다.

플루비는 석상처럼 굳어서 발발 떨었다.

그리고 졸지에 공포에 떠는 와이번을 달래주게 된 바이칼은 발밑에서 휙휙 스쳐 가는 지상을 내려다보고 강에 도착할 때까지 현기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를 강가에 안전하게 내려준 페가수스 택시는 다시 푸득 날아 깃털을 흩뿌리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흐, 진짜 꼬맹이 너 때문에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

바이칼은 플루비를 물에 퐁당 넣어주며 투덜거렸다.

축 처져 있던 블루 와이번은 차가운 강물을 흡수하여 불린 미역처럼 몸을 키워 나갔다.

놈이 몸체를 본래 크기로 되돌리자 바이칼은 기운 없이 손을 휘휘 저었다.

“아까 페가수스도 타봤겠다. 너도 한번 그렇게 날아봐.”

“쿠워어!”

플루비는 힘차게 날개를 펼쳤다.

그로 인해 수면 위를 훙 하고 강한 바람이 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거기서 끝이었다.

일광욕하는 도마뱀처럼 날개를 펼친 채 가만히 앉아 있는 플루비를 보며 바이칼의 이마에 혈관이 삐죽 튀어나왔다.

“짜식이. 장난하냐? 날갯짓을 해야 날지.”

“끄우우워어엉.”

플루비는 거대한 몸을 비틀며 강아지처럼 낑낑거렸다.

되도 않는 애교에 바이칼의 짜증만 증폭되었다.

“너 다 컸다며. 별로 어리지도 않은 게 뭔 겁이 그렇게 많아? 지금 그 덩치에 그 어마어마한 날개를 달고 고소공포증이 있다는 게 말이나 돼?”

“쿠에에엥!”

“아, 귀 아프니까 소리 지르지 말고 좀!”

그는 땡깡 부리는 와이번의 콧잔등을 주먹으로 통 가격했다.

그러자 플루비가 바닥에 풀썩 엎드려 왱알거렸다.

“꾸웡. 꾸엥. 쿠오옹.”

“뭐. 왜.”

플루비는 푸흥 콧김을 뿜으며 제 등을 고갯짓했다.

아까 페가수스의 파일럿이 부러운 눈치였다.

그 뜻을 알아들은 바이칼은 인상을 팍 썼다.

“뭔…….”

“…….”

함께가 아니면 날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에 직면한 바이칼이 허 한숨을 뱉었다.

‘에라이, 하는 수 없나. 어차피 제대로 날갯짓도 할 줄 모르는 놈이니까. 기껏해야 조금 떠오르다 마는 정도겠지.’

승마를 처음 배우는 아이도 옆에서 어른이 고삐를 쥐고 말을 끌어준다.

플루비에겐 고삐가 없을뿐더러 날갯짓을 이끌어줄 어른도 없었다.

일단은 쥬다스가 플루비의 교육을 일임한 상황에서 현재 놈의 보호자는 바이칼이었다.

탓!

그는 원래 한번 결단을 내리면 행동이 빠른 편이었다.

플루비의 목과 등뼈 사이로 걸터앉은 후 길게 자라난 뿔을 안전대 삼아 꽉 붙잡았다.

“됐냐? 너 날 수 있을 때까지 여기 붙어 있을 테니까. 어디 한번 날갯짓 해보든지.”

그러자 플루비는 해맑은 기색으로 몸을 일으켰다.

집채만 한 몸뚱이가 일어서자 그것만으로도 제법 시야가 높아졌다.

바이칼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발로 놈의 가죽을 툭툭 찼다.

“좋았어. 아까 그 말대가리들처럼 날아보라고.”

“푸르릉!”

말처럼 투레를 한 번 지른 플루비는 활짝 핀 날개를 한 번 느릿하게 퍼덕였다.

그럴 듯한 바람이 휘몰아치긴 했지만 몸체만 살짝 기우뚱했을 뿐 전혀 떠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이칼은 혀를 차며 재차 발을 굴렀다.

