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용사입니다. 부르기 싫습니다.
와르르-
레이첼이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허공에서 왠 책들이 잔뜩 쏫아져 내리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고. 현성은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면서도 눈은 책에 적힌 글자를 바라봤다.
분명히 처음 보는 글자임에도 신기하게 머리로는 전부 이해가 다.
대충 훑어보니 하나같이 [기초] 라는 단어가 빠짐 없이 들어가 있었고. 대부분 '무슨 무슨 마법의 기초' 라고 적혀 있었다.
"이것은 마법사들이 틀을 짜놓은 마법들이다. 마나를 보고 느낄 줄 알게 되었으니, 이제 부터는 마나와 교감하여 마법을 발현 시키는 것을 배울 차례다."
마나를 교감하여 마법을 발현 시킨다. 이것은 마나를 다루는 것 보다 상위의 개념인걸까? 어쩌면 완전히 다른 개념일 것 같기도 했다. 현성은 갖은 의문을 품으며 이것을 레이첼에게 그대로 전했고. 레이첼은 엄하게 고개를 저으며 그 둘은 완전히 다른 개념임을 말했다.
"마나를 다루는 것은 온전히 상상력과 집중력 그리고 마나와의 교감의 영역. 하지만 마법은 마나와 약속을 하여 특정 단어를 뱉음으로써 어떤 식으로 기적을 일으킬지 미리 정해놓는 것이다."
아아, 현성은 어느정도 이해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쉽게 말하면 마나를 다루는 것은 애드리브 연기라고 볼 수 있고. 마법은 미리 짜놓은 연극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법은 그저 마나를 조금 더 실용적이고 범용성있게 마법사들이 하나의 틀을 만들어 놓은 것, 상황에 맞게 애드리브를 하는 것 보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연기를 할지 미리 정해놓는 편이 더욱 자연스러운 무대가 완성 될테니 말이다.
대충 이렇게 이해하면 됐다.
왠일로 단번에 이해가 되는 것이 현성은 스스로가 대견하다 느꼈고. 현성은 바닥에 널부러진 책들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 것을 손에 쥐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이 책들을 하나씩 읽으면서 공부해야 된다는 얘기겠지.
현성은 그렇게 이해하고 손에 쥔 책을 촤르륵 빠르게 넘기며 대충 훑어봤다. 물론 그 내용은 제대로 보지 않았다. 어차피 나중에 실컷 보게 될테니 말이다.
그리고 현성은 책을 다시 덮고선 다소 경직된 웃음을 지었다.
공부를 다시 해야 된다니. 현성은 안 그래도 돌머리가 금강석 수준으로 굳어버렸는데 생각만해도 큰일이란 생각이 들었고.
막상 공부하려고 하니 뼛속부터 공부와는 안 맞는 몸이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듯 했다.
"그러면 이것들을 읽고 이해하면 되는 거죠?"
현성은 다소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레이첼에게 물었고. 현성의 질겁한 속마음과는 달리, 레이첼은 무슨 말을 하냐는 듯이 눈을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뭣하러 이해를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어차피 마법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마법사가 하는 것이라고는 단순히 마법명을 외치는 것 뿐, 굳이 마법사가 마법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이해할 필요가 없다..?
현성은 이것이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리고는 대충 넘기고 제대로 보지 않았던 책의 내용을 다시 살피기 시작했다.
헌데 책의 내용은 정말로 레이첼의 말대로 단순했다.
마법명과 그 마법의 효과.
딱 두가지만 적혀 있고 끝이었다.
그렇다면 마법명만 안다면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누구나 손쉽게 마법을 쓸 수 있는 건가?
"보나 마나 멍청하 생각을 하고 있는 표정이다. 현성."
"으윽.."
단순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옆에서 레이첼이 태클을 걸어왔다. 하지만 레이첼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럴 리가 없었기에 묵묵히 다음으로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마법은 마나의 입장에서 보면 어떠한 교감도 없이 명령을 받는 것, 그것을 마나가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의무는 없다."
"즉, 마법명을 외친다고 해서 마나가 그것을 곧이 곧대로 실행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네요?"
생각해보니 레이첼의 말은 당연한 얘기였다.
분명 마나에게도 의지와 생각이란 것이 있다. 당장 구루카만 봐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러니 무작정 마법명을 외치는 것은 친하지도 않은 친구한테 갑자기 심부름을 시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행위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마법은 마나와 약속하여 특정 단어를 뱉을시 어떠한 기적을 만들어낼지 미리 정해놓는다고 레이첼이 말하였다. 그 말은 즉슨, 현성이 해야될 것은 마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나와 교감을 하는 것이었다.
너무도 간단한 사실.
마법사와 마나의 관계를 어떻게 단정지어야 될지는 아직은 모르겠으나,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결코 갑을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현성은 이 사실을 깨달았고. 레이첼도 현성이 깨달았음을 고개를 끄덕임으로 표현하자 마저 입을 열었다.
"현성, 마나는 단순히 다룰 수 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마나와의 교감을 통해 얼마나 마나와 친해지냐에 따라서, 너가 가진 힘이 강력해지는 것이다."
완벽히 이해했다.
현성은 마나와의 교감에 집중해야 함을 완벽하게 인지했고. 레이첼도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음을 알았는지, 어제 처럼 벽에 등을 기대었다.
"현성, 오늘부터 너는 오로지 마나와 교감을 하는 것에 집중할 예정이다. 이것은 내가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없으니 혼자서 해야되는 일이다. 혼자서도 잘할 수 있다고 믿어도 되나?"
