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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용사입니다. 마법은 신기해요. (13/89)



〈 13화 〉용사입니다. 마법은 신기해요.

아, 온몸이 찌부둥하다.

현성은 지겹도록 정사를 나누는 두 남녀 때문에 몇 시간을 바닥에 누워 있다보니 몸이 쑤셨다.


처음 사정을 하고도 곧바로 다시 관계를 나눌 때만 해도 금방 끝나겠지 했는데. 설마 그 후로도 서너번을 더 관계를 맺고 나서야 그만둘 줄은 몰랐다.

그리고  결과는 당연하게도...


스윽.. 끈저억.


으윽, 주변이 온통 정액 투성이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둘의 교미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물론 이런 행위를 벌인 범인은..

"새액... 새액..."

연속된 교미에 지쳤는지 벌거벗은 채로 뻗은 상태였고. 임시로 입혀뒀던 겉옷은 넝마가 된 상태로 바닥을 버려져 있었다.

조금 화가 나긴 했지만 참았다.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다퉈서 뭐하겠는가. 서로 협력해도 모자를 판에.


그나저나  난장판을 어떻게 해야 될까. 현성은 일단 냄새가 베기 전에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러면서 덤으로 바깥도 살폈다.

엘프의 영역.

이 건물의 안으로 들어오기 전에도 얼핏 보긴 했으나 다시 보니 정말로 신기하긴 했다.


이런 외딴 숲속에 나무로 집을 지어 산다니.

각종 빌딩과 건물이 주변을 꽉 매운 현대에 살다 온 현성에게는 낯설  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대신 본래 살던 곳과는 비교도 안될만큼 하늘과 공기가 맑은게 느껴졌다.

또한 현성은 황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는걸 이렇게 깨달았다.


숨을 쉬는것만으로도 정신이 맑아지다니. 지구는 얼마나 오염된걸까.


현성은 그런 생각을 품고선 창문으로 부터 등을 돌렸고. 넝마가 된 겉옷을 주워들고는 온 바닥과 벽에 칠해진 타액들을 닦아냈다.



그러다가 문득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주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분명 주머니의 안에는  많은 식량이 들어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와서 뭔가를 먹은 적이 있던가? 현성은 순간 드는 생각에 기억을 되내었다.


없다.


확실하게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단 한 번도 허기짐을 느낀 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현성은 손을 내려 배를 슬슬 문질러 봤다.


왜 배가 고프지 않은걸까? 혹시 이상한 병이라도 걸린걸까?

괜히 부정적인 생각이 들자 현성은 주머니를 열었다.


혹시 모르니까 먹어는 놓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스윽, 가장 먼저  위에 놓여진 사과를 들어올렸다.

다행히도 안에 들어 있는 음식은 지구와 별반 다를게 없었다.

와삭, 한 입 베어물자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허나 씹으면 씹을 수록 현성은 당혹스러웠다.


왜 사과가 맛이 밍밍하지?

현성의 기억 속에 있는 사과의 맛은 달콤하며 새콤한 맛있는 과일이었다. 그런데 이 사과는 맛이 없는건 아니었으나 사과 특유의 맛이 덜했다.


그래도 이정도면 감지덕지지. 고아원의 아이들은 사과가 금값이다 보니 이런것도 쉽게  먹었는데.

이 나이 먹고 음식 투정은 하지 말자.

현성은 작은 의문을 지우고 사과 하나를 빠르게 해치웠다.

그러고는 손을 툭툭 털며 지난 밤에 실패했던 일을 다시 시도 하고자 했다.



오늘은 어떤 방법으로 해볼까. 현성은 벽에 등을 기대며 생각에 빠졌다.


***




시간이 흘렀다.

어림짐작으로 대충 오후 3시 쯤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 하나 제대로 시도 조차 못 했다.


누군가의 방해 때문에.



"그거 그렇게 하는거 아닌디..."

언제부터인가 창밖에 등장한 여성이 걸걸한 목소리로 훈수를 두며 참견해왔다.

"하이고, 저러면. 으휴... 말을 말아야지!"


여성은 끊임없이 훈수를 두며 현성의 신경을 건드렸고. 인터넷상에 떠도는 말로 비유하자면 여자는 훈수충 처럼 느껴졌다.


"거기서 그러면 어떡하나, 으이!"


여태까지 되도않는 훈수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답답하면 본인이 가르쳐주면 될 것이지. 뭐하러 저러고 있는걸까.

현성은 오히려 자신이 더욱 답답할 지경이었다. 뭐라 말을 하고 싶어도 브랜드의 경고 때문에 그대로 방치해두고 있을 뿐이었다.


다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장장 몇 시간을 당하고만 있으니 아무리 인내심 깊은 현성이라 해도 거슬리기는 했다.


터벅 터벅.


현성은 애써 무시하던 것을 그만두고 창밖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코끝을 맹렬하게 덮쳐오는 알코울의 냄새에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다.


그러면서도 현성은 자신을 시달리게 만든 목소리의 주인공을 똑똑히 눈에 담았다.

여자.


그것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여자.

브랜드가 왜 엘프의 외모가 특출나다고 말한건지 이해가 갔다.

에리엘도 그렇고 그 남자도 그렇고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까지.

절대로 세상 살면서 쉽게 볼만한 외모가 아니었다.


또한 여자는 에리엘과는 달리 다소 날카로운 인상을 가졌기에 색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뭘 그리 보는데?"


짙은 눈썹을 한데로 모으며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다.

