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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 마녀사냥
정령들이 수상한 눈길로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란은 오동통한 거미 모양의 쿠키를 하나 집어 들었다.
“정말 예쁘지 않아? 자, 얼른 먹어봐. 맛을 보면 감동할지도 몰라!”
‘다른 의미로 감동하겠지……!’
소리 없는 이구동성이 모두의 입속에 맴돌았다.
그러나 유일하게 한 사람만은 쿠키의 흉물스러운 외형에 타격받지 않고 란이 내민 것을 얌전히 받아먹었다. 다름 아닌 쥬다스였다.
“표현하고자 한 것을 무척 사실적으로 재현해 냈구나. 마치 정말 살아 있는 거미를 씹는 듯한.”
“형님. 거미 드셔 보셨……? 아, 아니, 괜찮으세요?”
“음, 그래. 맛은 아주 훌륭해. 적당히 달고 고소한지라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겠어.”
세이지는 거기에 대고 ‘아뇨, 맛을 품평하실 게 아니라 형님의 비위가……’라고 차마 토를 달지 못했다.
대신 나머지 사람들은 서로 결의의 눈빛을 주고받았다.
주인이 먼저 맛을 보았는데 신하 된 도리로 다과상을 마다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가장 품격과 청결에 예민하게 구는 크리스티나가 도리어 제일 먼저 쿠키를 집어 먹었다.
그나마 개중 크기가 제일 작아 보이는 풍뎅이 쿠키였다.
공녀씩이나 되면서 벌레 쿠키를 터프하게 한입에 털어 넣은 그녀를 보고 에단도 질세라 거미모양 쿠키를 입에 넣었다.
두 사람이 스타트라인을 끊자 나머지는 자동으로 따라야만 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망설이던 세이지도 두 눈을 질끈 감고 손을 뻗었다.
“…….”
잠시 동안 일행 사이에 흡사 절규와도 같은 침묵이 감돌았다.
입안에서 버석버석 부서지는 질감마저 진짜 벌레를 연상케 했다.
물론 쥬다스의 말대로 맛은 훌륭했다. 하지만 두 번 먹고 싶진 않은 쿠키였다.
“이거 의외로 맛있는데요?”
그 묘한 침묵을 깬 건 바이칼이었다.
처음엔 그도 꺼렸지만 막상 먹어보니 제법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고로 물건은 제 기능만 잘하면 장땡이고 음식은 맛만 좋으면 장땡이란 모토를 가지고 사는 그에게 있어 벌레쿠키는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었다.
그는 포크로 눈알 젤리를 쿡 찍어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요거도 괜찮네. 플루비, 너도 먹어봐.”
“삐이!”
란이 감동한 눈으로 바이칼을 쳐다보았다.
산속에서 죽어가던 사람들을 구해 집으로 데려오면 기껏 만들어준 빵과 쿠키를 그릇째로 내던지며 비명을 질러대곤 했다.
저렇게 적극적으로 맛을 보고 좋아해 주는 사람은 그동안 아무도 없었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바이칼에게 꽁해 있었던 란의 마음이 사르륵 풀렸다.
“간 특제파이. 먹을래?”
“어, 먹을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레이디.”
“아하하! 그게 뭐야.”
바이칼의 장난스런 대꾸에 란은 어린아이처럼 히히 웃었다. 그사이 포크를 내려놓은 크리스티나가 입을 열었다.
“픽시 그대에게 세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다.”
“뭔데?”
“첫 번째, 혹 사람을 해친 적이 있나?”
직설적인 질문이었다. 질문을 들은 란도 덩달아 가뿐히 답변했다.
“아니. 사람은 맛없는걸.”
“큽! 쿨럭쿨럭!”
지나치게 솔직한 대답이었기에 맛있게 파이를 우물거리던 바이칼이 입을 틀어막고 기침을 해댔다.
“둘째, 이 식재료들의 출처는 어디지?”
“거래처가 있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나. 그쪽에서 필요로 하는 식물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마녀라 불리며 산중 깊은 곳에 홀로 지내고 있는 란이었지만 나름대로 착실히 생존방식을 익혀 살아가고 있었다.
“마지막.”
고개를 끄덕인 크리스티나는 차가운 눈으로 세 번째 질문을 던졌다.
“왜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함께 살지 않는 거지?”
“왜냐니…….”
겁이 좀 많긴 하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사람들과 곧장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거래를 할 줄 아니 생계에도 지장이 없다. 크리스티나는 그녀가 마녀란 오명을 쓰면서까지 산속 깊은 곳에 홀로 살아가고 있는 이유를 짚어 물었다.
