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Chapter 2. 아빠와 딸?
끼이익-
녹이 많이 슬었는지 문에서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고. 현성은 조금씩 보이는 방안 내부의 끔찍한 모습에 점차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트렸다.
"하읏..! 하윽! 히끄으으으!! 시러헛..!?"
"아녀.. 아직 턱 없이 부족혀. 드라고라를 더 섞어야 되는교..?"
벽에 매달린 채로 음부에 험악하기 짝이 없는 딜도 같은 것이 박혀 눈깔을 까뒤집으며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뱉는 여자와, 그 앞에서 여자의 음부에 열심히 딜도를 쑤셔넣는 호롤로의 모습이 보였다. 호롤로는 아무래도 미약을 시험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현성은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씨발, 개가튼 새끼야!"
현성은 주저할 것 없이 주먹을 꽉지며 오로지 분노라는 감정을 품고선 앞으로 뛰쳐나갔다.
이로하, 현성은 무참하게 희롱당하는 여자를 보며 이로하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로하 또한 처음 만났을 때에 약에 취하여 듀란이라는 기사에게 무참히 강간 당하고 있었다. 그것은 도저히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기억으로 아직까지 현성의 머리속에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현성은 참을 수가 없었고. 아무 생각 없이 호롤로를 향해 덤벼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성은 평범한 인간, 호롤로는 선천적으로 강인한 신체를 타고나는 드워프였다.
뻐억-
묵직한 타격음, 무게가 실린 현성의 주먹이 호롤로의 턱을 정확히 가격했다. 하지만 현성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부러진 듯한 얼얼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벽을 때린 것 마냥 호롤로의 몸은 미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단단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얼굴 부위였는데도 말이다.
"으읏.. 갑자기 무슨 일인겨!?"
한참 집중을 하고 있던 호롤로가 느닷없이 얼굴을 가격당함에 당황한 듯 허우적 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호롤로는 자신의 앞에서 손목을 부여잡은 채로 인상을 쓰고 있는 현성을 발견하였고. 문쪽에서 보이는 헬렌의 모습에 얼굴을 격렬하게 떨었다.
호롤로는 현성이 자신을 때린 것 조차 까맣게 잊어버릴 정도로, 헬렌이 지하실에 들어와 자신이 하는 일을 들켰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헬렌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나 뿐인 사랑하는 남편, 그 남편이 지하실에서 왠 여자를 상대로 이런 짓을 하고 있었다니. 이것은 드워프들 사이에서도 당연히 금기시된 짓이었다.
하지만 헬렌은 다른 것 보다도 호롤로에게 커다란 배신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 물건이 보였다.
그것은 여성의 음부에 박힌 딜도, 자신에게 단 한 번도 사용해주지 않았던 것을 왠 모르는 여자에게 쓰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헬렌은 호롤로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모든 상황들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미약을 시험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자신에게 하면 되는 것 아니었는가. 헬렌은 호롤로가 원한다면 얼마든지 몸을 빌려줄 마음이 있었다. 아니, 오히려 호롤로가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그토록 바래왔던 것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여자에게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는 척 보아도 비정상적인 모습으로.
"헤.. 헬렌! 이것은 말이여 다 사정이 있는거여!"
헬렌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다 못 해 혐오의 감정이 피어오름에, 호롤로가 다급히 자신을 변호하며 헬렌을 설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한 설명에 헬렌은 더욱 호롤로에게 혐오스럽고 역겨운 감정을 품었다.
"호롤로, 이게 뭐야?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던건데..?"
흔들리는 목소리, 헬렌은 실성하다 싶이 절망에 가득찬 눈을 하고 있었다. 아마 호롤로가 무슨 말을 하던간에 귀에 들어오지 않을 터였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기대한만큼 그에 따른 실망감도 큰 법, 헬렌은 그간 쌓아왔던 호롤로를 향한 애정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마치 활활 불타던 불꽃에 물을 부은 것 처럼 말이다. 호롤로는 그것을 어렴풋이 눈치챘음에도 뭐라 말을 잇지 못 했다.
