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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19화 (1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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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녀가 놀란 이유는 보통 구호소에는 도제 생활을 오래해 실력을 인정 받은 견습생들이 나가기 때문이다.

그레이엄도 잠시 고민했다.

'이 아이를 구호소에 보내기에는 조금 빠르려나?'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왠지 이 소녀라면.

구호소로 보내도 아무런 문제 없을 것 같았다.

'어차피 여기서 더 가르칠 것도 없을 것 같고. 구호소에서 같이 환자를 보며 가르치는 게 낫겠어.'

그리고...

'중환 환자들이 응급하게 오는 구호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기도 하고.'

까칠한 성격을 가졌지만, 의학을 자신의 모든 것으로 여기고 있는 그레이엄.

이 상식 밖의 재능을 가진 소녀가 구호소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

그리고 그날 저녁, 클로랜스 후작가.

"엘리제."

"네, 아버지."

"병원에서는 지낼 만 하느냐?"

엘리제는 웃으며 답했다.

"네, 즐거워요."

사실 그녀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환자를 보고 싶었으나, 견습생 신분이니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 힘들진 않고?"

"네, 괜찮아요."

엘 후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딸이 고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 빨리 포기하길 바랐으나,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병원에 갈 때마다 즐거워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나저나 테레사 병원. 이놈들을 그냥.'

그는 남몰래 엘리제의 병원 생활을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을 부랑자 병실에 넣어놓고 방치해?!

클로랜스 가문의 딸인 것을 숨긴 바람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엘리제가 말리지만 않았어도. 다 잘라버리는 거였는데.'

테레사 병원의 의사들은 모를 것이다.

딸의 만류가 아니었으면, 병원에 해고의 피바람이 몰아쳤을 것이란 사실을. 특히 그레이엄인가 하는 젊은 놈팽이는 무조건 모가지였다.

'저 여린 애에게 부랑자를 보게 하다니!'

병원에 나간 지 이제 10일째.

그렇지 않아도 여린 아이가 살이 더 빠졌다.

'당장에라도 그만두게 하고 싶은데, 저리 좋아하니. 하아.'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내일부터는 어디로 교육을 나간다고?"

"구호소요."

"뭐? 구호소?"

엘 후작은 눈썹을 꿈틀했다.

그도 구호소가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다. 외상 환자와 중증 환자를 보는 험악한 곳 아닌가!

'저 약한 애를 구호소로 보낸다고? 이놈들을 진짜!'

병원장인 고트 자작을 불러 호통치고 싶었다.

도대체 도제 교육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그레이엄이란 놈은 당장 해고하라고!

딸이 웃으며 이렇게 말하지만 않았으면, 당장 그랬을 것이다.

"가서 열심히 배우고 올게요, 아버지. 저 잘할 수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지 말고 믿어달라는 목소리.

"...!!"

엘 후작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엘리제."

"네, 아버지."

"누가 괴롭히거나 힘들게 하면 이야기해라. 내 가만두지 않으마!"

만약 누군가 그녀를 괴롭히면 병원에 폭풍이 몰아닥칠 것 같은 목소리.

아비의 사랑에 엘리제는 그저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

어쨌든 그렇게 엘리제는 아버지의 걱정을 뒤로하고 테레사 병원의 구호소로 나가기 시작했다.

“로제라고 합니다. 오늘부터 견습생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

구호소의 모두가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누구지?’

‘귀족가의 아가씨 같은데, 견습생이라고? 구호소에는 왜?’

구호소는 환자의 상태가 중하기 때문에 병원에서 오랜 시간 도제 수련을 거쳐 실력이 무르익은 후 오게 되는 곳이다.

따라서 지금 구호소에서 일하는 도제들은 모두 최소 3년 이상의 도제 생활을 거친, 의사가 되기 직전 단계의 숙련자들이었다.

그런데 저런 소녀가 오다니?

“레이디, 잘못 오신 것 같습니다. 이곳은 다치거나 중한 환자들이 오는 구호소입니다.”

도제 중 우두머리격인 청년이 말했다.

인형 같은, 그러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소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말투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보고 오늘부터 구호소에서 일하라고 말씀하셔서 나오게 되었어요.”

“레이디의 선생님이?”

