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화 〉용사입니다. 괴물이 많네요 (7/89)



〈 7화 〉용사입니다. 괴물이 많네요

후웅.

퍼억-


"크엑-"

현성이 휘두른 검집에 있는 힘껏 덮쳐오던 고블린의 머리통이 움푹 패이며 바닥에 곤두박질 처졌다.


"후아."

숨을 깊게 들이 마셨다.


어깨에는 여성을 짊어진 상태. 브랜드에게 업혀있던 것을 스스로 업겠다며 가져왔고. 검은 브랜드에게 넘겨줬다.


어차피 제대로 다루지도 못 하는 것, 들고 있어봤자 방해만 되는 무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손으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

현성은 검을 넘겨주고 브랜드의 검집을 건내 받았다.


그리고  뒤로는 일사천리.


철로 만들어진 검집은 둔기의 역할을 제대로 해냈고. 허약한 고블린을 죽이는데에 무척이나 적합했다.

"너, 쫌 친다?"

숨을 깊게 들이쉬는 현성의 뒤로 양손에 검을 하나씩 든 브랜드가 바짝 붙으며 칭찬했다.


"제가 망치는 많이 휘둘러 봤거든요."


노가다를 뛰며 손에 익도록 사용한 망치. 현성은 검은 몰라도 망치와 같은 둔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되는지 요령을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어깨에 여성을 업은 상태에서 싸우는 것도 큰 어려움을 격지 않았다.


기껏해야 50kg도 안 되는  같은 여성. 무게중심의 도움을 받아, 여성을 드는 것은 쌀  포대를 드는 것 보다도 덜 힘들었다.


물론 브랜드가 뒤에서 엄호해주는게 크긴 했다.

그렇게 현성은 고블린을 조금씩 해치워 나갈 수 있었고.


처음에는 처참한 시체와 검붉은 피에 어지러움을 느꼈으나, 생명의 위협을 겪다보니 점차 적응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돼버렸다.


현성은 짧은 순간에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러나 그것은 살기위한 발버둥이었기에 이 순간만큼은 스스로에게 관대하기로 마음 먹었다.

서걱-

뒤에서 브랜드의 검이 고블린을 베는 소리가 들려온다.


현성은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계속해서 덤벼오는 괴물들에 학을 땠다.

상대하는건 어렵진 않았지만 수가 너무 많았다.


녀석들의 지능이 조금이라도 높았다면 이미 차가운 시체가 되어 땅바닥을 굴렀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진짜, 씨발. 오늘 무슨 날인가. 여기 사는 고블린들 정모라도 하냐!"

서걱-


서걱-


서걱-

베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후웅.

퍼억-


현성도 덩달아 검집을 휘둘러 다가오는 고블린을 저지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가야 되는가.


현성은 무거운 몸을 이끌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브랜드는 짜증이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씨발, 이러는 이유가 있을거 아니냐고!"

불같이 성을 내며 검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토록 많은 수의 고블린들이 자신들을 공격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애초에 겁이 많은 족속들이라 조금만 동료가 죽어도 뒤도  돌아보고 도망치는게 고블린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었다.

아무리 죽이고 죽여도 겁을 먹기는커녕 수가 점점 늘어나는 지경이었다.


이러한 현상에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터.


브랜드는  손에 하나씩 든 검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힘을 분배하며 휘두르면서 곰곰히 생각해냈다.

그러나 고블린들은 그럴 틈 조차 주지 않았다.


서걱.


서걱.


"미친 새끼들..."


브랜드는 점점 격렬하게 달려드는 고블린들의 목을 베면서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현성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팔은 고블린을 베고. 머리로는  상황을 파훼할 방법을 생각해내며,  마저도 주위에서 달려드는 고블린과 앞으로 전진하는 현성을 살폈다.


바쁘다. 몸이 두개라도 부족했다.

브랜드는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이 먼저 지쳐 쓰러질 것이라 생각했다.

분명 아까는 이정도로 덤버지 않았던 것 같은데.

브랜드는 그런 생각을 품으며 현성을 바라봤다.


자신 보다는 한껏 여유로운 표정. 그러나 이는 단순히 현성의 체력이 더 좋은게 아니었다.

사고가 난 후, 마차를 버리고 도로를 걸을 때만 해도 먼저 지친 쪽은 현성이었으니까.

서걱-


서걱-

쫘악-

또 다시 덤벼오는 것들을 벤다.

그러다 문득 브랜드는 미쳐 깨닫지 못 했던 사실을 알아냈다.


숫자.

현성과 자신에게 달려드는 숫자 부터가 달랐다.

고블린들은 현성이 아닌 자신에게 주로 달려들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이지?

브랜드는 그 사실을 알자마자 침착하게 고블린들의 행동 양상을 살폈다.

후웅-


뻐억-!

현성이 휘두르는 검집에 두개골을 보이며 나가 떨어지는 고블린.


서걱-


서걱-


때 마침 자신에게 달려드는 베어낸다.


그 순간.

브랜드는 괴리감을 느꼈다.

현성의 쪽으로 가는 고블린에게는 살기가 없었다. 반면 자신에게 오는 고블린들은 살기가 짙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브랜드는 앞으로 전진하는 동안 현성이 쓰러트린 고블린의 시체들을 살폈다.

전부 머리가 깨진 상태였기에 분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고. 브랜드는 시체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순간, 이유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여성.


고블린들은 여성을 노리고 왔다.

이를 증명하듯 현성이 죽인 고블린들의 더럽고 흉측한 아랫도리가 빧빧하게 서있었다.

