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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화 〉용사입니다. 이 남자는 뭔가요. (29/89)



〈 29화 〉용사입니다. 이 남자는 뭔가요.

정답을 맞췃다며 레이첼은 머리를 쓰다듬어왔지만, 정작 어떻게 보고 느끼는 지는 말해주지 아니하였다.


그저 별로 어려운 것은 아니니 스스로 해답을 찾으라고 말하고는 저 멀리 벽에 등을 기대어 관전 모드에 들어섰다.


그리고 현성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레이첼의 말을 따라 마나를 보고 느끼고자 했다.

마나를 보고 느낀다.


레이첼이 이미 자신은 마나를 다룰 줄 안다고 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또한 마나는 의지를 담아 발현시켜야만 그 형체가 보인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의지를 보이면 마나는 알아서 형체를 보이지 않을까? 란 순수한 생각이 피어났다.

일단 해보자.

저번 처럼 아무 일도 안 일어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윽고 현성은 지난 번 처럼 브랜드를 따라해 보고자 했다.

앞으로 손을 뻗으며 연기 같은 것이 피어나는 상상을 하며 의지를 태운다.


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무슨 감각이라도 느낄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바람이 손등을 스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저 멀리서 레이첼이 반응을 보여왔다.

"오, 벌써 얼추 감은 잡은건가?"


감을 잡았다니. 지금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걸 보고도 무슨 소리를 하는걸까?

현성은 의문에 눈썹을 한데 모은 채로 레이첼을 바라봤고. 레이첼은 방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내가 말했지 않았나. 너는 이미 마나를 다룰 줄 알지만, 보고 느끼지를 못할 뿐이라고."

...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충 지금 내 손에서 마나라는 것이 연기 처럼 피어나고 있다는 얘기인걸까? 다만 그것을 내가 못 보고 있을 뿐이고.


"마나에 의지를 불어넣는 것은  상상과 집중력의 영역. 너가 얼마나 자세하게 상상을 하고 집중을 하느냐에 따라 마나는 더욱 활발하게 행동한다."

상상과 집중력의 영역, 현성과는 상당히 거리가  분야였다. 다만 레이첼이 이것을 괜히 알려줄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레이첼의 말에 중점을 두고 실천해봐야 초기 단게를 성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현성은 그 어느 때 보다 뇌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번째, 상상.

현성은 무엇을 상상해볼지 부터 고민했다. 일단은 확연하게 티가나는 것이 좋을  같기에 그런 쪽으로 생각해보았고.  결과, 물건 같은 것을 들어올리는 것이 좋아 보였기에 대충 tv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염동력 처럼 해보기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이제는 무엇을 들어올릴지 생각해볼 차례인데... 아무래도 처음 시작은 쉬워보이는 것 부터 하는게 좋을  같으니 근처에 널부러진 돌맹이 중 어느정도 크기가 있는 것을 골라 잡았다.


너무 작은 것도 곤란할테니 말이다.


다음으로  번째, 현성은 돌맹이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저것을 들어올린다는 상상을 정말로 자세하게 해봤다.


속도는 물론 각도까지 심지어는 그 주변의 풍경까지 머리에 담았다.


이걸로도 모자를  같아서 눈이 아플 정도로 돌맹이를 강렬하게 노려봤다.

우웅-


흔들린다.

거짓말 같이 돌맹이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를 기점으로 머리가 지끈거릴 수준으로 집중하자 돌맹이는 흔들리는 것을 넘어서 하늘로 점차 떠올랐다.


"...이게 되네?"

툭-

집중을 푸는 순간 돌맹이가 떨어졌다.


다만 확실한 것은 성공했다는 사실. 현성은 정말로 될 줄은 몰랐기에 놀란 감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하지만 여전히 마나가 보인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단순히 마나를 다루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그러니 아무것도 못 느끼지. 다시해라."

아, 이게 아닌가 보다.

현성은 레이첼이 고개를 저으며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자 다시금 자세를 잡았다.

방금은 마나를 다루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고 했으니, 돌맹이를 들어올리는 것과 같은 행위는 마나를 보고 느끼는 것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기에 제외했다.


