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용사입니다. 끝이 난 걸까요? (65/89)



〈 65화 〉용사입니다. 끝이 난 걸까요?

조금 전, 적색 바람의 환생이 보여주었던 압도적인 위용. 브랜드는 자신이 목격한 광경에 한 차례 전율을 느꼈다.

그리고 브랜드는 갑자기 나타난 여성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어디선가 나타나다니, 그것은 흡사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고. 여성이 보여준 단 한 번의 공격에 브록이 절명했다는 것에 감탄을 금치 못 했다.

비록 시체를 직접 본 것은 아니었지만, 브랜드는 검은털을 가진 거구의 야수로 변한 브록이 죽었음을 확신했고. 언제 쓰러졌는지 모를 현성의 곁을 지키던 적색 바람의 환생에게 넌지시 말을 건냈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헌데 당신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나의 이름은 적색 바람의 환생,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지?"

갑작스런 물음에도 적색 바람의 환생은 친절히 브랜드의 질문에 응답했고. 브랜드는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자신의 눈앞에 있는 존재가 감히 자신이 쳐다도   없을 정도로 위대한 업적을 세운 위인임을 기억해 냈다.

적색 바람의 환생, 조금이라도 세계의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그 이름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녀는 몇 백년 전, 대륙의 남쪽에 피바람을 몰았던 칠흑의 늑대라는 흉수를 해치운 존재였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칠흑의 늑대는 무려 타락한 신수였다. 기록에 따르면 평범한 사람은 앞에 서는 것만으로도 숨 조차 제대로 못 쉬어 죽어버릴 정도였고. 오러의 극의 경지에 달한 소드마스터를 비롯하여 마나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대마법사들이 힘을 합쳐 맞섰음에도 칠흑의 늑대를 상대로 고전을 금치 못 하였다 했다.

그리고 그런 칠흑의 늑대가 죽음을 맞이한 것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때였다.

대륙의 남쪽의 초원 지대에 살던 이들이 극한에 극한으로 모은 원정대가 칠흑의 늑대에게 괴멸에 가까운 패배를 겪은 후, 그로부터 얼마 뒤에 짙은 붉은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젊은 나이의 여전사가 홀몸으로 칠흑의 늑대와 맞서 끝에는 이겨낸 것이었다.

허나 처음에는 그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 대마법사가 전투의 흔적을 읽어내는 마법을 만듦으로써, 결국에는 그녀는 업적을 인정 받았고. 그녀는  시대의 영웅으로써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설적인 인물로 남게 되었다.

물론 그녀가 어떻게 칠흑의 늑대를 쓰러트릴 수 있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었다. 그저 그녀가 사용하던 활이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고만 기록 되어 있었다.

그리고 브랜드는 그런 존재가 왜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이 알고 있는 존재임은 분명했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그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뒤늦게 그녀의 물음에 답할 뿐이었다.

"브랜드.. 저의 이름은 브랜드라고 합니다"

"브랜드라.. 그대의 용기는 가히 존경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앞뒷 말도 없이 무작정 내뱉는 칭찬, 적색 바람의 환생은 브랜드가 싸우던 모습을 보며 진심으로 그가 보여준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본디 인간이란 죽음의 공포 앞에선 두려움에 흔들리는 법이었으나,  붉은 머리의 기사는 희망이라고는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싸움을 끝까지 포기하지 아니하였다. 심지어 팔이 잘려나간 상황에서도 말이다.

그렇기에 적색 바람의 환생은 진심을 다하여 브랜드를 칭찬했고. 브랜드는 갑작스런 그녀의 칭찬에 당황한 듯 얼굴을 붉히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위대한 업적을 세운 존재의 칭찬이었다. 이것은 무예를 갈고닦는 일면 더할나위 없는 영광이었고. 이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무튼간에 나는 여기까지가 한계이니, 그대에게 뒷처리를 맡기겠다."

마치 당장이라도 사라질  같은 말, 브랜드는 순간 지금  말이 무슨 뜻인지 묻고자 하였다. 허나 적색 바람의 환생은 물어볼 새도 없이 신체가 서서히 붉은색의 기운으로 변해가며 사라졌고. 브랜드는 그 광경을 보며 이것이 무슨 현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붉은색의 기운이 또 다시 정신을 잃은 현성에게로 흘러가는 것을 보며, 이것이 현성과 관계가 있음은 인지했다.

그리고 브랜드는 차츰 상황을 정리하고자 했다. 일단 저택 안에 적이 더 남아있음은 분명했다. 응접실의 복도에서 보았던 숫자는 복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시체들의 수보다  이상으로 많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소란스러운 현장에, 더 이상 적이 찾아오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무언가 이상했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저 멀리 멀뚱멀뚱 에리엘을 품에 안으며 주저앉아 있는 이로하에게로 다가갔다.