란은 대답 대신 파묻히다시피 몸에 두르고 있는 새카만 로브자락을 쿡 움켜쥐었다. 그리곤 더듬더듬 되물었다.
“꼭, 남들과 함께 살아야만 하는 거야?”
“그대는 지금 사람을 잡아먹는 마녀라 오해를 사고 있어. 혼자 괴물이라 손가락질을 받으며 사는 게 억울하거나 고독하지 않나?”
“나는 이대로가 편해. 사람들이랑 친해지고 싶지 않아. 어차피 그들도 날 무서워해.”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쥬다스의 손이 멈칫했다.
“있잖아, ‘고독’이란 건 어떨 때 느끼는 거야?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아가는 지금이 좋아. 남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달콤한 게 잔뜩 있는 이 세상을 정말정말 좋아하니까.”
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넓은 벽면 중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창문은 단 한 개뿐이었다.
창을 활짝 열자 푹 익은 노을과 함께 신선한 저녁바람이 흘러들어왔다.
“난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힘들어. 사람들은 겉모습에 따라 태도가 달라져. 다른 사람이 원하는 모습에 나를 끼워 맞추게 돼. 그럼 난 점점 나의 어떤 부분들을 미워하게 되는 거야.”
바람결에 란의 땋은 보라색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말을 마치며 란은 로브를 벗었다.
투둑.
무거운 담요 같던 검은 로브가 사라지자 나비날개처럼 얇고 부드러운 미니드레스가 찬란하게 반짝였다.
그녀는 어느덧 훌쩍 자란 성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없이 순진한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고혹적인 미소가 붉은 입술에 초승달처럼 매달렸다.
“가르쳐 줄 수 있어? 어떤 게 진짜 고독인지?”
픽시는 모든 종족으로부터 호감을 사는 향기와 외형을 가진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하지만 란은 픽시로서의 특징을 반만 가지고 태어났다. 낮에는 모두가 기피할 추녀로, 밤에는 사람의 정신을 홀려 꿰어낼 미녀로.
태양이 지고 달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순간 그녀는 아찔한 미모를 가진 숲의 요정으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그녀는 ‘밤의 마녀’라고 불리었다.
“와 씨. 놀래라. 뭐냐 너? 낮이랑 밤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잖아?”
“그렇지만 낮이랑 밤의 모습 둘 다 나야. 히히, 웃기지?”
“허. 솔직히 변화폭이 그 정도로 크면 사람들 태도가 다른 것도 어쩔 수 없겠는데.”
바이칼이 헛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말로는 투덜거리면서도 변하지 않은 태도에 란도 안심하고 살짝 미소 지었다. 그러곤 사뿐사뿐 다가오며 함께 쫑알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 입장에선 갑자기 태도가 싹 바뀌면 적응 안 된단 말이야.”
“적응이 안 되기로 치면 널 보는 사람 쪽이 더 심하지 않을까…….”
외모의 괴리감이 극심했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나니 처음 밤의 모습을 보고 홀린 사람들이 날이 밝아 추하게 변해버린 란을 보고 경악하는 심정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았다.
크리스티나도 바이칼의 말에 동감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두 가지 외형을 가지고 살아가는 건가. 그렇다면 이를 타인에게 납득시키기 어려웠겠군.”
“보통은 그래. 너희처럼 침착하게 받아들이는 게 이상한 거지.”
대수롭지 않게 답한 란이 본래 자리로 돌아와 앉자 짧은 스커트가 딸려 올라가 허벅지가 드러났다.
맡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달콤한 과일사탕 같은 향기가 주변으로 은은하게 퍼졌다.
그 바람에 가까이 있던 바이칼은 귀 끝을 빨갛게 물들이며 휙 몸을 뒤로 물렸다.
“그, 거 좀 떨어져 앉지?”
“왜애? 낮의 모습일 땐 별 말 안하더니.”
“옷이라도 얌전한 걸로 갈아입던가!”
쥬다스는 버럭 소리치는 바이칼과 깔깔 웃어대는 란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지금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놀라고 있었다. 그녀의 외형이 변해서가 아니다. 쥬다스의 표정이 묘하게 굳었다.
‘동질감.’
일순간 그가 란에게서 느꼈던 감정이었다.
한때 그도 역시 란과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대로가 편해. 사람들과 엮이고 싶지 않아. 어차피…….’
자연계 4속 정령왕의 계약자, 대현자 이그레트.
