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Chapter 2. 아빠와 딸?
드워프 산맥의 지배자, 더 마운틴 1세.
언뜻 보면 그냥 애니메이션에서 가끔식 등장하는 키작은 털보 아저씨 이미지였지만, 그가 쌓은 업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했다.
대륙의 중앙에 끝없이 이어진 드높은 산맥, 그곳인 본디 포악한 몬스터들이 서식하는 곳으로 도저히 사람이 무리를 지어 살만한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홀몸으로 그곳의 몬스터를 정벌하여 드워프들만의 나라를 세운 존재가 바로 '더 마운틴 1세' 였다. 진짜 이름은 따로 있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그 이름을 아는 존재는 아무도 없었다.
또한 더 마운틴 1세가 세운 업적은 단순히 산맥의 몬스터들을 정벌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본디 드워프란 땅 위 보다, 아래가 더 친숙한 종족으로 땅꿀을 파며 그 속에서 무리생활을 하는 종족이었다. 하지만 더 마운틴 1세는 대륙의 중심부에 위치하였다는 이점을 살려 드워프들의 주거지를 지상으로 옮기며 다른 종족과의 화합과 교류를 추구하였고. 그 결과 막대한 부와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 대륙에 널린 무기들의 반이 드워프제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드워프의 영향력은 막대했다.
즉, 더 마운틴 1세는 드워프라는 종족을 지하를 떠도는 보잘 것 없는 종족에서 대륙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종족으로 변화시킨 것이었다.
그리고 이 업적은 과거에서 부터 지금까지 드워프들 사이에서 절대로 몰라서는 안 되는 역사로 남게 되었고. 앞으로도 더 마운틴 1세의 명성은 쭉 이어질 것이었다.
그렇기에 호롤로와 헬렌은 더 마운틴 1세를 보며 두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더 마운틴 1세는 몇 백년 전에 죽은 존재, 그런 존재가 이렇게 바로 앞에서 살아 숨쉬고 있으니 믿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더 마운틴 1세의 진위 여부를 의심할 법도 했지만, 헬렌과 호롤로는 그의 손에 쥐어진 드워프 망치를 보며 더 더욱 그의 존재를 확신했다.
더 마운틴 1세의 망치는 그 어떤 드워프의 망치보다 굵고 기다랐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헬렌과 호롤로는 현재 더 마운틴 1세가 들고 있는 드워프 망치 보다도 큰 망치는 커녕, 엇비슷한 크기의 드워프 망치를 본 적도 없었다.
허나 그렇게 둘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오버스러운 반응을 하고있음에, 현성은 더 마운틴 1세에게 부르고자 한 목적을 얘기하고자 했다.
"뭐... 어떤 상황이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겠죠?"
적색 바람의 환생은 그 공간에서 현성의 시점으로 현실을 지켜보았다. 그렇다면 다른 영혼들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뜻이었기에, 현성은 더 마운틴 1세에게 입 아프게 설명을 하지 않아도 상황을 이해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크하하! 당연히 알지. 이 몸은 언제나 그대를 지켜보고 있다네!"
언제나 보고 있지 않아도 되는데..
현성은 속마음을 숨겼다. 그러고 보니 저 말은 즉슨, 헬렌과 관계를 나누던 때에도 지켜 보고 있었다는 얘기인데. 어차피 그 부분에 대해서 자포자기한 상태였기에 현성은 완전히 신경을 껏다. 이윽고 현성은 본격적으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저 드워프가 진실을 뱉어내도록 해주세요."
간단명료한 부탁, 현성은 더 마운틴 1세가 호롤로의 입을 열도록 만들어 주기를 바랬다. 반응을 보아하니 드워프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인물임은 틀림 없었기에 좋게 좋게 흘러갈 것이라 예상할 수 있었다.
"그것이라면 믿고 맏기도록 해라! 이 몸의 관심법으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낼 테니!"
관심법이라니, 자기가 궁예도 아니고 뭐라는 걸까. 현성은 다소 믿음직하지 못한 더 마운틴 1세의 말에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일단은 믿고 맏겨보기로 했다. 어차피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 아닌가.
그렇게 현성의 부탁에 더 마운틴 1세는 망치를 손바닥 위로 툭툭 치며 호롤로의 앞에 섰다. 그러다 호롤로를 유심히 살펴보듯 스윽 훑고선 망치를 공중에 던져 한 바퀴 돌린 후, 다시 손에 쥐며 입을 열었다.
"흐음. 보인다 보여, 네놈은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도대체 뭐가 보인다는 얘기일까? 현성은 뭘 물어보지도 않아놓고 호롤로를 향해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는 더 마운틴 1세를 게슴츠레 한 눈으로 바라봤다.
사실은 조금은 맛이 간 사람이 아닐까? 현성은 잠깐이지만 그런 생각을 품었다. 하지만 이윽고 호롤로가 기겁을 하며 바닥에 넙적하니 누워 빌빌 김에 생각이 바뀌었다.
드워프란 종족 자체가 정상이 아니구나.
"뭐하느냐! 어서 진실을 고하지 않고! 그 누구도 이 몸의 앞에서 거짓을 고할 수 없도다!"
"아이고! 이 호롤로가 호로 자슥이었습니다요! 제가 성욕에 눈이 멀어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해버렸습니다요!"
성욕....
돈도 아니고 성욕 때문에..?