"이봐, 정신 차려."

"아... 끄.. 끝난건가요..?"

"끝난건 아니고. 잠깐 숨 돌릴 틈 정도만 생겼으니까, 두 사람들 좀 챙겨놔. 나는  일이 있으니까."

간략한 대화, 브랜드는 이로하에게 현성과 에리엘을 맡겼고. 곧바로 등을 돌려 브록의 시체를 확인하러 가고자 했다. 하지만 뒤에서 이로하가 떨리는 목소리로 건내는 물음에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팔은... 괜찮으신건가요..?"

팔, 브랜드는 그 말에 자신의 왼쪽 어깻죽지를 바라봤다. 붙어 있어야 할 것이 없는 허전한 상태, 확실히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브랜드는 팔을 잃을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만, 브랜드는 정말로 그랬다.

확실히 이 상태로는 본래 가졌던 실력의 반에 반도 이끌어낼 수 없겠지만, 오히려 팔 하나로 끝난 것에 다행이라 여겼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었는데  정도 상처로 끝난 것이라면  행운임은 틀림 없었다. 또한 브랜드는 앞으로 험난한 여정을 보내게 될텐데, 벌써부터 좌절해서는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좌절하고 절망의 늪에 빠지는 것 보다는, 상처를 극복하는 선택지를 골랐고. 태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이로하의 물음에 응답했다.

"뭐... 나쁘지는 않네. 조금은 어색하지만 말이야."

"...알겠어요."

브랜드의 아무렇지 않은 반응에 이로하는 눈쌀을 찌푸렸지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여기서 더욱 괜찮냐고 묻고 싶기는 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 한 주제에 그런 말을 하는  조차 실례라 생각하였고. 브랜드는 다시 브록의 시체를 확인하기 위해 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브랜드는 복도에 널린 시체를 발로 치워가며  앞으로 나아갔고. 몸통은 온데간데 없고 복도를 나뒹굴고 있는 브록의 머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브록은 질기게도 머리만 남은 상태임에도 살아있는 듯 눈을 깜박였고. 이에 브랜드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바닥에 널부러진 검을 손에 쥐었다. 아마 검은 갑옷을 입은 놈들 중 하나의 것일 터였다.

"크윽.. 안심하지 마라.. 이걸로 끝이 아니니까..."

머리만 남은 상태임에도 멀쩡하게 입을 연다. 하지만 브랜드는 브록이 점점 죽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러나 브록의 말을 무시하기에는 끝이 아니라는 말이 너무도 신경에 걸렸다. 그러고 보니, 바깥이 소란스럽지 않았던가. 또한 이들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했다.

분명 제국에서 보낸 것은 맞았다. 제국의 허가 없이 수백명 분의 갑옷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할테니까. 그러나 이들이 사용한 힘을 생각한다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브래쉬와 브록,  둘이 사용한 힘은 분명히 마족의 것이었고. 마족은 제국을 포함한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왕국과 적대적인 관계를 가진 이들이었다. 그런데 제국에서 보내온 기사단이 마족의 힘을 사용한다? 이것은 제국에서 마족과 결탁했다고 볼 수 없는 정황이었다.

"이봐, 너. 뒤지기 전에 좋은 일이라도 하고 가자. 너네 도대체 정체가 뭐냐?"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음에, 브랜드는 결국  죽어가는 브록에게 물어봤다. 당연하게도 대답이 돌아올 것이란 기대 따위는 품지 않았으나, 브록은 죽기 직전에 넋두리라도 하려는 심산인지 생각치 못하게 입을 열었다.

"정체..? 씨이발.. 몰라.. 원래는 그냥 죄수였었는데 말이지.."

죄수? 이것은 브랜드가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죄수는 죽었다 깨어나도 기사가 될 수 없으니 말이다. 애초에 기사가 되려는 이들의 대부분이 귀족 가문의 자제이거나, 정말로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인데. 그들 사이에 죄수가 끼어들 틈이 있을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브랜드는 브록의 말이 사실인지 아니면 거짓말인지 헷갈릴 수 밖에 없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한 귀로 듣고 흘릴만한 얘기는 아니었다. 만약 정말로 죄인을 대상으로 기사단을 모집했다면, 그러한 이유가 있을 터. 그리고 그 이유는 보나마나 듣기 좋은 이유는 아닐게 뻔했다.

어찌됐든 지금은 이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래서, 아까 말한 끝이 아니라는건 무슨 얘기인데?"

