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Chapter 2. 아빠와 딸?
현성은 뼛가루가 담긴 항아리을 가지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마침 헬렌이 내려오려던 찰나였다. 현성은 곧바로 상황을 전달했다.
"헬렌 씨가 데리고 간 여성 분 빼고는 전부 다 죽은 상태였어요."
"...안타깝네요.."
현성이 전달한 내용에 헬렌은 그저 암담한 표정으로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전했다. 헬렌은 어떠한 말을 뱉더라도 자신에게는 사치일 뿐이라 느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음에도 그들을 구하지 못 했다는 사실이 헬렌에게는 크게 와닿았다.
"자책하지마요. 어떻게 보면 헬렌 씨도 속은거잖아요."
현성은 축 처진 헬렌의 모습에 마음 같아서는 등을 토닥여주고 싶었으나, 호롤로가 먹인 미약 때문에 그럴 수 없었기에 그저 말로만 위로의 뜻을 전했다. 이것은 꽤나 도움이 됐는지 헬렌은 금새 평소 보였던 특유의 무감각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허나 이것이 진정 위로 때문인지, 아니면 혹여나 걱정을 끼칠까봐 감정을 숨긴 것인지는 현성으로써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헬렌이 죄책감에 힘들어 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단 어디 앉아서 얘기하죠. 하고 싶은 얘기가 많거든요."
"네, 그렇게 해요."
헬렌은 현성의 말에 따라 걸음을 옮겼고. 현성은 그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둘은 1층 구석탱이에 놓여진 의자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현성은 다른 것 보다도 가장 먼저 호롤로에 대해 정확히 알고자 했다. 헬렌이 말하길 호롤로의 말의 대부분은 거짓이라 한 부분이라던가, 미약을 먹여서 헬렌에게 덮치도록 하게 한 부분과 왜 와이프가 번듯히 존재함에도 그런 짓을 저질렀는가 라는 것들을 말이다. 어쩌면 헬렌이 말한 괴팍한 성벽과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했다.
"호롤로는 정확히 어떤 사람이었죠?"
현성은 초반은 가벼운 질문을 던졌고. 헬렌은 잠깐 생각을 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거짓말을 언제나 입에 달고 살았어요. 아마 호롤로에게 들은 대부분의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면 편할겁니다. 제가 딸이라는 얘기나 임신을 하지 않으면 죽는다던가 오로지 마법사와의 관계를 통해서만 임신이 가능하다는 얘기라던가 말이죠."
결론적으로 전부다 거짓이라는 얘기, 어쩐지 다시금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했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눈치채지는 못 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호롤로가 드워프인데 어떻게 헬렌을 나을 수가 있을까. 그런 뻔한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 하다니, 현성은 자신의 멍청함을 탓했다.
그러나 지난 날에 헬렌에게 말하지 않았던 것이 있었다.
"호롤로가 자신이 뛰어난 대장장이라면서 제국에 물품을 납부하고 있었다던데 맞나요?"
그 상황에서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기에 묻지 않았던 것, 현성은 호롤로가 자신을 소개했던 말 조차 거짓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이것은 거짓이 맞았다.
"아뇨, 호롤로는 드워프임에도 불구하고 대장장이 질은 커녕 망치 조차도 전혀 손을 안댔어요. 오히려 호롤로의 망치로 제가 직접 대장장이 질을 해서 물품을 만들어 제국에 팔았습니다."
처음 본 순간 부터 속였던 것이었다. 애초에 호롤로는 단 한 줌의 진실을 말한 적도 없었다. 현성은 호롤로에게 소름 끼칠 정도로 뻔뻔함을 느꼈다. 그래, 이것도 생각해보니 확실히 거짓말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집에 처음 들어왔을 때 조차도 망치를 들고 대장장이 질을 하던 것은 헬렌이었으니 말이다.
주의 깊게 정신을 차리고 있었으면 쉽게 눈치챌 법한 거짓말이었음에도 단 하나도 눈치채지 못 했다. 현성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대화를 이었다.
"일단은 알겠어요. 그렇다면 호롤로는 왜 저한테 미약을 먹인거죠? 헬렌 씨는 왜 저를 덮친거고요. 괴팍한 성벽이라는 것과 관련이 있나요?"
낯부끄럽고 예민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호롤로가 왜 그런 끔찍한 행위를 버렸는 지는 알아야 됐으니 말이다.
