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용사인데 왜 맞는건가요? (2/89)



〈 2화 〉용사인데 왜 맞는건가요?

새하얀 공간.

현성은 눈을 떳다. 이번에는 다행히도 검은 공간에서 느꼇던 감각이 아닌, 제대로 된 신체가 움직여지는 감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을 본능적으로 둘러봤다.

보이는 것은 온통 새하얀 것 뿐인 줄 알았으나, 중간에  소파 같은 것이 뒷부분을 보인 채로 떡하니 놓여져 있었다.


저게 도대체  있는걸까.

현성은 의문과 호기심을 동시에 품으며 소파를 향해 몸을 움직였고. 한 여성이 그곳에 등을 보인 채로 잠에 들어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걸 깨워야 될까? 현성은 잠깐 고민하다가 신의 말을 떠올렸다.


'남은 이야기는 그쪽 세계의 신에게 듣게나'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합리적인 생각을 하자면 지금 눈앞에서 자고 있는 여성이 이쪽 세계의 신일 듯 했다. 설마 이상한 곳으로 보내지는 않았을테니까.


이윽고 현성은 여성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기 시작했다.

"으음..."

그러나 여성은 깊게 잠에 들었는지 앓는 소리를  분, 잠에서 깨어나지는 않았다.

조금 더 격렬하게 깨워야 되는걸까.

현성이 손에 힘을 더 주려고 마음 먹은 순간이었다.

"그만.... 나 일어났으니까 손  얼른."

까칠한 목소리.

현성은 그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에서 손을 땠다.

현성이 살던 곳은 다른 곳도 아니고 대한민국. 성인지 감수성이 풍부한 곳, 자칫하면 성희롱으로 고소 당하는 나라였다.

현성 또한 예전에 한 번 술취한 여성을 돕다가 크게 대여본 적이 있었기에 아직까지도 그때의 기억이 좋지 않게 남아있는 상태였다.


"저기.. 그, 신 맞으신가요?"

초단위로 눈치를 보며 물었고. 여성은 어느샌가 몸을 일으킨 채로 눈가를 비비고 있었다.


"맞기는 한데.. 너는 누구야?"

아무래도 이쪽은 자신을 모르는 눈치. 현성은 우선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기로 했다.


"다른 세계의 신.."


"아, 이해했어. 그만 말해."

또 다시 까칠한 말투. 여성은 이러한 상황이 익숙한 듯 했다. 자신 말고도 이런 식으로 넘어온 사람이 있는걸까?


어쩌면 귀인으로 인정받은 이들에게 제안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번만 설명할텐까 잘들어."


귀찮다는 듯이 비몽사몽한 채로 눈을 반쯤 뜬 상태로 건성건성 말하는 여성의 모습에 현성은 생각하던 것도 멈추고 바짝 귀를 기울였다.

딱 봐도 정말로  번 밖에 말해주지 않을  같은 예감이 들어서였다.

"이 세계는 온갖 종족이 모여 사는 세계. 대충 예를 들자면 악마도 있고 엘프도 있고 오크도 있고 인간도 있고 이것저것 다 있으니까 잘 알아두라고."


악마, 엘프, 오크. 말하는걸로 보아 그것 말고도 다른 종족도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악마는 들어본적은 있었지만 엘프나 오크 같은 것이 무엇인지 현성은 알지 못했다. 그러나 물어볼 염두 조차 나지 않았기에 직접 경험을 통해 알아내는걸로 정했다.

"그리고 너는 중간계로 내려가는 순간 부터 용사의 신분을 얻게될거야. 알겠어?"


용사.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어감부터가 뭔가 중요하다는 것만은 알것 같았다.


"질문있으면 지금 말해."


와. 그래도 질문을 받아주기는 하는구나.

현성은 그래도 책임감 같은게 있다는 사실에 조금이나마 감동을 먹었다.

"대신 딱 하나만 답해줄테니까 신중하게 질문하는걸로. 참고로 이상한거 물어보면 죽여버릴테니까 각오하고."

취소한다. 지금 눈앞에 있는 신이라는 작자는 책임감 따위는 없는 그냥 양아치 같은 성정의 소유자임이 확실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자신은 을이고 눈앞의 신은 갑인게 누가봐도 분명히 보이는데. 현성은 그저 누군가를 다시 도울  있다는 사실을 위안삼았다.

"제가 용사가 된 이유가 뭔가요?"

현성은 나지막이 궁금해하던 것을 물었다. 그러자 여성은 기가차다는 듯이 '하' 소리를 내며 한쪽 입꼬리만 스윽 올리며 비웃듯이 했다. 그러나 현성은 무념무상으로 일관했다. 괜히 심기를 건들여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뭐긴 뭐야 너 같이 평생 호구처럼 살다가 죽은 놈들, 괜히 정의심을 불태우게해서 용사로 재활용해서 다시 써먹겠다는 심보지."

