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그레트-219화 (219/252)

0219 / 0240 ----------------------------------------------

25장. Kyrie

이상할 정도로 강한 위압감이 그들을 휘감았다가 이내 스르륵 풀렸다.

불량배들은 쥬다스를 날 때부터 받들어지다 보니 편안하게만 살아와 나태함과 무료함에 찌든 귀족 자제일 것이라 확신했다.

‘그것도 제법 고위의.’

봉 잡았단 생각에 그들의 얼굴에 저열한 미소가 떠올랐다.

닳고 닳은 어른이라면 몰라도 상대는 아직 얼굴에서 솜털도 빠지지 않은 풋내기들이었다. 설령 저들이 영민하고 청렴하여 도박에 빠지지 않고 어른들에게 정보를 흘린다고 해도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지금 그들 앞에 있는 불량배들은 아주 하위 계급의 조직원일 뿐이다.

거대한 검은 조직과 맞물려 운영되고 있는 사업은 도박장뿐 아니라 밀수, 인신매매와 같은 범죄부터 시작해서 정식 무역, 유명 포도주 주조 등 다양했다. 그 음습하고도 거대한 연결 고리는 작은 도박장 하나 걸린다고 해서 간단히 꼬리를 잡힐 정도로 허술하지 않았다.

‘황제폐하의 심기를 건드리는 정도가 아니라면 상관없지!’

걸려도 금방 풀려나고 어지간해선 잘 걸리지도 않으니 십 년 이상 이 바닥에서 구른 시정잡배들의 간덩이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들의 눈에는 쥬다스 일행이 꼭 주렁주렁 열린 돈다발 열매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어이쿠, 까탈스러운 도련님이시네. 내 장담하지. 오늘 하루 안에 그 재미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걸?”

“하면 내기를 해보는 것이 어떠하냐?”

“내기라니.”

“구미를 당겨보란 이야기다. 그 정도 흥밋거리도 없이 시간을 빼앗기긴 영 귀찮구나.”

내기란 말에 조직의 다섯 끄나풀은 서로 눈길을 주고받았다.

‘해?’

‘응, 해.’

동료들의 지지에 용기를 얻은 우두머리가 인심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기를 하도록 하지. 일단 오늘 해가 지기 전까지 게임을 즐겨봐. 만일 그쯤에서 중독되지 않고 자의로 ‘놀이터’를 벗어날 수 있다면 너희 승리다.”

도박장에는 게임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해외에서 들여와 구하기 힘든 술과 미녀도 즐비했다.

‘이용료가 비싼 게 흠일 뿐.’

돈만 있다면 무엇이든 즐길 수 있는 천상의 놀이터.

도박장을 와본 사람은 누구나 동감하는 별칭이었다.

“패배한 쪽은 수중의 돈을 모조리 넘겨줄 것.”

“동의하지.”

망해가는 가문이 아닌 이상에야 일반적인 귀족은 아무리 간단한 나들이를 나왔더라도 많은 돈을 들고 다닌다.

그에 반해 조직 말단에서 손님을 끌어오는 역할을 하는 다섯 청년은 주머니 속이 텅 비어 있었다. 따지고 보면 내기에 걸린 보상액 자체가 불공평했다.

“좋아. 따라 나오셔. 음료 값은 우리가 계산하지.”

불량배들은 웬 떡인가 싶어 서둘러 일을 진행했다.

처음엔 소극적이고 유순하던 사람도 성난 들소처럼 포악하고 만들어버리는 게 바로 도박장이다.

그들은 새 고객을 끌어왔을 뿐 아니라 용돈까지 벌게 되었다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잘난 귀족도 애들은 애구만!’

꿀 바른 유혹에 이끌려 도박장에 발을 딛는 것도 모자라 제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내기를 걸다니.

무모한 데다 현실 감각마저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혀를 차던 청년은 문득 가야와 눈이 마주치고 움찔했다.

‘뭐지?’

방관자가 되어 내내 조용히 돌아가는 상황을 구경하고 있던 가야가 어째 자신과 비슷한 표정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마치 사자굴에 제 발로 기어들어가는 토끼 다섯 마리를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들은 잠시 후 그 이유를 똑똑히 깨닫게 된다.

* * *

불법 시설이라면 응당 음지에 있을 거란 일반적인 상식과 달리 도박장은 큰길가에 버젓이 자리했다.

겉으로는 크고 아름다운 저택이었는데 정작 그 안에 거주하는 집주인은 없었다. 대신 매일같이 저택을 찾아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그리고 오늘, 도박장을 찾은 모든 손님의 시선을 강탈한 새 얼굴이 하나 저택에 들어왔다.

‘이게 대체.’

오늘 실적 좀 올리겠구나 싶어 좋아하던 조직의 말단 직원 5명은 처참하게 인상을 구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는 몰라도 상황이 완전히 틀어져 있었다.

