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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마녀사냥
비록 지난 몇 년간 유폐되어 살았다지만 고귀한 황자의 신분으로 자라온 세이지에게는 면역이 없는 더럽고 역겨운 이야기였다.
“거기서 꾀를 내어 간신히 목숨 부지하여 도망쳐 나온 사람이 몇 명 있지. 그중 하나가 바로 나요.”
“지, 진짭니까?”
“진짜고말고! 내가 똑똑히 보았소. 그 마녀의 진짜 모습을 말이야. 키는 난장이처럼 작고 눈은 옴팡눈에 코만 홀로 우뚝 선 매부리코였지. 피부는 축 늘어진 게 노인 같은데다가 입술은 실밥이 터진 인형처럼 징그러웠어. 아, 그래.”
아름다운 보라색 머리카락만큼은 똑같더군.
주절주절 실컷 마녀의 추한 외모에 대해 늘어놓던 사내는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아무튼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소? 괜히 돌아다니다가 잡아먹히기 싫으면 오늘 밤은 여기서 묵고 가쇼. 사람 잡아먹는 밤의 마녀도 마을에는 들어오지 않으니까.”
그 말에 일행의 시선이 일제히 쥬다스에게로 향했다.
향후 움직임에 대한 결정권은 오직 그에게 달려 있었다.
“고맙습니다. 충고대로 날이 밝거든 떠나겠습니다.”
“좋은 선택이요. 산을 오를 동안은 일행들과 가급적 꼭 붙어 다니시오. 밤의 마녀는 혼자 동떨어진 인간을 노리거든. 아무튼 뭐 너무 겁먹진 마시고.”
마녀에 대한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그들은 그 뒤로도 해동에 대한 몇 가지 소소한 소문을 수집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작은 사냥꾼 마을에는 객을 위한 숙소가 한 군데 밖에 없었다. 이 숙소는 산맥을 지나다니는 수많은 여행객으로 인해 늘 만원이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사냥꾼들은 빈 방을 찾지 않았다.
대신 텐트나 침낭을 이용해 알아서 눈을 붙일 수 있도록 풀을 깎아 모닥불을 지펴놓은 공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사냥꾼들은 별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을 이불 삼고 모닥불 타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침낭에 몸을 묻고 휴식을 취했다.
그동안 여행을 다니며 노숙에 익숙해진 쥬다스 일행도 자연스레 그 틈에 끼어 자리 잡았다.
“형님.”
평소 같았으면 군말 없이 잠들었을 세이지가 불편한 표정으로 제 형을 찾았다.
“잠이 오질 않는 게냐?”
“네, 형님은요?”
“흠. 나도 어째 그렇구나.”
쥬다스는 작게 웃으며 답하였다.
그는 턱을 괸 채 새로 지핀 모닥불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 안에서 춤을 추는 작은 불의 정령들이 보였다.
“그…… 형님. 아까 그 흉흉한 소문 말이에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진짜일까요?”
결국 세이지는 주섬주섬 자리에 일어나 앉았다.
침낭을 끌어안다시피 한 동생에게 쥬다스가 태연한 어조로 되물었다.
“밤의 마녀 말이더냐?”
세이지는 차마 그렇다고 답하지 못했다.
아이는 올해로 열 넷이 되었다.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이야기가 무서웠다고 솔직하게 티낼 수 없는 어중간한 나이였다.
오히려 다 자라지 않은 소년은 속마음을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우물쭈물 시선을 돌리며 민망해하는 세이지를 쥬다스가 힐끗 쳐다보았다.
“글쎄, 모르겠다.”
“예에?”
마녀의 정체까진 알 수 없더라도 이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을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허물어졌다.
세이지가 눈만 끔뻑거리자 쥬다스는 다시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소문이란 마치 그림자와 같단다. 혹 그림자공연을 본 적 있느냐?”
“아아, 네. 그림자공연이라면, 예전에 한 번…….”
그림자공연은 서커스나 축제 등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그림자를 이용하여 연극을 하기도 하고 커다란 괴물을 만들어 보이기도 하는 등 눈으로 즐길 거리를 잔뜩 만들어낸다.
간단한 도구만 있어도 공연을 시연할 수 있기 때문에 평민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었으며 귀족 상대로는 마법을 섞어 만든 고급스러운 그림자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쥬다스는 모닥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양손을 겹쳐 세우자 날개를 펼친 새 한 마리를 연상시키는 그림자가 땅에 그려졌다.