호롤로는 그리 말주변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는 복잡하기 짝이 없는 관계가 거미줄 처럼 수없이 짜여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호롤로는 이것을 짧은 시간안에 요약정리하여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현성은 호롤로와 헬렌이 둘만의 관계를 이어가는 동안 희롱당하던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주황빛 머리카락에 주근깨가 박힌 여성, 여성은 전라의 상태로 수갑 같은 것이 채워져 벽에 매달려 있었다. 척 보아도 이것은 도저히 힘으로 풀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현성은 여성의 음부에 박혀 있는 이세계의 딜도로 보이는 물건을 신체가 접촉되지 않도록 의식하며 조심스레 빼냈다.
"하으으읏!?!?!"
깊숙히 박혀있던 딜도가 빠져나오자 여성은 그간 참아왔던 분비물들을 쏟아냈고. 그 쾌감이 해소됨에 자지러지는 신음을 뱉어내며 고개를 하늘높이 치겨들고선 허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량했기에 현성은 애써 눈을 감으며 외면했다.
"아으... 으아으.."
움직임이 서서히 멈췄다. 여자는 거의 진정한 듯 신음 소리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눈동자의 초점이 맞지 않는 것이 이성은 사라진 듯 보였다.
그러는 사이, 호롤로는 헬렌의 앞에 다가가 무릎까지 꿇으며 처절하게 애원하고 있었다.
"헬렌! 오해여! 이것은 그 뭐시냐.. 그짝 놈들이 부탁한거니께 오해말어!"
호롤로는 오해를 풀고자 자신의 사정을 뱉어냈지만. 내용이라고는 전혀 없는 초라하기 짝이 없는 변명에 헬렌은 마치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마구 저어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제대로 말 좀 해봐, 호롤로... 제발!!!"
헬렌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호롤로에게 감정을 토로했다. 아무래도 그간 쌓아두었던 정이 많았는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듯 했다. 사실 눈빛만 본다면 애정이 식다 못해 증발되어버린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헬렌의 눈동자는 무미건조했다.
그리고 현성은 둘 사이의 대화에 끼고자 했다. 헬렌은 이성적이지 못 하고, 호롤로에게는 생각을 정리하여 변명을 할 시간이 필요한 듯 보였다. 현재 호롤로가 저지른 짓이 악질적인 행위임은 분명했으나, 얘기는 들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호롤로의 반응을 보니 혼자 이런 짓을 꾸민 것 같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헬렌 씨 진정해요. 그 쪽도 진정하시구요."
현성은 둘 사이에 끼며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호롤로는 느닷없는 현성의 개입에 못 마땅한 눈초리를 보내왔지만, 헬렌이 현성의 말을 따라 진정하는 모습을 보임에 덩달아 현성의 말을 따랐다.
그리고 현성은 호롤로의 앞에 서며 진지하게 얘기를 꺼냈다.
"지금부터 짧게 간단한 질문을 할건데 최대한 대답해봐요."
마음 같아서는 존칭이고 뭐고간에 반말을 찍찍 싸지르고 싶었으나, 일단 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도록 해여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최대한 정중하게 말을 건냈고. 호롤로는 자포자기한 듯 묵묵히 입을 다물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상황들, 누가 시킨건가요?"
"그려. 나라고 해서 이런 짓을 하고 싶어서 하는 줄 아는겨! 씨부럴, 제국 쪽 도적 길드 놈덜이 협박하는디 내도 일단은 살고 봐야제!"
호롤로는 질문을 간략하게 줄이니 대답을 하는 것에 거침이 없었다. 아무래도 설명할 것이 줄어들어서 머릿속에 정리가 잘 되는 듯 했다. 현성은 일단 호롤로가 제국의 도적 길드라는 곳에 협박 당하고 있음을 중요하게 여기며 다음 질문을 이었다.
"저기 여자 분은 누구죠?"
"몰러, 그냥 그쪽 사람이 가끔씩 와서 넘겨주고 떠나는디 내가 어떻게 알것수?"
가끔식 와서 넘겨주고 간다. 이말은 즉슨, 이곳에 온 피해 여성들이 이 여자 뿐만이 아니라는 얘기였다.
"다른 여자 분들도 있죠?"
