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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20화 (20/194)

00020  1-5 불가능한 수술  =========================================================================

푸슈욱.

주삿바늘을 통해 바람 빠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폐에서 터져 나와 장기를 누르고 있던 공기가 주삿바늘을 통해 외부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

그리고...

“커억. 쿨럭, 쿨럭!”

환자가 의식을 차리고 격하게 기침을 하였다.

심장을 누르고 있던 공기가 빠져나와 쇼크가 회복된 것이다!

“하아.”

엘리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경동맥을 짚으니, 다시 맥이 돌아와 있는 것이 고비를 넘긴 듯싶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뺨에 튄 피를 차분히 닦은 후, 경악해 자신을 바라보는 한슨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선배님. 급박한 상황이어서 저도 모르게...”

“어, 어...”

한슨은 얼떨떨하게 답했다.

그런데 그때, 구호소 밖에서 외침이 들렸다!

“환자는 어디에 있나?!”

그레이엄 남작이었다!

그리고 그 혼자가 아니었다. 환자 상태가 중하다고 전해 들어서인지, 2명의 교수가 더 같이 뛰어왔다.

“이 환자인가?”

모두가 모여있는 걸 본 그레이엄이 다급히 다가왔다.

“어떻게 된 것이지?”

교수들이 한슨에게 물었다.

“그...”

하지만 한슨은 답할 수가 없었다.

진단을 내리기도 전에 환자가 쇼크로 넘어갔고, 엘리제가 번개처럼 달려들어 살려냈으니까.

그는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난 것인지 제대로 파악도 되지 않았다.

"주삿바늘이??"

그레이엄이 환자의 가슴에 꽂힌 커다란 주삿바늘을 보고 놀라 물었다.

바늘의 구멍에선 아직도 공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누가 이렇게 했지?"

그 말에 구호소 사람들의 시선이 엘리제에게 모였다.

"로제, 네가 한 거냐?"

엘리제는 사람들의 주목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또 일개 교육생으로 지나친 처치를 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할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네, 제가 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한 거지?"

"흉강으로 공기가 터져 나와 폐와 심장을 누르는 상태로 판단되어서 급하게 공기를 밖으로 빼주기 위해 바늘을 넣었습니다."

그 말에 그레이엄을 비롯한 교수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흉(pneumothorax)... . 그것도 긴장성 기흉(tension pneumothorax)이었나 보군. 잘했다."

그 칭찬에 한슨은 눈을 크게 떴다.

그레이엄 교수는 칭찬을 거의 안 하기로 유명한데?

"긴장성 기흉은 곧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환자가 사망하는 응급 질환. 로제, 네 덕분에 환자가 살았구나."

다른 교수도 감탄의 말을 하였다.

"그러게 말이오, 팰론 남작. 조금이라도 늦으면 큰일 나는 질환인데. 이 소녀가 환자를 살렸군. 그런데 긴장성 기흉인지는 어떻게 알았느냐?"

그 물음에 그녀가 공손한 목소리로 답했다.

"갑작스러운 호흡곤란의 양상이 기흉이 의심되는 소견이었고, 무엇보다 청진상 폐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공기가 음파의 전달을 차단하여 생긴 현상. 경동맥의 맥도 거의 느껴지지 않아 심장까지 눌린 긴장성 기흉에 합당하다 판단했습니다."

"...! 허어, 정말 대단하구나."

교수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80년 전, 긴장성 기흉을 처음으로 기술한 그라함 백작의 저서를 읽는 듯한 완벽한 답변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스승, 그레이엄도 경악을 숨기지 못했다.

'이 아이는 도대체?'

뛰어난 지식에 놀라서가 아니었다.

이 소녀가 말도 안 되는 재능을 가지고 있음은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어떻게 응급 상황에서 이런 판단과 처치를?'

머릿속으로 아는 것과 실제 임상에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뛰어난 지식을 가질 수는 있어. 하지만... 이런 응급 처치는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경험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도대체?’

