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Chapter 2. 아빠와 딸? (81/89)



〈 81화 〉Chapter 2. 아빠와 딸?

끼익-


현성은 바로 건너 편에 있는 방의 문을 열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안에는 호롤로의 말과는 다르게 아무도 없었다. 그저 빵빵한 주머니가  쪽 벽에 여러 개 쌓여 있을 뿐이었다. 현성은 주머니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내용물을 살피고자 했다.

"과일...?"

주머니를 펼처 안을 살피자 보이는 것은 낯설지 않은 외견의 과일이었다. 현성은 이것이 호롤로가 자신에게 대접했던 과일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아마 미약을 대놓고 판매하면 유통 과정에서 쉽게 걸릴 수도 있으니, 어떠한 방법으로 과일에 미약을 담아내어 철저하게 숨긴 듯 했다. 이런 주머니가 여러개 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도적 길드라는 곳과 접선하지 않은 듯 했다.


일단 현성은 이것은 나중에 처리하기로 하였다. 이윽고 현성은 이번엔 바로 옆의 방으로 들어가 안을 살폈다.

그곳에는 흔히 영화에서나 볼 법한 술통 같은 통이 여러개 있었다. 현성은 그것을 보고선 미약을 제조하기 위한 재료라 추측하며 통의 뚜껑을 열었고. 아니나 다를까 통의 안에는 정체모를 이런 저런 풀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것들은 나중에 과일들과 함께 태워버려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현성은 뚜겅을 다시 닫고선 옆방으로 이동했고. 옆방에는 불을 때는 것으로 보이는 화로 같은 것이 있었다. 저것을 무슨 용도로 쓰는걸까? 현성은 순간적으로 더 마운틴 1세가 호롤로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호롤로는 살인을 하였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시체는 어떻게 처리를 했을까? 눈앞의 화로를 본다면  답은 명백했다. 그리고 현성은 화로의 옆에 놓여진 항아리를 발견했다.


스윽, 항아리의 뚜껑을 열자 탁한 백색의 하얀 가루들이 그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뼛가루, 호롤로는 이곳에서 죽은 사람들의 시체를 화로에 태운 것이라 유추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들었을 때에는 크게 와닿지 않았으나 이렇게 시체를 태운 흔적을 직접 마구하게 되니 심리부터가 달라진다.


호롤로는 죽어도 싼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을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현성은 이 끔찍하기 짝이 없는 공간에서 항아리만을 챙긴 채 밖으로 나왔다. 적어도 죽은 이들의 뼛가루는 뿌려줘야 마음이 놓일 듯 했다.

이윽고 현성은 복도에 항아리를 놓아두고선 끝자락에 위치한 방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덜컥-

다른 방의 문과는 다르게 잠긴 문.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잠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안에서 무언가에 가로막힌  문이 아주 조금만 열린 채로 더는 열리지 않았다.

허나 확실한 것은 있었다.


작게 열린 문틈 사이로 풍겨나오는 선명한 악취, 흡사 썩은내와도 같은  냄새에 현성은 구토감이 올라와 입을 틀어막으며 뒤로 물러섰다.

안을 확인하고자 싶었으나 코를 찌르는 역한 냄새에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확인은 해봐야했기에 현성은 문틈새로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그것은 곧 후회라는 감정으로 변했다.

"으윽..."

문틈 너머로 보이는 말라붙은 피와 썩어문드러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패된 시체. 그러한 것들이 수없이 쌓여 있었다.


현성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혐오와 역겨움이라는 감정이 물씬 올라왔고.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서는 속을 개어냈다.

어떻게 사람이 이토록 잔인할 수가 있는걸까, 현성은 치를 떨며 눈동자에 분노라는 감정을 덧씌웠다.


"괜찮으십니까..?"

어느샌가 호롤로에게 희롱 당하던 여성을 데리고 복도로 나온 헬렌이 거의 죽다싶이 무릎을 꿇고 있는 현성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헬렌이 느낀 현성의 인상은 다소 거친 편이었으나 분위기만큼은 부드럽고 상냥하다 느꼈었다. 하지만 지금의 현성은 그 분위기 마저 험악해져서는 한 마리의 야수와도 같았다.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물어 뜯을 듯한 모습, 그만큼 현성은 분노했고.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성욕, 그깟 성욕이 뭐라고 이런 짓을 벌인다는 말인가. 호롤로는 그렇게 편하게 죽어서는 안 됐다. 적어도 죽어간 이들만큼의 고통은 받고선 죽어야만 했다.

"후우.. 헬렌씨  방안에 사람들의 시체가 가득 쌓여 있네요. 나중에 같이 조치를 취하죠.."

현성은 정신을 똑똑히 차리며 부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몸을 일으켜 죽은 눈동자로 힘겹게 말을 건냈다. 아주 잠깐 보았을 뿐인데도 그 광경은 그 만큼 충격적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헬렌은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는 현성의 모습에 무거운 죄책감이 느껴졌다.


헬렌도 호롤로가 집의 지하 공간에서 이런 저질스럽고 가혹한 행위를 일삼아 왔다는 것은 몰랐다. 하지만 자신의 남편이 이런 짓을 벌이고 있었다는 것에 헬렌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근처에 있었음에도 어떠한 이상함을 느끼지  했던 자신이 한심했다. 애초에 미약을 만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의심을 했어야만 했다.


아니, 처음부터 미약을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호롤로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됐다. 그는 드워프 마을에서도 거짓말쟁이로 유명했던 남자였으니 말이다.


"...아닙니다. 제가 나중에 혼자 처리하겠습니다."