"방마다 한 두명 씩 있수다."
"살아는 있나요?"
"씨부럴, 나도 사람이여. 아무리 이런 못할 짓거리를 하고 있어도 사람 죽는 꼴은 못 보제."
이번 질문에는 격정적으로 반응하며 부정한다. 말하는걸로 봐서는 이곳에 온 여자들은 살아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가 확인해 보면 되는 문제였기에 현성은 다음으로 말을 이었다.
"여기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고 있었죠?"
"기본적으로 미약을 만들거나 연구했수다. 저 딜도 같은 것들은 그 짝 놈들이 조달해주는게 끝이여."
굳이 묻지 않은 것까지 답을 한다. 하지만 쓸모 없는 정보는 아니었기에 현성은 구태여 깊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아무튼간에 일단은 호롤로가 이 일 자체를 꺼림직해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일단 현성은 계속 질문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미약의 재료는 어떤 식으로 조달하고. 어느 주기로 어느 곳에서 전해 줍니까?"
어떻게 보면 가장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 질문, 하지만 이것만큼은 호롤로는 말하기 머뭇거리는 경향을 보이며 헬렌과 현성의 시선을 피했다.
이것만큼은 말하기가 힘들다는 것, 그것은 즉슨 이 일을 맡긴 쪽에서 비밀 유지를 위해 다른 장치를 해두었다거나 호롤로 개인적으로 찔리는 것이 있다는 얘기였다.
그렇기에 현성은 조금 더 호롤로를 압박하고자 했고. 머릿속에서 적색 바람의 환생을 불러내고자 하는 의지를 품었다. 그러자 현성의 주위로 마나가 빛을 발하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 중에서 하나가 툭 튀어나오더니 점점 인간의 형상을 그려냈다.
그리고 그 마나의 색은 붉은색이 아닌, 황토와도 같이 짙은 갈색을 띄고 있었다.
쿠웅-!
묵중한 소리, 현성은 자신이 소환해낸 영혼이 적색 바람의 환생이 아님은 분명히 알 수 있었고. 곧바로 혼란스런 방안에 등장한 존재를 눈에 담아냈다.
"크하하, 이 몸 등장이올시다!"
걸쭉한 목소리의 남성, 남성은 호롤로와 마찬가지로 키가 작았으며 한 손에는 팔뚝만한 망치를 들고 있었다. 더군다나 울긋불긋한 근육질의 체형을 비롯한 얼굴에 덥수룩하게 자란 털까지, 얼핏보면 둘이 형제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해 보였다. 다만 남성 쪽이 호롤로보다 더욱 덩치가 컸기에 그것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윽고 현성은 자신이 불러낸 영혼에게 다가가 먼저 악수를 건냈다. 화가 치밀어 올라 호롤로를 때렸을 때에는 미약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동성 간에는 약효가 나타나지 않음을 깨달았기에 현성은 마음 편히 손을 건낼 수 있었고. 남성은 손을 건내는 현성의 모습을 탐탁치 않게 언짢은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이내 주먹을 쥐며 가볍게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현성은 그 행동의 의미를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툭-
현성은 마찬가지로 주먹을 쥐며 남성의 주먹에 갖다대었고. 그제서야 남성은 호탕하게 웃어보이며 우렁찬 목소리를 자랑했다.
"크하하!!! 드디어 보게 되다니, 거 참 반갑구만 그래! 나는 드워프 산맥의 지배자, 더 마운틴 1세이올시다!"
현성은 남성의 소개를 들으며 어림짐작했지만, 이 남성 또한 결코 평범한 존재가 아님을 확인했고. 어림짐작으로 드워프라 생각하기는 하였기에 딱히 당황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드워프 산맥의 지배자라는 호칭에 입을 벌리며 작은 감탄사를 뱉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현성과는 다르게 호롤로아 헬렌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더 마운틴 1세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드워프라면 '더 마운틴 1세'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끝없이 이어진 드높은 산맥에 최초로 드워프의 국가를 세운 왕이자 영웅이었으며. 모든 드워프들의 우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실을 현성이 알 리가 만무했기에 그저 눈을 깜빡이며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