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Chapter 1. 여행의 시작.
현성은 눈을 떴다. 그러나 주변이 어두컴컴함에 시야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감각에 의지하기 위해 손을 앞으로 뻗을 수 밖에 없었다.
텁- 무언가가 손에 잡혔다. 그런데 촉감이 말랑거리고 부드러운 것이 무언가 이상했다.
"히익!?"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 소리.
그 순간 현성은 어디선가 드리운 빛무리에 시야가 트였고. 자신의 몸위에 올라타있는 처음 보는 츠바키의 모습에 순간적으로 사고가 정지했다.
"...어라?
현성은 츠바키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현성은 몸위에 올라타 있는 여성의 얼굴을 눈에 담아냈다. 옅은 갈색을 띄는 머리카락과 살짝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으며. 상당한 미인이었다. 또한 키가 여자 치고는 꽤 큰 편으로 어림잡아 160 후반은 되어 보였다.
그러나 현성은 그것 보다도 자신의 손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인지한 순간, 황급히 손을 떼어냈다.
"죄.. 죄송합니다!?!?"
재빠른 사과, 하지만 츠바키는 현성을 향해 부담스러울 정도로 지그시 시선을 보냈고. 이에 현성은 뭘 어떻게 해야 되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그저 츠바키가 뭐라도 반응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몇 초, 짧지만 길었던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츠바키가 몸을 움직였다.
"너, 내 동료가 되어라!"
"...네?"
느닷없이 손을 건네 악수를 청하며 말을 건냄에 현성은 저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로 대답했다.
갑자기 동료가 되라니, 이것은 워낙 유명한 애니메이션의 대사였기에 현성 또한 들어본 적이 있는 대사였다. 그런데 이것을 처음 보는 여자가 말을 하니 현성은 무언가 괴리감을 느꼈다.
우연일까? 아니면 이 여자 또한 자신 처럼 지구에서 온 것일까. 아니, 그 전에 이 여자의 정체는 무엇이며. 다른 이들은 어디로 갔는가.
현성은 사고가 점점 돌아옴에 갖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러나 일단은 내밀어진 츠바키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츠바키는 환하게 웃으며 마주잡은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처음 보는 여자와 얼떨결에 악수를 나눈 현성은 우선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알고자 했다.
신이 말하길 많은 것이 바뀌어 있을 것이라 말하였으니 말이다.
"저기.. 그런데 누구신지?"
첫 번 째로, 이 여자의 정체를 확인한다. 현성의 물음에 츠바키는 눈을 깜빡이며 그에 응답했다.
"나의 이름은 츠바키! 브랜드하고 같이 너를 신성 왕국으로 데려가던 중이었어!"
츠바키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여자, 그 과정 중에서 친숙한 이름이 들려옴에 현성은 그것에 반응했다.
"브랜드.. 브랜드 씨를 아세요? 근처에 있나요?"
현성은 곧장 브랜드에 대해 츠바키에게 물었다. 그러나 츠바키는 다소 어색하게 입술을 삐죽이며 휘파람을 불었고. 몸을 쭈뼛거렸다.
"으음... 그게 내가 실수하는 바람에 지금은 헤어졌어.."
츠바키는 자신의 실수에 대해 솔직하게 밝혔다. 괜히 숨겼다가 나중에 들키기라도 한다면 잘못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성은 츠바키의 대답에 실망감을 여실히 드러내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대로 절망하기에는 일렀다. 아직 알아야 될 것은 너무도 많았다.
"일단 제가 지금 무슨 상황인지를 모르겠거든요. 혹시 알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가장 중요한 이야기, 현성은 츠바키가 브랜드의 동료라는 것에 한치의 의심을 가지지 않았고. 츠바키에게서 현제 상황에 대해서 듣고자 했다.
그리고 츠바키는 머릿속으로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 골똘히 눈동자를 굴리다가. 이내 정리를 끝마쳤는지 서서히 입을 열어 설명을 시작했다.
