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용사입니다.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48/89)



〈 48화 〉용사입니다.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현성은 기억이 돌아옴에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아인이 소환환 왠 불타는 괴물이 쏟아낸 불길에 휩싸인 자신의 모습을.


그러면서도 온몸이 불타는 고통이 다시금 떠오름에 현성은 식은땀을 흘렸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고통은 몸이 불타는 고통이라고는 들었으나, 그것이 그렇게나 고통스러울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 했다.

뜨거운 것이 신체에 닿는 경험이라면 보통은 기껏해야 라면 국물에 화상을 입는 정도가 최대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현성은 그 고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에 질겁하여 고개를 강하게 양옆으로 저으며 생각을 떨쳐냈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그래봤자 보이는 것이라고는 주변을 가득 채운 갈대와 눈앞에서 실실 대고 있는 적색 바람의 환생 뿐이었지만 말이다.


뚝- 뚝-

"그래서 여기는 어디에요?"

현성은 주변에 널리고 널린 갈대의 줄기를 손으로 끊으며 물었고. 적색 바람의 환생은 그런 현성의 행동을 따라 자신도 마찬가지로 갈대의 줄기를 손으로 끊으며 답했다.


"으음, 뭐라 명명하기에는 힘들다. 그저 죽고 나서 마나의 일부가 된 존재들의 공간이라 생각하면 그나마 이해하기 쉬울거다."


현성은 적색 바람의 환생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리로는 이해하기 바빳다.

그러니까 이곳이 적색 바람의 환생이나 구루카 같은 영혼들이 있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았다.

"그러면 구루카 씨나 다른 분들도 이곳에 잇는 건가요?"


현성은 자연스레 질문을 추가하며 대화를 연장했고. 적색 바람의 환생은 그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이곳은 내 고유의 공간, 구루카를 비롯한 다른 동료들도 각자의 공간에 존재하고 있을 거다."

아, 현성은 추가적인 설명을 듣고나서야 완벽히 이해했다.


결론은  드넓은 들판은 적색 바람의 환생 고유의 공간, 구루카를 비롯한 다른 영혼들도 이런 비슷한 공간에 살고 있을 거라는 얘기일 터였다.


그리고 여기서 현성은 머릿속에 한가지 의문이 추가적으로 들었다.

이런 공간을 가지게  데에는 특정한 이유가 있을 터, 아무 이유가 없진 않을테니 말이다. 현성은 그런 의문을 품으며 곧장 질문을 추가했다.


"그렇다면 이곳은 적색 바람의 환생 씨에게 어떤 공간이에요?"


현성의 솔직한 질문, 적색 바람의 환생은 그 질문을 듣자 마자 튀어오르  몸을 일으키더니  팔을 활짝 펼치며 봉긋 솟은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당차게 입을 열었다.


"이곳은 내가 위대한 업적을 이룬 영광의 장소다."

위대한 업적을 이룬 영광의 장소.

그 말을 내뱉은 적색 바람의 환생의 목소리는 격양되어 있었고. 얼굴은 상기되어서는 커다란 감격을 받은  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레 설명하는 예술가와 같은 모습.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순수한 감정을 드러낼  있는걸까.

이것 또한 현성은 궁금해 했고. 주저없이 입밖으로 뱉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말하는 것만 보면 엄청난 일이 있었을 것 같은데."


현성은 호기심에 들떠하며 상체를 앞으로 숙이며 물었고. 적색 바람의 환생 또한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에 맛이라도 들린 것인지, 입꼬리를 올려 베시시 웃고선 두 팔을 활짝 펼친 상태로 몸을 한 바퀴 돌리고는 자랑스레 두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이곳은 우리 부족의 영원한 숙적, 칠흑의 늑대를 무찌른 장소다."


칠흑의 늑대.


적색 바람의 환생은  이름을 얘기하며  어느 때보다 격양된 표정을 지었다.

