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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화 〉용사인데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요 (3/89)



〈 3화 〉용사인데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요

이랴.


현성은 남성을 따라 성밖으로 나와 마차에 탑승했고. 마부가 줄을 잡아당기자 말들이 출발했다.


마차라니. 이런걸 실제로 탈 줄은 몰랐는데. 현성은 신기해 하면서도 우울감을 치우지 못 했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토록 처참히 당해본 본 적이 처음인데다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처지 때문이었다.


극진한 대접은 바라지도 않았고. 평범한 생활을 기대했을 뿐인데, 초장 부터 제대로 꼬였다.


현성은 어느새 흐르는 눈물을 훔쳤고. 건너편 의자에 눈을 감은 채로 앉아있는 남성에게 시선이 향했다.


하얀 피부에 꽁지로 묶은 붉은빛을 띄는 머리칼. 짙은 속눈썹과 오똑하게 솓은 코. 마지막으로 선분홍 빛 입술까지.


되게 예쁘게 생긴 남자다. 현성은 그런 생각을 품은 채로 실레인걸 알면서도 남자를 뚫어져라 바라봤다.


"그만 쳐다보지?"


분명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은데.

시선을 느낀건지 경고해오자 현성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궁금하게 있습니다."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세계에 대해서도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도. 현성은 아는 것이 없기에 그저 상황이 흘러가는데로 이끌릴 뿐이었다.

그렇기에 현성은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지금 당장은 그 궁금증을 풀어줄 상대라고는 눈앞의 남자밖에 없었다.

이곳에 와서 그나마 호의적인 사람이었으니까.

"지금은 조용히 있는게 좋을거다."

차갑게 경고를 내뱉는다. 현성은 이것을 허투루 들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꼈다.

현성은 남자의 말을 따라 얌전히 벽에 등을 기대 앉았다.

상황을 정리하고 싶어도 아는게 아무것도 없으니 정리할 것도 없다.

기껏해야 갑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처맞고 어디론가 끌려가고 있다는 것. 도망치는건 무의미 하다는 것이었다.


...

덜컹.


한참 달리던 마차가 멈춰섰다. 현성은 무슨 일인지 궁금했으나 마차는 간신히 빛만 들어올 정도의 틈만 벌어져 있었기에 바깥을 살필 방법은 없었다.


대신에 현성은 벽에 귀를 갖다댔다.

그러자 밖에서 흐릿하게 나마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돌연변이인가?"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


"예, 돌연변이임니다요."


이어서 들리는 얉고 날카로운 남성의 목소리.

현성은  남자의 대화에서 주목할 점을 찾았다.


'돌연변이'


그곳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을 향해 돌연변이라 불렀었다.


그런데 돌연변이란 도대체 무엇이지? 현성은 이번에도 난관에 봉착했다.


다른 이를 위해 인생을 바칠  있냐는 신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고. 신은 자신에게 힘을 줄테니 이세계를 도우라 말했었다.

또한 그 후에 만난 신은 용사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이들은 돌연변이라 부르고. 사람 이하의 것을 대하 듯 험악하게 취급한다.


현성은 그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용사인데 왜 돌연변이라 불리우냔 말이었다.

턱.


그때 남성이 현성의 뒷목을 잡고 강제로 자리에 앉혔고. 당황한 현성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멍청아. 그러다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예..?"

철컥.

현성이 얼빠진 소리로 반문하는 순간, 마차의 문이 열렸다.

으윽, 현성은 갑자기 쏟아지는 빛에 눈쌀을 찌푸렸고. 자신에게 던져진 것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냈다. 그리고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 브랜드. 돌연변이가 헛짓거리 하지는 않았겠지?"


브랜드, 남성의 이름이라는 것을 딱히 깊게 생각하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잔뜩 겁을 먹어서 바닥만 쳐다 보고 있으니까 안심해라."

브랜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 거리며 답했고. 현성은 브랜드가 자신을 지켜 주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는 바닥만을 계속 응시했다.

"그래? 그나저나 이번 놈은 꼬추 새끼네. 아쉽게 됐다, 그지? 크헤헤."

얼핏 들어도 수준 낮은 얘기. 현성은 남성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으나, 이내 더럽고 추잡한 얘기임을 알게 됐다.


"저번에는 계집이었던가?"


"여자였었지."


"크으! 고년 참 피부도 허옇고 가슴도 튼실한게 맛있어 보이던데. 브랜드, 너도 남자니까 함 따먹긴 했겠지?"

"아아, 그래.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우욱, 현성은 남성의 음담패설에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역겨움과 혐오감을 느꼈다.


이곳은 윤리의식도 없는걸까? 어떻게 저런 말을 대놓고  수 있는거지?

현성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두 주먹을 강하게 쥐었다.


다행이라면 브랜드의 표정은 귀찮아하는게 선명히 보였다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저 역겨운 남성이 저러는게 한 두번이 아닌 듯 했다.

현성은 부디 브랜드가 그런 짓을 하지 않았기를 바랬다.


"어이쿠, 시간을 너무 끌어버렸네."

"알면 다행이네."


"크헤헤, 띄꺼운건 여전하구만. 얼른 가기나 하셔. 저 놈 도망치지 않게  감시하고."


"하, 그럴리가 있나."