청년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뒤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다. 내가 이 아이의 스승이다.”

“...!!”

모두 놀라 나타난 이를 바라봤다.

“팰론 교수님!”

까칠한 인상, 잘생긴 얼굴.

그레이엄 드 팰론 남작이었다.

“한슨.”

“네, 교수님!”

도제들의 우두머리, 한슨이 긴장해 답했다.

병원 위에서야 이리저리 치이는 그레이엄이지만, 도제들이 보기엔 하늘 같은 위치의 교수였다.

특히 젊은 천재라 불리는 그의 뛰어난 실력을 모두 존경하고 있었다.

“이 아이는 오늘부터 구호소에서 교육을 받을 거다. 내가 주로 가르칠 거긴 하지만, 내가 자리에 없거나, 바쁠 때는 네가 대신 좀 챙겨주도록.”

그 말에 한슨은 의문이 들었다.

‘저 소녀가 구호소에서 교육을 받는다고? 할 수 있을까?’

구호소에서의 도제 교육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었다.

응급실의 역할을 하는 곳답게 도제들도 의사들의 처치를 도우며, 실제로 진료에 참여하게 된다.

가슴이 철렁할 응급 환자들도 많이 봐야하는데... 저렇게 여려 보이는 소녀가 버틸 수 있을까?

‘중환자는커녕, 피 한 방울만 봐도 기절할 것 같은데?’

어쨌든 존경하는 교수의 지시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난 회의에 갔다 올 테니, 구호소의 물품들이나 알아야 할 사항들을 가르쳐주고 있도록.”

“네!”

그레이엄이 떠난 후, 한슨은 엘리제에게 다가갔다.

“레이디 로제?”

“네, 선배님. 그냥 편하게 로제라고 불러도 됩니다.”

“그, 그래.”

차분한 음색. 그러면서도 인형 같은 얼굴.

한창 혈기왕성한 나이의 한슨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살짝 붉혔다.

너무 예쁘게 생겼다. 태어나서 이렇게 예쁜 소녀는 처음이었다.

‘당연히 귀족이겠지?’

기품있는 태도에 그렇게 생각했다.

산업화, 봉건제의 몰락, 시민 계급의 대두 등,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귀족의 위치가 변하며 작위를 잇지 못하거나, 특별히 재산을 축적하지 못한 귀족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인 의사가 되려고 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한슨의 아버지만 해도 단승귀족 출신이었니까.

“이쪽으로 올래?”

“네.”

“이곳이 외상 환자를 보는 구역이고, 여기가 수액을 모아놓은 곳이야. 수액은 어떨 때 쓰는지 아니?”

한슨은 친절히 이것저것 설명해주었다.

“교수님들이 24시간 구호소에 상주하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환자가 오면 우리 견습생들이 간단히 먼저 보고, 선생님들께 보고를 드려. 그러면 각 담당 선생님이 와서 진료를 보는 식으로 구호소가 운영되고 있어.”

지구의 응급실과 비슷한 운영체제였다.

한국의 대학 병원에서도 응급실에 처음 환자가 오면 인턴이나 레지던트가 진료 후 각 전문 분야의 의사에게 노티(notify)를 하니까.

“여기는 수술 도구들. 급한 외상 환자가 왔을 때 이곳에서 바로 수술을 하기도 해.”

“네.”

“이거는 나중에 환자가 오면 어떻게 사용하는지 직접 보여줄게.”

자신의 설명에 다소곳이 답하는 소녀를 보며 한슨은 가슴이 설렜다.

맨날 시커먼 남자들 사이에서만 지내다가 이런 귀여운 소녀라니!

점점 그의 목소리에 다부진 힘이 들어갔다.

“이 도구는...”

그런데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가 구호소에 울렸다!

“선생님, 여기 환자 왔어요!!”

“...!”

한슨이 엘리제를 돌아보며 믿음직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가자, 로제. 어떻게 진료하는지 알려줄게.”

그런데 구역을 옮겨 환자를 본 한슨의 얼굴이 굳었다.

“하아, 하아. 숨이!”

키 크고 마른 젊은 남자가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가슴이 들썩들썩 거리는 게,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가, 가슴이...! 하아, 하아!”

