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47 [ 외전 1 : 인형의 꿈 ] =========================================================================
이그레트 외전 7화
외전 1 : 인형의 꿈
그런 크리스티나의 표정을 본 쥬다스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으음, 글쎄다. 나는 사람을 관리하는 위치에선 훌륭하다는 평을 들을지도 모르겠으나.”
감히 평가한 꼴이 되어버린 크리스티나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여인의 눈으로 볼 때엔 최악이지 않겠느냐.”
“……!”
느닷없이 정곡을 치고 들어온 발언에 크리스티나는 무어라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영락없이 귀여운 인형이라 쥬다스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책상 앞에 털썩 쭈그려 앉았다. 그 상태로 한 팔에 머리를 기대 인형이 된 크리스티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어째서 그런 말씀을…….”
“나는 누군가에게 온전히 마음을 줄 수 없는 사람이다.”
두 번째로 말문이 막혔다. 입을 다문 크리스티나를 가만 응시하던 쥬다스가 다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누군가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는 건.”
그는 손을 뻗어 크리스티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 사람을 소유하고 싶다는 욕심으로 이어진단다.”
욕심.
그 맹목적인 소유욕이 얼마나 뜨겁고 강렬하게 마음을 뒤흔드는지는 누구보다 크리스티나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크리스티나는 이어지는 그의 말을 끊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욕심을 품는 게 나라면.”
맑은 금색 눈동자를 감았다 뜬 쥬다스가 곧 한숨처럼 웃었다.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자연을 움직이는 힘이 그 손안에 달려 있다. 바라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가질 수 있고 원한다면 평생토록 가두어놓고 소유할 수도 있다.
벗어나고 싶어도 불가능하며, 그가 바라지 않는 이상 죽음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그 실례로, 현재 사령술사 할더가 딱 그런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이 지옥에서 살아.’
쥬다스는 할더에게 삶이란 벌을 내렸다.
할더는 쥬다스가 사망하거나 직접 구속을 풀어주기 전까지는 안식을 맞이할 수 없을 것이다. 끊임없이 사령의 잔재를 찾아 헤매며 주인에게 물어다 바치는 사냥개로서 존재할 뿐.
쥬다스는 만일 자신이 진정을 다해 집착하는 존재가 생긴다면 이보다 더한 지옥이 펼쳐지리라 예측했다. 세상에서 그의 의지를 거스를 수 있는 이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으려 노력해 왔다.
이번에 크리스티나에게 약혼녀라는 역할을 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다소 잔인하더라도 그녀가 직접 느껴보길 바랐다. 여인으로서 자신의 곁에 있는 게 어떤 의미라는걸.
그리고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사이에 크리스티나는 저주를 받아 인형이 되고 말았다.
‘온 마음을 다했다면 곁을 지켜주었겠지.’
하지만 크리스티나는 그에게 있어 최우선사항이 될 수 없다. 그가 그렇게 정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란다. 내 곁에 있겠다는 것은.”
쥬다스는 말을 마침과 동시에 크리스티나의 머리에서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책상을 짚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대화를 더 나누기엔 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로서는 이 기회에 크리스티나가 더 상처받지 않고 제 마음을 추스르길 바랄 뿐이었다.
그리 생각하고 돌아서려던 찰나였다.
“……원한다면요?”
“응?”
꼬옥.
인형의 자그마한 손이 그의 손가락을 놓칠 새라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었다. 바로 붙잡힐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쥬다스가 당황하여 크리스티나를 내려다보았다.
“제가 원한다면 어떡하실 건가요?”
“…….”
“제가.”
인형이기에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푸른 눈동자만큼은 파도치는 감정을 싣고 그를 향하고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조금 전 차갑게 선을 그은 쥬다스를 바라보며 가슴으로 울었다.
“당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 않다면요?”
한번 터진 감정의 둑을 따라 쌓아왔던 속마음이 날것 그대로 흘러나왔다.
“구속하셔도 좋아요. 영원히.”
크리스티나는 그를 당당히 바라보며 아프게 웃었다.
