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용사입니다. 화려한 빛이 엘프를 감싸네요. (9/89)



〈 9화 〉용사입니다. 화려한 빛이 엘프를 감싸네요.

엘프의 영역.

현성과 브랜드는 어색한 공기를 뚫고 엘프를 따라 영역 안으로 들어왔고. 여성은 엘프에게 넘긴 뒤, 휴식을 위해 준비된 건물로 들어갔다.

아아, 내가 왜 그랬을까.

현성은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처음 보는 여자랑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그것도 브랜드가 보는 앞에서.

뭔가에 홀린거라 믿고 싶지만, 분명히 의지가 담긴 행위였기에 부정할  조차 없었다.

또한 한가지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여자는 왜 그랬는가.


...


알 턱이 있나.


쿵 쿵.

현성은 마저 박던 머리나 계속 박았다.

"병신. 내가 조심하라고 말했지."


옆에서 브랜드가 벽을 등지고 누워 한심하다는 듯이 말을 건냈다.

조심하라고 말한건 안다. 그런데 성적으로 조심하라는 말인 줄은 전혀 몰랐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억울했다.

브랜드가 알려준 것은 엘프는 예민하다는 것과 외모가 특출 나니 추태를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 뿐이었다.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요..."

이런 얘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브랜드는 알아들은 눈치였다.


자신하고는 아무 관계 없다는 듯이 딴청을 피우는걸 보면 확실했다.


"...엘프란게 다 그분 처럼 행동하나요?"


많은 의미가 담긴 질문.

만약 엘프라는 종족이 그 여자 처럼 행동한다면 현성은 타락해버릴 것만 같았다.


욕망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는 법이니까.


"...엘프는 성욕이라고는 일도 없으니까 걱정 마라."

애매모호하고 의미를  수 없는 대답.


이는 현성의 호기심을 자극 시켰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냥 괴상한 취미라고 생각해."


취미, 그런 상스러운 취미 따위는 들어본 적도 없고. 이해할 수 조차 없었다.

성욕이 없다면서 단순히 취미로 남성의 성기를 입에 물고 사정까지 시키고선 삽입 직전까지 갔단 말인가.


현성은 엘프와 나눈 쾌감을 기억하니 저도 모르게 아래쪽에 피가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엘프의 매끈하고 꽉 다물어진 음부.

분명히 그곳에 자신의 성기를 넣는다면 유사 극락을 체험할  있겠지.

아, 내가 무슨 생각을...

현성은 머릿속에  추잡하고 상스러운 생각에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렸다.

평생 여자 손 한 번 못 잡아 봤는데 그런 격렬한 경험을 하니 여운이 남았다.

자신도 남자였던 것일까. 현성은 스스로 조차도 모르던 자신의 다른 모습에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렇게 싸질러 놓고도 현성의 아랫도리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건지 우뚝 솓았고.

현성은 엘프의 전라를 떠올리며 성기를 움켜잡고 격렬하게 흔들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하아... 정신 차려, 새꺄."

...

찰싹-


스스로 뺨을 강하게 때린다.

그제서야 현성은 정신이 되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홀려도 단단히 홀렸다. 늦바람이 들어서 그런걸까.


현성은 응어리진 성욕을 자꾸만 풀고 싶은 욕구가 들어 미칠 것만 같았다.

"경고하는데. 절대로 그 녀석한테 먼저 다가가지 마라. 위험하니까."


위험하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현성은 머리를 박던 행위를 멈추고 브랜드를 바라봤다.

브랜드는 여전히 갑옷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이라면 벗어도 될텐데.

"엘프들은 허락없이 몸을 만지는걸 싫어하거든."


"그건 누구나 싫어하는 것 아닌가요?"

"뭐... 맞긴 하네. 그래도  말은 명심해둬. 엘프한테 깝치다가 반송장이 된걸 본게 한 두번이 아니거든. 특히 그 녀석은 괴짜니까  조심하고."

으윽, 저렇게까지 말하니 현성은 괜히 불안감이 들었다.


설마 찾아 오지는 않을까, 하고.

브랜드가 괴짜라 말하니 어느정도 일지 도통 감이 안 잡혔다.

"막 찾아와서 해코지 하지는 않겠죠..?"