원래 초짜를 데려오면 처음엔 더 큰 금액을 유도하기 위해 돈을 좀 따게 해준다. 하지만 이건 조금 따게 해주는 정도가 아니었다. 손님을 상대하기 위해 줄줄이 나온 조직 직원들이 연패, 참패를 겪고 있었다.

시작은 단순했다.

화려하고 큰돈이 오가는 도박장 외관에 주눅이 들 법도 한데 쥬다스는 그러지 않고 처음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이 걸 수 있는 최고 금액을 걸었다. 이제 겨우 열일곱 소년이 보이는 통 큰 행동에 잠시 시선이 모여들었다.

또 허영심 가득한 귀족 자제를 낚아왔냐며 킥킥대던 다른 손님들과 직원들은 시간이 갈수록 그가 보이는 게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덧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홀, 짝?”

“짝.”

지금 하는 게임은 심지어 운 게임이었다.

원래 주사위를 던져 홀짝을 맞추는 게임이나 카드 뽑기로 운을 테스트하는 게임은 절반 이상이 짜고 치기다. 언뜻 공평해 보이는 게임들이 사실은 온갖 트릭과 각본대로 흘러가는 연극일 뿐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손님이 짝이라고 말했으면 간단한 트릭을 거쳐 홀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주사위를 굴린다.

그러나.

“또 짝이야!”

“굉장하다. 벌써 몇 판째 이긴 거지?”

“모든 종류의 게임을 다 해보는 것 같은데.”

“전문꾼인가 봐. 일부러 농락하는 거 아냐?”

구름 떼처럼 주위를 빙 둘러싸고 구경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와 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 도박장을 찾은 손님들은 전부 자신의 게임에는 관심이 없었다. 가히 전설로 남을 만한 게임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반면 하루 만에 자금이 탈탈 털리게 생긴 직원들은 안색이 하얗게 굳었다.

‘젠장! 저 자식,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분명 짜고 치는 게임인데 짠 대로 흘러가질 않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손님한테 따질 수는 없었기에 울상만 짓고 있을 뿐이다.

「바보들.」

몸을 자연에 숨긴 채 둥실둥실 떠있던 유니가 한심해하는 눈빛으로 투덜거렸다.

「지들이 누굴 속일 수 있으면 지들도 속을 수 있는 줄을 알아야지.」

「맞다요! 이게 바로 ‘뛰는 놈 위에 자는 놈 있다’다요!」

「……자는 놈이 묘하게 편해 보이긴 하는데 그거 아냐.」

「에엑! 이거 동화도 있다요. 거북이가 열심히 뛰는 동안 토끼는 자고 있고 뭐 그런 거 아니다요?」

「응, 아니야. 그건 다른 동화고. 원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거든?」

「히잉.」

토니는 자기가 틀렸다는 사실에 충격받고 쭈그러들었다.

그사이 간단히 승수를 하나 더 챙긴 쥬다스를 상대하던 도박장 직원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이럴 순 없어! 이건 사기다!”

“흐음.”

달그락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진 주사위며 카드 등을 별 감흥 없이 쳐다본 쥬다스가 그에

게 물었다.

“사기라는 근거는?”

“알 게 뭐야! 이런 젠장! 아무리 도박이라지만 벌써 수십 판도 넘게 연승하는 게 말이나 돼?”

“마치 그래선 안 된다는 듯 말하는구나.”

쥬다스는 테이블을 구르던 주사위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차피 도박은 확률 게임이질 않나. 희박하긴 하지만 서른 판을 내리 이기는 것도 내 운이라 할 수 있겠지.”

“웃기지마! 그게 운이라면 신의 사랑이라도 받는다는 거냐?”

“글쎄.”

‘그 비슷한 거라면 받고 있지.’

그는 주변을 감싼 자연의 가호를 느끼며 속으로만 답했다.

사실 모든 게임을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정령왕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박장에선 마법을 비롯한 이능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었으나 넷이나 되는 정령왕들의 힘은 사람이 기능적으로 제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때문에 그를 상대한 직원들은 이유도 모른 채 패배의 쓴잔을 연거푸 들이켜야 했다.

그 곁에 서 있던 가야가 피식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이봐, 판을 보아하니 내 주인이 적어도 너보단 사랑받는 모양인데?”

구경꾼들 사이에서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사실 도박장에서 돈을 딴 사람보다는 잃은 자가 훨씬 많았다. 그들이 보기에 도박장 직원이 속절없이 당하는 꼴은 꽤나 속 시원한 광경이었다.

노골적인 비웃음에 직원의 낯빛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분명 무슨 수작을 부린 게 틀림없어. 이 사기꾼 자식!”

“명확한 근거도 없이 감정적으로 손가락질부터 하다니. 추하구나.”

해가 지고 있는 어둑해진 창밖을 흘낏 내다본 쥬다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만 가 보도록 하겠다.”

“뭐?”

열심히 승패 조작에 대해 항의하던 직원은 뜬금없이 자리를 떠난다는 말에 벼락 맞은 듯 쩌적 굳어버렸다.

“아, 그리고 내기.”