한치만 판단을 잘못해도 환자가 죽을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누구라도 긴장에 몸이 굳을 상황이었는데, 이제 병원에 나온 지 보름도 안 된 소녀가 긴장성 기흉을 태연히 진단하고 바늘로 가슴을 찔러 환자를 살렸다고?

조금만 잘못해도 환자가 죽을 상황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그는 이 소녀를 만난 후, 몇 번이고 한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천재.

그냥 천재도 아니었다.

희대의. 진정한 천재.

'갑자기 내 재능이 초라해지는군.'

그레이엄은 속으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몰락 가문의 장자로 태어나, 피나는 노력을 거쳐 이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이전 의학의 기초를 다진 그라함 백작이나 프레밍을 뛰어넘는 의학자가 되어 가문을 빛나게 하겠다는 열망으로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자신은 그런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가 아니란 것을. 그저 자신은 노력하는 범재일 뿐이었다.

'진정한 천재는... 이런 아이겠지.'

그레이엄은 소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니, 천재라는 말도 부족할지 모른다.

지금 이 소녀가 보여주고 있는 능력과 재능은 천재라는 단어로도 다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갑자기 와인이나 한잔 마시고 싶군.'

제국 의학계의 촉망받는 젊은 교수 그레이엄은 작은 소녀를 보며 쓴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드는 생각.

'지금도 이렇게 뛰어난데... 앞으로 이 소녀는 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그건 의학에 삶을 바친 의학자로서의 기대감이었다.

이 소녀는 어쩌면... 의학의 기초를 다진 그라함 백작, 아니면 대 연금술사 프레밍을 뛰어넘는 업적을 남기는 의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꿈에서 바라던.

하지만 자신 같은 범재는 도저히 도달하지 못할 영역. 그곳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제 막 의학의 길에 접어든 소녀에게 하기에는 지나친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왜일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

그날의 일 이후, 엘리제는 테레사 병원의 유명인이 되었다.

이제 갓 병원에 교육 나온 16살 어린 소녀가 긴장성 기흉 환자를 살리다!

목격자가 워낙 많았던 탓에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쟤야.”

“정말? 저렇게 여린 소녀가? 에이, 거짓말. 주삿바늘도 무서워 못 잡을 것 같이 생겼는데??”

“거짓말 아니야. 내가 똑똑히 봤다니까.”

“하... 말도 안 돼. 완전 곱게 자란 귀족집 영애 같은데, 주삿바늘로 흉강을 뚫어 환자를 살렸다고?”

“그래, 나도 깜짝 놀랐어. 얼굴에 피가 튀었는데, 눈 한번 깜짝 안 하더라니까?”

그렇지 않아도 눈에 띄는 외모를 지닌 엘리제다.

사람들은 저렇게 예쁘게 생긴 소녀가 그런 급박한 처치를 해냈다는 것에 놀라 서로 떠들어댔다.

하지만...

엘리제가 친 사고(?)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쪽 팔 지혈해주세요!! 그리고 수액 부탁합니다!!”

구호소에서 일하다 보니 응급환자가 수도 없이 들이닥쳤고, 그녀의 진면목이 계속해서 드러났다.

‘이렇게까지 해도 될까? 난 이제 교육을 나온지 한 달도 안 되는 견습생인데.’

그녀도 자신이 해내는 일들이 견습생의 수준을 한참 벗어난 것이란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심받아도 어쩔 수 없잖아.’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이상하게 생각할까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환자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덕분에 그녀는 테레사 병원에서 급속도로 유명해지는 중이었다.

상식을 벗어난 천재로.

물론 그렇다고 병원의 사람들이 그녀를 질투하거나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모두 그녀를 좋아했다.

“로제? 그 귀족집 영애? 최고지. 예쁘고, 착하고, 예의 바르고...”