"어이쿠, 어련하시겠어? 그럼 다음에 보자고.".


덜컥.

문이 닫히고 남성의 목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됐다.


현성은 그제서야 주먹에 힘을 빼고 고개를 치겨들어 브랜드를 바라봤다.

"뭐에요 저 사람? 무슨 저딴 인간이..."

역겹다. 여태 봐온 사람들 중에서 그 누구 보다도 역겹다.

"조용히 해. 밖에 다 들린다."

으윽, 차가운 태도로 일관하는 브랜드의 모습에 현성은 하는 수 없이 화를 삭혔다.

그래, 일단은 믿자. 나중에 물어볼 기회가 오겠지.



덜컹.




또 다시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성은 일단 눈을 부치기로 결정했고. 눈을 감아 억지로라도 잠을 청했다.



***



덜컹.

철푸덕.


잘 달리던 마차가 멈춰섰고. 현성은 그 반동에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으으.. 뭐야?"


덩달아 자연스레 정신을 차린 현성은 주변을 살폈다.

그러나 밖이 어두워진건지 마차 안은 윤곽만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깜깜했다.


"가만히 있어. 상황을 보고 올테니까."


스릉.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리우며 흐릿하게 나마 번쩍이는게 보였다.

저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현성은 브랜드의 말을 따랐다.

덜컥.

꾸드득. 꾸드득.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브랜드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

"하아... 나와도 되니까, 나와."


짧은 시간이 흐르고. 현성은 한숨을 쉬며 내뱉어진 브랜드의 말을 따라 천천히 밖으로 나왔다.

다행히도 달빛 덕분에 어느정도 시야가 밝아졌기에 넘어지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밖으로 나오니 브랜드가 무릎을 굽힌 채 무언가를 살피고 있는게 보였다.

"멈춰, 안 보는게 좋을거다."

현성은 브랜드가 살피고 있는게 무엇인가 싶어 다가가려 했으나 브랜드의 저지에 다리를 멈췄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무.. 무슨 일인가요..?"

현성은 불길함에 떨리는 목소리로 생각을 전했다.


그러나 브랜드는 무언가에 집중이라도 하는지 현성의 물음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하, 씨. 멍청한 새끼."


아, 뭔가 잘못됐구나.

현성은 화가 난 어투로 나지막이 욕설을 뱉어내는 브랜드의 모습에서 불길한 예감이 적중했음을 인지했다.


"이봐,  잠깐 어디  갔다 올테니까.  돌리고 있어. 괜히  생각은 하지도 말고.

텁.

현성은 브랜드의 말을 따라 등을 돌렸고. 무언가 들어올려지는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현성은 그제서야 마부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고. 순간적으로 등을 돌려 브랜드가 있던 자리를 살폈다.

검붉은 색으로 뒤덮인 흙바닥.


아, 마부가 죽었구나.


...

"우웨엑-"

역한 느낌에 허리를 숙여 위장 속에 있던 것들을 토해냈다. 그래봤자 나오는 것은 침 뿐이었지만.


현성은 한껏 구토를 하고선 옷소매로 입가를 닦아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혐오스러움을 느꼈다.


사람이 죽었는데 슬픔 감정 보다도 피를 보고 역겹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놈이었던가? 현성은 스스로를 되돌아 보았다.


또한 만약에 시체를 직접 봤다면 얼마나 끔찍했을 지 생각했다.

"우욱.. 우웨엑-"

또 다시 올라오는 역겨움에 현성은 다시 한  속을 게어냈다. 하지만 나올 것이 없어, 위에서 올라온 따가운 것에 목구멍이 쓰라릴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만류해준 브랜드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허, 참. 보지 말라니까."

마침 돌아왔는지 브랜드의 답답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마부의 시체에서는 피가 많이 났었는지 브랜드가 입고 있는 갑옷은 피철갑이 된 상태였다.


"주.. 죽었나요...?"

동공이 흔들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브랜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마부의 죽음을 시인했다.

"하하..."


정말로 죽었구나. 현성은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았다.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시체를 처리한 사람에게서 직접 들으니 뒤늦게 실감이 났다.

"사고인가요..?"

현성은 말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타고 있던 마차는 바퀴가 망가진 상태, 마차를 끌던 말들은 어디론가 도망이라도 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마부 놈이 졸면서 가다가 돌부리를 못 보고 밟았나 보지."


아아, 현성은 부서진 마차의 근처에 우뚝 솓은 돌부리를 발견했고. 이해했다는 듯이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졸음 운전, 이 세계에서도 졸음 운전으로 죽는 경우가 있구나.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었다. 현성은 비록 좋은 인상을 받진 않았지만, 잠깐이나마 함께했던 마부의 명복을 빌었다.


"시체는 묻어주고 온건가요?"

"...그래."

말하기를 머뭇거린다. 아마도 근처에 아무렇게나 놓고 왔으리라 생각됐다.

그러나 차마 시체를 묻어주자고 선뜻 말을 꺼내지는 못 했다.


"이제 어떡하죠?"

"어떡하긴. 목적지까지 걸어서 가야지."


스릉.

브랜드가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들며 말했다.

시퍼렇게 빛나는 날, 현성은 그 날이 자신에게 향하지 않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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