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용사입니다. 엘프는 정신이 나갔다네요. (18/89)



〈 18화 〉용사입니다. 엘프는 정신이 나갔다네요.

현성은 입을 움직여 레이첼과 있었던 일들을 풀어냈다.

그리고 현성의 얘기가 끝날 때까지 에리엘은 턱을 괸 채로 경청을 하는 건지, 아니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마지막 얘기까지 끝 마치자 에리엘은 꽤나 감명 깊은 표정으로 힘없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딱히 별거 없는 얘기긴 했는데. 그래도 얘기를 해준 사람 앞에서 너무한 리액션이 아닌가.

현성은 에리엘에게 못 마땅한 눈빛을 보냈고. 에리엘은 그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고선 자기  말을 꺼냈다.

"그 집을 청소할 생각을 하다니. 너도 참 독하구나?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러는거 보면... 혹시 레이첼한테 반하기라도 했나?"

반하기는 무슨.


혹여나 꼬투리를 잡힐까 레이첼과의 구두계약을 빼먹고 설명했더니 셜록홈즈에 빙의해서 되도 않는 추리를 해온다.


현성은 그것을 똑같이 웃음과 무시 세트로 화답해 주었고. 에리엘은 뾰루퉁하게 입술을 툭 내밀어 보였다.


그런데 집주인이라는 사람이 왜 자기가 빌려준 집을 더럽게 쓰는데 그동안 치우라고 말도 안하고 있었던 걸까.

그것이 현성은 의문이었다.


"에리엘 씨는 레이첼 씨한테 집 치우라고 말 한  없어요?"


"뭐, 치우라고 말을 하긴 했지.."

아, 말을 했구나. 그런데 말을 흐리는  보니,  답이 보였다.

보나마나 귀찮아서 치우라고 말만하고 끝이었겠지. 레이첼은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그 지경까지 왔을 테고.


집이 더러워지는 과정은 대부분 그러니까.

하여튼 귀차니즘이 문제다.

레이첼의 집은 그야말로 귀차니즘이 가져다준 최악의 사례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윽고 현성은 레이첼의 집에서 느낀 이상한 점을 에리엘은 아는가 싶어 얘기를 꺼내고자 했다.


예를 들어 버려야 될 것을 버리지 않는다거나 실패한 음식을 방치하는 것 말이다.


현성은 에리엘에게 이에 대한 얘기를 꺼냈고. 에리엘은 답답한 한숨을 내쉬며 손을 저었다.

"엘프가 원래 그래. 뭔가에 집착하는 성향이 엄청 심하거든."

뭔가에 집착하는 성향.



얘기만 들어보면  강박증 환자와 비슷한 성향을 띄는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저것이 엘프들의 성향이라는 것.

현성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히 알고 싶었다.


"집착하는 성향이라는게 정확히  말하는 건가요..?"


"엘프는 말이야. 기본적으로 욕구가 거의 없는 생물체거든. 특히 식욕이나 성욕은 아예 없는 수준이고."

에리엘이 한탄하다 싶이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어디선가 얼핏 들은 얘기.

성욕은 브랜드에게서 들었고. 식욕은 레이첼에게서 들었던 가억이 났다.

"그런데 오래 살기는 더럽게 오래 살아. 너는 지금 내 나이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해?"


느닷없이 나이를 물어온다.

하지만 현성은  생각없이 질문에 맞게 에리엘을 판단하기 시작했다.

에리엘은 아무리 나쁘게 봐도 이십대 중반, 좋게 보면 이십대 초반으로 보였고. 이에 현성은 그 중간 쯤 되는 나이를 부르기로 했다.


"한... 스물 다섯 정도...?"

푸흡-

현성의 대답에 에리엘의 입가에서 침이 튀어나왔고. 곧이어 웃음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푸하하, 뭐라는 거야? 이백살이 넘은지가 언젠데."

이백살.


현재 현성의 나이가 스물 다섯인데, 이백살이면 8배. 하지만 넘겼다고 말했으니 8배 보다 더 차이가 날게 분명했다.


"하나도 안 늙었네요...? 오히려 엄청 아름다운데.."

현성은 솔직담백하게 에리엘에게 느낀점을 뱉었다.


이백살이 넘었는데 잔주름 하나 없는데다가 머리에는 윤기가 철철 흘렀으며 피부 또한 탱글탱글했다.


"뭐... 칭찬은 고맙게 들을게. 아무튼 내 말은."


에리엘이 현성의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말을 이었다.

설마 방금 칭찬으로 호감을 산건가 싶었다.

에리엘은 의외로 칭찬에 약한 타입인걸까? 현성은 일단 알아만 놓기로 했고. 에리엘의 이야기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별 다른 욕구도 없는게 더럽게 오래 살면. 겉은 멀쩡해도 정신이 맛이 가버리거든."


웃으며 말을 하는데 어딘가 엇나간 느낌.

그러나 현성은 여전히 에리엘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했다.

굉자히 복잡하고 어두운 얘기인 것 같은데, 그런 부류의 이야기를 단번에 이해하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다시 집중해서 듣자.

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똑바로 듣고 잇음을 행동으로 표현했고. 에리엘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한 번 생각해봐, 수백년 동안 매일 똑같은 얼굴 똑같은 풍경을 보고 사는 낙도 없이 살아가는데.  미치고 배겨? 그거 완전 미칠  같에, 정신 나가버린다고."

