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용사입니다. 기사는 위기에 처합니다.
후웅, 거대한 철퇴가 빠른 속도로 궤적을 그리며 브랜드를 향해 빠른 속도로 휘둘러졌고. 브랜드가 머리를 숙이자 아슬아슬하게 머리 위로 철퇴가 스쳐지나갔다.
콰앙-! 후두둑-
브랜드가 피했기에 지극히 당연하게도 철퇴는 벽에 부딪혔고. 엄청난 굉음과 함께 철퇴와 맞부딪힌 벽이 산산조각이 나며 파편이 바닥을 굴렀다.
실로 엄청난 괴력과 거대한 철퇴가 만나니 그 파괴력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고. 브랜드는 저것에 한 번이라도 스치면 그대로 그 신체 부위가 터져버릴 것임을 짐작했다.
조금 전에 얻어 맞았을 때에도 갑옷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즉사했을 터, 더군다나 기사들이 입는 갑옷이 단순한 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음에도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난 것이라면 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
"죽어라, 남자!"
후웅-
거구의 남성, 브래쉬가 또 다시 철퇴를 휘둘렀고. 브랜드는 이번에도 가벼운 몸을 움직여 그것을 피해냈다. 하지만 남성은 그것에 그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걸어오며 철퇴를 연속으로 미친 듯이 휘둘렀고. 브랜드는 그것들을 모두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목숨줄을 연명했다.
다행히도 갑옷이 부서져 못 쓰게 된 것이 적지않은 이점으로 작용했고. 그와 더불어 복도라는 좁은 공간에서 저런 커다란 무기를 사용하는 것에는 큰 제약이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다만 문제라면 브랜드 또한 좁은 공간이라는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뒤로는 에리엘이 있기에 물러설 수 없고. 앞에는 거구의 남성이 철퇴를 연속으로 미친 듯이 휘둘러대니 브랜드로써는 미칠 노릇이었다.
반격을 하고 싶어도 그럴 틈을 안준다. 무기를 통째로 베어 버린다면 그만이겠지만, 그랬다가는 잘려나간 부분이 자칫하면 에리엘 쪽으로 날아갈 수도 있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애초에 남성과 브랜드의 공격 사정 거리부터가 극격하게 차이가 났다.
얼핏봐도 남성은 거구에 걸맞는 기다란 팔과 거대한 철퇴를 사용하고 있고. 반면 브랜드는 남성 보다도 팔이 짧은데다가 검의 길이는 남성이 든 무기의 반절도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무작정 잠깐의 틈이 생기길 바랄 뿐이었고.
그리고 그 순간은 브랜드의 생각보다 빠르게 찾아왔다.
"으윽..?!"
괴력을 뽐내며 무작정 무기를 휘두르던 남성이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렸고. 브랜드는 생각 보다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서걱-
오러를 머금은 검날이 브래쉬의 목을 베었고. 툭, 하고 남성의 목이 바닥을 나뒹구며 무수히 많은 양의 피가 천장에 소구치듯이 뿜어져 나왔다.
죽은 것이 확실한 상황.
하지만 브랜드는 검을 거두지 않았다.
보통이라면 이것으로 죽였다고 생각하고 검을 검집에 도로 집어 넣었겠지만, 이미 남성은 죽어마땅할 부상을 입고도 살아나는 괴기한 모습을 보였다. 또한 마족들 중에서는 목이 절단되어도 살아나는 족속들이 있었기에 브랜드는 방심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브랜드의 행동은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스윽-
목이 사라진 몸뚱아리가 움직인다.
그 기괴한 장면에 브랜드는 괴리감과 거부감이 올라와 몸을 떨었고. 남성의 몸뚱아리는 이내 바닥을 나뒹구는 머리를 집어들더니 그대로 절단된 면에 올렸다. 그러자 남성의 목은 거짓말 같이 붙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아무런 자국 조차 없이 멀쩡한 상태로 돌아왔다.