그렇다면 현성은 생각을 전환하기로 했다.


미친게 아닐까 싶었지만, 마나와 대화를 시도해보는게 어떨까? 하고 말이다.


"음... 마나 씨?"

뭐라고 불러야 될까 모르겠어서 아무렇게나 불렀다. 또한 그러면서도 오글거림에 자괴감이 들었지만 현성은 닭살이 돋는 것을 참아내며 마나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이어나갔다.


"실례가 안 된다면 모습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그... 대화를 나누고 싶은데.."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이 나이 먹고 허공에다가 혼잣말을 뱉을 줄은 몰랐는데, 이건 다 큰 어른이 할 짓이 아니었다.

헌데 왜일까.

뭔가 주변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고. 문득 바로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레이첼이라고 하기에는 레이첼은 저 멀리 벽에 등을 기대고 있...

어라? 레이첼의 표정이 뭔가 이상해 보였다. 왜인지  눈을 크게 뜨고선 놀란 듯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에리엘이라도 온걸까? 그렇다고 치기에는 반응이 너무 과한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현성은 고개를 돌렸고.


"...!!!"

왠 말총 머리를 하고선 상의를 벗고 있는 근육질의 남자가 떡하니 서있음에 놀라서 심장이 떨어질 뻔함에 심장 부근을 움켜잡았다.

"누..구세요...?"


현성은 놀란 가슴을 간신히 달래며 갑자기 등장한 남성을 향해 입을 열었고. 남성은 현성을 향해 입꼬리를 씨익 올리더니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흐하하! 그대가 나를 부르지 않았는가?"


내가 불렀다고? 이 사람을?

현성은 눈앞의 남자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키는 자신보다 컸다. 얼핏봐도 2m는 넘어 보일 정도. 더군다나 근육질의 몸매가 왠만한 보디빌더 선수를 압도했다. 또한 온몸에 나 있는 흉터가 결코 펑범한 인생을 살지 않았음을 말해주었다.


헌데 아무리 봐도 어디서 본 것 같지도 않고.  남자의 이름 조차 모르는데 어떻게 부르겠는가. 현성은 남성을 의심스레 쳐다봤고. 그 옆으로 레이첼까지 다가와 남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설마 이거..."


레이첼은 이 남자에 대해서 아는 눈치, 하지만 어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오호, 그대는 강자이구려. 동토의 용병 구루카가 인사드리오이다."

동토의 용병 구루카.

소개부터가 범상치 않았다. 헌데 레이첼은 남자의 소개를 듣자 마자 손가락으로 삿대질을 하며 뒷걸음질을 쳤고. 현성은 이를 유심히 바라봤다.

"말도 안 돼... 정말로 영혼을 소환했다고?"


영혼을 소환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현성은 당연하게도 뭐가 뭔지 알 수 조차 없었다. 분명 구루카라는 남자를 향해 하는 말이 맞기는 할텐데...


"아니... 저 지금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는데.. 설명 좀 해주면 안 될까요..?"


현성은 둘을 번갈아 쳐다보며 상황을 정리해주길 희망했고. 이에 응답한 것은 레이첼이 아닌 구루카였다.


"나는 이미 오래전 죽은 몸, 나의 영혼은 마나가 되어 온세상을 떠돌아 다니고 있었다네. 그리고 그대의 부름에 내가 응답한 것이고."


...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그러고 보니 구루카는 내가 자신을 소환했다고 말하였다.


또한 레이첼은 영혼을 소환했다고 말하였고.

그렇다면...


설마 진짜로 내가 이 남자를 이곳에 불렀다는 건가?


현성은 생각이 정리되며 결론이 나오자 경악을 금치 못 했다. 그냥 미친 척하고 했던 행동이 이런 결과를 도출 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당신이 제 마나인건가요..?"


"정확히 따지자면 그대의 주변에 모인 수많은 마나들 중에 한명이지, 나 말고도 무수히 많은 존재들이 그대를 지켜보고 있다네."


아니....


이게 무슨...?