괴랄하게 쏟아지는 말들. 현성은 그냥 눈앞의 신은 입이 좀 험한  뿐이라 생각하며, 여성의 말을 본래 있던 새계의 신이했던 말을 재결합하여 순하게 재해석했다.


그러니까 평생을 희생하며 살아온 사람에게 용사의 자격을 준다는 것 아닌가.

말이 많이 뒤바낀듯 했지만 곱게 받아들인다고 해서 나쁠 것 없었기에 현성은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받아들였다.


"됐고. 마지막으로 알아야 될 시간이야."

알아야 될 시간.

도대체 무슨 알아야 된다는 말인가, 여성의 말에 현성은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그리고 이런 현성의 모습이 갑갑했는지 여성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아. 적어도 자기 힘이 뭔지는 알아야 되지 않겠어? 중간계로 내려가면 나는 아무 도움도 안줄텐데?"


아, 그런 말이었구나.

현성의 마음 속에 다시 한번 신의 평가가 뒤바꼇다. 공격적인 여자에서 공격적이지만 조금은 상냥한 여자로.

"어디보자... 그 녀석이 너한테 뭘 줬을라나."


아무래도 눈앞의 신이 주는게 아니라, 본래 세계의 신이 내게 힘을 준 듯 했다. 현성은 그리 생각하며 내심 기대하는 마음을 품은 채로 여성의 대답을 기다렸다.


"오, 운 좋네. 너 일반 용사가 아니라 마법 용사구나? 축하한다, 야."


반응을 보니 좋은게 좋은건가 보다. 비록 마법이 뭔지는 모르지만 현성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자, 그러면 슬슬 떠나야지? 나도 다시 자야 되니까."

벌써 떠날 시간.

현성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미운정도 정이라고 여성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 뭐야?"


"작별 인사요. 아무리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죠."


허, 참. 여성은 현성의 당돌한 행동에 헛웃음을 쳤다.


정 붙이기 싫어서 띄껍게 굴었더니만.

탁.

"잘 살아라, 새꺄."


여성은 현성의 손을 잡으며 거칠게 말을 건냈고. 현성은 여성을 향해 방긋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현성은 자신의 주변에 빛무리가 감싸져 오는 것을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었다.


***



카인드니안 제국의 수도 엘라스.

그 중심에 위치한 황성.

황성의 내부에서는 은색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황제의 긴급 호출에 분주하게 움직이며 저마다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에 돌연변이가 또 침입했다는데 사실이야?"


"사실이니까 폐하께서 부르시겠지."

"그것들은 지겹지도 않나? 암살하려고 처들어온 것도 아니고, 비실비실한 것들이 말이야. 특히  때 마다 정신을 잃는데, 어후. 옮기는 것도 귀찮다 이제는."

"그러니깐 말이야. 확 그냥 죽여버릴 수도 없고."

"아서라, 또 그 영감탱이 쳐들어올라."

큭큭, 서로 즐겁다는 듯 웃으며 농담식으로 주고받는 얘기.

결코 가벼운 얘기가 아니였다. 이야기의 주제는 다름이 아니라 황성에 침입한 돌연변이에 대한 얘기였으니까. 그러나 마냥 심각한 얘기는 아니였다.


황성에 돌연변이들이 침입해온 적은 한 두번도 아니었으니까. 웃기는 점이라면 그들은 아무런 무기 조차 들고 있지 않다는 것과 입고 있는 옷이 특이하다는 점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아무런 주기도 없이 어느 순간 나타나는 족속들이었다. 한가지 일정한 것이 있다면 나타나는 장소가 언제나 황제의 앞이라는 점.

기사들 입장에서는 약하면서 한없이 귀찮은 존재, 그것이 돌연변이였다.


그렇게 기사들은 황성의 복도를 지나 황제가 있는 공간에 도착했고. 먼저 도착한 기사들이 있었는지 돌연변이는 벌써부터 밧줄에 묶인 채로 제압된 상태였다.


"제국의 영원한 태양을 뵙습니다."

방금 막 도착한 기사들이 일동 황제에게 인사를 건내자 황제는 묵묵히 손을 뻗는 것으로 그 인사를 받았고. 검지로 묶여 있는 돌연변이를 가리켰다.

이는 의식을 잃은 상태의 돌연변이를 깨우라는 의미.

퍼억.

기사들  한 명이 다리를 들어올려 돌연변이의 가슴팍을 강하게 걷어찼고. 타격음이 성 내부에 울려퍼졌다.