이대로 지나갈 줄 알고 지켜보던 다섯 불량배는 내기란 말에 뜨끔하여 시선을 피했다.

“시시하기 짝이 없더구나.”

“그…….”

“벌금은 필요 없어.”

그들은 그나마 주머니를 지켰다는 생각에 반색했다.

쥬다스가 그들을 지나쳐 문을 향해 걸어가는 걸 보고만 있던 직원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손뼉을 쳤다.

“어딜 가시려고?”

구경꾼을 비집고 나타난 떡대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도박장 보안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배치된 전투 요원들이었다. 척 보기에도 주먹깨나 쓸 것 같아 보이는 덩치들이 나타나자 웅성거리던 다른 손님들도 조용해졌다.

쥐죽은 듯 고요해진 틈 사이에서 쥬다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공연.”

“?”

“보러가기로 선약한 공연이 있어서.”

거기까지 듣고 나서야 직원은 그가 자신이 한 말에 친절히 대답해 주고 있단 사실을 깨달았다.

허 하고 어처구니없는 한숨이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그래서 지금 따고 배짱을 하시겠다? 그건 예의가 아니지.”

“이런 곳에서 지킬 예의도 있더냐?”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목소리에 더 약이 오른 직원이 손을 휙 들어 올렸다.

그러자 주변을 에워싼 주먹꾼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와씨, 깜짝이야!”

가까스로 주먹을 피한 바이칼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투덜거렸다.

그러나 마법을 시전 할 새도 없이 달려드는 주먹꾼들 앞에서 마법사는 그야말로 쥐약이었다.

움츠러든 바이칼 대신 가야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주먹을 휘두르는 덩치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발길질을 했다. 가벼운 슬리퍼를 신은 가야의 킥에 맞은 상대는 박 터지는 소리와 함께 날아가 바닥을 뒹굴었다.

발치에 쓰러져 신음하는 부하를 내려다본 직원이 인상을 찡그리곤 엄포를 놓았다.

“무슨 꼼수를 부려 사기를 쳤는지는 몰라도 먹은 건 다시 다 토해내야겠어.”

결국 돈이 문제였다.

도박장 입장에선 이렇게 잃고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때려 눕혀서라도 잃은 건 되찾아야만 했다.

그러나 정작 쥬다스 일행이 순순히 당하지 않았기에 도박장 내부에선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와장창

소란에 휩쓸려 테이블이 엎어지면서 게임판이며 술병이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그러자 흥분한 덩치 하나가 깨진 술병을 들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유리조각이 채 쥬다스에게 닿기도 전에 그는 뜬눈으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커…… 헉.”

뜨거운 피가 미더덕 터지듯 훅 뿜어져 나왔다.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들고 휘둘러 오던 사내를 단칼에 베어버린 에단이 피에 젖은 검을 회수했다.

예기치 못하게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다른 손님들 사이에서 비명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피를 본 주먹꾼들이 움찔 자리에 멈춰 섰다.

“하, 이 미친놈들. 사람을 죽여?”

이곳은 큰돈이 오가는 고급 도박장이었다.

아무리 불법 시설을 운영하고 있어도 대놓고 사람을 죽이진 않았다. 기껏해야 주먹으로 협박하고 밖으로 쫓아내는 정도였다.

왜냐하면 손님 중에는 주로 귀족이 많았으며, 도박장에 종사하는 직원 중에도 귀족이 다수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상호 간 살인사건이 발생해 봐야 좋을 것 하나 없었다.

“시, 시, 신고를.”

“신고라면 미리 해두었다.”

단호하게 돌아온 대답에 덜덜 떨던 구경꾼이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쥬다스는 쓰러진 시신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법으로 금한 향락과 잃는 것이 당연한 게임, 그리고 당연하게 이어지는 폭력.”

듣는 모두가 흠칫할 정도로 서늘한 목소리였다.

“이런 것이 나라의 음지에서 성행하고 있음을 잘 알았다.”

문이 열리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갑주를 착용한 기사들이 들어왔다. 일반 경비대가 아닌 황실 기사단이었다.

기사들은 일제히 쥬다스를 향해 허리를 숙여 경의를 표했다.

이쯤에서 도박장 직원들은 그가 평범한 귀족 자제가 아님을 알아차렸다.

“당신은…….”

신음처럼 흘러나오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쥬다스는 방 안에서 떠났다.

============================ 작품 후기 ============================

* By. 공든탑

요즘 모기가 정말 기승을 부리는군요 ㅠㅠ 팔다리 발바닥(?)할 것 없이 온통 모기에 물렸는데, 문제는 물린 곳이 벌겋게 달아오르다가 툭 터져서 푹 파이는 기괴한 증상을 보인다는.....;;; 으아아 징그러워요. ㅠ.ㅠ 내몸이지만 징그럽다...!(바들바들)

다들 모기 조심하셔요.ㅠㅠㅠㅠ

그... 그럼 즐거운 하루 보내셨길 바랍니다.ㅎ

다음 편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늘 함께 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