그렇게 한 차례 이야기가 끝난 뒤, 현성은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이해했다.
일단 츠바키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마법 용사로, 제국에서 쫓겨나 돌연변이 숲으로 추방된 존재라는 것. 그리고 브랜드와 에리엘, 이로하 모두가 무사하다는 것. 그리고 돌연변이 왕의 세력을 포함한 대륙의 왕국들이 제국에 적대적 의사를 밝혔고. 현재는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의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에리엘의 몸에 걸린 마족의 저주를 풀기 위해 대륙의 동쪽인 신성 왕국으로 가던 중이었고. 현성, 자신 또한 몸상태가 악화되어 에리엘과 함께 옮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동하는 도중에 제국에서 보내온 기사단에 습격을 받았고. 도망치는 과정에서 무리가 나뉘어지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현성은 그 모든 이야기들 속에서 한 명의 이름이 나오지 않음에 마음을 옹졸였다.
레이첼, 레이첼에 관한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현성은 그것을 물을 수 없었다.
"일단 나 좀 도와줄레? 사실 발을 삐끗한데다가 마나를 한 번에 너무 많이써서 몸에 힘이 없거든..."
갑작스런 츠바키의 도움 요청, 현성은 상황이 급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지금은 레이첼에 관한 것은 잠시 미뤄두고 그 부탁을 들어주고자 했다.
이윽고 현성은 츠바키를 조심스레 옆으로 이동 시켜 바닥에 앉혀두었고. 바닥과 맞닿아있던 몸을 일으킨 뒤, 츠바키를 등에 업었다.
마른편이기는 했으나, 키가 꽤 있는 편인지라 무게감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노가다를 뛰던 시절에 매었던 벽돌 보다는 가벼웠다.
"이제 길을 따라가면 되는 건가요?"
현성은 한편으로는 레이첼에 대해 신경을 쓰면서 츠바키에게 물었고. 츠바키는 현성의 머리를 뒤에서 장난스레 툭툭 치며 길이 나있는 곳으로 팔을 뻗었다.
"가자!"
약간 정신 사나운 성격의 사람, 현성은 츠바키에 대해 그런 인식이 자리잡았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호감형인 사람인 것인지, 저런 식으로 행동을 해도 딱히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색했던 분위기가 환기되는 기분, 이에 현성은 츠바키의 몸을 지탱하던 손의 위치를 재정비한 후에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와중에 앞에서 새하얀 빛무리가 계속 떠있는데, 이것은 마법인 듯 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둘 사이에 짙은 침묵이 깔렸고. 츠바키는 그런 분위기가 싫은 것인지 고요함을 깨고 현성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러고보니 나는 이름을 알려줬는데, 너의 이름은 모르네."
아, 맞다.
현성은 츠바키의 물음에 그제야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성이에요, 오현성. 한국에서 왔어요."
"오호, 한국. 바로 옆동네구나. 두요 노우 김치?"
두유 노우 김치라니, 그 말을 이 세계에서 일본인에게 들을 줄은 몰랐다. 현성은 괜스레 웃음이 흘러나왔고. 츠바키는 분위기가 풀어짐에 뒤에서 베시시 웃었다.
"츠바키 씨, 츠바키 씨는 일본분이시죠?"
"음? 그렇지. 나야 일본 사람이지."
일본 사람, 예상은 했으나 역시 이로하랑 같은 국적이구나. 이름으로 얼핏 일본인이라는걸 알긴 했는데 정말로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정말로 이 세계에는 지구에서 온 사람이 있구나, 라는 심정.
그리 절망적인 상황은 아님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다.
"츠바키 씨는 이곳에 온지 얼마나 되셨어요?"
"으으음... 세어본 적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네. 적어도 5년은 됐을걸?"
현성은 츠바키가 얼마나 이곳에 지냈는 지를 물었다. 허나 5년이라는 대답이 들려오자 현성은 츠바키를 새삼스레 다시 보게 되었다.
5년이나 이런곳에 있었는데 용케도 이런 밝은 성격을 가질 수 있다니.