언뜻 이름만 듣기에는 중2병 같기도 하면서도 멋스러운 이름이었고. 현성은 고작 늑대를 잡은 것이 저렇게까지 할 행동인가 싶었으나, 이내 이 세계는 자신이 살던 지구와는 완전히 다른 곳임을 깨닫고. 가슴이 웅장해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구에서의 늑대라면 대형견 보다는 크고 사자나 호랑이 보다는 작은, 설산에서나 살 법한 동물이었고. 한창 학교에 다녔을 때 수학여행으로 간 동물원에서 본 것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보았던 늑대만 해도 귀여우면서도 멋있음에 심장이 두근 거렸는데, 무려  세계의 늑대였다.

이것은 남자라면 가슴이 웅장하게 두근거리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칠흑의 늑대는 어땠어요?"


현성은 한껏 들뜬 호기심에 고양감 마저 들어 더욱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고. 적색 바람의 환생은 환히 웃고는 현성의 손목을 붙잡고선 밤하늘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외쳤다.


"말로 설명하는 것 보다는 직접 보는게 나을꺼다!"


 상황과 대화를 즐기는 모습. 언뜻 보면 지나치다 싶었지만 아름다운 여성이 즐거워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기에 현성은 덩달아 즐거워지는 기분이 들었고. 적색 바람의 환생은 그런 현성의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품으로 안기게 만들어 번쩍 들어올리더니, 이내 하늘 높이 뛰어올라 넓은 들판에 우두커니 자리잡은 바위의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현성을 던지듯이 그 위에 내려놓고는 손가락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저기를 봐라, 현성! 저것이 칠흑의 늑대다!"


현성은 적색 바람의 환생이 갑작스레 보인 행동에 잠깐 가출했던 정신줄을 되찾고선, 그 말을 따라 정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괴생명체에 순간 온몸 구석구석이 경직된 듯한 느낌에 호흡 마저 제대로 뱉지 못 했다.

[크롸아-!!!!!!]


저 멀리 들판의 한 가운데에서 왠 거대한 늑대가 울부짖는다.


아니, 저것을 늑대라 칭하는게 맞을까.

저 멀리 존재하고 있음에도 밤하늘에 떠오른 달을 가릴만큼 거대한 몸집과, 주변이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칠흑 같이 어두운 검정색의 털은  칠흑의 늑대라 불리우는지 이해시켜 주었다.


"아으...으으.."

현성은 순식간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정신을 지배했으나, 두려움에 잠식된 몸은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고. 난생 처음으로 오금이 저린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두려워 하지마라. 저것은 그저 내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옆에서 적색 바람의 환생이 생각 이상으로 두려움에 치를 떠는 현성의 모습에 진정시켜 왔으나, 현성은 저것이 환상이던 말던 압도적인 위압감이 온몸을 짓누름에 숨이  막혀왔다.

현성은 저 괴물에 비하면 브랜드와 함께 숲에서 만난 초록 피부의 괴물은 애교 수준이었음을 느꼈다.

이 세계에는 저런게 널리고 널린게 아닌가라는 생각과 함께 적색 바람의 환생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저것을.


저 거대한 괴물을.


적색 바람의 환생은 저런 괴물을 어떻게 해치웠다는 말인가.


"으음, 아쉽지만 여기까지만 보는게 좋을 것 같.."


"아뇨, 잠깐만요.."

여기서 끝내려는 것 같은 적색 바람의 환생의 말에 현성은 다급히 말을 끊으며 그것을 막아섰다.


두려웠다.

아무리 환상이라 하더라도 두려운 것은 두려운 것이었다.

공포 영화에 나오는 귀신이 허구임을 알아도 밤이 되면 계속 떠올라 괜히 소름이 끼치는 것과 같은 느낌의 것이었다.


다만 현성은 저것을 계속 보고 싶었다.

저 멀리 보이는 칠흑의 늑대의 마주편에 적색 바람의 환생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여기서 끊었다가는 아쉬움에 후회할 것만 같았다.  두려움을 조금만 참고 계속 지켜보면 엄청난 것을  수 있을  같은 느낌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저기..  사람은 누구죠..?"

현성은 조금이나마 진정된 심장을 쓰러내리며 칠흑의 늑대 앞에 서 있는 여자를 가리키며 물었고. 적색 바람의 환생은 그런 현성의 말에 다시금 격양된 미소를 보이며 고막이 터져라 당차게 외쳤다.