"드워프 남자는 성인이 된 순간, 성기가 떨어져 나가요. 그래서 드워프 남자는 성인이 된 후부터 교미를 못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호롤로는 제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에서 성적 쾌감을 느낀다고..."
적나라한 내용, 헬렌은 말을 하다가 낯부끄러운지 끝을 내지 못 하고 말을 늘어트렸다.
으음, 되게 안타까운 종족이다. 현성은 전혀 예상치 못한 헬렌의 대답에 순간 벙쪄서는 표정이 풀어졌다. 허나 짧은 순간에 간신히 정신을 다잡았다.
일단 호롤로는 고자라는 얘기, 그 점만큼은 통쾌하다 느껴졌다. 허나 호롤로가 헬렌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부분에서 성적 쾌감을 느낀다는 것에서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꼈다.
어떻게 자신의 부인이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것에서 그런 감정을 느낄 수가 있을까. 아무리 성불구자라 하여도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현성은 헬렌의 말에서 이상한 부분을 캐치했다.
헬렌은 분명 관계를 나누면서 처음이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호롤로는 어떻게 자신의 부인이 다른 남자와 몸을 섞는 것에서 쾌감을 느낌을 알 수 있었을까. 이것은 어딘가 어색하다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을 대놓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하는 것은 현성에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어제 관계를 나눌 때 분명 처음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호롤로가 어떻게 자신의 성벽을 알 수가 있는건지..?"
현성은 헬렌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 한채 말을 끊었다. 이런 것을 물어보기에는 현성은 거의 쑥맥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런 현성의 물음에 헬렌은 그제서야 깨달았다는 듯이 얼굴을 굳혔다.
"그렇군요. 확실히..."
이것을 왜 현성이 말해주고 나서야 깨달았을까. 헬렌은 자신의 무지함을 탓했다. 오늘의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전적으로 호롤로를 신뢰해왔기에 거짓말쟁이임을 알고 있음에도 믿어 의심치 않고 살아왔다. 헌데 그것이 이런 식의 결과를 나을 줄은 몰랐다.
또한 정말 그 얘기마저 거짓말이었다면, 헬렌은 왜 자신이 부끄러움을 무릅써가면서 소중히 간직해온 첫경험을 일면식도 없었던 남자에게 바친 것인지 억울한 감정이 들었다.
헬렌은 만약 현성이 이 사실에 의심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이것을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었을 거란 생각에 치를 떨었고. 자신의 첫 교미 상대가 현성이라서 다행이다, 헬렌은 그렇게 생각했다. 적어도 현성은 드워프적으로 많이 모자란 외모였으나 인간치고는 그에 못지 않게 매력적인 남자였고. 무엇 보다도 자상하고 배려심 깊은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헬렌은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고자 했다.
어차피 이미 일어난 일이었고 돌이킬 수 없었다. 더군다나 호롤로는 죽었다. 그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헬렌은 현재 호롤로에게 가진 감정에 깊이 있게 몰입하지 않는 것이 옳은 길이라 판단했다.
헬렌은 그저 지금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자 했다.
"저기.. 괜찮으신가요.?"
현성이 걱정스레 눈동자를 떨며 말을 건냈다. 그러자 헬렌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잠깐 생각할 것이 있어서요. 그래서 다음은 뭐죠?"
헬렌은 무뚝뚝하게 말을 이었고. 현성은 걱정스런 눈빛을 지우기는 했으나 여전히 그런 감정이 남아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현성은 헬렌의 무감각함에 따라 자신 또한 신경을 끄기로 했다.
헬렌이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굳이 자신이 신경을 쓰는 것은 오지랖을 부리는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현성은 묵묵히 현재의 상황에 집중했다.
일단 호롤로에 대해서 간략하게 나마 파악했다. 호롤로라는 사람은 다양한 인간군상 중에서 최악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였다.
"아마 이번 사건은 호롤로 혼자서 한게 아니라 협조한 다른 놈들이 더 있는 것 같아요. 헬렌 씨는 떠오르는게 있나요?"
집의 바로 아래 쪽에 있는 지하실, 현성의 말을 들으며 헬렌은 문득 이곳에 처음으로 자리를 잡았을 때를 떠올렸다.