"교감하는 것 쯤이야, 살아오면서 항상 하는건데. 뭐... 어려운게 있나요?"
레이첼이 마지막으로 주의를 전하는 말에 현성은 살갑게 입꼬리를 올리며 자신감 있게 말을 꺼냈다.
교감.
이것은 현성에게 너무도 익숙한 일이었다.
봉사를 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가 교감이었으니 말이다.
"뭐... 막히는 것이 있다면 뭐든 물어봐라. 어느정도 조언을 해줄 수 있으니."
레이첼이 마지막 말을 남기며 벽에 등을 완전히 기대고선 입을 앙 다물었다.
이에 현성도 다시 자리를 잡고 바닥에 주저 앉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마나와 교감하기를 시작했다.
첫 시작은 마나를 보는 것.
현성은 감각을 되살려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마나를 눈에 담았고. 슬그머니 손을 뻗어 마나를 어루만지는 시늉을 했다.
비록,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져지지는 않았지만. 의지와 생각이 있는 생명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 듯, 마나가 즐겁다는 듯이 현성의 움직임을 따라왔다.
신기한 느낌, 마치 강아지 처럼 쫄래쫄래 따라오는 것이 귀엽게도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 안에 구루카 같이 덩치 크고 험악한 인상의 남자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등골에 소름이 끼친다.
헌데 마나와 교감한다는 것은 계속 이러고만 있으면 되는 걸까? 이런다고 교감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현성은 그런 생각에 구루카를 불러 볼까 하다가 순간 멈칫했다.
아무래도 아침에 일이 생각나 부르기가 영 꺼림직 했다.
"뭐 하는가, 현성? 내가 마나와 교감을 하라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멍하게 있으니 레이첼이 지켜 보다가 답답했는지, 어느새 옆에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교감을 하면 좋을지 생각 중이었어요."
세부적인 내용이 많이 사라졌지만 틀린 말이 아니다. 현성은 뻔뻔하게 방긋 웃음으로 무마하려 들었고. 레이첼은 그런 현성에게 말을 툭 던졌다.
"현성, 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 정석적인 방법은 마나를 보고 느끼는 것에서 시작하여 교감을 통해 마나를 다루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너는 선행 과정 없이도 마나가 교감을 해오기 때문에 별다른 노력 없이도 다룰 수 있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나?"
이건 모르겠다.
"음... 모르겠네요."
"마나를 보고 느끼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교감에서 대부분이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허나, 현성. 너는 마나가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마나를 다룰 수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성, 너에게 부족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나?"
어, 음.. 정리하자면.
마나를 보고 느끼는 것 자체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마나와 교감하는 것에서 많은 시간을 소모한다.
그러나 나는 마나가 먼저 다가오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마나를 다룰 수 있던 것이다.
대충 이정도.
현성은 정리한 내용을 곱씹으며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얼마 안가 현성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떳다.
"그렇다면 제가 직접 마나와 교감하고자 한 횟수가 다른 사람들 보다 엄청 적은거네요."
"맞다. 마나는 너에게 수없이 교감을 해왔겠지만. 너는 이제 막 마나를 보고 느끼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니 당연히 마나가 교감을 시도하려고 해도 그것을 볼 수가 없으니 받아들일 수 없었겠지,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마나와 교감함으로써 조금 더 마나와의 친해질 필요가 있다."
결론은 마나와 교감하는 것에 몰두하라는 내용.
하지만 그것은 조금 전에 이미 말한 내용이지 않은가. 현성은 왜 했던 말을 또 하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었고. 레이첼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또한 현성, 너는 다른 용사와는 다르다."
다르다? 현성은 자신이 다른 용사들과는 다르다는 말에 머릿속에 물음표를 띄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가 다르다는 것일까.
"제가 다른 용사와는 다르다고요?"
"그래, 내가 아는 한 너 처럼 처음부터 마나와 교감을 통해 영혼을 불러내는 것을 성공한 용사는 없었다."
아, 현성은 의문을 밖으로 꺼내자 마자 곧바로 대답을 해오는 레이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여전히 본래 가지고 있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레이첼은 왜 이런 얘기를 하는건가. 현성의 의문은 계속 유지되었다.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전혀 모르는 듯 한데. 맞나?"
"네, 하나도 모르겠어요."
현성은 단 한점의 부끄럼 없이 모른다고 솔직히 말했고. 이에 레이첼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현성, 너는 영혼을 불러냄으로써 마나와 직접 교감을 나눌 수 있다. 이것은 마도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부러워 할만한 것이다."
아아.
현성은 레이첼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알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마나와 직접 교감을 나눌 수 있으니 깊이 있는 교감을 가질 수 있다는 얘기였다.
한마디로 문자로 대화를 주고 받는 것과 직접 만나서 대화를 하느냐의 차이.
당연히 직접 만나 대화를 하는 것이 더욱 친밀감을 느낄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힘들겠지만 영혼을 불러내어 대화를 시도해봐라. 지금은 금방 지치겠지만 그것은 너의 집중력과 체력의 문제이니 적응하다 보면 점점 불러낼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날 것이다."
결론적으로 영혼을 불러내어 대화를 해보라는 말.
그리고 그것은 현성이 그토록 꺼림직하게 느꼇던 행동이었다.
...
이렇게 되면 발을 뺄 수가 없지 않은가.
현성은 수많은 감정이 섞인 한숨을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