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화 〉용사입니다. 이 엘프는 확실히 더럽네요. (15/89)



〈 15화 〉용사입니다. 이 엘프는 확실히 더럽네요.

쓰레기.


악취.


쓰레기.


악취

쓰레기.


악취.

정신 나갈  같에.

현성은 청소란게 쉬운 일이 아님을 새삼스레 다시 한 번 느꼇다. 가끔 너튜브에서 더러운 집을 청소하는걸 보면서 아이고 힘들겠구나, 싶었는데. 설마 그 짓거리를 자신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청소 일을 해보긴 했지만, 빌딩 내부를 청소하는거라 심각할 정도로 위생 상태가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 집은 너튜브에서 본 것, 그 이상으로 위생상태가 최악이었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은...

"아, 그건 버리지 마라."

옆에서 버리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는 레이첼이었다.


멀쩡한 물건을 버리지 말라고 말하는거라면 뭐라 하지도 않겠는데...

"아, 그것도 버리지 마."


왜 당장에 버려야 될 것을 버리지 말라고 말하는걸까.

그리고  찌든때가 안 낀 구석이 없는 천쪼가리는 또 왜?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냐고.


아무리 현성이라 해도 이런걸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건  왜요? 아무리 봐도 쓰레긴데..."


쓰레기.

쓰레기라는 말에 레이첼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따악-

조막만한 주먹이라도 맞으면 아팠다.

"애착 담요, 애착 담요! 어딜 봐서 쓰레기라는 거냐?!"


아, 담요였구나. 그런데 얼마나 오래 썻으면 담요가 손수건 정도의 크기가 될 정도로 닳은걸까.

이것 또한 미스테리였다.


더군다나 왜 물건을 이지경이 될 때까지 안 버리고 납둔건지 조차 모르겠다.


애착이라고 말하면 단가?

분명히 담요가 사람이었으면 먼 옛날에 제발 죽여달라고 빌었을 터였다.

현성은 속으로 온갖 불평불만을 내뱉으면서도 척 봐도 쓰레기지만 애착 담요라 불리우는 것을 한쪽 구석에 고이 모셨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갖가지 이유로 버려지길 거부 당한 물건들이 잔뜩 쌓여있었다.

역시나 그곳에 모인 물건들은 전부 다 하나같이 어딘가 나사가 빠진 것들, 쉽게 말해 쓰레기였다.


이건 물건을 아껴쓰는게 아니다. 다 쓰고도 버리지 않는걸 어떻게 아껴 쓰는거라고 말할  있겠는가.


애초에 소모품으로 만들어진 걸 이렇게까지 해서쓰는건지 조차 현성은 의문이었다.


"앗, 그것도 버리지 마라!"

...

뭐, 내 물건도 아니니 마음대로 하라지.


현성은 해탈했다.


그리고 여기서 드는 한가지 의문.


"청소는 마법으로 안 돼요?"


마법이라면 뭔가 만능일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닌가?

"되면 진작에 했지, 멍청아!"

곱게 말하면 되는걸 굳이 성질을 낸다.


엘프는 역시 예민의 끝판왕인걸까.




***



고된 노동에 시간의 흐름을 느낄 새도 없다.

물건 정리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 창밖을 보니 석양이 지고 있었다.

쓰레기로 판명난 것들은 밖에 내놓고. 기어코 버리지 않겠다는 쓰레기와 그나마 멀쩡한 것들은 고이 나무 상자에 담아 한쪽에 모셔뒀다.

이제 다음 차례는...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나니  너머에  다른 쓰레기가 보인다.

하아... 이번에도 보는 순간 한숨이 새어 나온다.


악취의 근원이 어디인가 했더니, 거의 모든 악취가 이곳에서 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냄새가 심했다.



"이건 또 뭐에요?"


현성은 진심으로 뭔지 모르겠어서 물었다.


적어도 이 전에 치운 쓰레기들은 형체라도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것들은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


곰팡이 같은 것이 핀 것 같기도 하고...


"음... 취미로 요리해 놓은걸 놔뒀다. 근데 이제 실패를 곁들인...."


...

요리해 놓은걸  안 먹는거지? 더군다나 실패한 요리는 버리는게 정상이 아닌가?

이번에도 도저히 상식선에서 이해할  없는 행동의 결과물이 튀어나옴에 현성은 얼척이 없었다.


한마디로 저건 음식물 쓰레기.

그것도 방치해두는 바람에 굳은데다가 곰팡이 까지 핀,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쓰레기였다.


다행이라면 이 쓰레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전에, 악취를 하도 맡아서 코가 마비 되었다는 것이었다.


만약 이 냄새를 그냥 생으로 맡았다면...


어후, 상상도 하기 싫었다.


레이첼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공간에서 살아온걸까. 미스테리가 하나 더 추가 됐다.

"주머니 같은거 없어요?"

현성은 잡생각은 떨쳐내고 주머니를 찾았다. 음식물과 식기를 구분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저 음식에 오랫동안 닿은 식기라면 찝찝해서라도 버리고 싶을텐데 과연 레이첼이 버릴지가 미지수였다.

그리고 또 한가지,  세계에서는 분리수거라는 개념이 있나? 애초에 쓰레기는 어떻게 처리하는 거지?

전부 자신이  리가 없는 것들.

그러니 현성은 일단 치우고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맨손으로 비우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기에 코를 막을 것과 행주로 쓸만한 물건을 찾아 해맸고.

결과적으로 레이첼이 버리지 말라고 한 물건들과 버리라고 한 물건들에서 하나씩 가져왔다.

