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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3화 (1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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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때 황제와 엘 후작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귀족파의 수장인 차일드 후작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어떤가?”

“3황자 전하와 회동이 잦아지고 있습니다.”

“나라에 도움은 안 되는 밥벌레 같은 놈들.”

황제는 혀를 찼다.

“일단 동태를 살피겠습니다.”

“그래, 하지만 너무 깊이 건드리진 말고. 그렇지 않아도 그자들이 가장 눈엣가시로 여기는 게 자네 클로랜스 가문이니.”

엘 후작은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희 클로랜스 가문은 그렇게 나약하지 않습니다.”

엘 후작의 클로랜스 가문은 친(親) 황제파의 수장이었다.

아무리 귀족파라도 미치지 않는 한 클로랜스 가문을 직접 건드릴 수는 없다.

“폐하.”

“응, 왜 그러나?”

“아까 전, 엘리제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모두 저의 잘못입니다. 제가 따로 따끔히 혼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뭘 혼내나. 예쁘지 않은가? 곱게 자란 그 아이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한다는 것이.”

“... ... .”

“그리고 난 깜짝 놀랐어. 테레사가 떠올라서.”

“...!!”

엘 후작은 눈을 크게 떴다.

“그 아이의 어미인 테레사도 이전 저랬던 적이 있지 않았나? 가문을 나가 간호사가 되겠다고 해서,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었지.”

황제의 눈이 먼 허공, 추억을 더듬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었지요.”

엘 후작이 씁쓸히 답했다.

테레사.

엘 후작의 전(前) 부인이자, 엘리제의 생모로 과거 젊은 시절 황제와 그는 동시에 그녀를 연모했었다.

황제가 엘리제를 많이 아끼는 것도, 이전 자신이 사랑했던 테레사를 떠올려서인 점도 있었다.

“일단 내기를 했으니, 엘리제 그 아이에게 병원에서 일해 볼 기회를 주려고. 며칠 고생하다 보면 금방 포기하겠지.”

황제는 그녀가 1주일도 못 버틸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면 교육 병원은 어디로? 황실 십자 병원으로 알아볼까요?”

후작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황실 십자 병원은 황족과 최고위 귀족들만을 상대로 하는 제국 최고의 의료기관. 아무리 클로랜스 영애라도 아무런 자격없이 그런 곳에서 교육받게 할 수는 없지.”

“그러면...?”

“뭘 고민하나? 자네, 클로랜스 가문도 병원을 하나 가지고 있잖아.”

“...!!”

후작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고 보니 그도 병원을 하나 가지고 있긴 했다.

그것도 커다란.

“테레사 병원. 그곳에서 교육받게 하게.”

“...!!”

테레사 병원!

엘 후작이 남몰래 지은 제국 최대 규모의 의료기관이다.

“하, 하지만... 그곳은...”

“왜? 테레사 병원이면 훌륭한 교육 장소가 될 것 같은데?”

황제가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후작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온갖 환자가 모이는 테레사 병원은 최고의 교육 장소긴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테레사 병원은 빈민 구제 병원인데...’

엘 후작이 은밀히 후원해 건립한 테레사 병원은 부유층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병원이었다.

그런 만큼 험한 질환이나 일이 많았다.

평생 손에 물 한 번 묻혀본 적 없는 엘리제는 일주일... 아니, 반나절도 못 버티리라.

‘그걸 노리신 거군.’

엘 후작은 황제의 의중을 깨닫고 생각했다.

“영애에게 좋은 경험이 될 걸세.”

황제가 미소를 지었다.

왠지 악동 같은 미소였다.

***

그렇게 엘리제의 병원 교육이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

“엘리제, 네가 의사가 되겠다고?”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가족들의 반응은... 음... 별로 좋진 않았다.

“이젠 집에서 말썽 피우는 것도 모자라 병원에서까지 난리 피우겠다고? 적당히 좀 해.”

큰 오라버니는 작작 좀 하라는 얼굴로 짜증 냈고,

“음... 리제, 의사가 되고 싶으면 우리 병원 놀이할까? 오빠가 환자 해줄게.”

작은 오라버니는 곤란히 달랬으며,

“... ... .”

