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Chapter 3. 두더지 잡기.
후욱-
산꼭대기에서 흩뿌려지는 회색빛의 재.
현성은 여자의 치료가 끝난 후, 밖으로 나와 들고온 항아리의 뼛가루를 허공에 뿌리며 넋을 위로했다.
부디 다음 생에는 행복하게 살기를, 죽어도 끝이 아님을 아는 현성이었기에 이들이 환생을 하여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운명에 처하지를 않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리고 한차례 여유가 찾아옴에 현성은 잠시 잊고 있던 이를 떠올렸다.
"무사한 거야 뭐야..."
레이첼, 현성은 츠바키에게 자신이 의식을 잃었던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을 때 그 이야기 속에 레이첼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도 없었기에 온갖 근심걱정이 들었다.
적어도 무사한지 아닌지라도 알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성에게 있어 레이첼은 특별한 존재였다.
아무것도 아는 것 없는 이 세계에 와서 호의를 준 얼마 안 되는 사람, 스승과 제자라는 판타지에서나 나올 법한 관계를 맺은 사람.
그렇기에 현성은 애타는 마음으로 마지막 남은 뼛가루까지 뿌리고선 항아리를 바닥에 내려놨다.
그리고 뒤에서 느껴지는 시끄러운 인기척에 등을 돌려 정체를 확인했다.
"현성쿤! 아나짱하고 연락이 닿았어!"
"..그게 누군데?"
다짜고짜 나타나 누군가와 연락이 닿았다고 외치는 츠바키, 허나 현성은 아나짱이라고 하는 사람을 몰랐다. 그렇기에 의아한 반응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내 친한 동생이니까 나중에 보면 친하게 지내면 돼! 아마 브랜드도 있을거야!"
"...뭐, 그럴게."
현성은 츠바키가 설명을 하기 귀찮아하며 대충 친하게 지내라 말하자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그저 연락이 닿았다는 말과 브랜드가 있을 거란 말에 츠바키가 무슨 소식을 전해올지 들을 생각이 만만했다.
그리고 츠바키는 호기롭게 현성의 앞에서 검지 손가락을 튕기며 입을 열었다.
"아나짱이 안전해졌다고 일주일 뒤에 드워프 산맥의 중심에서 만나재. 그리고 뭐냐.. 용사? 아무튼 다른 사람들도 엄청 많이 있다던데?"
일주일 뒤에 드워프 산맥의 중심이라.
...
"우리가 거기가 어딘지 어떻게 알고 가?"
"...그러네?"
현성은 벙찐 얼굴을 하고선 얼척이 없는 대답을 하는 츠바키의 모습에 황당함을 느꼈다. 설마 위치가 어딘지도 모르면서 옳다구나 하고 온걸까.
가만 보니 츠바키는 되게 엉성한 부분이 있었다.
그런 부류가 있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착한 성격에 언제나 성실하고 매사에 열심히 하면서 주변의 분위기를 밝고 활기차게 만드는 분위기 메이커임과 동시에 엉뚱한 부분에서 실수가 잦은 부류, 어느 무리에서나 한명씩은 있을 법한 인강상이었다.
그리고 츠바키가 딱 그랬다.
착한고 밝은데 무언가 엉뚱한 느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현성은 자신이 뭐라 할 입장이 아니었기에, 굳이 질타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는게 없는 주제에 주둥아리만 나불대는 것 만큼 현성이 싫어하는 것이 없었다.
또한 현성은 드워프 산맥의 중심이 어디 있는지 굳이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 위치를 알고 있을 법한 사람이 한 명이 있지 않은가.
"뭐, 헬렌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드워프니까 아마 알고 있을거야."
"아! 그러네? 헬렌 언니 드워프라고 했지!"
언니? 현성은 헬렌을 자연스럽게 언니라 부르는 츠바키의 모습에 뭔가 싶었으나, 여자들은 대게 빨리 친해지는 편이라 들었기에 그러려니 햇다.
어찌됐든 현성은 바깥에서의 일을 다 했으니 슬슬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츠바키의 소식이 더해지면서 확실하게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지하실의 문제와 드워프 산맥의 중심으로 가는 일, 두 개의 일이 겹치게 된 것이니 말이다.
"일단 들어가서 얘기하자. 헬렌 씨랑 앞으로 어떻게 할건지 얘기해야지."
"응, 그래. 들어가서 얘기하자!"
조금 전만 해도 우중충 했다가 순식간에 다시 밝아지는 것이 감정의 스팩트럼이 넓어도 너무 넓다. 하지만 그것이 츠바키의 매력이라면 매력이라 볼 수 있었기에 현성은 먼저 집으로 향하는 츠바키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집안, 마침 헬렌이 지하실에서 일을 끝마쳤는지 모포에 쌓인 2개의 시체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아마 왼쪽 2개의 방에 죽어있던 시체인 듯 했고. 묻어주기 위해서 들고나온 것 같았다.
"아, 마침 잘 만났네요. 저기 화로에서 숯 좀 챙겨나와 주실겠습니까?"
"네, 제가 들고 나갈께요. 츠바키 너는 잠깐 앉아 있어. 내가 갔다올테니까."