에리엘은 말을 이어나가면 나갈 수록 점점 억양이 고양되어 갔고. 급기야 악에  듯 억양을 거세게 높였다.

그리고 현성은 머릿속에 상상을 해봤다.


수 백년, 무려 수백년이다.

그 수백년의 시간 동안 똑같은 얼굴과 똑같은 풍경을 보며 산다는 것.


그 느낌이 정확히 어떤지는 몰랐지만, 현성은 아무리 생각해도 답답할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식욕도 없고 성욕도 없다니.


이 말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봐도 아무런 감흥도 없으며, 성관계를 나눠도 아무런 쾌락을 느끼지  한다는 말이었다.


헌데 그것 뿐만 아니라 다른 욕구도 없다.


즉, 왠만한 것에는 흥미와 호기심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

이것은 어떻게 보면 우울증이나 무기력증과 비슷한 부분이었다.

복잡하게 생각해봤자, 그런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완벽히 이해할  없다. 그렇기에 현성은 단순하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수백년 동안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을 달고 다닌다는 생각을...

으읏...!

생각만했을 뿐인데도 현성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살아도 사는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시체 일뿐, 도저히 살아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리라.


적어도 현성이 보기에는 그랬다.


그렇게 현성의 표정이 안 좋아진 사이, 에리엘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도 다행인게 뭔지 알아? 엘프 마다 특정 행동에 한해서만 쾌감을 느낀다는 거야."

불행 중 다행, 이 말이 딱 알맞는 표현이리라. 현성은 안타까운 와중에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삶의 낙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거니까.


그리고 현성은 문득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에리엘은 과연 어떤 것에서 쾌락을 얻는걸까.

현성은 곧바로 머릿속에 든 의문을 꺼내 에리엘에게 대답을 구했다.

"에리엘 씨는 쾌락을 얻는 방법을 찾았나요?"

...

핫-

별다를게 없는 듯한 웃음.

그러나 현성은 그 웃음이 어딘가 엇나가 있음을 느꼈다.

"나? 나는 어디서 쾌락을 얻냐고? 알고 싶어?"


한순간에 눈이 맛이 갔다.


에리엘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고. 이마를 짚고 흐느적 거리며 현성에게 다가갔다.

현성은 이번엔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도망칠 수 없었다는 표현이 맞았다.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는데 어찌 도망을 칠까.


서서히 다가오는 에리엘의 모습을 보며 현성은 해탈하게 웃었다.


스윽-

"이러면 말 안 해도 알려나?"


에리엘은 어느샌가 현성의 무릎에 걸터앉아 목에 팔을 감싸며 달콤하게 유혹하듯 말을 건냈다.

"하지마요."

현성은 애써 침착하며 에리엘을 만류했다. 허나 에리엘은 손을 뻗어 현성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난 말이야. 너 같이 순진한 남자를 괴롭히고 쾌락으로 물들일  살아 있다고 느껴."

뭐라 할 말이 없다.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할까.


사람이 진심으로 당황하면 할 말을 잃는다고 하던데, 지금 이 딱 그 상황이었다.

에리엘의 행동이 너무도 당황스럽다.


그렇게 벙찐 상태로 에리엘을 바라 보고 있으니, 에리엘은 손을 점점 아래로 내리며 다시 입을 움직였다.

"그런데 말야... 앞으로 있을 일이 정말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난 재밌을 것 같은데, 후후..."


씨발.

잘못 걸려도 제대로 잘못 걸렸다.

어쩐지 자꾸 틈만 나면 재밌다고 하더니 그런 이유였나.


에리엘의 사정은 안타까웠지만, 현성은 누군가의 쾌락을 얻기 위한 소모품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성은 가슴부근에서 어느샌가 바지 속을 침입하는 에리엘의 손을 뿌리칠  없었다.


그나마 현성은 아직 소중이가 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았고. 그래 봤자 현성의 성기가 커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슥-


"흐윽..!"

아, 너무 좋다.

이 손길.


 감촉.

현성의 성기는 에리엘의 손길이 살짝 닿자마자 활력이라도 얻었는지 순식간에 한계치까지 커져버렸고. 현성은 반사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좋아, 씨발?"

처음 봤던 날 처럼 수위 높은 욕설을 뱉으며 현성을 자극해온다. 그러나 현성은 아슬아슬 하게 이성과의 줄다리기를 하며 간신히 버텼다.

대답하면 지는거다, 대답하면.

어떻게든 끝까지 버틴다.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 굴에 잡혀가도 버틴다고 조상님께서 말씀하셨다.

"이걸 참네, 씨발럼이. 그새 내성 생겼나 보다?"

고삐가 풀린듯 서슴없이 험악하게 말을 내뱉는다.


"절대 안 넘어 갈거니까, 꿈도 꾸지마."


저도 모르게 말을 놓으며 단호한 결의를 비췄다.


"휘유, 대단한걸?"

에리엘은 그런 현성의 모습에 놀랐는지 휘파람을 불고선 입꼬리를 올렸고. 현성은 순간 에리엘을 자극시켰음을 느꼇다.


"어디 한 번 이것도 참아봐."


아니나 다를까 에리엘은 더욱 의지를 불태우며 현성에게 저돌적으로 달려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