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화 〉용사입니다. 엘프는 원래 더러운가요? (14/89)



〈 14화 〉용사입니다. 엘프는 원래 더러운가요?

저택.

그것도 엄청나게  저택.


현성의 가진 어휘력으로 표현력는데에는 이정도가 한계였다.

정말로 큰데 뭘 어떻게 더 설명할까.

"돌아오셨습니까. 레이첼 님?"

정문에 들어서니 문지기 처럼 보이는 남자가 레이첼에게 인사를 건냈다.


무려 '님' 자가 붙다니. 레이첼의 모습만 보면 대낮부터 술에 취한 주정뱅이 같은데, 실상은 저택의 주인인걸까.

이것은 마치 지하철 역에서 매일 같이 구걸하던 아줌마가 사실은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상류층이었다는 어디선가 본 뉴스가 생각날 정도로 가히 엄청난 반전이었다.


"어, 그래. 일 봐라."


자연스럽게 인사를 겁내며 들어간다. 이에 현성은 똥강아지 마냥 쫄쫄 레이첼을 따라갔고. 정문을 지난 다음, 정원을 지나서 저택 내부로 들어가는 문까지 들어섰다.

그러나 레이첼은 잠깐 멈칫할 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어색하게 뒤로 돌아 자연스럽게 발길을 돌렸고. 현성은 별다른 생각을 품지 않고  다시 따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창고로 보이는 낡은 건물. 딱히 관리를 하지는 않은 것인지 넝쿨이 벽에 아무렇게나 자라고 있었다.


설마 여기에서 가르쳐 주려는걸까? 뭔가 이상하긴 했으나 주변이 꽤 넓긴 했기에 납득은 갔다. 그래도 뭔가 영화에서나 보던 넓은 연무장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 아쉽긴 했다.

"여기는 왜..?"


"왜기는, 보상을 받기 전에 대가부터 치뤄야지."

대가.

여기서 보상은 마나에 대해서 가르쳐준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니 돈을 벌고 싶으면 일을 하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현성은 이를 단박에 알아차렸고. 뭔가 사기 당한 기분이 들었으나 웃어 넘겼다.

기브앤 테이크.


주는게 있으면 받는게 있는 법이니까. 레이첼의 주장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었다.

오히려 그냥 공짜로 알려줬다면 양심 때문에 좀이 쑤셨을 터였다.


"제가  하면 되나요?"

현성이 주먹으로 가슴을 두어번 두드리며 자신있게 말했다.


뭐든 시켜달라는 의미, 현성은 학력은 딸려도 일 하나만큼은 똑부러지게 잘한다고 자부했다.

"젊은게 열정 하나는 넘치니 마음데 드네. 별로 힘든건 아니니까 걱정마라."


"옙, 뭐든 시켜만 주세요!"

현성은 간만에 일을 한다는 것에 왜인지 가슴이 뛰어 기분이 업됐다.


고작 하루 일을 안 했을 뿐인데 어찌나 몸이 쑤시던지.


어제 고생을 하긴 했지만, 그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지 일이 아니었다.

그러니 괴물과 싸웠던 것은 노 카운트.

현성은 뭐든간에  해줄 마인드로 레이첼이 일을 시키길 기다렸다.

그리고 레이첼은 창고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내  좀 청소 해줘."

...

"옙..?"


집이라구요? 현성은 순간적으로 반문하고자 하던 것을 간심히 목 바로 아래에서 삼켰다.


집이라면 바로 옆에 있는  저택일텐데. 더군다나 아까보니 하인들도 있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현성은 어디서 부턴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에 레이첼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 창고 같은거 말하는거 맞죠?"


다시 한번 재차 확인.


"창고라니 그거 완전 실례다! 겉은 저래도 안은 멀쩡한 집이라고!"


집이 맞단다. 그리고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내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생각한게 맞는  했다.


"이 저택은 누구 집이에요?"


현성은 속으로 생각하기만 했던 것을 확실시했고. 그와 동시에 곧바로 확신을 입밖으로 내뱉어 슬쩍 레이첼을 떠봤다.

그러자 레이첼은 얼굴이 슬금슬금 붉어지더니 고개를 쓸쩍 돌려 시선을 피했다.

"...친구 집"

레이첼은 부끄러운 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친구 집이였구나. 어쩐지 이상하긴 했다.

자신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 부탁을 들어줄 차례.

"그래요?"



현성은 납득했다는 대답을 함과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며 레이첼을 지나 낡은 건물로 다가갔다.

와아, 가까이서 보니 절로 탄성이 나올 정도로 낡았다. 나무로 지은 건물인데 꽤 오랫동안 보수를  했는지 상태가 절망적이다 싶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이정도면 차라리 허물고 다시 짓는게 나을텐데.


그러면서 현성은 겉이 이정도인데 속은 어느 정도일지 상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청소를 하긴 했을텐데, 자신에게 부탁해오는 것을 보면 기대해 봤자 무의미할  같았다.

"들어가도 되죠?"

"..."

...?


왜 대답이 없는걸까? 현성은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뒤로 돌아 레이첼을 살폈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이첼은 얼굴을 붉힌 상태였다.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한걸까?

현성은 괜히 무안해져 몸을 어찌할지 몰랐다.

