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5 [ 외전 1 : 인형의 꿈 ] =========================================================================
이그레트 외전 5화
외전 1 : 인형의 꿈
사건을 정리하자면 이러했다.
인형사 프시케가 인형 제작에 사용한 도구는 사령석. 즉 사령의 원념과 저주가 깃든 돌이다. 그 돌을 사용해서 움직이는 인형을 만들어냈고 순식간에 인기를 얻어 퍼져 나간 사령 인형들은 실은 사람의 생기를 빼앗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독한 살인 도구였다.
쥬다스 일행이 프시케를 잡아다 사령석이 들어 있는 인형을 모두 수거함으로서 이 일은 다행히 크게 번지지 않고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하필, 당시 범인을 잡던 상황에서 크리스티나가 그 사령 인형을 하나 안고 있었다는 게 문제였다.
천막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난리 통에서 그녀는 천막을 빠져나오다 그만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그 충격으로 인형 안의 사령석이 깨지면서 그 안에 깃든 힘이 풀려 나왔다.
사령석에 깃들어 있던 저주는 순식간에 그녀를 사로잡았고,
그리고―
“……말도 안 돼.”
크리스티나는 넋이 나가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졌다. 자그마한 손가락이 뽀얀 볼을 훑었다. 인형 특유의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기껏해야 세 살 아이 정도 크기의 얼라이브 돌.
사람처럼 체온도 느껴지고, 심장도 뛰었지만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었다.
“어……. 그러니까, 사령의 저주로 크리스티나 님께서 인형 속에 갇히셨다는 거죠?”
바이칼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들은 지금 황궁에 돌아온 상태였다. 지금 크리스티나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쥬다스와 에단, 바이칼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일부러 알리지 않으셨겠지.’
델피아 가문의 공녀가 저주에 걸려 인형이 되어버렸다는 이야기는 그녀의 명예에 아주 치명적인 소문이 될 터였다. 때문에 그녀는 지금 잠시 황태자의 명령을 수행하러 자리를 비운 상태로 처리되었다.
쥬다스는 즉시 정령들에게 이 저주를 풀 수 있겠느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하나같이 암담했다.
「우우, 모르겠어. 사령을 몰아내는 일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이건 그냥 인형 속에 갇힌 거잖아?」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요. 완전 신기하다요!」
「으응, 그러게요. 사람이 인형 속에 갇히다니. 루니는 들어봤나요?」
「……모른다.」
자연계 사대 정령왕까지 고개를 내젓는 문제다 보니 해결의 실마리가 도저히 보이지 않았다. 크리스티나는 여전히 충격받아 멍하니 넋을 놓은 채였다.
침묵이 내려앉은 방안에서 플루비만 발라당 뒤집어져 삑삑 울어댔다.
“넌 지금 상황에 밥 달라는 말이 나오냐?”
“삐이!”
바이칼이 한심스럽게 내려다보았지만 플루비는 밥이란 단어에 주홍색 눈망울을 초롱초롱 빛냈다.
“전하. 엘리시움에서 정화를 받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에단의 제안에도 쥬다스는 그저 턱을 짚은 채 침묵을 지켰다.
‘성녀 위그드라실이라면 저주를 풀어낼 방법을 알지도 모르지.’
저주에는 신성력이 상극이다. 쥬다스도 물론 그에 대해서 생각해 보긴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크리스티나에게 있었다.
“크리스티나.”
쥬다스는 책상 위에 다소곳이 앉혀놓았던 크리스티나에게 손을 뻗었다. 따뜻한 온기가 머리에 닿자 크리스티나가 놀라 눈을 깜빡였다.
“이리 건드리면 감촉이 느껴지느냐?”
“……예.”
“감각이 느껴진다면, 고통도 느낄 수 있겠구나.”
인형으로 변했지만 그 색깔만큼은 그대로 가져간 탓에 크리스티나의 머리카락과 눈은 바다의 색깔을 품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파도치듯 떨렸다.
그 안에 깃든 두려움을 알아차린 쥬다스가 쓰게 웃었다.
“지금 이 인형이 망가지면 본래 크리스티나의 몸도 망가질 수 있다는 뜻이란다.”
“그 말씀은…….”
“포탈을 타는 건 위험해.”