아마 대략 10년 정도 더 되었을 터였다. 이 집을 처음 지었을 때 도와주었던 이들, 그들은 다른 마을의 드워프들이자 호롤로의 친구라고 하였다. 본래 호롤로는 다른 마을 출신의 드워프였고. 헬렌이 살던 마을로 이사를 온 것이었다.
지하실 또한 그 후에 만든 것이 아닌, 그때 당시에 호롤로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것을 헬렌은 기억하고 있었다.
당연히도 헬렌은 호롤로의 친구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상 그들이 호롤로와 함께 이런 짓을 꾸몄을 것이라 확신하다 싶이했다.
"처음 이 집을 지을 때 호롤로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지하실도 그 때 호롤로가 친구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 현성은 지하실에서 품었던 의문을 의도치 않게 해결했다. 어쩐지 그런 규모의 지하실과 더불어 추가적인 땅굴을 어떻게 만들었는가 싶었는데, 친구들의 도움을 받았다면 이해가 갔다.
"...어쩌면 그 친구들이 공범일 수도 있겠네요."
확신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정황이 너무도 그들이 공범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현성은 그들이 며칠 안에 지하실로 들어올 것이라 예상했다. 방안에 미약이 담긴 과일이 한가득 쌓여 있었으니 말이다.
"지하실의 방 하나에 호롤로가 제게 먹였던 과일이 여러개의 주머니에 한 가득 담겨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방에는 또 다른 땅굴이 있었구요. 아마 지하실에서 기다리다 보면 며칠 내로 그쪽이 먼저 찾아올 겁니다. 그것이 다른 누군가든 호롤로의 친구들이던 간에요."
"아, 통로가 더 있었군요. 확실히 그 사람들을 어디서 데려온 것인지 의문이였습니다. 호롤로는 지하실에서 거의 밖으로 나오지 않았거든요."
헬렌도 지하실에 어떻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옮길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나 보다. 여튼간에 이렇게 대책은 세워졌고 대화가 거의 마무리됐다.
아니다, 아직 얘기할게 남아 있긴 했다. 현성은 뒤늦게 잠깐 잊고 있던 존재를 떠올렸다.
"그 여자 분.. 상태는 어떻던가요?"
지하실에서 호롤로에게 희롱을 당하던 여자, 현성은 그 여자의 상태가 걱정이 되었다. 허나 그 여자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헬렌의 표정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상태를 보건데 아마 며칠 안에 죽을겁니다... 집에 있는 약품이나 붕대 같은 걸로는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내상이 심해요. 더군다나 미약이 과하게 투약되었는지 이성 자체가 사라진 거의 사라진 상태더군요."
자세한 설명, 헬렌은 그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에 여자의 상태를 파악한 듯 했다. 그런데 상태가 좋지 않을 거라 생각은 하였으나,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근처에 마을은 없나요? 의사라던가 그런건..."
"아뇨, 의사가 와도 소용 없을겁니다. 상태를 보건데 치료 마법을 중심으로 익힌 마법사가 와도 힘들 정도로 내상이 심하더군요. 더군다나 근처의 마을이라고 해도 가는 동안에 상태가 더욱 악화될겁니다."
헬렌은 단호하게 현성의 의견을 부정했다. 이 세계에 대해서 헬렌이 더욱 잘알고 있다는 것은 당연했고. 현성은 헬렌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만큼 다른 방법이 없을 것임을 인지했다.
허나 현성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마법, 현성은 자신이 마나를 다룰 수 있다는 것에서 그나마 다행임을 느꼈다. 적어도 살리려는 시도는 해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제가 마나를 다룰 줄 알아요. 그 여자 분한테는 제가 가볼테니까, 헬렌 씨는 지하실로 내려가서 왼 쪽 첫번 째 두번 째 방에 있는 시신들을 좀 회수해 주시겠어요?"
"알겠어요, 여자 분은 어제 지냈던 방의 반대 쪽 방에 눕혀놨어요."
현성은 효율적으로 일을 분배하고자 했다. 헬렌은 아직 묻고 싶은 것이 남았으나 우선은 현성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개인의 호기심 보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더욱 우선인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으니 말이다.
헬렌은 지하실에 나타난 '더 마운틴 1세'를 어떻게 불러낼 수 있었던 것인지는 나중에 물어보기로 하고선 자리를 떴고. 현성도 여자의 상태를 보러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