더군다나 여성은 어젯밤 듀란에게 약에 취해 시도 때도 없이 강제 성교를 당했기에 음란하고 비릿한 향이 물씬 풍겨왔다.

"씨발, 진짜. 줫같은 듀란 새끼."

서걱-

결론적으로 듀란을 욕하며 브랜드는 또 한마리의 고블린을 베었다.

어쩐지 오늘 따라 수가 많았다.

이건 단순히 여성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었다. 여성의 몸에서 나는 음란하고 비릿한 냄새가 문제지.


여태까지 이 일을 해오면서 적지 않은 수의 여성 돌연변이를 엘프의 영역으로 옮겨왔기에  알았다.

문제를 알았으니 이제는 해결한 차례.


여성을 버리고 속도를 높여 도망간다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을거다.

그러나 그래서는  됐다.


돌연변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돌연변이 숲까지 데려올 것.

그것이 돌연변이 왕과 맺은 협약이었다.

듀란에게 화를 낸 것도 그런 이유가 컸다. 여성에게 약을 먹이고는 상태를 신경 쓰지도 않고 무차별적으로 강간을 한 것, 이는 어쩌면 여성이 죽을 수도 있는 행동이었으니까.

만약 정말로 죽었다면 제국 측에서 협약을 깨버린게 되는거였다.

그렇게 된다면 돌연변이 왕은 다시 한 번 제국을 쑥대밭으로 만들 터.


부끄럽지만 돌연변이 왕은 그럴 힘이 있다는걸 이미 오래 전에 증명했었기에 더욱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제국의 검성을 비롯한 기사단장들 마저도 막을 수 없는 존재였으니까.

그런 존재가 왜 아직까지 돌연변이 취급을 받으며 얌전히 살고 있는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서걱-


또 또 고블린.


평생 죽일 고블린을 오늘 다 죽이는 것만 같았다.

부디 현성이 버텨 주기를 바래야지.



***




숲은 어두웠다.


밤인지 낮인지 구별이 안 갈만큼.


하나 확실한 것은, 숲에 들어오고 나서 많은 시간이 흘렀다는 것.

현성이 직접 죽인 고블린의 수만해도 과장해서 족히 백 마리는 됐다.


후웅-

퍼억-

아, 또 한마리 추가.

현성은 기진맥진한 상태로 간신히 정신만 차리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택배 상하차 보다 힘들지는 않다는 것. 기껏해야 2kg도 안 되는 검집을 휘두르는건 생각보다 힘겨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라면 여태까지도 깨어나지 않은 여성이 문제였다.


어깨는 이미 감각이 마비되서 아무런 느낌도  든지 오래.

그런데 여성은 검집을 휘두를 때 마다 무게중심이 흔들리는데도 도통 깨어날 생각을  했다.


혹시나 죽은게 아닐까 싶었지만 숨소리는 잘만 들렸다.

어쩌면 브랜드가 기절 시킬 때 힘을 과하게 줘서 코마 상태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거라면 자신이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후웅-

퍼억-


갑자기 튀어나온 고블린이 현성이 휘두른 검집에 그대로 뇌수를 터트리며 절명했다.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휘두를 정도.

현성은 슬슬 지금이 어디 쯤인지 알고 싶어졌다.

"얼마나 남은거죠..?"

힘이 빠진 기진맥진한 목소리.


"거의 다 온것 같은데, 후우."


브랜드 또한 마찬가지였다. 현성에게 한 마리가 가면 자신은 세마리를. 두 마리가 가면 여섯 마리를.

적어도 배 이상을 상대한다.

그러나 신체가 힘든 것 보다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피로감을 느꼈다.

하지만 브랜드는 그런  보다도 현성을 향한 놀라운 마음이 컸다.


장시간의 전투가 이루어지는데도 쓰러지지 않는다.


어느정도 단련된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건 처음 본 순간 부터 알고는 있었으나. 이 정도로  버틸 줄은 몰랐다.

그러나 현성이 버티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마나.

현성은 마나를 다루는 법 조차 모르는데도. 본능적으로 마나를 몸에 두른 채로 싸우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힘이 다 빠진 공격에 고블린이 단번에 죽을 리가 없었다.


브랜드는 그런 현성을 보며 용사이자 자신의 친구를 떠올렸다.


그 녀석도 위기에 봉착했을 때 오러를 발현시키는 기지를 보였고. 결국엔 살아남았다.


그것이 용사가 가진 재능이자 힘.

별다른 수련을 하지 않아도 선천적으로 오러나 마나를 다룰 줄 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브랜드 자신 조차도 어렸을 때 부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련을 했으나 오러를 다룰 수 있게 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만큼 용사는  존재 부터가 남달랐다.


제국을 끊임 없이 침공하는 악마들을 막아낼 수 있던 것도 용사가 기여한 바가 컸다.

그리고 브랜드의 머릿속에는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제국은 왜 마법을 배척하는가.


다른 왕국은 마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데 오로지 제국만이 그런 정책을 펼쳤다.

오러를 쓰는 용사만 해도 큰 전력이 되는데. 여기에 마나를 다루는 용사까지 더해지면 제국은 확실한 강국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텐데.

다만 의문은 딱 여기까지.

자신은 어찌됐든 황제에게 충성을 맹새한 몸.


제국을 의심하는 것은 그 맹새를 저버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머릿속에 든 의문을 지워냈고.


푸욱-


때 마침 고블린의 인중에 박힌 화살을 보며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씨발, 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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