“제가 전하를 연모하고 있으니까요.”
아주 오래전, 철없는 소녀였던 시절부터.
* * *
다음 날.
크리스티나가 인형이 되어버린 비상사태 때문에 아침부터 쥬다스의 방을 찾은 에단과 바이칼은 말없이 시선을 교환했다.
‘분위기 겁나 살벌하네요.’
‘……두 분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군.’
눈짓으로만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이 다시 쥬다스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시종을 시켜 교황청에 서신을 전달한 쥬다스는 아무 말 없이 책에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책 제목은 <저주Ⅰ : 매개체를 활용한 전이저주에 대하여>. 인형이 된 크리스티나를 원래대로 되돌릴 실마리를 찾기 위해 도서관에서 찾아온 서적 중 한 권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지금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굳이 책에 시선을 고정할 필요는 없는 일이었기에 수하들은 대충 그의 불편한 심기를 눈치챌 수 있었다.
크리스티나는 책상 위 한쪽 구석에서 무릎을 끌어안은 채 인형처럼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에단과 바이칼이 보기엔 어딘지 화가 난 것도 같고 초조해 보이기도 했다.
물론 초조하긴 했지만 화가 난 건 절대로 아니었다. 겉으로 찬바람이 쌩쌩 날리는 것 같아 보이는 크리스티나는 지금 속으로 어마어마한 부끄러움과 허탈함, 후회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맙소사! 내가 미쳤나 봐. 그렇게 고백하려던 게 아닌데…….’
그녀는 시무룩하게 드레스에 달린 프릴을 만지작거렸다. 인형 옷 주제에 쓸데없이 퀄리티가 높아 프릴 하나하나가 몹시 부드러웠다. 우울함의 끝을 달리고 있는 크리스티나의 손이 프릴을 마구 헤집었다.
움찔.
그녀가 부스럭대는 소리에 이번엔 책장을 넘기던 쥬다스의 손이 반응했다. 심경이 복잡한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저주에 대한 서적을 읽고는 있지만 글자가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아 밤새 시간을 들여도 무용지물이었다.
이쯤에서 에단과 바이칼은 다시 눈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거 어쩌죠? 회심의 밀어주기 계획, 완전히 폭삭 망했나 본데요.’
‘내가 그래서 사고 치지 말라 하지 않았나.’
쯧쯧, 에단이 혀 차는 소리가 눈만 마주 봐도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찔끔한 바이칼은 볼을 긁적이며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수습을 위해 입을 열었다.
“크흠, 전하.”
크리스티나가 프릴을 뜯다 말고 반짝 고개를 들었지만 정작 쥬다스에게선 침묵이 흘렀다. 설마 묻힐 줄은 몰랐던 바이칼이 당황하여 재차 그를 불렀다.
“전하?”
“……음?”
그제야 쥬다스가 책에서 시선을 떼었다. 상념에 잠겨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그는 미안한 얼굴로 책을 덮었다.
“아, 불렀…….”
쥬다스는 그 순간 따끔한 고통에 잠시 말을 멈추었다. 책을 덮다가 그만 종이에 손을 베인 것이다. 전혀 그답지 않은 실수였기에 눈치만 살피던 정령들이 우르르 난리가 났다.
「뭐야, 뭐야. 다쳤어?」
「끄앙, 피난다요!」
고작 손가락을 베여 실낱같은 핏물이 비쳤을 뿐이지만 네 정령은 모두 그가 큰 상처를 입은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이그레트. 괜찮아요? 많이 아파요? 응?」
「그 책이 문제인가? 당장 없애 버리…….」
“아니, 아니. 괜찮아. 그냥 조금 베였을 뿐이야.”
일제히 실체화해서 모습을 드러낸 정령들을 보며 수하들은 나설 타이밍을 놓치고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전하, 작은 상처라도 방치하시면 곤란합니다. 당장 성수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냥 연고로 충분하단다. 에단.”