"저것은 나다! 지금  광경은 내가 칠흑의 늑대와 싸우던 현장이다, 현성! 두 눈 크게 뜨고 봐라!!!"


아아, 얼핏 예상하고는 있었는데 역시나 저 여자는 적색 바람의 환생이었다.


그리고 현성은 지금 두 눈에 보이는 모든 광경이 그 어떤 블록버스터 급 판타지 영화의 전투씬을 가져와도 비교가 안  광경임을 확신했다.

이것은 아무리 많은 돈을 손에 쥐어줘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3D도 아니고 4D도 아닌, 현실 그 자체나 마찬가지인데 당연한 것이었다.


이윽고 현성의 마음속엔 어느샌가 두려움의 감정은 사라지고 흥미진진함이 가득찼다.


옆에서 저런 식으로 흥분의 감정을 표출하니 그에 전염되어 덩달아 격양되어감이 분명했고. 현성은 입을 다물지 못  채로 칠흑의 늑대와 적색 바람의 환생의 모습을 지켜봤다.

그렇게 한층 진정된 상태로 차분히 엄청난 장면을 두 눈에 담으니, 현성은 그제서야 눈앞의 상황이 온전히 담겼다.


이미 둘은  차례 거하게 싸운 상태에서 대치하고 있었던 것인지, 상황이 고조되어 있는게 확연히 보였다.


[크롸아-!!!]


칠흑의 늑대가 고개를 치겨들며 울부짖자,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나며 드센 주둥아리 앞에 검은 구체가 생겨났고. 그 반대에 위치한 적색 바람의 환생은 손에 쥐어진 붉은색으로 빛나는 활의 시위를 잡아당겼다.


하지만 정작 활에는 화살이 걸려있지 않았고. 적색 바람의 환생은 그저 당연하다는 듯, 묵묵히 시위를 한계치까지 당기고 자연스레 손아귀에서 놓았다.

파앙-!!!

적색 바람의 환생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적색의 바람, 분명히 화살 같은 것이 걸리지 않았음에도 화살의 형상을 한 광활한 적색의 바람이 돌풍 처럼 회전하며 살벌한 소리와 함께 매섭게 앞으로 나아갔고. 그와 동시에 칠흑의 늑대의 주둥이 앞에 형성된 검은 구체가 역동적으로 뻗어 나갔다.

그렇게 검은 구체와 적색 바람의 화살은 서로 잡아먹을 듯이 만나 한차례 큰 소동을 일으켰다.


후웅, 소동의 여파로 강한 바람이 바위가 있는 곳까지 불어왔고. 현성은 거센 바람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 했다. 그러나 겨우겨우 실눈만을 뜬 상태로 이어지는 두 존재의 전투를 눈에 담았다.


[크롸아!!]


후웅-


칠흑의 늑대가 앞발을 휘두루자 칠흑 같이 검은 것이 반달 모양을 그리며 흉측한 기운을 내뿜으며 전진했고. 적색 바람의 환생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움직였다.

타닥, 적색 바람의 환생은  번의 움직임으로 공격의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곧이어 엄청난 소음과 함께  다시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적색 바람의 환생은 다시  번 시위를 당겼고. 순식간에 한계치까지 당겨진 시위가 거칠게 놓아지자 이번에는 적색 바람으로 이루어진 수백 갈래의 화살이 저 마다의 선을 그으며 칠흑의 늑대에게 향했다.


칠흑의 늑대는 당연하게도 그것을 얌전히 맞아줄 생각이 없었는지 육중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재빠른 움직임으로 화살의 경로에서 벗어고자 했으나.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수백 갈래의 화살은 칠흑의 늑대의 움직임을 따라갔다.


이에 칠흑의 늑대는 드넓은 들판을 뛰어다니며 몸집에 걸맞는 거대한 꼬리를 휘두루며 수백 갈래의 화살을 무용지물로 만들었고. 다시 한 번 크게 울부짖었다.


[크롸아-!!!!]


아, 가슴이 웅장해진다.

 감정은 남자라면 누구나 들 수 밖에 없었다.

현성은 어느새 두 주먹을 꽉 진 채로 흥미진진하게 두 존재의 전투 장면을 구경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