얼마나 숨이 차는지, 환자는 제대로 말도 잇지 못했다.

한슨이 다급히 외쳤다.

“흉통 환자니 심장 전류 측정 기계 가져와 주세요! 그리고 그레이엄 선생님 불러주세요!”

고작 견습생인 자신들이 볼 환자가 아니었다.

간호사가 당직인 그레이엄을 부르러 달려간 사이, 한슨은 급히 검사를 하려 했다.

“환자분, 조금만 참으세요! 금방 검사하고 조치해드릴게요!”

그런데 그때였다.

옆에 서 있던 엘리제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심장을 보는 전류 검사를 할 때가 아닌데. 이 환자의 병은 심장의 문제가 아니야!’

이 환자를 보자마자 그녀의 머릿속에 한가지 진단이 떠올렸다.

양상을 봤을 때 이 환자의 병은 ‘그것’이 분명했다.

‘상태를 봤을 때 그레이엄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버틸 수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지?’

그녀는 오늘 구호소에 처음 온 교육생이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환자에 대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의료진은 한슨으로 그녀에겐 결정권한이 없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커억...”

환자가 외마디 비명과 함께 눈을 뒤집고 넘어갔던 것이다!!

“환자분!! 환자분!! 정신 차리세요!!! 여기요! 빨리 그레이엄 선생님 모셔와 주세요!! 빨리요!!”

한슨이 당황해 외쳤다.

그리고 그 순간, 엘리제가 나섰다.

“선배님.”

“응?”

“죄송한데... 청진기 빌려주세요.”

“뭐라고?”

“청진기 빌려주세요. 급합니다. 빨리요!”

“...!!”

한슨이 당황하는 사이, 그녀는 그의 목에 걸린 청진기를 낚아챘다.

“죄송합니다! 설명은 나중에 드릴게요!”

“...!!”

자세한 설명을 할 시간이 없었다.

곧바로 환자의 흉부에 가져가 폐음(lung sound)을 청진한 그녀의 안색이 굳었다.

‘역시...!’

폐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소견과 마른 체형, 큰 키, 급작스러운 가슴의 통증, 심한 호흡곤란이 종합되자 한가지 진단이 내려졌다.

‘기흉(Pneumothorax)이 분명해!!’

그녀는 정도(Grade)를 파악했다.

‘기흉은 흉강에 공기가 터져 나와 폐를 짜부라트리는 질환! 이 정도면 왼쪽 폐의 70% 이상은 구겨졌을 거야. 아니, 단순히 폐만 찌그러진 게 아니라...!’

그녀는 급히 경동맥도 만졌다.

그리고 안색이 하얘졌다. 경동맥의 맥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한 기흉이 아니라... 긴장성 기흉(Tension pneumothorax)!!'

긴장성 기흉!!

공기가 너무 심하게 터져 나와 옆에 위치한 심장까지 압박해 쇼크가 온 상태를 말한다!

‘지금 당장 처치하지 않으면 사망해!!’

“주사기 주세요.”

“뭐?”

하지만 한슨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녀는 평소의 얌전한 태도와 다르게, 강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만큼 환자의 상태가 급했다.

“빨리 주사기 주세요! 가장 굵은 바늘로요!!”

“...!!”

그래도 다행히 옆의 간호사가 오더(order)를 알아듣고 구호소에서 가장 큰 주삿바늘을 가져왔다.

“여기요!!”

거의 대못만 한 크기의 철제 주사 심.

한슨이 놀라 물었다.

“그, 그걸로 뭐하려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시간이 없었다.

주삿바늘을 들고... 마치 칼을 찔러넣듯, 그대로 가슴에 꽂았다.

푸욱!

흉벽이 뚫리며 피가 튀어 올라 그녀의 얼굴에 튀었다. 그러나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직이야. 좀 더!’

더 충분한 깊이로 바늘을 밀어 넣었다.

“꺄악!”

그 과감한 처치에 옆의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한슨의 얼굴도 하얗게 질렸다.

심장, 대동맥, 폐 등 위험한 장기가 잔뜩 모여있는 곳에 저렇게 바늘을 집어넣다니! 잘못 건드리면 곧바로 사망인데!

“너, 너...! 이게 무슨...?”

그런데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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