쥬다스는 정령들 못지않게 열 띈 충정을 보이는 에단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곤 서랍에서 상처에 잘 듣는 연고를 꺼내 발랐다. 사실 약을 바르기도 어정쩡한 작은 상처였지만 종이에 손가락 하나 베였다고 성수씩이나 대령하는 건 사양이었다.
때아닌 소란이 일어나 시끌벅적해진 상황에서 이번엔 시종이 방문을 두들겼다.
“전하, 아침 식사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아침은 생각이 없구나. 물리도록 하여라.”
“송구하오나, 전하. 전일 저녁도 끼니를 거르셨습니다. 연이은 공복은 좋지 않사옵니다.”
시종 로한은 쉽사리 물러서지 않았다. 주인의 심사가 어지러운 때엔 한 끼 정도 굶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연속으로 식사 거부를 할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시종은 그 한 몸 바쳐 황태자의 건강을 보필할 의무와 그에 대한 책임의식이 충만했다.
“어제 저녁을 드시지 아니하셨습니까?”
문밖에서 이어지는 로한의 호소를 들은 에단이 확인 차 다시 물었다. 그리고 바이칼이 의아한 눈으로 바통을 이어받았다.
“아니, 왜요? 속이 안 좋으십니까?”
쥬다스는 대답 대신 그저 책상 앞에 앉아 턱을 괴었다. 오늘따라 주변 이들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전하.”
뭐라 하면 좋을까 말을 고르던 찰나 책상 위에서 조그만 음성이 들려왔다. 시선을 내리자 곧장 푸른 눈동자와 마주쳤다.
어느샌가 곁으로 총총 다가온 크리스티나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찌 그러십니까? 혹 정말 건강에 이상이라도.”
“…….”
과보호도 이런 과보호가 없었다. 저주에 걸린 채로도 식사 여부에 일희일비하는 크리스티나를 보니 쥬다스는 더더욱 목구멍이 껄끄러워졌다.
그는 헛기침과 함께 굳게 닫혀 있던 입술을 떼었다.
“흠, 그게 아니라.”
“아니시라면.”
“크리스티나야, 네가 이런 큰일을 당하였는데 어찌 그리 두고 홀로 편안히 식사를 하겠느냐.”
“어? 그러니까 전하.”
크리스티나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바이칼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크리스티나 님이 걱정되셔서 못 드시겠다고요?”
쥬다스는 고개를 저으려다 멈칫했다.
‘응? 그렇게 되나?’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말이 그 말인 것 같기도 하였다.
방 안에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결국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쥬다스는 친우들의 뜻에 따라 아침을 간단히 챙겼다.
그 후, 쥬다스는 오후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저주에 관한 연구 서적을 탐색하는 데에 여력을 집중했다. 그와 함께 둘러앉아 책을 뒤지다 말고 제일 먼저 집중력이 바닥 나버린 건 바이칼이었다.
아침부터 책을 살피기 시작했는데 벌써 노을이 지기 시작한 창밖을 보며 바이칼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 사람 셋에 인형 하나와 와이번 한 마리가 모여 있는 방 안은 종이 넘기는 소리 외엔 지독하게 고요했다.
낮에는 혼자서나마 까불거리던 플루비조차 저녁때가 되자 제 꼬리를 베고 잠들어 있었다.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보던 바이칼이 마침 들고 있던 책으로 뻐근한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입을 열었다.
“교황청에서는 아직 답변이 없습니까?”
“지루한 모양이로구나.”
쥬다스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부드럽게 대꾸했다. 그러자 바이칼은 찔끔하여 말을 더듬었다.
“억. 아, 아뇨. 꼭 그래서는 아니고. 벌써 하루가 지났는데 딱히 이렇다 할 방안이 나오지 않으니 조급해져서 말이죠.”
둘러대긴 했으나 쥬다스의 말대로 지루함이 컸다. 저주에 걸린 친우가 걱정되는 마음과 별개로 책은 바이칼과 상극이었다.
“오늘 아침 편지를 보냈으니 기다리면 곧 답이 올 게다.”
쥬다스가 그리 일러주는 순간, 누군가 방문을 똑똑 두들겼다.
“형님, 세이지입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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