포탈은 인체에도 상당한 무리를 준다. 미성년자의 경우 포탈 하루 이용 횟수가 1회로 제한될 정도였다.
교황청 엘리시움으로 가려면 무조건 포탈을 타야 하는데 인형이 되는 저주를 받은 크리스티나가 포탈을 사용하는 건 자칫 큰 위험이 따를 수 있었다. 성녀는 교황청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되니 반대로 성녀를 황궁으로 부를 수도 없다.
“우선은 이곳으로 사제를 보내달라고 하마.”
“알겠습니다.”
크리스티나는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공손히 그 뜻에 따랐다. 갑자기 몸이 인형으로 변해 겁을 먹었으면서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그녀를 가만 내려다본 쥬다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걱정하진 말거라. 이건 그리 심각한 저주는 아닐 게야.”
“엇. 그렇습니까?”
“제물을 바쳐 사령과 특별한 계약이 오간 게 아니지 않느냐? 아마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저주가 자연히 해제될 것도 같구나.”
설명을 듣자 굳어 있던 표정들이 조금이나마 풀어졌다.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유니만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그러게. 보통은 제물 없이 저주가 발동되진 않을 텐데, 이상하네?」
쥬다스는 유니의 의문을 들으며 크리스티나를 내려다보았다. 인형으로 변했지만 특유의 도도한 분위기는 여전했다.
다른 여성들 같았으면 진즉에 공포에 떨며 눈물을 쏟았을 상황이었지만 크리스티나는 그저 기운 없이 책상 위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인형 사이즈에 맞게 제작된 검은색 프릴드레스가 발목을 덮고 살랑거렸다.
똑똑.
그때 노크 소리에 이어 황태자의 시종 로한이 문밖에서 고했다.
“전하. 시간이 많이 늦었사옵니다.”
“아.”
미처 시간이 가는 데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던 쥬다스가 창밖을 넌지시 내다보았다. 어느 틈에 해가 진 것인지 벌써 어둑어둑한 어둠이 내려앉은 밤이었다.
“그럼 저흰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에단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를 따라 일어선 바이칼이 자연스럽게 크리스티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면, 크리스티나 님은 제가 모시고.”
찰싹.
본래대로라면 매섭게 울려 퍼져야 할 소리지만 안타깝게도 인형의 힘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자태만큼은 도도하게 바이칼의 손을 쳐 낸 크리스티나가 턱을 치켜들고 말했다.
“내 몸에 함부로 손대지 마.”
“……저기, 크리스티나 님? 누가 들으면 오해하지 말입니다?”
인형에게 손등을 얻어맞은 바이칼이 황당한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이내 한숨과 함께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휴. 정말 다른 뜻 없습니다. 지금 크리스티나 님이 인형…… 크흠. 뭐, 상황이 그러신데 손대지 않고 어떻게 모셔갑니까?”
“…….”
크리스티나는 고집스럽게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녀도 알고야 있었다. 조그마한 인형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혼자 아장아장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간 사령 인형 취급을 받고 당장 폐기처리 될 게 뻔했다.
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손이 닿는 건 싫어.’
우울하게 고개를 푹 숙인 크리스티나를 책상 위에 올려둔 채 에단과 바이칼이 시선을 교환했다. 아무리 인형으로 변했다지만 크리스티나의 의사를 묵살하고 막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대로는 그녀를 데리고 나갈 수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두 기사 대신 따스한 손길이 크리스티나를 안아 들었다.
“……?!”
“이 아이는 내가 데리고 있으마.”
느닷없이 쥬다스의 품에 안기게 된 크리스티나가 돌처럼 굳었다. 인형이 되어버린 그녀는 작은 사이즈라 아기처럼 간단히 안아 들 수 있었다.
“몸이 상하지 않도록 각별한 보호가 필요한 시점이니. 지금으로선 내 곁에 두는 게 가장 안전할 게다.”
빙긋이 웃으며 그리 말하는 쥬다스를 보며 에단과 바이칼도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크리스티나는 미혼의 여성이다. 아무리 황태자에게 충성을 맹세한 델피아의 딸이라 해도, 미혼남녀를 밤새 한방에 둘 수는 없다. 비록 몸은 인형이 되었어도 법도에 분명히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오나 전하.”