헬렌은 죄책감에 가슴이 미어와 침통한 얼굴을 하고선 현성에게 말을 건냈다. 적어도 현성에게는 이런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현성은 이 일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3자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이 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책임져야 된다고 헬렌은 생각했다.

끄득, 헬렌은 갑자기 울컥한 감정이 올라옴에 두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 조차 해주지 않았던 남자, 단 한 번도 위로 해준 적도 없던 남자, 언제나 지하실에 틀어박혀 대화 조차 제대로 나눠본 적 없던 남자, 무엇 하나 제대로 해준 것 없는 남자를 사랑했던 자신이 너무도 역겨웠다. 무엇 때문에 그런 남자를 사랑했던 것일까. 헬렌은 그 이유 조차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어쩌면 자신 또한 호롤로를 그리 사랑했던 것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헬렌의 머릿속에 문득 들이찼다.

허나 이윽고 현성이 건내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일단 헬렌 씨는 그 분을 데리고 먼저 올라가 계세요. 저는 남은 방들을 마저 확인해볼게요. 나중에 이야기도 좀 하구요."

"혹시 모르니까 이 분을 데려다놓고 다시 내려오겠습니다. 방 안에 다른 분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네, 그렇게 하죠."


현성은 헬렌의 말에 긍정을 표했다. 만약 남은 방에도 호롤로에게 희롱 당한 여성이 감금되어 있다면, 미약에 취한 상태에서 혼자 옮기는 것은 불가능 했다. 그렇게 헬렌은 축 늘어진 여자를 데리고 계단을 올라갔고. 현성은 남은 방들을 확인하고자 했다.


일단 계단 쪽에 있는 가장 가까운 방부터 현성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끼익, 방으로 들어온 현성은 이번에도 눈쌀을 찌푸렸다.


 방 또한 수갑에 묶인 채로 벽에 매달려 있는 여성이 있었다. 하지만 온몸이 비쩍말라 혀를 추욱 늘어트리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운 결말을 알려주었다.

일단 현성은 짧은 묵념을 하고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혹시나 죽어버린 시체에도 미약의 효과가 나타날까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성은 참담한 심정을 가라앉히며 옆방으로 이동했다.


끼익-


 방도 조금 전에 들어갔던 방과 마찬가지, 비쩍 마른 여성이 벽에 매달려 있었다. 현성은 이번에도 짧은 묵념을 하고선 조용하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마지막 방, 현성은 들어가기 전에 잠깐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부디 이곳에는 아무도 없거나 살아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랬다.

덜컥-

...

다행히도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현성은 왜인지 방안에서 꺼림직함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호롤로는 어떻게 이곳으로 그 많은 사람을 옮길 수 있었던 것일까? 현성은 문득 드는 의구심에 생각에 잠겼다. 일단  곳은 높은 산봉우리, 그 많은 사람들을 일일히 옮기지는 않았을 터였다. 설령 일일히 옮겼다고 하여도 헬렌에게서 들키지 않고서 이곳으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였다.


그렇다면 그 땅굴을 통한  말고도 다른 길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 이 방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또한 여기서 한가지 의문, 그런 땅굴을 호롤로 혼자서 파는게 가능한 일인가? 호롤로 말고도 연관된 인물이 더 있음이 분명했다.


호롤로가 말했던 도적 길드가 도와준 것일까? 이것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 지을  없는 문제였다.


일단 현성은 이곳을 조사해 보기로 했다.

우선 가장 간단한 방법, 현성은 정면의 벽을 두들기며 빈공간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했다. 양옆의 벽은 다른 방과 통하고 있기에 굳이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현성은 벽이 아닌 바닥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무언가 바닥을 밟는 느낌이 아니라 밑이 훤하게 뚫린 곳에 나무판자를 올리고 그 위에 흙으로 덮은 듯한 느낌. 땅속에 위치한 지하실 답게 바닥은 당연히 흙으로 되어 있어야 정상이었다.


그리고 현성은 발밑의 흙을 파해쳤다. 그러자 이곳으로 내려올 때 헬렌이 열었던 것과 비슷한 형식의 바닥문이 보였다.

이곳을 통해 사람들을 지하실로 옮긴 듯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의 의문.

과연 산에다가 이런 땅굴을 팔 수 있는 기술이 이 세계에 존재할까? 물론 있으니 이렇게 완성되어 있겠지만. 현성이 알기로는 지구에서도 이런 공간을 산의 땅밑에다가 만드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기본적으로 산은 흙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 당연히 그 속은 빈틈없이 꽉  있는 것이 정상이었고. 그 속에 무작정 땅굴을 파고자 한다면 산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적어도 파도 무너지지 않을 지층을 찾아야 됐으며, 천장 부분을 지탱할 구축물이 있어야 됐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는 과학의 힘을 빌린 전문적인 장비와 뛰어난 인력이 필요했다.

허나 이 세계에는 뛰어난 인력이라면 몰라도 전문적인 장비는 존재할 것 같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 지하실은 꽤나 전문적인 기술로 견고하게 지어졌다는게 눈에 보였다.  말은 즉슨,  지하실을 만들고 땅굴을 판 무리는 인간과 비교가 안 될정도의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 그 정도의 기술을 가지고 있을만한 이들은 누구인가.


이것은 아무리 판타지 세계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현성이라도 어렴풋이 눈치챌  있었다. 옛날에 보았던 반지와 관련된 영화에서 나왔던 종족이였다.

그것은 바로 드워프, 자세히는 몰랐으나 드워프가 이런 방면으로 뛰어난 종족이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확신을 해서는  됐다.

일단 올라가서 헬렌과 이야기를 나눠보자. 현성은 바닥문을 뒤로하며 지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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