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프롤로그. (1/89)



〈 1화 〉프롤로그.
짙은 흙먼지가 자욱하게 낀 공사판.

후욱, 후욱.

그 난잡한 공간에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시멘트 포대를 등에 업은 채로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현성.


"어이, 오씨. 그만하고 여기 와서 밥 먹어!"


휴식 시간이 되자 후줄근한 차림의 펑퍼짐한 중년 남성이 현성을 불렀고. 현성은 힘들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대답을 잊지 않았다.

"괜찮아요, 먼저 드세요!"

"에헤이, 이 사람아. 그러다 죽어! 열심히 한다고 돈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이것만 하고 갈게요, 걱정마세요!"

에잉 쯧, 중년 남성은 현성의 거절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혀를 차며 자리를 떠났고. 현성은 포대를 옮기던 일을 계속 이어나갔다.

터벅.

터벅.

한 발자국,  발자국. 움직일  마다 온몸이 비명을 횡사했지만 현성은 아랑곳  하고 다리를 움직였다.


참는 것은 익숙하니까.

"읏챠!"


툭.

털썩.


현성은 끝내  무거운 포대를 산더미 처럼 쌓인 포대들 사이에 올려놓고 나서야 힘이 빠졌는지 주르륵 미끌어 넘어지 듯 땅바닥에 주저 앉았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먼지로 뒤덥힌 소매로 스윽 닦았다.


"어디보자... 날짜가 내일이던가?"


현성은 쉬면서도 기부하기로 정한 날짜를 되내었고. 동시에 주머니에서 통장을 꺼내 돈이 얼마나 모였는지 확인했다.

통장에 적힌 금액은 이백 만원 정도. 이것은 지난 한달간 현성이 내일 있을 기부를 위해 노가다 판과 잡다한 알바를 뛰며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이었다.

아마도 집에 현금으로 모아둔 돈까지 합치면 플러스 알파로 삼백은 될 터였다.

현성이 이런식으로 지난 5년간 매달 기부해온 금액은 족히 1억은 넘어갔다.

당연히 현성에게 남는 돈은 고작 방세를 내고 굶지 않을 정도였고. 남는 돈을 저축할 정도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런 현성의 집착에 가까운 기부 행위를 아는 사람들은 현성을 날개 없는 천사, 혹은 천성 호구라고 평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들 일하면서 하고 싶은  하고 저축할 때, 현성의 경우엔 일은  누구 보다도 악착 같이해서 많은 돈을 벌면서 번 돈의 대부분을 기부하는데 사용하니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마냥 좋게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기부도 여유가 되는 사람이 해야 기부지, 당장에 여유가 안 되는 이가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게 이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이었으니까


당연히 현성도 자신의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기부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 나가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십 년 전, 길거리를 떠돌며 구걸을 하던 자신에게 따스한 손을 내밀어 준 여성.


그 여성이 현성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었던  처럼.


현성 또한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미련하다 볼 수 있었지만, 그 손길로 인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을  있었다.

꼬르륵.


강하게 자기주장을 하는 소리.

"이챠. 슬슬 밥 좀 먹을까."


현성은 열심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몸을 일으켰고. 점심이 준비되어 있을 곳을 향해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찌익-


덜컥.


위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소리에 현성은 제자리에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 봤고.

현성이 반응할 새도 없이 어디선가 떨어진 철근이 눈앞까지 다가온 상태였다.

질끈, 현성은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콰앙.

철푸덕

아, 죽는구나.

라는 생각할 시간 조차 없이. 현성의 몸은 철근과 부딪혀 시뻘건 피를 내뿜었고. 주변으로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고기 덩어리들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




새까만 공간 속.

현성은 평소 감각대로 눈을 뜨고자 했다. 그러나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  적 없는 감각에 당황했다.


생각은 가능한데 몸이 움직여 지지 않는 느낌.

마치 신체가 없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 때.

"또 다시 안타깝게 죽음을 맞이한 귀인이 왔구만."

한 여성의 목소리가 현성에게 들려왔고. 현성은 주변을 둘러보고자 했다. 그러나 현성은 아무것도 볼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그저 주변이 짙은 검은색으로 꽉찬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누.. 누구십니까?!"


현성은 당황한 채로 목소리를 떨며 크게 외쳤다.

아, 목소리는 나오는 구나. 현성은 그 사실 하나만으로 큰 안도감을 느꼇다.


적어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으니까.


그러나 현성은 몰랐다. 자신이 철근에 덮쳐저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나는 이 세계의 신이자 그대와 같은 귀인을 맞이하는 존재."


신.

현성은 순간 목소리의 주인이 미친 사람이라 생각했다.

흔히 말하는 중2병 같은 것에 걸린 학생이 아닌가 하고. 말투도 말투지만 들려오는 목소리도 되게 미성숙하게 느껴졌기에 더 찰떡 같았다.


"그대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는가?"


죽음을 맞이할 준비라니, 현성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뭔가 알 수 없는 기묘한 감각에 괴리감을 느꼇다. 마치 무언가 중요한 사실을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

그 불쾌한 감각에 현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장난은 하는  아냐. 풀어줘 얼른."