***

아악.

현성은 갑작스레 느껴지는 통증에 비명을 지르며 정신을 차렸고. 가슴 부근에서 숨을 쉬지 못 할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그리고 현성은 다급기 몸을 추스려 주변을 살폈다.

드넓은 공간. 천장은 한없이 넓었고. 주변에는 철로 온몸을 뒤덮은 사람들이 포위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하얀색의 가죽 코트를 입은 녹색 머리의 남성이 서있는게 보였다.

"돌연변이 주제에 누가 고개를 들라 했나!"


퍼억.


다시 한번 심장 부근을 걷어찬다.


현성을 걷어찬 기사는 마치 인간이 아닌 것을 대하듯 폭력을 행사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었다.

"아악-"


느껴본 적 없는 고통. 한계에 가까운 무게의 물건을 들 때 조차도 이정도의 고통은 아니었다. 현성은 심장 부근을 부여잡은 채로 바닥에 고개를 박았고. 한순간에 두려움에 잠식당해 지진이라도   온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후욱, 후욱.

현성이   있는 것이라고는 최대한 몸을 웅크린채로 자신을 보호하는  뿐이었다.


무의미한 행동일 뿐이었지만.

꽈악.

현성이 몸을 보호하려는 행동을 하자 폭력을 행사하던 기사가 현성의 머리채를 잡고 강제로 일으켰고. 현성은 부들부들 떠는 와중에도  말을 잊지 않았다.

"으윽... 왜, 왜 이러세요?"

분명히 용사라고 들었다. 위험에 빠진 세계를 구하라 들었다. 그런데 왜 이들은 자신을 억압하는가. 현성으로써는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는 상황. 그렇기에 현상은 두려운 감정이 드는 와중에도 용기를 내어 입밖으로 소리 내어 말했다.


"푸하하! 뭐라는 거냐 이 자식은!"


"죽여버려, 한스!"


"돌연변이는 죽여야 된다고, 어이!"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비웃고 죽이라는 목소리 뿐.


현성은 더욱 더 혼란에 빠지기  수 였다. 도대채 뭐란 말인가, 이게. 현상은 주변을 빠르게 탐색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상황을 살피는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현성은 녹색 머리의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 척 보아도 높은 신분을 가진 것 같은 사람. 한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양쪽귀가 뾰족하다는 점이었다.

현성은  사람이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란 생각에 고통을 참느라 힘을 너무 쥔 나머지 쥐가 나버린 팔을 가까스로 앞으로 뻗으며 말했다.

"도.. 도와주세요!"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현성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은 이 순간 처참하게 더럽혀졌다.


"저 역겨운 돌연변이를 당장 치우도록 하라."


진심으로 혐오스럽다는 듯이 인상을 구긴 채로 말하는 모습.

현성의 눈에 그 모습이 똑똑히 담겼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수치심과 함께 절망을 느꼈다.


저런 이에게 도움을 청한 자신이 부끄러웠고.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다.

이윽고 녹색 머리의 남성은 차갑게 등을 돌렸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아아..."

현성은 말 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충격에 빠졌다.


인생을 살아오면서 지금 이 순간 보다 무섭고 두려운 순간은 없었을 것이다.

현성이 충격에 빠져 정신이 혼미해진 사이, 기사들은  한명 만을 남기고 떠나갔으며. 마지막으로 남겨진 한 남성은 넋이 나간 현성을 보며 불쌍한 눈빛으로 한번 바라 보고는 팔을 잡아 그대로 질질 끌며 어딘가로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성은 맨살이 바닥에 쓸려 쓰라린 통증에 강제적으로 정신을 되찾았고. 마지막 힘을 짜내 남성의 손을 뿌리치고 몸을 일으켜 있는 힘껏 발이 닿는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죽기 싫다. 현성은 오로지 한가지 생각만을 가진 채 온힘을 다해 달렸다.

"거, 귀찮게 시리."

텁.

어라...?

"얌전히 같이 가자.  죽인다."

어느샌가 붙잡힌 팔.

현성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사람의 반응속도가 이렇게 빠를 수가 있나? 하지만 그런 의문 보다도 현성은 안 죽인다는 말에 더욱 신경을 썻다.

적어도 이 남성은 자신에게 완전한 적의를 표하지 않는다.


그것 하나만으로 현성이 이 남성에게 의지할 이유로 충분했다.

"지금 이게 다 무슨 상황이죠...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처음으로 제대로 말을 끝냈다. 현성은 억울함과 영문모를 상황에 대해 호소했고. 남성은 무시로 일관하며 묵묵히 현성을 끌고갈 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