에단이 표정을 굳히며 이의를 제기하려던 찰나, 바이칼이 잽싸게 그 말을 가로챘다.
“예! 전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
그러더니 에단의 팔에 팔짱을 끼고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하도 황당하다 보니 기가 차서 저항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에단이 ‘지금 뭐하자는 건가’ 싶은 표정으로 바이칼을 응시하자, 제멋대로 일을 벌인 부관은 복화술을 하듯 와하하 웃으며 낮은 어조로 말했다.
“이보셔, 단장.”
“대체 무슨 짓을…….”
“낄끼빠빠. 모릅니까?”
문 앞에서 대기하던 시종 로한은 팔짱을 낀 채 쑥덕거리며 나오는 두 기사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지나갔다.
에단의 눈앞에서 문이 쿵 닫혔다.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닫힌 방문만 바라보고 있는 에단의 팔을 놓아준 바이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라. 크으, 참 좋지 않습니까? 요즘 나라에 유행하는 말이랍니다.”
“……하여, 지금이 빠질 타이밍이다?”
“아무렴요. 두 분 밀어드리기로 했잖아요.”
에단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무슨 대단한 얘기를 하려고 과감히 행동했나 싶었더니 역시나 쓰잘머리 없는 목적이었다.
그는 수하가 치는 사고에 번번이 휘말려 들어가는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 여겼다.
“훗, 이럴 때 밀어드리지 언제 밀어드립니까?”
자신이 상관이 시달리는 편두통의 원인이 되는 줄도 모르고 바이칼은 코를 슥 훔치며 뿌듯해했다.
* * *
한편, 쥬다스의 방에 들어가 그의 안위를 살피던 로한은 못 보던 인형을 품에 안고 있는 걸 보고 잠시 당황했다.
‘전하께오서 사령 인형을 팔던 상인들을 소탕하셨다더니.’
성년식을 치르기 전에도 이미 어른스럽게 굴며 인형 같은 장난감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주인이었기에 로한의 결론은 한 가지로 귀결되었다.
‘……연구용으로 하나 들고 오셨나 보다.’
종종 이런 식으로 별나게 행동하는 걸 많이 봐왔던 로한은 자연스럽게 인형에서 시선을 떼며 입을 열었다.
“전하, 식사는…….”
“되었다. 신경 쓰지 말거라.”
쥬다스는 간단히 손을 내저었다. 저주에 걸린 친우가 신경 쓰여 도저히 느긋하게 저녁 식사를 즐길 마음이 아니었다. 평소보다 굳어 있는 안색을 귀신같이 알아차린 로한이 조심스럽게 상태를 물었다.
“혹 어디 편찮으시옵니까?”
“으음, 그런 게 아니야. 걱정해 주어 고맙구나.”
부드럽게 웃는 낯은 늘 같았다. 로한은 주인이 숨기고자 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았다. 시종은 공손히 허리 숙여 인사를 올린 후 물러섰다.
“로한.”
“예, 전하.”
충성스러운 시종은 갑작스런 부름에도 곧장 고개를 숙이며 돌아섰다. 쥬다스가 미안한 얼굴로 명을 내렸다.
“황실도서관에서 ‘저주’에 관한 연구 서적을 가져다줄 수 있겠느냐?”
“저주…… 말씀이시옵니까?”
“그래. 기왕이면 음, 그렇지. 인형이나 물건에 관련된 전이저주에 대해서라면 좋겠어.”
전이저주라 함인즉 물건을 만져서 발동하는 저주다. 그가 이번에 관여한 사령 인형도 만지는 자의 생기를 빨아들여 죽이는 살인 도구였던 만큼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는 명령은 아니었다.
로한은 그러하겠다고 답한 후 방을 나갔다.
시종이 나가자 방안은 고요로 가득 찼다. 쥬다스의 곁에는 늘 정령들이 함께했지만 실체화하지 않아 크리스티나에겐 보이지 않았다.
“후.”
쥬다스는 인형을 안아 든 채 짤막하게 한숨을 뱉었다. 식사까지 거르고 난 뒤라 크리스티나가 보기엔 그 얼굴이 몹시 기운 없어 보였다.
‘쥬다스 님답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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