현성은 츠바키에게 남아 있으라 말했다. 헬렌이 숯 을 들고 나오라 하는 이유는 뻔했다. 시체를 태우기 위해서, 헬렌은 화장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히 시체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죽은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시체의 상태가 그리 온전치 못 했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시체의 모습은 흡사 미라와도 같이 삐쩍 마른 상태에 혀가 축 늘어져 있었다. 그것은 자칫하면 깊은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었기에 현성은 츠바키를 배려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허나 츠바키는 주저없이 고개를 저으며 당차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선 가슴팍에 모았다.
"아냐, 나도 갈게! 굳이 배려해주지 않아도 괜찮아!"
결의가 짙은 눈빛, 현성은 츠바키가 진심으로 말하는 모습에 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원하는데 배려랍시고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배려가 아니라 그 사람을 무시하는 행위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현성은 화로에서 숯을 양동이에 담아 츠바키와 함께 밖으로 나갔고. 앞서 밖으로 나갔던 헬렌은 이미 불을 피우기 위한 장작들을 쌓아놓은 상태였다.
화륵-
술을 건네받은 헬렌이 능숙하게 마른잎에 불을 붙였고. 그 불은 곧이어 쌓아놓은 장작에까지 옮겨져 거센 불길이 되었다.
그리고 현성은 모포로 들춰 차게 식은 시체의 얼굴을 눈에 익혔다. 혹시라도 나중에 친인척이라도 만나게 된다면 소식을 전해줄 수도 있지않은가. 물론 그 확률이 얼마나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갈 땐 가더라도, 맑은 공기는 보면서 가야죠. 이제 태우겠습니다."
맞는 말이다, 현성은 헬렌이 무감각하게 뱉은 말에 동의했다. 지하실에도 시체를 태우는 화로가 있기는 했으나, 그런 곳에서 태우는 것은 죽은자의 예의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현성은 마지막으로 시체의 모포를 다시 덮어두고선 헬렌에게로 넘겼다.
그렇게 헬렌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 시체를 손수 집어넣었다. 불길이 바로 앞에서 솟아오르는데도 뜨겁지도 않은지 헬렌은 한동안 그 앞에서 멍하니 서있다가 뒤로 물러났다.
시체는 조금씩 불에 타올라 형체가 사라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연소되어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잡아야겠지? 이런 못된 짓을 벌인 사람은 무조건 잡아서 똑같이 호되게 당해봐야 맞는거지?"
묵묵히 침울한 얼굴로 지켜보던 츠바키가 한껏 가라앉은 침묵 속에 선뜻 말을 던졌다.
"잡아야지. 적어도 벌은 받아야 되지 않겠어?"
"드워프의 원칙대로 망치로 머리를 내려치면 충분합니다."
마지막에는 무언가 살벌한 소리가 들려왔으나 결론적으로 모두의 생각은 동일했다.
범인을 잡는 것, 지하실에 있는 통로로 찾아올 범인들을 잡는 것이었다.
***
늦은 저녁, 현성은 지하실의 방안에 의자를 가져다놓고 헬렌과 함께 통로를 지켰다. 츠바키는 의식을 잃은 상태인 여자를 챙기기 위해 2층에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현성은 범인들이 제 발로 찾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왜 호롤로는 이런 일을 저질렀는가.
분명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호롤로는 성욕 때문에 그랬다고 그랬다. 뭐랄까, 되게 애매모호해서 부족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정확히 무슨 이유로 그랬는지라도 말해주고 죽을 것이지, 현성은 고인이 되어버린 호롤로였으나 모독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그는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일단 호롤로에 관하여 정리해보자.
호롤로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하자면, 거짓말쟁이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헬렌에게 말한 자신이 괴팍한 성벽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도 거짓일 가능성이 높았다.
헌데 이상한 점이 존재했다.
만약 그 괴팍한 성벽, 자신의 부인이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는 것에서 성적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 거짓이라면 호롤로는 무슨 이유로 자신의 집에 우리들을 초대했을까.
현성은 이에 대해 이상함을 감지했다.
그도 그럴것이 집의 지하실에서 그런 짓을 벌이고 있는데, 보통은 그것을 숨기기 위해서 손님을 들이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거짓말까지 해가며 위험을 무릅쓰고 들일 이유가 무엇이 있겠냐는 거였다.
또한 호롤로는 미약을 팔아서 무엇을 얻으려고 한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가장 정답에 가까울 듯한 것을 고르자면 당연히 돈 때문이겠지만은, 헬렌이 말하길 본인이 직접 대장장이 질을 하여 제국에 물품을 팔았다고 하였다.
이는 개인이 국가와 거래를 한 것, 돈이 넘쳤으면 넘쳤지 절대로 돈이 부족하지는 않을터였다. 그러다 문득, 현성은 머릿속에서 호롤로와 처음 만났을 때 하였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 처럼 제국에 당했냐는 듯한 말, 현성은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 호롤로는 많은 양의 전쟁 물자를 판매하면서 받기로한 금액을 받지 못 하였다고 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호롤로가 납부한 것이 무기나 갑옷 같은 것이 아닌, 미약과도 같은 약물이라면 얘기가 어떻게 되는걸까?
...
그러고 보니 그 땅굴에 호롤로가 끌고가던 수레가 남아있었던가?
이것은 조사해볼 필요가 있었다.
"저 잠깐만 어디 좀 갔다올게요."
"아..!? 네, 다녀오세요."
현성은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헬렌에게 말을 전했고. 헬렌은 잠깐 멍을 때리고 있던 것인지 갑자기 말을 걸자 화들짝 놀라며 무턱대고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 하였다.
그렇게 현성은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