현성은 이 모든 상황이 어린 아이의 장난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단순히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불안감.


급작스럽게 몰려드는 불안감에 현성은 식은땀이 나는 것만 같았다.


"그대는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 같군."


죽음.

죽음을 맞이할 준비라니.

이윽고 현성의 뇌리에 짧은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보통이라면 매달려 있지 않을 철근이 줄에 매달려 있는 장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져 버린 줄과 떨어지는 철근. 그때 마침 그 밑을 지나가고 있던 자신.

쾅.

그리고 처참한 광경.


아아, 죽어버렸구나.


현성은 그제서야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현성은 슬픈 감정보다는 아쉬운 감정이 앞섰다.


죽을 땐 죽더라도 기부는 하고 죽었어야 됐는데.

현성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고.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픈 감정을 느꼈다.

죽었다는 사실 보다 재회하지 못한 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낀다니, 현성은 자신 조차도 자신의 감정을  수 없었다.

어쩌면 삶에 미련이 없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대는 마지막까지도 그런 생각 뿐인가? 귀인은 귀인이군..."


마치 현성의 생각을 꿰뚫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 여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에 현성은 생각하던 것을 멈췄다.


"당신은 진짜 신입니까?"


단순한 질문, 만약 지금 들리는 목소리가 진짜 신이라면 왜 자신을 귀인이라 부르는지 물어볼 심산이었다.

"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어쩌면 나 조차도 모르는 초월적인 존재가 있을 수도 있고 말이야."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해괴망측한 대답. 현성은 그냥 목소리의 주인이 신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신 님께서는 어찌하여 저를 귀인이라 부릅니까? 그리고 귀인이란 무엇입니까?"

본래 생각대로 물어보고자 했던 것을 물었다. 신의 대답은 짧지 않은 시간에 이루어졌다.


"귀인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희생해온 존재, 그대는 그런 존재라네."

희생? 현성은 신의 말에 반감이 섞인 의문을 품었다.

자신이 한 것은 희생이 아니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타인에게 선행을 배푼 것일 뿐이지. 그것이 희생이라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말이 희생이라는 것이지. 그대가 배푼 사랑은 적지 않은 생명을 살렸다네. 괜히 오해하게 만들어 미안하네."

조금 전 한 생각까지 읽은 것인지 신은 현성에게 오해를 풀며 사죄를 해왔다.


신이라는 작자가 사과를 하는 것이 얼떨떨하긴 했지만. 현성은 화를 풀었다. 단순한 오해로 화를 낼만큼 불 같은 성질은 아니었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는 앞으로 어찌 되는 것입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현성은 자신이 앞으로 어찌될지 궁금해 했다. 만약 자신이 정말로 귀인이라면 천국 같은 곳에 가게 되는게 아닐까, 작지 않은 기대와 호기심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신이라는 작자로 부터 돌아온 대답은 예상 외의 것이었다.

"그대는 다시 한 번 누군가를 위해 인생을 바칠 수 있는가?"

인생을 바친다.

생전에  년간 자신이 해온 행동들을 본다면 틀리지 않은 표현이었다. 20대가 되자 마자 모든것을 포기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며 번 돈의 대부분을 기부하는데 썼으니 말이다.

이것이 인생을 바친게 아니라면 뭐란 말인가.


현성은 어느정도 납득했다.


그리고 신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된다면 그럴겁니다."


한치의 망설임이나 가식 따윈 없는 진심.

현성의 마음은 굳건했다. 선택의 이유는 단순했다. 남을 돕는 삶은 힘들긴 하지만 보람 차다는 것, 만약 또 다시 누군가를 도울 기회가 온다면 기꺼이 도울 것이다. 현성은 언제나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아왔기에 신의 질문은 그리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

"호오, 그대는 귀인 중에서도 고결한 귀인이구만. 그대의 결정에 무궁한 존경을 표하네."


신에게 존경을 받는다는 것, 현성은 의식하지는 않았지만 가슴이 웅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나 고아원의 원장님 혹은 이따금식 자신을 취재하러  기자들로부터 자주 듣기는 했으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무려 신이었다.


인간이 그렇게 종교란 이름으로 떠받들고 기도하는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에게 존경을 표했다. 이것은 단순하게 받아들이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되는 것입니까?"


현성은 빠르게 뛰는 심장을 진정 시키며 어디 있을지 모를 신을 향해 물었다.

"그대에게 힘을 줄테니 위험에 빠진 한 세계를 구원해주게."


"...네?"


얼이 빠진 소리.


현성은 신의 대답을 듣는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게 아닌가 생각했다.

힘을 준다는 것은 무슨 말이고. 위험에 빠진 세계를 구원해달라는 것은 무슨 말인가.

현성은 더 자세한 사정을 듣고자 했다.

그러나 현성 보다도 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 슬슬 시간이  되가는구만. 미안하네,  이상은 붙잡아두는  아무리 나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 남은 이야기는 그쪽 세계의 신에게 듣게나."


...설마 이대로 끝? 현성은 어리둥절했다. 신이라는 작자가 제대로 설명조차 해주지 않고 끝내겠다고 선언하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현성은 점점 의식이 흐릿해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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