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8화 〉용사입니다. 기사는 싸웁니다. (58/89)



〈 58화 〉용사입니다. 기사는 싸웁니다.

방안 가득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들이찬 상태.

브랜드는 구석진 곳으로 몰렸고. 하는 수 없이 에리엘을 뒤쪽에 내려놓고선 벽을 등지며 적들을 상대하게 되었다.

후웅-

브랜드가 휘두른 검날이 바람을 갈랐고. 브랜드에게 달려들던 검은 갑옷을 입은 남성은 비명 조차 지르지 못 한 채,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이걸로 얼마나 죽인걸까. 브랜드는 앞에 많이도 쌓인 목 없는 시체과 분리된 머리들을 바라봤다.

 해도 열구는 넘을 터, 바닥에는 그만큼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 피로 흥건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적들의 수는 군집 속의 벌레만큼이나 많았고. 죽여도 죽여도 눈앞에 파도 처럼 밀려오는 땀내 나는 남정네들을 보면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마 조금씩 쌓여온 시체들이 이들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았다면 꽤나 힘들었을 듯 했다.


다만 다행히도 이들은 정말로 오합지졸이 맞았기에 상대하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동료들이 하나둘씩 죽어나가자 그것을 맨앞에서 지켜보던 놈들의 눈빛에 살고싶다는 욕망이 번뜩였고. 그런 앞의 상황도 모르고 뒤에서 자꾸만 밀쳐대니 앞에  이들은 어거지로 무기를 휘두르며 달려들 뿐이었다.

물론 그 결과는 뻔하디 뻔하겠지만 말이다.

"씨...이발! 기생오라비 같은 새끼한테 쫄까보냐!"

"한꺼번에 가! 어차피 혼자잖아, 씨빨!!"

드디어 놈들 중에서 한 명씩 덤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한꺼번에 달려들고자 한다.

허나 그래봤자 다들 눈치나 본다고 정말로 달려든 것은 둘 뿐이었고. 더럽게 허접한 것은 그대로였다.

쿵, 당차게 달려오던 놈들  하나가 바닥에 널린 시체에 걸려넘어졌고. 다행히도 남은 한 명은 제대로 덤벼들었다.

후웅-

캉-!

브랜드는 엉성하게 휘둘러진 무기들을 침착하게 받아침과 동시에 가로로 검을 휘둘렀다.

촤악-

예리한 날이 덮쳐오던 기사의 적을 베어냈고. 앞서 죽은 기사와 마찬가지로 비명 조차 지르지 못 했다.

하지만 적에게 자비를 배풀어서는 안 되는 법.

브랜드는 목을 잃고도 한동안 똑바로 서있는 몸뚱아리를 걷어찼고. 이제 막 일어선 넘어진 기사의 목을 단칼에 베었다.

너무도 허무한 죽음이었으나 그래도 어쩌겠는가. 실전에서 큰 실수를 저질렀으면 죽는 것 말고 더 있나.

이걸로 시체 두구 추가, 브랜드는 검끝을 정면으로 매섭게 내새우며 살의에 가득찬 눈빛을 띄웠다.

"니들도 덤빌거냐?"

필사즉생 필생즉사,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것이다. 브랜드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전투에 임했다.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이들의 머릿속에 가득찬 두려움이 사라질테니 브랜드는 역으로 필사의 모습을 보였고. 그것이 제대로 먹혔는지 기사들은 겁에 질려 단체로 뒷걸음질 치는 모습이 참 볼만했다.

저런 것들이 어떻게 기사가 된걸까? 오러는 커녕 제대로 된 자세도 모르는 족속들이 기사가 됐다는 것은, 인생의 반 이상을 수련하여 정석적인 루트로 기사가 된 브랜드의 입장에선 지극히도 고까운 것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브랜드는 저들에게 짙은 살의를 보였다.

수준의 차이.

자신과 저들간에 얼마나 커다란 차이가 있는지 몸소 보여주겠다. 어차피 뒤는 없었다.

이윽고 브랜드는 슬슬 이들에게 진심을 보일 필요가 있다 느꼈다. 처음에는 저들의 수준을 몰랐기에 수비적으로 행동하였으나 이제는 저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파악했고. 충분히 혼자서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혹여나 저들 중에서 높은 실력을 가진 자가 있을 수도 있었으나, 설령 그렇다 해도 일단은 머릿수 부터 줄여나야 나중에 편한 것은 분명했다.

우웅-

붉은색의 오러가 검날에 서렸고. 브랜드는 눈앞의 저들에게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고자 검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고쳐 잡아 그대로 뒤로 빼어 자세를 잡았다.

한 번의 베기.

 한 번의 베기로 이들의 반을 벤다.

브랜드는 가로로 검을 내지르며 순간적으로 오러를 증폭 시켰고. 그러자 방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붉은 반달 모양의 검기가 뿜어져 나와 저들을 갈랐다.

구웅-

굉음과 동시에 브랜드는 물씬 올라오는 허한 느낌에 몸을 떨었다.