새어머니는 뭐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엘리제가 의사가 되려고 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황당해할 뿐.

'잠시 저러다 말겠지.'

그렇게 모두 그녀가 한때의 변덕을 부리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엘리제는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크게 개의치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너무 두근거려서!

‘드디어 병원에 가는구나!’

지구에서 처음 병원실습 나갔을 때가 떠올랐다.

흰 가운을 입고 얼마나 가슴이 설렜었는지.

그녀가 지구에서 의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이전의 삶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수술장에서 사람을 살리는 감각을 느낀 순간, 의술은 그녀의 운명이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중독’이었다.

화가가 그림에 중독되듯, 작곡가가 음악에 중독되듯, 그녀는 그 환자를 살리는 감각에, 수술과 환자에 중독됐다.

“작은 오라버니.”

“응?”

“출근할 때 저 브리티아 도서관에 데려다 주시면 안 돼요?”

작은 오빠는 제국 행정부의 관료였는데, 제국 최대 규모의 브리티아 도서관은 행정부 바로 옆에 있었다.

“그래, 우리 리제 부탁인데 얼마든지. 그런데 오빠가 요즘 바빠서 일이 늦게 끝나 같이는 못 올 것 같아.”

“아니에요. 저도 늦게까지 있을 거니, 일 끝나고 오세요.”

그리고 그녀가 도서관에 도착해서 한 일은 의학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병원에 나가기 전 1주일 정도 시간이 있으니, 최대한 의학 서적을 봐놔야지.’

물론 그녀가 의학 지식이 없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머리에는 제국의 수준과는 비교도 안 되는 최첨단의 의학 지식이 들어있으니까.

따라서 그녀가 공부하려는 이유는 단 하나.

제국의 의학 수준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제국의 의학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야 그에 맞춰 치료할 수 있어.’

그녀가 알고 있는 지식은 모두 현대 지구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지구와 제국은 사용 가능한 의약품, 수술 도구, 의료 기술이 완전히 다르니까. 현시점에서 밝혀지지 않은 질환들도 있고.’

그녀는 산더미처럼 책을 쌓아놓고 정독하기 시작했다.

한치의 미동도 없이, 집중하여.

그렇게 밥도 안 먹고, 반나절 정도 공부한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도 생각보다 의학 수준이 높구나. 의약품도 있을 건 웬만큼 다 있고.’

이제 막 기차가 다니기 시작하는 대륙의 발전 수준을 생각하면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특히 의약품 쪽이 놀라워. 벌써 항생제도 있고, 마취제도 있다니!’

지구에서 처음 항생제가 발명된 것은 1929년인데, 제국에선 벌써 항생제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X ray 검사도 가능하고, 분자유전학을 제외한 간단한 화학 검사도 가능해.’

엘리제는 생각지도 못한 의학 수준에 감탄했다.

제국이 이런 의학 수준을 갖게 된 것은 단 한 명의 인물 덕분이었다.

대 연금술사(Great alchemist) 프레밍!

미치광이 연금술사라 불리는 프레밍은 희대의 천재였다.

‘말이 연금술사지, 사실은 과학자나 화학자에 가깝지.’

고도의 연금술, 정확히는 화학 지식을 이용해 평생을 의약품 개발에 매진한 그는 의학사에 획을 그을만한 약품들을 수도 없이 개발했다.

‘혹시 프레밍도 나처럼 지구에서 살다가 되살아난 사람은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업적은 대단했다.

‘만약 지구였으면 노벨 의학상을 20번은 받았을 거야.’

다만 안타까운 점은 제국의 의사들이 그의 업적을 잘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약이 있는데, 그 약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고나 할까?

‘저 약은 부정맥에 사용하면 될 텐데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구나. 이 약도 그렇고.’

프레밍이 개발한 약이 어떤 효능을 가졌는지, 어떤 질환에 사용되어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질환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니 어쩔 수 없겠구나.’

엘리제는 커다란 노트와 펜을 꺼냈다.

그리고 어떤 질환에 어떤 약을 써야 할지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 질환에는 이 약을.’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반나절, 한나절이 지나갔다.

해가 중천에 떠오른 후, 떨어지고, 어둠이 깊어갔지만,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

그만큼 집중해 공부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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