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Chapter 2. 아빠와 딸?
현성은 호롤로를 따라 쭈욱 늘어진 길을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호롤로는 드워프답게 대장장이 일을 하였으며, 자신을 드워프 최고의 대장장이라 칭했다. 정녕 그것이 맞는지는 알 겨를이 없었기에, 현성은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호롤로는 제국에 물품을 납부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 많은 양의 전쟁 물자를 판매하면서 받기로한 금액을 받지 못 하였다고 했다. 현성은 처음에 대화를 나눴을 때에 왜 호롤로가 자신과 마찬가지로 당하였냐고 말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지금 걷고 있는 이 땅굴의 경우는, 암시장에 물건을 조달하기 위해 파둔 것이라고 하였다. 제국에 물건을 납부하면서 암시장에까지도 물건을 팔다니. 호롤로는 꽤나 간이 큰 인물임이 틀림 없었다. 현성은 자신이라면 쫄려서 그런 일은 생각조차 못 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현성은 호롤로를 따라 걷다가 이내 막다른 길에 도달했다. 그곳에는 왠 나무로 된 구조물이 있었다. 이윽고 호롤로가 무언가 손잡이 같은 것을 당기니 덜커덕 소리가 나며 위에서 무언가가 내려오기 시작했다.
덜컹-
그것의 정체는 사람 네명 정도가 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를 가진 정사각형의 나무 승강기였다. 현성은 이것을 보는 순간 딱 무언가가 떠올랐다.
마치 엘리베이터와 같은 모습, 겉모습은 많이 달랐지만 이것은 흡사 엘리베이터와도 같은 기구였다. 현성은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인만큼, 이런 쪽으로도 기술이 발전했다는 것을 실감했다.
"타슈, 지상으로 가는거요."
호롤로가 먼저 올라타며 현성에게 권유했다. 현성은 주저할 것 없이 호롤로를 따라 승강기에 올라탔고. 호롤로가 레버를 당기자 또 다시 덜커덩 소리가 들리우며 점점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현성은 지상에 도착하였고. 호롤로와 함께 승강기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다.
승강기 밖으로 나오니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밑바닥이 어디인지 모를 절벽이었고. 현성은 후들후들 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며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했다. 여기서 떨어진다면 츠바키 까지도 그대로 죽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조심해서 따라오슈, 제국의 순찰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절벽에다가 설치해둔 것이니께. 떨어지면 그대로 즉사여."
당연한 것을 경고해온다.
하긴 암시장에 물건을 조달하기 위해 만들어둔 땅굴인데, 뻔히 보이는 곳에 파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그래도 조금은 안전한 곳에 만들어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뭐... 그것은 호롤로의 마음이겠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현성은 츠바키가 떨어지지 않도록 꽉 붙잡으며 먼저 출발한 호롤로를 따라갔다. 다행히도 빠져나가는 길은 꽤나 넓은 편으로 딱히 떨어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렇다 해도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지라 무섭기 짝이 없는건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현성은 무사히 호롤로의 안내를 따라 안전하게 움직였고. 호롤로가 발걸음을 멈춘 곳은 주변의 광경이 훤히 보이는 높은 산봉오리였다.
그리고 현성은 갑자기 느닷없이 산봉오리가 나온 것에 당황했다. 하지만 승강기를 타고 적잖게 올라왔기에 산인 것이 어찌보면 당연하다 볼 수 있었다.
"저기가 내 집이요. 얼른 갑세다."
호롤로가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키며 현성을 재촉했다. 그곳을 바라보니 산봉우리에 살짝 있는 평평한 부분에 나무로 지어진 오두막 하나가 떡하니 위치해있었다. 다만 단층이 아니라 높이가 꽤 되는 커다란 오두막이었다.
이윽고 현성은 호롤로를 따라서 오두막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자마자 현성을 맞이한 것은 뜨거운 열기를 뽐내는 자욱한 연기였다.
"케엑..."
현성은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뜨거운 열기에 작은 신음성을 내었다. 하지만 호롤로는 이 연기가 익숙한지 아무렇지 않게 안으로 들어갔고.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기가 단번에 빠졌다.
그제야 현성은 시야가 탁 트임에 주변을 살필 수 있었다. 오두막의 안은 판타지 영화에서 나왔던 전형적인 대장간의 모습이었다.
중앙에는 화로와 이런저런 장비들이 놓여져 있었으며, 벽과 가구들에는 수많은 무기와 갑옷들을 비롯한 이런저런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서 현성의 시선은 한 곳으로 향했다.
얼굴에 마스크를 쓴 채로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있는 육감적인 몸매의 여자. 여자는 한참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듯 했다.
"헬렌! 보거라, 내가 누구를 데려왔는지!"
잠깐 시야에서 벗어나 있던 호롤로가 구석탱이에서 튀어나오며 여자에게 자랑하듯이 떠벌거렸다.
아무튼간에 여자의 이름은 헬렌인 듯 했다. 그렇다면 저 여자가 호롤로의 딸이라는 얘기,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호롤로에게는 미안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호롤로는 그리 잘생긴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평균보다도 낮은 수준이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도대체 유전자가 어떻게 된 것인지, 헬렌이라는 여자는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만 보아도 참한 여인이었다.
150 중반 정도 될 것 같은 호롤로와는 다르게, 헬렌의 키는 그 보다 한참 옷도는 170cm는 될 듯 했다.