끝이 아니라고 했던 것, 브랜드는  얘기가 마음에 걸렸고. 브록은 그런 브랜드를 향해 마지막까지 비웃 듯이 입꼬리를 올리고는 미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괴이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크흐흐.. 지금 쯤이면 형님들이 바깥에 있는 엘프들을 전부 도륙해놨을 거다.. 멍청한 새끼야.."

형님이라니, 설마 이 녀석 보다 강한 존재들이 더 있다는 얘기인가? 브랜드는 이번에도 이것이 거짓말인지 진실인지 헷갈렸다.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최악의 상황인 샘이었으니 말이다. 또한 분명히 브록은 자신을 기사단의 단장이라고 소개하였던 것을 들었다. 그런데 기사단 내에서 단장 보다 윗계급인 존재는 없었기에 말이 뭔가 이상했다. 그러나 브록은 브랜드가 판단을 내릴 시간을  생각이 없었다.

"여기 온 놈들은 전부 잔챙이야.. 알아..? 씨발.. 우리가 황제 새끼 말을 똑바로 들을리가 있겠냐고.. 크헤헤."

그러거나 말거나 브록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을 주구장창 뱉었다. 확실히 브록과 브래쉬를 제외한 여태까지 상다해온 이들은, 기사라고 하기엔 너무도 약하긴 했기에 잔챙이라는 말이 어느정도 납득은 갔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가 문제였다.

만약 브록의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엘프의 영역은 쑥대밭이 되어버렸을게 뻔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도망치는 것 조차 불가능했다. 브록 보다도 강한 존재들이 영역 전체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제대로 된 상황이 파악이 안 되감에 브랜드는 브록에게 묻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결국엔 브록의 두 눈이 완전히 감겼고. 브랜드는 브록의 죽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순간.

콰앙-!

갑자기 벽을 뚫고 무언가가 날라왔고. 브랜드는 죽어버린 브록에게서 시선을 돌려, 갑자기 날아든 무언가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저택을 습격한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검은색의 갑옷을 입은 남자가 엉망진창이 된 상태로 바닥을 기고 있었고. 브랜드는 순간 당황하여 사고가 멈췄다.

"으으.. 사, 살려줘-!!!"

벽을 뚫고 날아온 남자는 다짜고짜 브랜드를 향해 손을 뻗어오며 절규하다 싶이 빌빌 기었고. 브랜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도움을 청함에, 저도 모르게 남자를 도와줄 뻔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며 검을 남자에게로 겨눴다.

"뭐야 너.."

뭐가 뭔지는 모르겠다. 허나 검은 갑옷을 입었다는 것은 적이라고 볼 수 있었기에 브랜드는 검을 겨눴고. 그럼에도 남자는 끊임없이 브랜드에게로 기어오며 손을 뻗어왔다.

도대체가 무슨 상황인 것인지. 브랜드는  수 없는 상황에 긴장을 했다. 그  무너진 벽을 통해 누군가가 나타났고. 브랜드는 검은 갑옷의 남자에 이어서 등장한 존재를 눈에 담아냈다.

로브를 몸에 걸친 백발의 노인, 허나 겉으로 몸이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상당히 단련된 몸이라는 것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또한 주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상당히 무거웠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느낌, 브랜드는 느닷없이 등장한 노인의 정체에 대해 조금도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자신에게 우호적인 성향을 가진 존재임은 알  있었다.

"허어.. 여기도  차례 소란이 있었는가."

백발의 노인은 복도의 상황을 확인하고는 안타까운 한숨과 함께 말을 꺼냈고. 느긋하게 걸음을 옮겨 남자를 향해 다가갔다.

우웅, 짙은 푸른색의 기운이 어디선가 나타나 남자를 감쌌고. 남자의 눈에는 절망에 가까운 두려움이 드리웠다. 저 힘의 주인은 아마도 백발의 노인, 브랜드는 저것이 마나임을 어림짐작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푸른색의 기운에 둘러싸인 남자는 점차 공중으로 떠올랐고. 백발의 노인은 그것을 무감각하게 바라보며 뒷짐을 지었다.

"마족과 손을 잡은 악한 것들이 살고자 발버둥 치는겐가?"

마족과 손을 잡았다. 브랜드 또한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었기에 별 다른 감흥은 없었다.

"사.. 살려주십쇼! 착하게 살겠습니다! 다시는.. 다시는 나쁜 짓 안하고.. 어.. 아무튼 착하게 살겠습니다!!!"

노인에게 사정없이 제압당한 남자는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는지, 처절하게 노인을 향해 목숨을 구걸했고. 그럼에도 노인은 매정하게 남자의 처절한 외침을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네 놈은 무슨 말을 해도 죽음은 면치   터, 허나 나는 그리 무정한 사람이 아니라네. 그러니 배후가 누구인지만 고백한다면 적어도 고통 없이 죽여주도록 하마."

