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Chapter 1. 여행의 시작.
"누구냐고 물었다. 이 노므 짜슥들아!"
남자가 허리춤에서 조금 특이하게 생긴 망치를 꺼내들며 외쳤다. 이에 현성은 혹여나 남자가 공격을 할까 싶어 허겁지겁 설명하고자 했지만 어떤식으로 풀어내야 할지 모르기에 얼을 탔다. 그러나 다행히도 현성의 등에 얌전히 업혀 있던 츠바키가 침착하게 남자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했다.
"아저씨, 저희는 그저 제국으로부터 도망치다가 우연히 이 곳으로 들어온 것 뿐이니 오해 하지마요!"
다만 츠바키의 머리는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었기에 모든 상황을 총체적으로 요약하여 사실 그대로 전할 뿐이었다. 혹여나 상대방이 제국과 관련된 인물이라면 복잡해지는 상황이었다.
허나 남자는 츠바키의 단순한 대답에 격하게 응답했다.
"제국..! 그 써글노므 쉐끼들한테 그 짝들도 당한거요!? 이런 모오오옷된 노무 짜슥들 같으니라꼬!"
현성은 남성의 격하디 격한 반응에 잠깐 당황했다. 척 보아도 이 남자 또한 제국에게 무언가 당한 것이 많은 듯 했다. 그리고 남자는 한 순간에 호의적인 얼굴로 현성과 츠바키에게 다가왔다.
"따라오쇼, 같은 처지끼리 돕고 살아야지 않것수?"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됐든간에 현성은 남자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겉모습은 꽤나 험악하게 생긴 편이었으나, 대화를 몇 마디 나누다 보니 악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남성은 끌고오던 수레를 내버려두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현성은 혹여나 뒤쳐질까봐 곧바로 남자를 따라잡은 뒤, 남자의 옆에서 나란히 속도를 맞췄다.
이윽고 현성은 등뒤에서 고른 숨소리가 들려옴에 츠바키가 잠에 들었음을 인지했다. 아마 많이 피곤했던 듯 했다. 현성 또한 마나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지친 경험이 있었기에, 그 기분을 이해했다.
그러다 문득, 현성은 남자의 손에 쥐어진 빛나는 것에 호기심이 동했다.
얼핏 들여다보니 돌 같은 것이 밝은 빛을 내고 있었다. 아마도 저것이 조금 전에 보았던 빛인 듯 했다. 그리고 남자는 그런 현성의 시선을 느꼈는지 주머니에서 손에 쥔 것과 똑같은 돌을 하나 던져주었고. 현성은 츠바키를 받치고 있던 팔 하나를 빼서 그것을 받아냈다.
"금강석이요, 오러나 마나를 담을 수 있는 광물인디. 나한테는 흔하디 흔한 돌이니 하나 가지슈."
금강석, 현성은 이것이 지구에서 귀하디 귀한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에 놀랍고. 이것을 흔하디 흔한 돌이라고 하는 남자의 말에 두 번째로 놀랐으며. 다이아몬드에 오러와 마나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남자가 던져준 금강석은 얼핏보니 거의 주먹 정도의 크기였다. 아무래도 정련 되지 않은 원석, 그 자체인 듯 했다. 이것을 정련한다면 어느 정도 크기의 다이아몬드가 나올까? 현성은 그것이 궁금했으나, 뭐가 됐든 본래 살던 세계의 보석방에 판다면 큰 돈을 만질 수 있을 거라 장담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현성은 이것의 사용 방법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마나나 오러를 담아낼 수 있다고 하였으니, 마나를 넣으면 되지 않을까? 현성은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금강석에 마나를 불어넣고자 하는 의지를 담았다.
그러자 남자가 손에 쥔 것과 마찬가지로, 현성의 손에 들린 금강석에도 빛이 발했다. 그것도 남자의 것 보다도 더욱 환한 빛이 말이다.
"어랍쇼...? 그 짝.. 혹시 마법사요?!"
갑자기 남자가 두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한 듯 큰소리로 외쳤다. 현성은 남자가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가 싶었다. 그러나 돌연변이라는 소리를 듣다가 마법사라는 소리를 들으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그... 마법사까지는 아니고.. 마나를 조금 다룰 줄 아는 정도? 아마 그 정도일거에요.."
현성은 부끄러움에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이에 남자는 들고 있던 돌을 바닥에 내팽겨 치고는, 갑작스레 현성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 아니.. 저기 갑자기 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갑자기 무릎을 꿇은 남성의 모습에 현성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현성이 어떤 반응을 보이던간에 남자는 소란스럽게 말을 이었다.
"으따! 이런 누추한 곳에서 고귀하신 마법사 님을 만나다니! 엄청난 영광이랑께요!"
고귀하신 마법사, 부담스런 호칭에 현성은 귀가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허나 마냥 좋지는 않았다. 현성은 누군가의 위에 있는 것 보다도,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더욱 좋았다. 그렇기에 남자의 이런 반응은 현성에게 부담스럽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불쾌하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이 남자 또한 무슨 사정이 있기에 이런 과한 반응을 보인것일 테니까.
한 편으로 현성은 남자를 일으키고 싶었다. 그러나 등뒤에 츠바키를 엎은 상태였기에 말로만 자신의 뜻을 전했다.
"일어나세요. 저는 이런 대우를 받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불편해요."
"아이고오!! 알겠습니다요..! 이 호롤로, 마법사 님의 명령을 따르겠습니다요!"
으음, 아무래도 소용이 없는 듯 했다.