더군다나 뜨거운 열기를 받아내며 일하는 대장장이의 직업 특성 때문인지, 헬렌은 상당히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있었다.
사실 저것도 옷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였다. 해봤자 얇은 천쪼가리를 둘러 중요 부위만 겨우 가린 정도, 저것은 적색 바람의 환생이 입은 옷차림 보다도 더욱 노출이 심했다. 또한 확실한 것은 헬렌의 몸은 서양 여자들의 발육 수준 보다도 한 수 위였다.
그녀의 가슴은 천으로 꽁꽁 묶여진 상태임에도 얼핏봐도 에리엘과 적색 바람의 환생 보다도 커다랬다. 저것은 거의 폭유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에 얼굴이 어떤지는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현성은 헬렌과 호롤로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가족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어쩌면 어머니 쪽이 상당히 우월한 유전자일 수도 있었고. 혹은 드워프라는 종족적 특징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 했다.
어찌됏든 현성은 계속 이렇게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기에, 선뜻 헬렌에게 먼저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호롤로 씨에게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것과 관련해서 얘기해도 될까요?"
현성이 츠바키를 업은 채로 슬며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헬렌은 다소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현성은 그 모습을 보며 혹시나 호롤로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현성의 잘못된 생각이었다.
"지금 거의 마무리 작업중이라서 그런데. 나중에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호롤로와는 다르게 정상적이지만 딱딱한 어투, 현성은 헬렌이 든 망치를 보며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무언가를 만들던 도중이었던 것으로 보였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현성은 우선 호롤로에게 츠바키를 눕힐 방을 부탁했고. 호롤로의 안내를 받아, 이층의 남는 방의 침대에다가 츠바키를 올려두었다.
드워프라서 그런지, 침대도 매끈매끈한 돌침대였다. 상당히 침대가 큰 편이었기에 현성은 침대의 빈부분에 엉덩이를 붙혀 앉았다.
덜컥-
닫아두었던 방문이 열린다. 방을 안내해주고 자리를 떠났던 호롤로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들고 나타났다.
"딸이 조금만 기다려 달라 합니다요. 이거라도 들면서 기다려주슈."
호롤로가 건내준 음식은 대부분이 간단히 먹기 좋은 먹음직스런 과일들이었다. 현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임으로 감사를 표했고. 호롤로는 다시 문을 닫고선 모습을 감추었다.
아삭-
현성은 며칠 동안 정신을 잃었던 지라, 꽤나 배가 고픈 상태였기에 곧장 과일을 한 입 베어물었다. 허나 입안에 들어온 과일의 맛은 보기와는 다르게 맛이 밍밍했다.
지구의 과일은 개량을 통해 맛을 극대화 시킨 것이니, 당연히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있었지만. 음식에서 느껴지는 실망감은 결코 작지 않았다.
인간의 3대 욕구가 식욕, 수면욕, 성욕인데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성은 음식을 남기는 편이 아니었기에 꾸역 꾸역 과일 하나를 먹어 치웠다.
과일은 맛이 밍밍한 것이었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기에 먹다보니 먹을만 하기는 했고. 현성은 배가 덜 찬 느낌이 들어 과일 하나를 더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 과일 마저 다 해치웠을 쯤, 밖에서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성은 문을 두들긴 존재가 헬렌임을 인지했다. 호롤로는 조금 전에 노크없이 그냥 덜컥 문을 열고 들어왔으니 말이다.
"들어와도 됩니다."
현성은 다 먹은 과일의 씨를 접시에 올려두며 말을 건냈다. 그러자 문이 천천히 열렸고. 마스크를 벗은 헬렌이 안으로 들어왔다.
마스크를 벗은 헬렌의 얼굴, 현성은 그 얼굴을 본 순간 적색 바람의 환생과 얼핏 겹쳐 보였다. 기본적으로 붉은 계열의 머리카락과 구릿빛의 피부, 그리고 탄탄한 몸매가 엇비슷했다.
다만 다른점이라면, 적색 바람의 환생은 날카로운 인상이었다면 헬렌은 차가운 인상이었다. 특히나 짙은 눈썹에 무감각해 보이는 커다란 눈이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더군다나 헬렌은 적색 바람의 환생 보다 체구가 컸다. 허나 체구가 크다는 것은, 지방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닌 순전히 근육 때문이었다.
적색 바람의 환생은 딱 보기 좋은 수준의 적절한 근육이 몸에 자리잡아 있었다면, 헬렌은 보디빌더 수준의 근육이 몸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헬렌은 섹시함 보다도 차분하고 강인한 분위기에 더욱 가까웠다.
또한 적색 바람의 환생은 머리카락을 레게 머리 처럼 동글동글하게 셀수도 없이 많이 묶어놨다면, 헬렌은 기다란 머리카락을 하나로 묶어 뒤로 늘어트린 상태였다.
"아버지에게 사정은 들었습니다. 정말 괜찮은건가요?"
무뚝뚝한 눈으로 바라보는 헬렌에게 현성이 먼저 말을 건냈다. 이에 헬렌은 무미건조한 얼굴을 하고선 아무런 말없이 조용히 문을 닫았다.
".....그 이가 그러던가요?"
"그...이요?"
'그이' 라는 호칭, 현성은 부모와 자식간에 그런 호칭을 쓰는 것에 괴리감이 느껴졌다. 보통 '그이'라는 호칭은 각별한 사이의 연인에게 쓰는 것이 보통이었으니 말이다.
...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