환자 앞에선 물불 안 가리지만, 평소 그녀의 태도는 곱게 자란 귀족집 아가씨로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깍듯하고 친절했다.

인형처럼 예쁜 외모,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 그러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호감 가는 성격.

모두 소녀를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젊은 남자 중에는 그녀에게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는 이들도 생겼다.

“한슨, 레이디 로제 좋아하지?”

“아, 아니야!”

친구의 물음에 한슨이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말 아니야? 리차드가 네 눈치 보고 있던데. 먼저 고백하려고.”

“뭐?! 리차드, 그놈이? 어디 있어, 그놈?”

한슨이 펄쩍 뛰었다.

친구가 재밌다는 듯 쿡쿡 웃었다.

“거봐. 좋아하잖아.”

“... ... .”

한슨의 얼굴이 빨개졌다.

“좋아하면 고백해. 괜히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 될 리가 없잖아.”

“응?”

“차일 거야. 나 같은 건 무조건.”

평소 자신만만한 그답지 않은 말이었다.

하지만 친구는 아니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레이디 로제와 한슨이라. 그가 생각해도 무조건 차일 것 같긴 하다.

한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다 이렇게 좋아하게 되었을까?

‘처음엔 예쁜 외모 때문에 호감이 갔었지.’

그래, 소녀는 예뻤다.

그것도 매우.

예쁘고, 또 예뻤다.

하지만 소녀의 가장 큰 매력은 외모가 아니었다.

‘구호소에서... 그 모습...’

한슨은 응급 환자를 볼 때의 그녀를 떠올렸다.

평소의 부드러움은 온데간데없는 모습.

오로지 환자만을 바라보며, 생명을 살리는 압도적인 처치는 마치 전장의 여인과도 같았다.

‘도저히 반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안쓰러울 정도로 여린 몸에서 나오는 그 모순적인 카리스마는 치명적 매력을 품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환자를 살린 후의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린 듯한 평소의 웃음과는 전혀 다른, 생기가 빛나는 미소.

그 환한 미소를 볼 때마다 한슨은 설렘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아. 괴롭구나.’

그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

그렇게 엘리제는 자신이 불쌍한 남자들을 가슴 아프게 하고 있다는 사실은 상상도 못 한 채 보람찬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테레사 병원으로 찾아왔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폭탄 같은 선물(?)을 들고.

이전 삶, 엘리제와 황태자와의 약혼 발표가 있었던 탄신연회를 정확히 3주 앞둔 저녁이었다.

<1-5 도제 2 fin>

<1-6 불가능한 수술>

세계 최강의 열강, 대(大) 브리티아 제국의 수도 론도(Londo)는 프랑소엔 공화국의 수도, 빛의 도시 파리스(Paris)와 더불어 서 대륙 최고의 도시로 인구가 무려 250만이 넘었다.

250만이란 어마어마한 인구는 봉건제의 몰락, 산업화로 도시화가 가속된 결과였는데, 급격한 팽창에 따라 빈민들이 사는 거주지가 여럿 생겼다.

테레사 병원이 위치한 피에르 지구도 그중 하나로, 늦은 밤 으슥한 골목을 두 남자가 걷고 있었다.

“좀 더 둘러보실 것입니까, 전하?”

중년의 남자가 젊은 청년에게 말했다. 젊은 청년은 흔하게 볼 수 있는 검은 신사 정장을 입고 있었다.

그런데 전하라니?

젊은 청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암행 중이다. 말을 조심하도록.”

“아, 죄송합니다. 습관 때문에 저도 모르게.”

그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암행을 나선 황태자와 시종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황태자의 얼굴이 평소와 전혀 달랐던 것이다.

흑발에 초상(超上)능력이 담긴 황족 특유의 금안(金眼)이 아닌, 금발에 푸른 눈.

얼굴선도 전혀 달랐다.

변장을 한 수준이 완전히 다른 사람의 얼굴.

시종이 황태자의 얼굴을 보며 감탄의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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