행주 용은 쓰레기들 중에서 아무 천이나 가져왔고. 코를 막을 것은 버리지 말라고 한 물건들 중에서 그나마 천의 형태를 유지한 것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현성은 나름 완벽한 무장을 갖추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우고자 했다. 마침 레이첼도 주머니를 찾아온 모양이었다.

"자, 여기. 특별히 내가 가져온거니 부담감을 가지고 쓰라고."

겨우 주머니를 쓰는데 부담감을 가지라니. 정말로 괴상한 말이었다.

이윽고 현성은 주머니를 받아들고 접시에 눌러붙은 음식물을 주머니 안으로 밀어넣었고. 비어진 접시는 차곡 차곡 쌓아놨다.

한 접시, 또 한 접시, 또 또 한 접시, 또  또 한 접시...


.....

또 또  또 또  또 또  또 한 접시.

이건 몇 번째 접시일가. 어느순간 숫자를 세다가 포기했다.

아마 기억하기로는 오십을 넘긴 순간 부터였을 거다.

"무슨 음식을 먹지도 않고 쌓아놓기만 했어요? 실패 했으면 버리던가 해야지..."


"그래도 정성껏 만들었는데 버리기는 아깝지 않나? 그래서 전시용으로 둔건데..."


탁-

현성은 레이첼의 발언에 이마를 쳤다.

이건 정말이지 기상천외한 답변이었다.

분명 레이첼은 지구에서 세상에 무슨 일이나 수성인 바이러스 같은 프로그램에 나간다면 역대급 빌런으로 길이길이 남을만한 위인이었다.

도대체가  엘프의 정신세계는 알면 알 수록 더욱 기가막혔다.

누가 봐도 쓰레기인 것을 애착이라며 버리지 않고. 놔두면 상할 음식을 정성스레 만들었다고 버리지 않았단다.

이게 말이야 방구아?

이것은 왠만하면 화가 나지 않는 현성 조차도 화병으로 쓰러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현성은 마지막으로 질문거리를 찾았다.

"음식을 해서 먹은 적이 있긴 있어요?"

설마 음식을 할 때 마다 실패해서 방치해 놓지는 않았을  아닌가. 현성은 내심 레이첼이 저 세상 요리실력을 가지지 않았기를 바랬다.

"애초에 먹으려고 만드는게 아니다. 본디 엘프의 뿌리는 요정이니 음식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으니... 정말로 대단하지 않은가?"

씨바알...


현성은 순간 화가 올라 뒷목을 부여잡았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찌됐든 맹점은

'애초에 먹으려고 만든게 아니다'

왜 먹지도 않을 음식을 만들고 있냐는 말이다.

현성은 살면서 많은 빌런을 만나왔지만, 과거에도 미래에도 이보다 답답한 빌런은 없을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당장은 침묵했다.

모든 일은 나중에 한 번에 풀어내자.

현성은 청소를  끝내고 나면 한  각 잡고 레이첼의  좋지 않은 성향을 뜯어 고치기로 다짐했다.


현성이 생각하기를 이것은 레이첼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분명 젊은 나이에 요절할 것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렇게 현성은 마저 음식물을 분리했고. 해가 완전히 지고 나서야 두 번째 청소를 완료했다.


음식물의 양이 얼마나 많았는지, 주머니를 삼분의  정도를 채운 상태였다. 그래서 그런지 악취가 더욱 심해졌다.


안 그래도 악취가 나는 것들을 한데 모아놨으니 강화된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현성은 주머니의 입구를 묶고선 밖에다가 내놓고 다시 들어왔다.

이제 남은 것은 환기를 하면서 먼지를 털어낸 후,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것.


그것만 하면 얼추 사람 살 곳은  터였다.

그러나 남은 것을 마저 하기에는 시간이 늦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해도 졌는데."

현성은 하루종일 굽이졌던 허리를 힘겹게 폈고. 우드득, 소리가 들리우며 개운함과 고통을 함께 느꼈다.


그리고 레이첼은 현성이 고생했다는 사실을 알긴 아는지, 어디서 가져온지는 몰라도 물 한잔을 건냈고. 현성은 주저없이 그것을 받고선 단숨에 들이켰다.


"크하... 살 것 같네요."

매마른 사막에 비가 내리 듯, 현성은 목을 타고 전해지는 시원한 느낌에 감탄을 했고.


주변을 둘러보며 처음보다 한층 깨끗해진 집 내부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꼇다.

"이 정도면 많이 깨끗해졌으니 만족해요?"


"흐음... 확실히 깨끗한 것 같기도 하고...?"


빈말이라도 깨끗하다고 해주면 덧나나. 이정도면 완전 깨끗해진 건데....

현성은 살짝 서운함을 느꼈으나. 본인이 그렇게 느끼는데 뭘 어떡하겠는가.

더군다나 애초에 보상을 목적으로 한 행동이었기에 불평을 내뱉은 여지 따위는 없었다.


"내일 아침에 다시 올게요. 아마 내일 오후에는 끝날 거에요."

"우오오... 그래, 수고했다. 들어가서 쉬도록 해라."


그래도 나름 만족하는지 주변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모습.

고개를 돌릴 때 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짧은 금발이 찰랑거리며 흔들렸다.

 모습이 아름답게 보일 법도 했지만, 이미 레이첼에 대한 환상이 벗겨졌기에 마냥 귀엽게만 느껴졌다.

이윽고 현성은 이곳저곳 집안을 누비는 레이첼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저택의 문을 나서는 순간, 딱 깨달았다.




다시 찾아온다던 남자의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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