이게 무슨 일인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놀랄 시간은 없었다. 곧바로 브랜드는 목을 베어도 안 된다면 어디를 공격해야 남성을 쓰러트릴 수 있을지 고민했다.
"목을 벤다고 안 죽는다.. 브레쉬를 죽이고 싶다면 심장을 노려.. 어라?"
남성은 자신이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는 멍청한 반응을 보였고. 브랜드는 어이가 없어 허탈한 한숨을 뱉었다.
정말이지, 이런 놈을 상대로 시간을 붙잡아 먹고 있었다니. 브랜드는 기가 빠져나가는 듯 했다.
딱 보아도 지능에 문제가 있는 녀석인 것은 알았으나, 설마 자신의 약점을 자기 입으로 뱉을 줄을 몰랐다. 그렇지만 브랜드는 남성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 않았다.
저것도 다 연기일 가능성도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심장을 노리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연기가 아닌 정말로 약점을 뱉은 것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검을 일자로 눕히 듯이 들어올렸고. 곧장 자리를 박차며 앞으로 나아갔다.
거구의 남성은 아직까지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상태, 노린다면 지금이 최적의 기회였고. 브랜드의 검끝이 그대로 남성의 심장을 꿰뚫었다.
연이어서 브랜드는 곧장 검을 거칠게 뽑으며 뒤로 물러났고. 남성의 상태를 살폈다.
남성은 자신의 심장이 공격 당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점점 얼굴이 굳어가는게 보였고. 이윽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머리를 억세게 움켜 잡으며 몸을 웅크렸다.
"아으..?! 브래쉬 심장 뚫렸다! 브래쉬 죽는다!!!"
죽기 직전 발작이라도 하듯, 남성은 좁은 복도를 뒹굴며 양쪽 벽에 몸을 부딪혔고. 그럴 때 마다 벽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브랜드는 어쩐지 이상했다.
심장이 약점이었다고 하기에는 남성의 모습은 너무도 멀쩡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브랜드는 뒤에서 느껴지는 다른 이의 기척에 오싹함을 느꼈다.
브랜드는 망설임 없이 검으로 경계 태새를 갖추며 등을 돌렸고. 그곳에는 응접실의 복도에서 보았던 곱상하게 생긴 남성이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브랜드는 아무리 남성과 전투 중에 있었더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근접해 있는 동안 자신이 눈치채지 못 했다는 사실에 식은땀을 흘렸다.
또한 멀리서 보았을 때는 별것 아닌 잔챙이 처럼 보였으나, 가까이서 마주하니 마족의 꺼림직한 기운이 묵직하게 복도를 가득 채웠다.
"이야, 일부로 틀리게 알려주길 잘했네. 저럴 줄 알았다니까?"
틀리게 알려주었다니, 무엇을?
브랜드는 또 다른 남성이 가벼운 말투로 내뱉은 말에 집중했고. 다른 한 편으로는 무방비하게 놓여져 있는 에리엘의 곁에 서며 주의를 더욱 강하게 기울였다.
허나 곱상하게 생긴 남성은 그런 브랜드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고. 브랜드는 잠깐 사고가 정지하였으나, 이내 남성의 기척을 다시 읽었다. 남성의 위치는 거구의 남성의 옆으로 어느샌가 이동한 상태였다.
"으어어...!!! 브래쉬 죽기 싫다!!!"
거구의 남성은 여전히 죽기 싫다 부르짖으며 난동을 부리고 있었고. 곱상한 남성은 그 옆에서 거구의 남성의 몸을 발로 툭툭 치며 한심하게 내려다봤다.
"브래쉬, 일어나 병신아. 너 안 죽으니까."
안 죽는다는 말, 브랜드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조금 전에 남성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챘다.