"...그 정도로 괴짜는 아니니까 걱정말고."


한심하다는 눈빛과 말투. 현성은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러면서도 슬슬 앞으로 어떻게 될 지가 궁금해졌다.

엘프의 영역에 왔으니 브랜드는 떠날테고. 나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는 걸까?


"브랜드 씨는 이제 떠나는 건가요?"

현성은 하나씩 묻기로 결정했고. 브랜드에게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

"며칠간 쉬었다가 갈려고. 무리를 했더니 몸상태가 이만저만이 아니네... 검도 정비해야 될테고."


브랜드가 자신의 검을 어루만지며 상태를 살피고선 말했다.


확실히 처음 봤을 때는 날이 시퍼렇게 빛이 났는데. 지금은 무뎌진 감각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 그리고. 이건  가져라."

철커덩-


브랜드가 현성의 발밑으로 무언가를 밀었고. 현성은 그것을 집어들었다.


"이거... 듀란이라는 분의 검 아닌가요..?"

브랜드가 가지라고 넘겨준 것은 듀란의 검.


이것 또한 날이 많이 무뎌진 상태였다.

"생각해보니까 괘씸해서 안 되겠더라고. 그 녀석 때문에 그 고생을... 어후, 씨발."


듀란은 도대체 무슨 짓을 햇길레 브랜드를 저토록 화나게 만들었을까.

현성은 의문을 가지면서도 듀란의 검을 챙겼다.


돌연변이 취급을 받는 처지에 주는걸 마다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더군다나 앞으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데. 비록 다룰 줄 모른다고는 해도 날붙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줬다.

"그런데 브랜드 씨가 떠나고 나면. 저는 어떻게 되는거죠?"


그러다 현성은 검을 이리저리 들고 폼을 취해보며 자연스레 두 번 째 질문을 던졌다.


"다른 안내자를 따라서 돌연변이 숲으로 보내지겠지."

곧바로 돌아오는 대답.

안내자, 다행히 브랜드를 대신할 사람이 오긴 오는구나.


그나마 다행이었다.


덜컥-

노크도 없이 갑자기 문이 열렸고. 현성은 시선을 자연스레 옮겼다.


그러자 열린문을 뒤로하고 왠 부드러운 인상의 남자가 보였다.

"아, 오랜만이군요. 브랜드.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 엘프와는 다르게 인상과 맞는 목소리와 말투.

아무래도 괴짜라는 브랜드의 말이 맞는 듯 했다.


"말도 마, 죽는 줄 알았으니까."

이번에도 서로 아는 사이인 듯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안 그래도 에리엘에게 전해 듣고 왔습니다. 고블린들한테 쫓겼다면서요?"


에리엘? 자신과 성교를 나눴던 엘프의 이름인걸까?

아닐 가능성도 있었지만. 현성은 엘프의 이름이 에리엘일 것이라 확신하다 싶이 했다.


그러면서도 첫경험을 한 상대의 이름 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머리가 띵한 기분이 들었다.


본능에 이끌려 신경 써야할 부분을 쓰지 않고 있었다니. 마치 쓰레기가   같았다.

그러나 현성이 무슨 생각을 하던 간에, 둘의 대화는 이어졌고. 브랜드가 질린 표정으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숫자가, 어휴... 나는 정모라도 하는 줄 알았다니까?"

"아하하, 그래도 살아서 왔으니 다행이지요.  그렇습니까?"


"새끼,   아니라고 막 말하는거 보소. 됐고, 무슨 일로 왔어?"

많이 친한 듯 대화에 벽이 없었고. 둘은 아는 사이를 넘어 친구 사이로 보였다.

그러다 문득, 브랜드가 현성을 검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말 안 해도 알지? 얌전한 녀석이니까 얄궃게 대하지는 말고."

알궃게 대하지 말라, 남자는  말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선 천천히 현성에게 다가왔다.

남자는 얼핏봐도 현성 보다는 키가 아슬아슬하게 작았다.


자신이 180 초반이니, 남자는 170 후반이거나 180 극 초반일 듯 했다.

그러나 외모는 비교 조차 되지 않았다.

현성 또한 어디가서 못 생겼다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다. 날카롭게 생겼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어떤 지인이 말하길 야생미가 느껴져서 충분히 매력적인 인상이라 그랬다.