지금 상황을 정리하기 조차 벅차다. 그러니까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무수히 많다는 얘기인건가...?

현성은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다소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지켜보고 있다.


설마... 그렇고 그런 짓들까지 본걸까..?

"지켜본다는게, 제 평소 생활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본다는 얘기인가요..?


현성은 제발 아니기를 빌며 구루카를 향해 어색한 웃음과 함께 식은땀을 흘리며 물었고. 구루카는 다시 한 번 호탕한 웃음과 함께 현성의 오른쪽 어깨에 팔을 걸쳐왔다. 그러고는 슬며시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 모양을 만들더니 다른 한  손의 검지로 그곳에 넣었다 빼는 행위를 선보였다.


조금이라도 성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알법한 제스쳐.

"크흡... 큼!"


현성은 다급하게 헛기침을 하고는 레이첼이 눈치채기 전에 구루카의 손을 몸으로 가렸고. 구루카는 정말 즐겁다는 듯이 배꼽을 잡고선 자지러지게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 사내 대장부가 여인을 품을 수도 있는 것이지. 왜 그리 부끄러워 하는가?"

"아.. 아니! 저기 그, 그런 말씀은?!"

구루카는 현성이 채 막아보기도 전에 개인적인 성생활을 토로했고. 현성은 우왕좌왕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당황한 모습을 여실히 드러냈다.


아니  남자가.


왜 남의 사생활을 큰소리로 입밖에 내뱉는단 말인가. 옆에 레이첼도 있는데..!


현성은 거의 오열하다 싶이 레이첼을 바라봤고. 곧이어 새침때기 표정으로 죽일 듯이 노려보는 레이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에리엘인건가..?"

초장부터 정답을 맞춘다. 현성은 눈빛이 흔들렸고. 레이첼은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찼다.


아, 수치사할 것만 같다.


현성은 구루카에게 원망서린 시선으로 죽일 듯이 노려봤고. 구루카는 휘파람을 불며 뒷짐을 진 채로 딴청을 피우기 시작했다.

"에리엘이 맞냐고 물었다."

이미 표정으로 알았을텐데도 재차 확인해온다.


현성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고. 레이첼은 팍, 하고 현성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이 자와 중히 나눌 얘기가 있으니 지금은 이걸로 넘어가겠다. 하지만 나중에 제대로 설명을 해야 될 거다. 또한 현성, 그대가 누구와 정사를 나누든 상관은 없으나, 그게 내 친구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법이다. 그러니 각오하고 있어라."

아아... 제대로 미운털이 박힌 느낌.

솔직히 억울한 감도 있긴 했지만 레이첼의 입장도 이해가 가긴 했다.

어떻게 보면 제자가 자신의 친한 친구와 성적인 관계를 맺었다는데 충격을 받는건 당연했다. 더군다나 선을 확실하게 긋지 않았는가.

누구와 정사를 나누던 상관은 없다고. 지금은 온전히 상대가 에리엘이기에 화가 난게 맞았다.

현성은 자신이 잘못한게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레이첼의 입장에서 생각 해보면 화낼만도 했기에 양심적인 이유로 반성했다.

이윽고 레이첼은 현성에게서 고개를 돌려 구루카를 바라봤다.  시선이 굉장히 강렬하게 꿀이라도 발라 놓은게 아닐까 싶었다.

"동토의 용병 구루카라고 했던가?"


다시 한번 구루카의 신변을 확인하며 레이첼은 눈을 빛냈고. 구루카는 강렬한 웃음과 함께 자신의 가슴을 툭툭 치며 스스로를 강조했다.

"그래, 이 몸이 동토의 용병 구루카가 맞소."

동토의 용병 구루카.



레이첼은 그를 보며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는 느낌을 받았다.

구루카를 보며 호감을 품은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레이첼의 그런 느낌을 받은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먼옛날, 실피드의 배신과 함께 허무하게 사라졌던  백년에 걸친 마나에 대한 연구. 그 연구의 실마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희망이 보인다. 이번엔 성공할  있다.

레이첼은 현성을 슬쩍 눈에 담았다.

그리고 역시 현성을 제자로 들이기로 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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