몸안을 채우고 있던 오러의 반 정도가 지금의 공격으로 사라졌으니 당연한 것이었고. 브랜드는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으나 정면을 응시했다.

의도한 것 보다 오러를 과하게 몰아넣은 것인지 방안에 가득 들이차 있던 이들 모두가 반으로 갈라져 죽음을 당했다. 허나 거기에 더 나아가서는 복도 쪽의 벽까지 함께 배어져 무너졌고. 덩달아 그 뒤에 있던 이들까지도 죽은 것이 보였다.

그에 따라 당연히 저택 곳곳이 피로 물들어져 진한 피비린내가 사방에서 풍겨옴에 브랜드는 한껏 인상을 구겼고. 그래도 그만큼의 성과를 거뒀으니 잠깐 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잠깐 내려놓았던 에리엘의 상태를 살폈다.

에리엘은 그 사이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정신마져도 놓았는지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안 그래도 새하얗던 피부가 창백해질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다.

스윽, 슬쩍 이마에 손등을 올려보니 죽은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체온이 많이 내려간 상태였으나 다행히도 가파른 숨이라도 내쉬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살아있음은 분명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안심은 금물이었고. 이대로 아무런 조치 없이 내버려 둔다면 이어지는 결과는 너무도 뻔했다.

이윽고 브랜드는 지혈이라도 잘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에리엘의 상의를 벗겼고. 꽉 묶어놨던 커튼은 피에 흥건하게 물이  상태였다.

그러나 어느정도 마른 상태인 것을 보면 지혈이 되었음을   있었고. 브랜드는 구태여 확인해보지 않은 채 다시 옷을 입혀 에리엘을 번쩍 들어올려 등에 매었다.

한 차례 큰 소란이 있었으니 이들의 동료가 오기 전에 이곳을 벗어나야만 했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한 손으로는 에리엘을 받치며 다른  손에는 검을 쥔 채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바닥에 깔린 시체들을 짓밟으며 브랜드는 복도로 나갔고. 복도 또한 시체들이 적잖게 있었기에 다시 한 번  시체들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목적지는 현성과 이로하가 있는 방, 브랜드는 그곳에 도착하여 이로하에게 에리엘을 맡기고 자신은 저택에 남아 있는 이들을 처리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계획이 무색하게 브랜드는 얼마 못가 모퉁이에서 튀어나온 투구를 쓴 덩치  남성의 등장에 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그리고 그 남성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차마 말로 형용할  없을 정도로 역함에 브랜드는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스윽, 브랜드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검을 남성에게 향하게 하였고. 모퉁이에서 나타난 남성 또한 브랜드와 시선을 마주했다.

광기어린 눈빛.

브랜드는 투구 사이로 비춰지는 남성의 눈빛을 보자마자 남성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느꼈고. 남성의 한 쪽 손에는 거대한 철퇴가 들려 있는 것을 보아하니 덩치에 걸맞게 적잖은 근력을 가진 듯 했다.

"너.. 여자..?"

역겨운 새끼.

흥분하다 못 해 격양 된 흉측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여자인지를 묻는 것이 대놓고 의도가 드러남에 브랜드는 혐오어린 눈빛으로 남성을 바라봤다.

"안타깝지만 남자다 역겨운 새끼야.."

"남자.. 남자인가...? 괜찮다 남자라도 맛만 좋으면 된다.."

...

아무래도 이상한 놈한테 잘못 걸린 듯 했다. 브랜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에리엘을 슬쩍 바닥에 내려놓았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거대한 무기를 휘두르는 놈을 상대로 에리엘을 지키며 싸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그에 따라 남성의 시선도 에리엘에게로 향했다.

"저건 여자다.. 확실하다.. 맛있는 거다!"

쿠웅, 쿵-

이럴 줄 알았다. 남성은 에리엘을 보자마자 발작하듯이 그 거대한 철퇴를 마구 휘두르며 달려들기 시작했고. 브랜드는 당연히 저 남성이 에리엘에게 접근하게 할 생각이 없었기에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남자는 관심 없다!"

"언제는 남자도 맛만 좋으면 괜찮다면서?"

캉-

짧막한 대화와 함께 두 사람의 무기가 만나 째지는 소리를 내었고. 브랜드는 팔을 타고 전해지는 충격에 입술을 꽉 깨물며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거대한 철퇴라고 하여도 한 손으로 휘두른 것인데도  정도다. 하지만 브랜드는 한 번의 합을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상대해야 될 지 파악했고. 검을 고쳐 잡으며 다시금 자세를 추스리고 굶주린 멧돼지 마냥 직선으로 달려드는 남성을 맞이했다.

후웅-

무지막지한 괴력에 의해 철퇴가 공기를 갈랐고. 브랜드는 이번엔 그것을 받아치지 않고 공격을 흘림과 동시에 남성의 발목을 걷어찼다.

"으윽..?!"