“그림자는 분명 본체의 형상을 본 따 이루어지지. 하지만 세이지, 그림자만 봐서 본래 모습을 정확히 알아낼 수 있을까?”
날아가는 새 같던 그림자는 손을 약간만 틀어놓자 포악한 늑대처럼도 보였다.
세이지는 고개를 저었다.
“마찬가지로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보지 않고선 소문의 본질을 알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소문을 전혀 뜬소리로 치부할 수도 없어. 소문이 난 데에는 무엇이든 이유가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이 산에 마녀가 살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얻었다. 하나 그뿐이다. 정말 그 마녀가 괴팍한지, 혹은 사람을 끓는 가마솥에 넣어 잡아먹는 잔인한 성미인지는 모르겠구나.”
쥬다스는 손장난을 거두고 살짝 주먹을 그러쥐었다.
사르르 몰려든 녹색 바람이 틈을 비집고 흘러 은하수처럼 반짝였다.
“그러니 한번 만나러 가볼까 한다.”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던 세이지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네? 누구를요?”
“누구기는, 소문의 주인공이지.”
“설마 마녀를 만나러 가시겠다는 말씀이세요?”
“날이 밝거든 말이야. 이제 그만 푹 자두거라.”
이미 바람의 정령이 길을 알아온 게 틀림없었다.
세이지는 결국 무섭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잠자코 형제의 대화를 주시하고 있던 나머지 일행은 그러려니 싶은 얼굴로 눈을 감았다.
민생을 샅샅이 살피기 위해 포탈조차 타지 않고 말을 달려온 그들이었다.
흉흉한 소문이나 사람들이 불편을 겪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일부러라도 가서 들여다볼 판이다.
남들은 피해가는 것을 굳이 사서 하는 고생이었지만 이에 대해 아무도 불만을 갖지 않았다.
더구나 다들 마녀에 대해서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심지어 성인이 되도록 귀신을 무서워하는 바이칼조차도 마녀나 징그러운 괴물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쳤다.
시무룩해진 세이지만 홀로 침낭에 기어들어가 온갖 상상에 사로잡혔다.
아이는 그날 결국 독충수프를 먹고 토실토실 살이 쪄서 마녀에게 쫓기는 악몽을 꾸고 잠을 설치고야 말았다.
긴 밤이 지나 푸르른 새벽 동이 터오자마자 일행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산맥의 하늘은 옅은 물안개가 낀 감청색이었다. 해가 완전히 뜬 게 아니라 구름은 도리어 검게 보였다.
그들이 사냥꾼 마을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징검다리처럼 둥실둥실 떠 있는 구름 사이로 슬며시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담한 키의 나무와 포근한 기온, 오묘한 빛깔로 밝아오는 새벽하늘의 조화는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한편으론 제국의 풍경과 달라 이색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말은 이쯤에서 두고 가야겠습니다.”
유니의 인도를 따라 이동하다가 어느 한 구간에서 말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처음에는 산길로 산들산들 이어지던 녹색 바람은 제법 높이 올라왔다 싶을 무렵 아예 길이 없는 비탈진 숲 속으로 휙 꺾어져 들어갔다.
비탈이야 그렇다 쳐도 갈수록 무성해지는 식물들과 울퉁불퉁 꺼진 험준한 지형은 말이 달릴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하는 수 없이 일행은 그쯤에서 머릿수를 나누었다.
말들을 그냥 매어놓을 수는 없었기에 안전하게 돌볼 사람이 필요했다. 그 역할에는 최상급 정령을 다루는 콜이 선정되어 기사단 다수와 함께 남기로 했다.
쥬다스의 뒤로는 세이지, 그리고 늘 한 팀처럼 움직이는 세 사람에 더해 치유술사 하나와 검사 둘이 따라붙었다.
「저쪽이야, 저쪽!」
모처럼 제대로 된 안내역을 맡은 유니는 활기차게 방향을 일러주었다.
에단이 앞장서서 앞을 가로막은 수풀과 잔가지를 베어냈다. 그렇게 해도 나뭇잎이며 온갖 풀잎사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라붙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 보니 우거진 수풀 대신 다른 난관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녹색 기류가 반짝이는 방향을 따라 고개를 든 바이칼이 볼을 긁적였다.