걸리는 점이라면,  말을  사람이 노가다 판에 널리고 널린 배나온 아저씨라는 점이었다.

반면 그런 현성과는 달리 남자는 귀티가 흘러 넘쳤고. 같은 남자가 봐도 잘생겼다 느낄 정도였다.

백금발의 곱상하고 수려한 외모.


마치 아이돌 그룹의 비쥬얼 멤버를 보는 듯 했다.

다만 현성은 어째서인지 남자의 표정에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꺼림직함을 느꼈다.

이에 허리를 꼳꼳히 피며 긴장한 티를 냈고. 드디어 남자가 입을 열었다.

"뭘 꼬라보십니까? 버러지 같은 돌연변이 주제에."

모멸과 혐오.


브랜드가 너무도 친절하게 대해줘서 그런걸까.


불과 하루 전, 갑옷을 입은 사람들로 부터 받았던 시선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현성은 두려움이 앞서 고개를 바닥으로 뛀궜다.

발로 걷어 차지는 않겠지?


그 굴욕감과 고통이 상기 됨에 잔뜩 겁부터 먹었다

"맞습니다. 돌연변이라면 알아서 기어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브랜드?"


브랜드. 남자는 동의를 구하듯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마도 무감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겠지.

브랜드가 도와줄 거라는 생각 하지는 않았다.

그도 그 나름대로의 상황과 사정이 있을테니.

더군다나 이곳에  순간부터 더이상 자신은 브랜드의 관활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브랜드가 끼어들 명분 조차 없었다.


현성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새롭게 인지하고 받아들였다.


현성에게는 반항할 용기 조차 없었다.


욕망 앞에서 사람이 한없이 작아지 듯이, 자비 없는 폭력 앞에서도 사람은 한없이 작아지는 법이었다.

"내일 다시 올테니까 얌전히 짜져 있으시죠. 설마 도망치지는 않겠죠?"

후훗, 남자는 대놓고 현성을 깔보다 싶이 대했다.

이윽고 현성은 옆에 놓여진 검에 슬쩍 눈길이 갔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까?

라고 생각하는 찰나.

"아하... 미련한 생각을 품고 계시는군요?"

남자도 현성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고. 부정적인 생각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스윽.

남자는 검이 놓여진 곳으로 걸어가 유유히 그것을 손으로 집어 들어올렸다.

저걸로 어쩌려는 걸까.


현성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고. 몸을 극심하게 떨었다.


그리고 남자는 휙, 하고 검을 든 팔을 들어올리더니.

서걱-

툭-

자신의 팔을 단번에 베어버렸다.

도려내진 남자의 팔은 바닥을 굴렀고. 절단된 부위에서 피가 물 흐르듯이 흘러나왔다.


"으아.. 으으..."

피.


그것도 사람의 피.


검붉은 피가 바닥을 적시다 현성의 발끝에까지 도달했다.

이에 현성은 남자가 미친게 아닌가 싶었다.


느닷없이 자신의 팔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그런데도 남자는 인상을 살짝 구길 뿐, 감흥 조차 없는 눈빛이었다.


오히려 현성의 반응을 즐기는 것 같기도 했다.


"하아... 돌연변이는 역시 재밌네요."

갸륵한 표정과 절정에 다다른 듯 심하게 떠는 목소리.


남자는 변태임이 분명했다.

그러다 문득, 남자의 주변에서 근원을  수 없는 빛이 세어나왔다.


화악-


브랜드가 보여주었던 오러와는 다른 느낌.


남자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팔을 주워들고는 절단된 부위와 단면을 맞추었고.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위습]


작은 빛무리가 떨어져 나와 남자의 주위를 맴돌았고. 그렇게 몇 바퀴를 뱅뱅 돌다가 절단된 팔을 감쌌다.

"어.. 어?!"

붙는다.

절단되었던 남자의 팔이 서서히 붙는게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인가. 현성은 얼이 빠진 소리를 내며 뒷걸음 질을 쳤다.



그리고 남자는 현성을 향해 완전히 붙은 팔을 보이며 해맑게 웃었다.

"자살은 꿈도 꾸지 마세요. 살리고자 하면 살릴  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