“폼은 괜찮네. 날개를 좀 더 빠르게 휘저어야지. 멈추지 말고 계속 해 봐!”

그의 응원에 용기를 얻은 플루비는 눈을 빛내며 기운차게 날개를 퍼덕였다.

놈은 이미 다 자란 성체였고 과하게 힘을 준 날개에선 퍼덕인 스스로조차 예상치 못한 어마어마한 바람이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

흡사 회오리처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블루 와이번의 육중한 몸체가 붕 허공으로 치솟았다.

그들이 타고 온 페가수스 택시보다 훨씬 가볍고 빠른 이륙이었다.

“……응?”

바이칼은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기껏해야 비틀거리며 조금 떠오르다 말 거라 생각했던 플루비가 바람에 흩날린 민들레홀씨처럼 가뿐히 날아오른 것이다.

순식간에 높은 창공으로 떠오른 플루비는 플루비대로 몹시 당황하여 계속 날개를 푸드덕거렸다.

그러자 비행에 속력이 붙으며 더 높이,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자, 자, 자자자잠깐!?”

“크워어어엉!”

둘은 동시에 비명처럼 소리를 내질렀다.

그러나 한번 질주하기 시작한 와이번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갔다.

“어? 저게 뭐지?”

“저건 페가수스가 아닌데.”

“드, 드래곤?”

엘리아의 사람들도 허공을 질주하는 거대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웅성거렸다.

페가수스의 속력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는 어마어마한 스피드였다.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거대한 두 날개를 퍼덕이는 플루비의 실루엣을 본 사람들은 일제히 그를 드래곤으로 착각했다.

“그러고 보니 산맥에 신룡이 산다고 들었어!”

누군가의 외침을 기점으로 와 하고 환호성이 일어났다.

“신룡님이다!”

“신룡이 나타났다!”

환호와 웅성거림은 엘리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마침 한갓지게 광장을 돌아다니던 쥬다스 일행도 그 소리를 듣고 묘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신룡?”

귀에 익은 단어였다.

에단이 미간을 좁히고 한 손으로 햇빛을 가리며 하늘을 바라본 순간 그의 눈에도 멀리서 빠르게 비행하는 무언가가 보였다.

주변에 퍼덕거리는 페가수스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굉장한 속도였다.

이를 멀뚱히 올려다본 유니가 쥬다스의 볼에 머리를 툭 기대며 말했다.

「이그레트, 쟤 울어.」

“…….”

쥬다스는 웃지도 찡그리지도 못한 애매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끄아아아’ 하는 비명 소리가 귓가에 쟁쟁한 느낌이었다.

그는 난처하게 웃으며 팔짱을 꼈다.

“이거야 원……. 저리 무리할 필요까진 없었는데.”

「뭐 제대로 날 수 있게 되긴 했네.」

「으응. 착륙을 못하는 게 문제죠.」

카니가 방싯 웃으며 덧붙였다.

“저어, 형님. 방금 플루비가 맞죠?”

“그래, 바이칼과 플루비구나.”

“예? 바이칼이요?!”

너무 멀어 그 위에 사람이 타고 있는 것까진 확인하지 못했던 세이지가 경악한 얼굴로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렇지만 플루비는 이미 그들의 머리 위를 쏜살같이 지나가고 없었다.

일행은 멍하니 텅 빈 하늘을 올려다볼 뿐이었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이륙할 땐 마음대로였겠지만 착륙할 땐 아니란다. (?)

Q. 작가님! 종이책 출판은 언제쯤으로 계획이 되어 있나요??8ㅁ8)/

A. 종이책은 2부완결후에 제작하는 걸로 들었습니다! 2부완결은 200화 즈음, 시기적으로는 5월정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ㅎ

오늘도 즐겁게 읽어주셨길 바라며, 보내주시는 응원과 사랑에 늘 감사드립니다!

그럼 내일 이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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