남자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침묵을 택하고 고통스럽게 죽느냐, 아니면 배후를 밝힘으로써 편안하게 죽느냐였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죽는 것은 변함이 없다니. 지독하게 절망적인 상황이었고. 남자의 선택지는 뻔하디 뻔했다.

"다 말하겠습니다!!! 황제.. 카인드니안의 황제가 우리를 보냈습니다! 그러니 부디 고통스럽지 않..."

남자는 기사임에도 충성심 따위는 없었는지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자신의 배후를 전부 밝혔고. 남자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알을 뒤집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선 몸이  늘어졌다. 저것은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죽은 것이 확실했고. 브랜드는 검을 바닥에 버리고 빈손을 보이며 노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만약 노인이 적대적인 인물이었다면 위험한 행동이었으나, 브랜드는 노인이 확실하게 자신들을 도와줄 인물이라 판단했고. 그것은 정확히 적중했다.

"그대가 용사들을 타락한 자들로 부터 지켜주었는가?"

용사, 순간 브랜드는 그 말이 누구를 지칭하는가 햇갈렸다. 그러나 이내 현성과 이로하에게 가리키는 말임을 깨달았다. 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저 둘은 엄연히 용사의 신분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브랜드는 노인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해야 될지 고민했다.

현성과 이로하가 어떤 상황에서 이곳으로 올 수 있었던 것인지는 브랜드가 알 리가 만무했고. 정확히 따지고 보면 브랜드가 직접적으로 지켜준 것은 에리엘 뿐이었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자신이  둘을 지켰다고  수 없다 생각했다. 또한 브랜드와 에리엘이 위기에 처했을  도움을 주었던 것은 현성이었고. 브랜드는 만약 현성이 없었다면 자신은 이렇게 숨을 쉬고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 확신했다.

"아니요, 저는 너무도 무력했습니다. 오히려 용사들 중 한 명에게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브랜드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시선을 현성에게로 고정시켰다. 정말로 현성이 없었다면 죽었을테니까, 브랜드는 진심으로 현성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노인은 그런 브랜드를 보며 꽤나 감명받은 얼굴을 하였다.

"그대는 제국의 기사 치고는 상당히 올바른 관념을 가지고 있는 듯 하구나."

"제국의 그릇된 행보에 저는 기사라는 신분 따위는 버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이제는 그저 소신있게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노인의 말에 브랜드는 자신의 생각을 올곧게 얘기했다. 브랜드는 세계에 커다란 도움을 주는 용사를 돌연변이라 칭하는 제국의 행보에 불만을 품었고. 그렇기에 배신했다. 이는 매우 불명예스러운 짓이었으나, 브랜드는 제국을 배신한 결정에 대해서 조금의 후회 따위는 품지 않았다. 오히려 마족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에 제국을 향해 적대적인 감정을 더욱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당당하게 말할  있었고. 노인은 브랜드의 왼쪽 어깨에 손을 올리며 따스한 미소와 함께 말을 건냈다.

"나는 대마법사 아리스토, 내 명예와 직위를 걸고 그대의 용기 있는 선택에 존경을 표하네."

대마법사 아리스토, 브랜드는 다른  보다도 노인이 밝힌 자신의 정체에 망치로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도 그럴것이 아리스토라는 이름은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제국민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이름이었으니까.

명실상부 마법사들 중 가히 최강이라고 볼  있는 것은 현자였다. 이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다음으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를 말하라 한다면 대부분은 아리스토의 이름을 말할 터였다.

또한 아리스토라는 마법사는 과거 제국이 선보인 마나를 탄압하는 정책에 가장 먼저 나선 존재이며, 현재는 제국에서 돌연변이 왕이라 불리우는 존재였다.

그렇기에 브랜드는 자신이 마주하고 있는 존재가 제국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돌연변이 왕이라는 사실에 잠깐이나마 물씬 긴장감을 품었으나. 노인이 보여준 모습에 금새 그런 감정이 수그라 들었다.

"일단 엘프의 영역에 침입한 자들은 나와 동료들이 처리해 놨다네. 그러니 안심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하게나. 뒷처리 또한 내가 할테니 말이야."

다행 중에 다행인 말, 브랜드는 노인의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허나 돌연변이 왕이 이곳으로 왔다는 것은, 대륙에 커다란 사건이 터질 것임을 암시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브랜드는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노인은 그 말을 뒤로하고, 브랜드로부터 등을 돌려 다시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브랜드는 간신히 얼 빠진 정신을 차렸고. 이로하와 함께 현성과 이로하를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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