“이능력자가 아니면 노크도 못하겠는데요.”
보랏빛 마녀의 성이 하늘 위에 떠있었다.
정확히는 나무 다섯 그루가 얼기설기 얽혀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었다. 모래성처럼 아기자기한 형상의 성이 나뭇가지 위에 새 둥지처럼 자리했다.
워낙 높은 곳에 있다 보니 밑에서 볼 때는 언뜻 웅장해보이기도 했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소꿉놀이용 장난감처럼 크기가 아담했다.
그저 정말 한 사람 살기에 딱 적당했다.
심지어 나무 다섯 그루를 엮어 그 위에 집을 지었으면서 계단도 사다리도 없이 그저 그렇게 허공 위에 지어놓은 폼이 영 아슬아슬해 보였다.
그들은 일단 그 묘한 건축물 밑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마녀의 성’이라 불리는 장소는 저기가 맞아. 아, 근데 마녀라는 애는 지금 저기 없어.」
「우으엥? 마녀 만나러 온 거 아니다요? 마녀 없는 마녀의 성이 무슨 소용이다요?」
계약자의 머리위에 갈대처럼 늘어져있던 토니가 파닥파닥 날아올라 마녀의 성 주변을 빙글 돌았다.
유니는 허리에 손을 얹고는 의기양양하게 대꾸했다.
「이그레트가 찾아달라고 한 건 마녀가 아니라 마녀의 성이라구. 물론 마녀도 지금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으니까 별 차이 없긴 하지만.」
“주인이 부재중인 빈집이라면 손님으로서 응당 예의를 지켜 기다려야 옳겠지.”
쥬다스는 당장에라도 마녀에게 다시 안내를 시작할 기세인 유니를 진정시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 외딴 위치였다. 마녀의 성은 사람 사는 마을은 고사하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과도 무척이나 동떨어져 있었다.
주변 정리조차 해두지 않았다. 일부러 숨어 지낸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볼수록 수상하네요. 몰래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이런 으슥한 곳에 집을 지어놓은 걸까요?”
세이지가 나무 위에 지어진 마녀의 성을 훑으며 중얼거렸다.
높아서 잘 보이지는 않아도 건물을 빠짐없이 뒤덮은 보라색 칠을 보고 있자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보라색은 광기의 색이라고도 하던데…….”
“색깔에 편견을 갖고 보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란다, 세이지.”
쥬다스는 동생의 불합리한 시각을 가볍게 지적하곤 건물을 떠받든 나무들로 가까이 다가섰다.
일반적인 나무와 달리 밑동에서부터 소용돌이치듯 배배 꼬여 자랐다.
무거운 건축물을 지탱하기 좋은 형태였다.
‘원래 이런 종은 아닌 듯한데. 일부러 이렇게 자라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정령의 힘은 아니야.’
정령의 기운이 섞였다면 그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쥬다스는 스크류 형태로 빙글빙글 꼬여 자라난 나무기둥을 손끝으로 훑어보았다.
그 순간 토니가 빙글 나무 주변을 돌며 신이 나 외쳤다.
「이건 그거다요!」
“응……?”
「그거다요, 그거.」
「이 답답아. 그래서 그게 뭔데? 똑바로 좀 말해봐. 이그레트가 당황하잖아.」
「우으으웅? 뭐라더라요. 우리랑 되게 비슷한데에. 막 나무 열매에서 태어난다요!」
토니는 답답한 얼굴로 팔을 버둥거렸다. 그러자 유니도 덩달아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뭔지는 아는데 종족명을 좀처럼 떠올리지 못하는 바람에 빚어진 비극적인 사태였다.
두 정령은 서로 종류가 다른 답답함으로 함께 끙끙거렸다.
쥬다스의 어깨에 매달려 멀뚱히 상황을 지켜보던 카니가 살며시 입을 열었다.
「혹시 ‘픽시’를 말하는 건가요?」
「맞다요! 픽시다요!」
「뭐야, 난 또. 요정족 픽시(Pixie) 말하는 거였어? 하도 오래되어서 잊고 있었네. 맞아, 걔들이라면 가능해. 애초에 나무에서 태어나는 애들이니까.」
유니도 손바닥을 통 하고 내려치며 동조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기울였다.
「어? 가만. 근데 픽시는 아주 오래전에 멸종한 게 아니었어? 난 그렇게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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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공든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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