그렇게 현성이 소리없이 속으로 아우성을 치고 있을 때, 레이첼이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배배 꼬며 퉁명스레 입을 열었다.

"야..."


"네...?"


현성은 레이첼의 부름에 반사적인 대답을 입밖으로 뱉었고. 레이첼은 손을 까딱거리는 제스쳐를 취했다.


저건 오라는 뜻이겠지? 속으로 생각을 하자마자 레이첼의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가까이 와봐."


아, 역시 그랬나. 현성은 레이첼의 부름에 망설임 없이  앞에 다가섰다.

레이첼의 키가 작은 편이었기에 현성은 레이첼을 똑바로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깊게 숙이고도 모자라서 무릎을 살짝 굽혀야만 했다.

"뭐 따로 시킬게 더 있는건가요?"


현성이 수수하게 웃음을 지으며 레이첼에게 말을 건냈고. 레이첼은 짙은 눈썹을 좁혔다.


그러고는 갑자기 발을 위로 올리더니...

콱-



현성의 정강이를 세게 걷어찼다.

"으윽..."


절로 튀어나오는 신음. 현성은 왜 때린건지 영문 조차 몰랐다. 그러나 레이첼은 정강이를 붙잡으며 고통스러운 표정일 짓는 현성을 지나 건물 쪽으로 걸어갔다.


덜컥-

문이 열리는 소리.


레이첼은 건물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쪽에서 허리를 꼳꼳히 편채로 씩씩거리며 현성을 노려봤고.

"건방지게 앞으로 걸어가고 있어... 뒤질라고."

쾅-!


자기  말만 거칠게 내뱉고는 귀가 울릴만큼 거세게 문을 닫아버렸다.

현성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이내 엘프는 예민하다는 브랜드의 말을 떠올렸다.

자신보다 앞에서 걸어간게 신경을 거슬리게 했구나...


현성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는 않았지만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이에 굴하지 않고 다시금 건물의 문 앞으로 다가가 문을 두들겼다.

쿵쿵-

"죄송해요! 얌전히 청소할테니까 문 좀 열어줘요!"

덜컥-

사과와 하고픈 말이 안까지 들리도록 크게 외쳤다. 그러자 얼마 안 가 문이 열렸고. 그 안에서 여전히 얼굴을 붉힌 채로 씩씩거리는 레이첼이 보였다.


"이번 한 번만 봐줄테니까 들어와."

아, 받아줬다.

다행히 레이첼은 그리 화가 난 모양새는 아닌 듯 했다.


이윽고 현성은 약간의 기대감을 품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엘프의 집인데 뭔가 색다른게 있을.. 테니...?


"와우, 쒸엣..."

안으로 들어가자 마자 보이는 광경과 물씬 풍겨오는 말로 형용할  없는 악취에 평소 쓰지도 않던 어휘가 튀어나온다.


정말 이게 맞나 싶을 정도.


어떻게 사람이 여기서 살 수 있을까? 라는 순수한 의문이 들 정도였다.


"마지막으로 청소한게 언제죠..?"

"음... 한 번도 안 했는데?"


하아, 대답을 듣는 순간 심장 깊은곳에서 부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청소를 아예 안 했다니,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삼일에 한 번은 청소를 하던 현성으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없었다.


"이거 본인 집은 아니죠?"

"...친구한테 빌린 집이긴 하지."

오우야, 심지어 자기 집도 아니란다. 그런데 어떻게  지경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이것도 엘프란 종족의 특성일까. 어쩌면 신이라는 작자들이 엘프에게 완벽에 가까운 외모를 주고 위생관념을 가져간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약속을 했고 마나에 대해서 배우려면 청소를 해야만 했다.


그리고 현성은 가장 먼저 청소를하는데 방해만 될 것 같은 레이첼을 내보내기로 했다.

자기가 사는 집을 이 지경이 될 정도로 방치한 사람이 청소에 필요할 리가 없다는 것에 대한 대답은 그 누구에게 물어도 똑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을 터였다.


"청소해야 되는데.. 여기 있을 거에요?"

그래도 대놓고 나가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돌려서 말을 꺼냈다. 그런데 레이첼은 눈치란 것이 없는건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 모르니까 남아있을 거다. 괜히 헛짓거리  생각은 꿈도 꾸지마."

헛짓거리라니,  집에 훔쳐갈게 뭐가 있다고 그러는걸까. 뭐... 잘 찾아보면 값어치 있는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숨길 곳도 없는데 무슨 걱정을...


"그러면 마음대로 하세요."

결국 현성은 레이첼의 뜻을 존중했다.

생각해보니 버릴 것 하고 버리면  되는 것을 구분하려면 레이첼이 있긴 해야 됐다.


나중에 가서 필요한 물건이 없어지는 불상사는 없어야 될테니까.

"...왠지 내가 나가기를 바란 것 같은 눈치다, 너?"


어이쿠, 의외로 눈치가 빠른 편인지 레이첼은 정곡을 찔러왔다. 하지만 현성은 애써 무시하며 집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어디서 부터 치워야 될지 견적을 쟀다.


다행히도 옛날에 청소일을 해봤기에 대강 어떤 식으로 청소를 하는지 익히 알고 있었다.


문제라면 집이 더러운 것도 더러운건데 넓기까지 하다는 것. 과연 이것을 혼자 하루만에 청소를 할 수 있을까 싶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