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1 서장 =========================================================================
[비상사태입니다! 비상사태입니다!!]
기장의 떨리는 목소리가 장내에 울렸다.
[승객 여러분, 저희 비행기는 현재 원인불명의 기체 이상으로 비행 궤도를 이탈하고 있습니다!]
콰앙!!
그 말과 함께, 갑자기 비행기 한쪽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렸다.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였다!
거대한 콩코드 여객기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꺅!!”
“살려줘!!!! 아악!!”
[승객 여러분, 주엔진이 정지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비상탈출을 준비해주십시오. 다시 한 번 말씀합니다. 지금 당장...]
승객들 모두의 얼굴이 하얗게 죽었다.
비상탈출이라니?
지금 비행기의 위치는 태평양 한가운데, 1만 미터 높이의 고도였다.
여기서 비상탈출하면 무조건 죽는다.
“아악!! 살려줘!! 난 이렇게 죽을 수 없어!!!”
“엄마!! 아악!!!”
승객 모두가 죽음의 공포에 질려 악을 질렀다.
그리고 그 순간.
비즈니스석에 앉아있는 한 한국 여인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비상탈출이라고? 여기서 비상탈출해서 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안 돼! 또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이번 삶도 행복하지 못했는데. 이제 겨우 행복해지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송지현.
외과의사이자, 최연소 서울대학교 의대 교수로 발령 난 천재였다.
‘죽도록 노력했는데! 이제 겨우 지난 삶의 잘못을 갚으려고 하고 있는데!!’
마스터 서젼(master surgeon). 그레이트 서젼(great surgeon). 희대의 천재. 괴물.
이렇듯 그녀를 부르는 별명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이제 죽을 운명인데.
‘이번 삶은 행복해지고 싶었는데.’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벌써 두 번째 허무한 죽음이다.
그녀의 눈앞에 지난 두 번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첫 번째 삶은 이곳 지구가 아닌, 다른 세상이었다.
엘리제 드 클로렌스.
귀족 가문의 딸로 태어나 황후의 자리까지 올랐으나, 탐욕과 질투에 온갖 나쁜 짓은 다 하며 살다가 처형당했다.
‘그때는 왜 그렇게 살았을까?’
떠올리기도 싫은 흑역사다.
이제는 만날 수도 없지만, 당시 잘못했던 사람들에겐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특히 가족들. 자신 때문에 목숨을 잃었던 사랑하는 이들.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부질없는 바람일 뿐이었다. 당시의 잘못은 그녀 가슴의 한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삶.
송지현.
고아로 태어나 필사적으로 노력하며 살았다.
고아임에도 과학고 조기졸업, 서울대 의대 수석 입학, 졸업, 외과 최우수 전공의, 그리고 서울대 의대 최연소 교수!
첫 번째 삶의 잘못을 사람을 살리는 일로 갚고자 끝없이 노력했다. 그리고 이제 겨우 꿈을 펼치고, 겨우 행복해지려 하고 있었는데! 이런 죽음이라니!!
그때였다!
콰앙!!
다시금 굉음이 울렸고, 비행기가 크게 기울었다!
“...!!!”
그리고 메케하게 올라오는 타는 냄새.
그녀는 죽음을 직감했다.
이미 비상탈출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닥쳐오는 공포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
어째서일까?
문득 첫 번째 삶, ‘엘리제’로 살던 때의 가족들이 떠올랐다.
근엄하던 아버지.
엄격하지만, 마음 속 깊이 자신을 생각하던 큰 오빠.
그리고 못난 자신을 항상 아끼던 자상한 작은 오빠.
소중했던, 그때는 그 소중함을 몰랐던 이들.
그들이 보고 싶었다.
그들에게 저지른 자신의 잘못때문일까? 30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이전 가족들을 향한 그리움은 깊어만 갔다.
'다시 한번만 만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번쩍!!
굉음과 함께 시야가 빛에 뒤덮였다.
그것이 그녀, ‘송지현’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렇게 그녀의 두 번째 삶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