인간 이상의 힘을 지닌 그를 모두가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 자신조차 두려움에 빠져 스스로를 억압했다.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공평한 선의를 품을 수 있도록, 아무도 상처 입히지 않을 수 있도록. 그 지키고자 하는 범주에는 그에게 힘을 빌려주는 정령들조차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늘 사람들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했고 필요 이상의 정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전생의 그가 란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실은 지독히도 외로웠던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인간의 삶에서 도망치면서 그는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그렇게 한평생을 살고 죽어가면서도 후회했을 정도였다.
“란, 너는…….”
“응?”
‘나완 달리 강한 아이구나.’
란은 인간이 아니라 픽시다. 그녀는 온순하고 평화로운 성미를 가졌지만 사회적인 동물은 아니었다.
결코 인간적인 삶에서 행복을 느끼지 않는다. 미적 취향이 남달라 해골이나 내장, 벌레 등을 좋아하듯 행복의 기준이 달랐다.
그 사실을 꿰뚫어 본 쥬다스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 여러모로 안심이 되는구나. 우리가 확인하고자 한 건 방금 크리스티나 저 아이가 질문한 내용들이 전부였으니 말이야.”
“벌써 가려구?”
“근처에서 다른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어. 걱정할 만한 문제가 아니란 사실을 알았으니 이만 돌아가야지.”
란의 집은 말을 타고선 들어오지 못하는 험한 산중에 있었다.
그 바람에 콜을 비롯한 많은 인원을 길목에 두고 온 참이었다. 아쉬운 눈으로 따라 일어선 란이 쫄래쫄래 그들을 집 앞까지 배웅했다.
“힝. 너희들이라면 좀 더 오래 같이 있어도 괜찮은데.”
“삐이이?”
그녀의 발치에 남은 플루비가 대형견처럼 꼬리를 흔들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란은 블루 와이번의 자그마한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우리, 조금은 친해진 걸까?”
“플루비. 거기서 뭐 해? 이리 와.”
“삐.”
플루비는 바이칼의 부름에 쪼르르 달려갔다. 껑충 뛰어오른 와이번을 비틀거리며 품안에 받아낸 바이칼이 란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이봐.”
“으응?”
“바보같이 괜히 오해받고 살지 말고 아닌 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해. 네가 만든 건 진짜 벌레가 아니라 좀 특이한 디자인의 초코쿠키일 뿐이라고 말하라고. 입 뒀다가 뭐하냐.”
그 말을 들은 란은 킥킥 웃었다.
혼자 지내는 걸 불편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지만 누군가와 헤어지는 건 조금 싫은 기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낮에 느꼈던 것과 같은 손길이 그녀의 머리를 토닥여 주었다.
“그럼 다음에 또 만나자꾸나. 란.”
“다음에, 또?”
생소한 인사였다. 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활짝 웃었다.
“응! 또 만나. 다들.”
* * *
쥬다스는 헤어진 지점에서 말을 지키고 있던 팀과 다시 합류했다. 상황을 궁금해하는 콜에게 마녀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자 매우 뜨거운 반응이 돌아왔다.
“맙소사! 고대종족 픽시 말씀이십니까?”
학구파인 콜은 픽시를 지척에 두고도 보지 못한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한탄했다.
“다음엔 저도 꼭 데려가 주시는 겁니다, 스…… 쥬다스 님.”
“그리도 아쉬우십니까? 돌아오는 길에 함께 방문하시면 되지요.”
“무려 요정족이지 않습니까! 부끄럽사오나 고대종족을 만나보는 건 이 늙은이,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흐음, 그랬군요. 진작 말씀하시지.”
“쥬다스 니이임.”
울상을 짓는 노제자를 보며 쥬다스는 모르는 척 웃었다.
「어?」
문득 유니가 뒤를 휙 돌아보았다. 훙 몰려드는 녹색 바람에 쥬다스의 옷자락이 흩날렸다.
그는 정령이 감지한 이변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이그레트, 강한 피 냄새가 나.」
“…….”
쥬다스가 말을 멈춰 세우자 침울하게 있던 콜도 의아한 얼굴로 그 곁에 멈추었다.
모든 일행이 한꺼번에 정지하자 유니가 주변을 빙빙 돌며 자세한 정보를 읽어왔다.
「사람이 무척 많이 몰려 있어. 기분 나쁜 기운도 몇 섞여 있고.」
“장소는?”
「아까 그 픽시의 집이야.」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개한테 손을 물렸습니다. 커헉. 왼손이라 다행이긴 한데 타자치는 게 좀 불편하네요 ㅠ.ㅠ
봄이 되었으니 다들 개조심합시다..(?)
그럼 다음 편에서 다시 만나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