현성은 호롤로의 말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남사스러울 수도 있지만, 호롤로는 헬렌과 부부 사이가 아닌가. 그렇다면 성욕이 끓어오른다면 함께 잠자리를 함께하면 되는 일이 었다. 그런데 미약까지 만들어가며 이런 범죄를 저지른다니? 이게 무슨 막장 드라마 같은 전개인지 그냥 답도 없었다. 애초에 다짜고짜 거짓말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그걸 믿고선 곧이 곧대로 고백하는 사람의 조합이라니,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가 따로 없었다.
현성은 어쩌면 자신이 드워프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 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리고 현성은 더 마운틴 1세가 망치를 드높이 들어올림에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설마 저걸 그대로 내려치지는 않겠지.
"네 놈은 발할라로 떠날 자격이 없다!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하라!"
이런, 씨벌.
"적당히 좀 합시다!"
현성은 보다 못 해 속으로 욕짓거리를 험악하게 뱉으며 더 마운틴 1세를 만류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죽이는게 말인가. 이런 경우에는 경찰에 넘기는 것이 정상...
맞다, 이 세계에 경찰이란 것이 있나? 있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경찰에 신고할 수 있기나 한가?
현성은 자연스레 경찰을 부르려던 자신의 멍청함을 탓하며 사고가 정지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경찰은 없다. 하지만 호롤로는 미약으로 여자를 희롱하는 악질 범죄를 저질렀다. 그렇기에 처벌은 필히 있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호롤로에게 어떤 처벌을 내려야 하는가.
현성은 그것이 고민이었다.
허나 더 마운틴 1세에게는 고민 따위는 없었다. 현성이 뭐라 말하기도 전에 다시금 망치를 드높게 들어올렸고.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 놈은 살인을 저질렀으니 죽어 마땅하도다!"
뻐억- 장엄한 외침과 함께 그대로 망치를 내려찍었다. 그러자 호롤로의 머리가 복창 터지듯 터져나갔고. 머리의 잔해물들이 이리저리 튀어 현성의 옷에까지 닿았다.
"우욱-"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다. 현성은 이미 사람을 죽여보기는 했으나, 그 때에는 흥분한 상태에다가 적색 바람의 환생과 합체 비스무리한 것을 한 상태였고. 도중에 정신을 잃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당시에는 살인이라는 행위에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 했다. 온전한 정신으로 온전한 상태에서 온전했던 사람의 머리가 터져나가는 것을 눈앞에서 지켜밨다. 그것은 구토감이 올라올 정도로 잔인한 장면이었다.
헌데 왜일까.
지금 이 순간 가장 격하게 반응해야 할 헬렌이 조용했다. 현성은 구토가 나오려는 것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으며 헬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헬렌은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로 호롤로의 시신을 차분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남편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온함을 유지하는 모습에 현성은 머릿속 한구석에 묘한 괴리감을 느꼈다. 뭐라 말을 건내야 되는 지 조차도 의문이었다.
"흐음, 이 자는 이제 착한 드워프가 되었도다."
지랄, 그냥 죽인 거 잖아. 현성은 속으로 이 말을 수없이 되내이며 태클을 걸었다. 그러자 더 마운틴 1세는 느닷없이 현성을 바라보며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망치를 요란하게 흔들며 입을 열었다.
"이것이 드워프의 방식, 죄를 지었다면 똑같이 갚아주는 것이로다. 그대의 가치관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이것은 그대가 앞으로 많이 겪을 상황일 것이도다."
정말로 관심법을 쓰는걸까, 현성은 더 마운틴 1세가 마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정곡을 찔러옴에 당황하면서도 동시에 무언가 깨달음을 얻었다.
이 세계는 지구가 아니다. 다양한 종족이 살고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무작정 지구에서의 상식을 대입시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처럼 극단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어려웠지만, 호롤로가 이런 최후를 맞이한 것에 대하여 마땅한 불만 같은 것은 없었다. 만약 더 마운틴 1세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호롤로가 말했던 여자들 중에서 죽은 이가 있다는 소리였으니 말이다.
아무튼간에 더 마운틴 1세는 여전히 망치로 요란하게 재주를 부리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읏흠, 그럼 이 몸은 슬슬 들어가 보도록 하겠다. 너무 오래 나와있응면 그대가 힘들 터이니."
"아... 넵, 편히 들어가세요."
현성은 대충 더 마운틴 1세의 선언에 답했고. 더 마운틴 1세는 별 말 없이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말이지, 마나 속의 영혼을 불러낸다는 것은 신기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현성은 처참한 호롤로의 시체를 애써 무시하며 지나가 헬렌의 앞으로 다가갔다.
"괜찮아요?"
헬렌은 너무도 괜찮아 보여으나, 일단 예의상 물었다. 이에 헬렌은 무감각한 얼굴을 하고선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이것이 드워프의 방식이니까. 더군다나 더 마운틴 1세 님에게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해서 호롤로도 영광스럽게 생각할 것 입니다."
죽었는데 어떻게 영광스럽게 생각을 하냐, 라고 말할 뻔했으나. 현성은 본인도 지구에서 죽었음에도 이렇게 살아있으니 왜인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묘하게 헬렌의 말에 설득 되었다.
뭐....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니 괜찮은 것이겠지. 아무튼간에 현성은 일단 호롤로의 시체를 치우고선 이 지하실의 현장을 조사하고자 했다.
과연 다른 방은 어떤 상태일까, 현성은 이 방은 헬렌에게 맡기며 복도라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