단순히 걷어찬 것이 아니라 발끝에 오러를 담아 찼기에 남성의 발목은 직각으로 꺽여 도저히 걸을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남성은 당연하게도 무릎을 꿇고 발목을 부여잡으며 고통스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브랜드는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퍼억-

브랜드는 곧장 타점이 낮아진 남성의 머리를 강하게 걷어 찼고. 남성의 목은 사람이라면 절대로 꺽일 수 없는 각도로 꺽이며 이내 몸이  늘어졌다.

뭔가 생각보다 쉽게 처리한 것에 브랜드는 얼떨떨 했지만, 그래도 쉽게 풀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기에 무심하게 축 늘어진 남성의 몸뚱아리를 발로 밀어 넘어트고는 등을 돌렸다.


헌데 왜일까 브랜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등뒤가 서늘한 느낌이 들었고. 언제나 그렇듯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뻐억-


예상치 못한 순간, 브랜드는 뭉툭한 것에 옆구리를 가격당해 그대로 벽에 부딪혔고. 다행히도 갑옷을 입은 상태였기에 치명상은 입지 않았으나, 고통만큼은 갑옷을 넘어 신체 내부에 퍼져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그리고 브랜드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 누가 자신을 공격했는지 부터 확인하고자 했다.

그러나 브랜드는 분명 죽은 줄로만 알았던 거구의 남성이 서있음에 자신이 환각을 보는게 아닌가 싶었다

분명히 목이 완전히 꺽였는데 어떻게 일어설  있단 말인가.

"아프다.. 브래쉬 화가 난다..!"

후웅-

브래쉬.

남성은 자신의 이름을 자기 입으로 뱉어내는 역겨운 말투를 보이며 철퇴를 휘둘렀고. 브랜드는 가까스로 옆으로 몸을 던져 공격을 피해냄과 동시에 바닥에 떨어트린 검을 손에 쥐었다.

허나 과격한 행위에 옆구리에 통증이 급격하게 올라왔고. 브랜드는 그것 마저도 참아내며 남성을 눈에 담았다.

여전히 목은 꺽여 있는 상태.

하지만 남성은 멀쩡해 보였고. 오히려 조금 전 보다도 역동적이었으며 특유의 역겨운 기운이 강해진 상태였다.

"왜 살아있냐?"

당연히 나올  밖에 없는 질문, 허나 남성은 묵묵히 머리를 손으로 집으며 꺽인 목을 다시 원래대로 되롤리는 기괴하고 괴이한 행동을 보였고. 브랜드는 저게 맞나 싶었다.

저정도 꺽인 것이면 부러지고도 남았을테고. 목뼈는 맞춘다고 해서 맞춰지는 뼈가 아니었다.

그런데 남성은 터무니 없게도 그것이 가능함을 몸소 증명해냈고. 이내 머리에 쓰고 있던 투구를 벗어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그러자 남성의 얼굴이 브랜드의  눈에 담겼고. 브랜드는 남성의 얼굴을 보며 인상을 거하게 찌푸렸다.

"너... 정체가 뭐냐..?"

이상한 질문.

하지만 브랜드는 그것을 물을  밖에 없었다.

투구를 벗으며 드러난 남성의 얼굴색은 옅은 보라색을 띄고 있었으며 얼굴 곳곳에 푸른 핏줄이 선명하게 도드라져 있었고. 이것은 도저히 인간의 얼굴이라고 볼  없었다.

그리고 브랜드는 남성에게서 무언가가 겹쳐져 보였다.

몇  전, 수습 기사이던 시절에 참전한 전투에서 보았던 마족들이 가진 특징.

거구의 남성은 흡사 마족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브랜드는 그제서야 남성에게서 느껴지던 역겨운 기운이 마족의 기운과 비슷하다 못해 거의 똑같음을 느꼈다.


또한 저것이 에리엘의 등을 찔렀던 단검과 똑같은 기운임을 뒤늦게 알아챘고. 그렇다면 에리엘이 왜 힘을 못 쓰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저주.

에리엘의 피부에 새겨진  문양은 마족의 저주였던게 분명했다.

그런데 무언가가 이상했다.

분명 제국에서 보내온 기사들일 터인데 왜 마족의 힘을 다룬다는 말인가.

브랜드는 순간 마족이 이곳까지 침범한게 아닌가 싶었으나, 엘프의 영역은 마족들이 주로 나타나는 지역과 너무도 멀리 있었으며. 마족이 이곳으로 오기 위해선 제국의 영토를  이상 가로질러 와야만 했기에 그것은 제국이 무너진 것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저들은 정말로 제국에서 보내왔다는 얘기인데 브랜드는 그것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브랜드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뭐가 어찌됐든 저 남성은 마족과 관련되어 있으며, 마족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것이 누가 됐든 즉결 처형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니 말이다.

툭, 브랜드는 옆구리 쪽이 산산조각이나 못 쓰게 되어버린 갑옷을 벗어 던졌고. 가벼워진 몸을 만끽하며 검을 손에 꽉 쥐었다.

마족의 힘으로 목이 꺽여도 살아있다면 베어버리면 그만이었고. 브랜드는 검날에 오러를 씌우며 살기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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