현성은 아차 싶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동물원의 동물을 구경하듯이 바라보다니, 명백한 실수였다.


"죄송해요. 잠깐 딴 생각을 하느라..."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음에도 여자는 탐탁치 않은 듯이 바라봤다. 그래도 현성은 그러려니 했다.

사과를 받아주는건 받는 사람 마음이니까.


"됐고. 돌연변이, 니. 그러면 안 되는거여."

그러면 안 된다니, 무엇을? 설마 조금 전 행동을 지적하는건가?


현성은 여자의 말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고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여자는 여전히 현성을 향해 못 마땅하다는 듯이 혀를 차며 바닥에 침을 뱉었다.

"마,  마나 느낄 줄 모르나?"

걸걸한 말투. 입에서 술냄세가 진하게 풍겨왔다. 하지만 현성은 그런것 보다 여자의 말에 집중했다.


마나.

자신이 뭘 하려 했던건지 알고 있던거였나.


뜻밖에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만 같았다.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현성은 여자가 불쾌하지 않도록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리고 여자는 목소리만큼 걸걸한 웃음소리를 내며 현성의  주변을 느닷없이 어루만졌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몸 자체를 만지는 것이 아닌 그 주변의 허공에 손을 휘적거렸다.

"몸 주변에 마나가 요동을 치는데 모를 리가 있나."


아..!

현성은 그제야 여자가 마나를 만지고 있음을 알아 차렸다.


여자의 눈에는 마나가 보이는 듯 했다.


"혹시... 마나를 느낄 줄도 다룰 줄도 아시는건가요?"


"고럼. 마나도  다루는데 이런 말을 하겠남?"


오오, 현성은 속으로 감탄사를 외쳤다.


그냥 무작정 훈수를 두는 줄 알았는데. 정말로 전문가였다니.

평소에 하도 입방정을 떠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훈수충이라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정말 죄송한 부탁입니다만...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현성은  어느 때 보다 절실하게 부탁했다. 악덕 사장에게 임금을  먹혔을 때도 이정도로 절실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으음..."

여자는 현성의 부탁에 눈썹을 더욱 좁히면서 턱을 쓰러내렸다.


고민을 하는 모습.


현성은 속으로 '제발' 이라 외치며 싹싹 빌었다.


이윽고 여자가 입을 열었고.

"따라온나."


"감사합니다!"


현성은 환호하며 다리를 바삐 움직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여자를 따라나섰다.

다시 오겠다는 아인의 말도 까맣게 잊은 채로.





그렇게 현성은 여자를 따라 엘프의 영역 내부를 걸었다.

중간 중간 다른 엘프들도 보였는데 하나같이 외모가 범상치 않았다.

만약 이들이 지구에서 태어났다면 우스갯 소리로 생태계 교란종이라 불렸을 터였다.


"어디로 가는건가요?"

"내 집."

묵묵히 걷기만 하는 여자에게 질문을 하니 간단하게만 대답하고 걸음을 계속한다.


집으로 간다니. 뭔가 이상하긴 했으나 가르침을 받으러 가는 입장인데 이것저것 따질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현성은 별다른 의심 없이 여자를 따라갔고.

얼마 가지 않아 또 다시 질문을 건냈다.

"이름이 뭔가요? 아, 저는 오현성이라고 해요."


이름, 현성은 여자의 이름을 물으며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남의 이름을 물을 땐 자신의 이름을 먼저 밝히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여자는 걸음을 멈춰서 훡 하고 등을 돌려 현성을 바라봤다.


"레이첼. 앞에 이것저것 더 붙기는 하는데, 복잡해서 잊어버렸다."


복잡해서 잊어버렸다니. 외국에는 미들 네임이니 뭐가 많이 붙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얼마나 많이 붙었길레 잊어버리기까지 한걸까.

현성은 아주 작은 호기심을 불태웠고.


그 순간.


스윽


탁-

꿀꺽 꿀꺽


"어...?"

현성은 레이첼이 보인 신기한 행동에 얼이 빠진 소리를 냈다.


레이첼이 손을 허공에 뻗자, 갑자기 어디선가 병 같은게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뚜껑을 열어 쭉쭉 들이켰기 때문이었다.


"꺼억...! 뭘 봐, 마법 처음 봐?"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현성의 시선에 레이첼이 걸쭉한 트름과 함께 퉁명스레 쏘아댔다.


그런데 정말로 처음 보는걸 어떡하겠는가.


현성은 진심으로 크게 놀란 상태였다.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쿵쾅 거릴 정도였다.

"저.. 정말로 처음 봐요.."


"흐음... 하긴, 돌연변이들이 살던 세계에는 마법이 없을테니까."

어.. 어라?


현성은 눈을 크게 뜨며 다시금 놀란 반응을 보였다.

지금 레이첼이 내뱉은 말을 들어보면, 마치 현성이 살던 세계를 아는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것도 아네요?"

"돌연변이들이랑 몇  대화해 봐서 조금 쯤은 안다."


아, 그런 이유라면 납득했다.


다른 이들도 이곳으로 끌려왔을테니까.

그런데 그렇다면 레이첼은 돌연변이에게 우호적인 편인걸까?

현성은 깊게 생각할 것도 없이 자신에게 호의를 배푸는걸 보면 당연한 얘기라 판단했다.


"됐고, 따라 오기나 해라. 잡담은 가서 하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레이첼은 다시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고. 현성은 뒤쳐질세라 재빨리 다리를 움직였다.


뭔가 잊은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괘념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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