남자는 현성의 말에도 급격하게 몸을 일으키는 등의 과한 반응을 보였고. 현성은 도저히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음에 일단은 이대로 냅두기로 했다.
또한 현성은 이 남자의 이름이 '호롤로'임을 알게 되었다. 뭐랄까, 되게 이상하다 느껴지는 이름이었으나. 한국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그런 것이라 여겼다. 무엇보다도 이름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짓은 해서는 안 될이었다.
그리고 현성은 우선 호롤로의 사연을 들어보기로 했다. 이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으니까.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을까요? 제가 힘이 닿는 한, 최대한 도와드릴게요."
천성 호구의 성격이 여기서 튀어나왔다. 현성은 아무런 대가 없이 호롤로에게 호의를 배풀고자 했고. 이에 호롤로는 감격에 겨운 듯,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도와주겠다는 말 한마디에 눈물을 흘린다니. 현성은 다소 과한 반응에 역시나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윽고 호롤로는 주저없이 현성을 향해 이야기를 꺼냈다.
"내 딸을! 내 딸을 임신 시켜 주쇼!!!"
지랄.
현성은 평소에 잘 하지도 않는 욕짓거리를 속으로 읊었다.
그도 그럴것이 다짜고짜 자신의 딸을 임신 시켜달라는 말을 짓거리는데 욕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의 딸을 임신 시켜달라는 말을 할 수가 있는 것이지? 현성이 가진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본디 딸을 둔 아버지라면, 딸이 좋은 남자를 만나 좋은 사랑을 하기를 바라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그렇기에 현성은 자신이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싶었다. 어쩌면 잘못 들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 주실레요?"
"내 딸을 임신 시켜주쇼!!!"
글러먹었다. 호롤로는 진심으로 현성이 자신의 딸을 임신시켜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현성은 단 번에 거절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완전히 상식 밖의 부탁에 혹여나 다른 사연이 있나 싶어 사정을 들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후우... 호롤로씨는 왜 제가 딸을 임신 시켜주기를 바라는 건가요..?"
현성은 두 눈을 질끈 감고선 쓰디쓴 한숨을 뱉어내며 물었다. 그러자 호롤로는 이번에도 주저없이 입을 열었다.
"드워프의 여인은 오로지 마법사와의 교미를 통해서만 임신이 가능합니요. 그러니께 쪼까 아기씨를 나눠주실 수는 없으실런지..?"
호롤로도 드디어 눈치가 보였는지 말의 끝맺음을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것은 현성의 착각이었다.
호롤로는 혹시나 현성이 자신의 부탁을 거절할까봐 언행이 조심스러워진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현성은 호롤로의 사연을 들으며 어느정도는 이해했다.
일단 호롤로의 종족은 드워프, 교미라는 단어가 심기에 거슬리기는 했지만. 드워프라는 종족의 여자는 오로지 마법사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임신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현성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굳이 임신을 해야만 하는가? 당장 한국만해도 결혼을 지양하는 젊은층이 많아지는 추세였고. 혹여나 결혼을 한다고 하여도, 아이를 낳지 않고 살아가는 부부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아무튼 임신은 선택이 가능한 현상으로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다.
물론 저출산이니 뭐니 말이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임신을 강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현성은 우선 호롤로가 과연 딸에게 허락을 받고 이런 말을 하는건지가 의문이었다.
만약 허락 조치 받지 않고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이라면, 당연히 거절할 생각이었고. 허락을 했다고 말한다면 어느정도 깊이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었다.
"따님의 의견은 물어보셨어요? 일면식도 없는 남자의 아이를 베는게 말만 쉽지, 솔직히 거부감이 있을 수 밖에 없잖아요."
"그것은 괜찮소, 이것은 딸이 먼저 내게 부탁한 일이니 말이요."
이럴 수가. 현성은 호롤로의 대답에 머리에 망치를 씨게 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저 부탁이, 호롤로가 먼저 꺼낸 것이 아니라. 사실은 호롤로의 딸이 부탁한 것이었다니. 허나 그렇다고 해서 현성은 선뜻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적어도 임신을 해야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만 납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꼭 임신을 해야하는 건가요?"
일차원적인 단순한 질문. 현성은 꼭 이런식으로 임신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굳이 임신을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또한 만약에 정말로 임신을 하기 원한다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아이를 가지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서 결혼을 하여 아이를 가지면 되는 거였다.
그러나 현성의 질문에 호롤로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마치 물어봐서는 안 될 것을 물어본 듯한 느낌, 현성도 덩달아 얼굴이 굳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롤로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입을 열었다.
"후우.. 드워프 족의 여자는 성인이 되고 5년 안에 임신을 하지 않으면 죽어버리고 맙니다요. 그런데 제 딸은 이제 몇달도 채 남지 않는 바람에..."
....
임신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란 말인가. 하지만 호롤로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자기 딸의 목숨을 가지고 거짓말을 할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부탁하겠습니다요!!! 부디 제 딸과 교미를 하여, 딸의 목숨을 살려주쇼!!"
죽기 직전의 딸을 둔 아버지의 처절한 외침.
현성은 그 외침을 묵인할 수가 없었다.
"하아... 일단 가서 보고 따님이랑 대화를 하고 결정할게요...."
일단 만나서 직접 대화를 해보자. 최대한 호롤로의 딸을 살리는 선택지를 고르고 싶었지만, 일면식도 없는 여자와 관계를 나누는 것은 현성에게도 그리 달갑지 않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