거구의 남성의 지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일부로 잘못된 정보를 정해주어 사고를 방지했다는 건가. 브랜드는 동료 사이에서 저런 식으로 거짓 정보를 전한다는게 영 믿기지가 않았으나, 지금 상황에서는 그렇게 밖에 보이지가 않았기에 그러려니 했다.
그러는 사이 거구의 남성은 어느샌가 곱상한 남성의 말에 따라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크게 포효했고. 브랜드는 그 어느 때보다 험악하게 인상을 썼다.
거구의 남성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저 곱상하게 생긴 남성이 조금 전에 보여준 그 움직임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브랜드는 도저히 저 곱상한 남성을 자신이 이길 수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에리엘이라는 짐덩어리가 하나 있기는 했지만, 에리엘이 없었다고 해도 과연 결과가 달라질가 싶었다.
그럼에도 브랜드는 에리엘의 곁에 굳건하게 선 채로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그런 브랜드의 모습에 남성은 입꼬리를 올리며 조롱섞인 조소를 보였고. 브랜드는 대놓고 비웃는 모습에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허나 곱상한 외모의 남성은 전혀 싸울 마음이 없는지 팔자 좋게 복도에 엉덩이를 붙혀 앉았고. 거구의 남성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이며 덩달아 복도에 사이좋게 앉았다.
이것은 엄연히 자신을 얕잡아 보는 행위. 이는 브랜드의 심기를 건들이기 충분했고. 브랜드는 사납게 눈을 부라리며 둘을 노려봤다.
"지금... 뭐 하는 것이지..?"
싸늘한 목소리. 브랜드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짙게 뭍어났지만, 그럼에도 곱상한 남성은 여유롭게 웃음 지으며 브랜드의 질문에 답했다.
"까불지마, 너 같은 새끼 얼마든지 죽여버릴 수 있으니까."
지나치게 여유로운 발언. 그러나 브랜드는 남성이 말을 뱉음과 동시에 뿜어내는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마기.
거구의 남성은 단순히 옅은 마기가 느껴졌다면, 곱상한 남성에게서는 진한 마기가 느껴졌다. 정말로 마족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나 브랜드는 완전히 마음이 꺽이지는 않았다.
마족이 이 제국에 얼마나 많은 피해를 주었는가, 브랜드는 제국 국경 지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지나칠 정도로 마족을 향한 노골적인 적의를 가지고 있었고. 그러한 이유로 브랜드는 오히려 마음속에 품고 있던 마족에 대한 적의가 뚜렷하게 불타올랐다.
스윽, 브랜드는 검을 잡은 두 손에 더욱 강하게 힘을 주었고. 동시에 신체 내부에 남아 있던 모든 오러를 검에 담아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는 도망도 못 치며 정상적인 전투로는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온힘을 쏟아부은 한 번의 공격을 통해 변수를 창출하고자 했다.
이윽고 검날에는 강렬한 붉은색의 기운이 서렸고. 두 남성은 그런 와중에도 평화롭게 브랜드의 행동을 지켜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에 브랜드는 물씬 올라오는 욱하는 마음과 함께 검을 휘두르고자 했다.
서걱- 무언가가 잘리는 소리.
허나 브랜드는 아직 검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슨 소리란 말인가? 브랜드는 짧은 순간에 그런 의문을 품었고. 갑자기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내려 발 밑을 내려다봤다.
"어라..?"
팔.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팔 한 짝, 이것은 누구의 팔인가.
이윽고 브랜드는 왼쪽 어깨에서 느껴지는 허전함 감각에 고개를 그대로 왼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있어야 할 것이 없었다.
"아아... 아아악-!!!"
철커덕, 철붙이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그것은 브랜드가 손에서 놓친 검이 떨어진 소리였고. 브랜드는 뒤늦게 올라오는 고통에 괴성과 함께 몸부림을 쳤다.
왼쪽 팔이.
왼쪽 팔이 한 순간에 잘렸다.
브랜드는 어찌된 영문인지 조차 모른 채 고통섞인 신음을 토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