"츠바키 씨는 올해로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마 내가 계산한게 맞다면.. 스물 셋..넷?"
스물 셋에서 네살, 일단 듣기만 해보면 나보다 어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은 한국과 나이를 세는 방식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현성은 다른 방식으로 확인하고자 했다.
"차라리 몇 년생이냐고 묻는게 더 좋겠네요."
"아하, 그렇네? 97년생이야 나는."
97년생, 현성 또한 97년생이었다. 그렇다면 츠바키와 동갑이라는 얘기였다. 타지에서 또래의 사람을 만날 줄이야, 현성은 이것 또한 어찌보면 운명이라고 볼 수 있다 생각하였다.
"와, 저랑 동갑이시네요? 저도 97년생이거든요."
"헤에? 진짜!? 그럼 우리 친구할레?"
현성은 동년배를 맞났다는 것에 들떴는지 다소 분위기가 업되었고. 츠바키 또한 현성과 같은 나이라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반가웠는지 곧장 친구를 맺자 말하였다. 그리고 현성은 이것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친구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법이었으니 말이다.
"좋아요, 저희 친구해요."
"헤헷! 그러면 우선 말부터 놓을까?"
츠바키는 다짜고짜 말부터 놓자며 현성을 재촉해왔다. 허나 이미 츠바키는 말을 놓은 상태, 현성만 말을 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현성은 이것 또한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다.
"좋아, 츠바키. 까짓것 말까지 놓지 뭐."
"히힛!"
친구를 한게 그렇게나 좋은 것일까. 현성은 뒤에서 들려오는 츠바키의 기쁜듯한 웃음 소리에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돌연변이 숲 안에는 또래의 친구가 없는거야?"
"응! 나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이 대부분이라 나랑 비슷한 나잇대는 잘 없거든. "
그렇다면 이십대 중반 쯤의 나잇대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는거구나. 아마 나 처럼 사고사를 당하지 않은 이상, 젊은 사람이 죽을 일은 거의 없었다. 아마도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대부분 과로나 지병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닌가 싶었다.
츠바키 보다 나이가 많다면 적어도 삼십대 이상일테고, 그 나잇대면 한참 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시기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 어느때 보다 현실에 부딪혀 골병이 들 나잇대이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것들 보다도 츠바키가 이곳에 왔을 당시의 나이는 스무살이었을 터, 그리고 스무살이면 한창 꽃다운 나이였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 나이에 죽게된 것일까.
현성은 그것이 궁금했으나, 혹여나 실례일까 싶어 머릿속에서 지워냈다.
그렇게 현성과 츠바키는 끊김없이 대화를 계속해서 지속해나갔고. 어느정도 걸으니, 어느샌가 저 멀리서 빛 같은 것이 보여왔다.
"출구인가...?"
현성은 그 빛을 보자마자 혹시나 출구인가 싶어 저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멀리서 보여왔던 빛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고. 츠바키 또한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빛의 정체를 확인하고자 했다.
드르륵- 덜컹-
소란스러운 소리, 멀리서 보여온 빛은 어느샌가 가까이 다가온 상태였다. 그제서야 현성은 그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레, 무언가를 잔뜩 실은 수레의 소리였고. 수레가 보임과 동시에 그것을 끌고있는 한 키작은 남자가 보였다.
그리고 그 남자 또한 현성과 츠바키를 발견했는지 서서히 수레를 멈췄고. 현성과 츠바키를 향해 경계어린 시선을 보냈다.
"시벌, 뭐고. 그 짝은 누군교?"
구수한 사투리 같은 말투.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본 남자의 외모는 무언가 이상했다.
키는 현성의 가슴팍까지 올라올까 말까했으며. 턱과 얼굴의 윤곽에는 덥수룩한 수염이 그득했다. 또한 작은 키와는 다르게 울긋불긋한 근육질의 다부짐 몸매가 다소 괴이한 느낌을 주었다.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현성은 긴장감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