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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25화 (25/194)

00025  1-5 불가능한 수술  =========================================================================

“어떤가? 정말 미라클(miracle)하지 않은가?”

“잘 봤으니 가져가게.”

“뭐야, 그 반응은?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고트는 굳은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거짓말이잖아.”

“뭐?”

“자네는 지금 저 종이에 써진 말도 안 되는 내용을 믿는 건가?”

“...!”

고트는 혀를 찼다.

“물론 발상은 좋아. 비장 출혈 환자가 오면 시도해 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저런 수술이 가능할 리가 없잖아. 누군지 모르지만, 공상을 그럴싸하게 잘도 써놨군.”

밴이 단호히 답했다.

“거짓말이 아니야.”

“뭐?”

“진짜라고, 이 친구야. 우리 병원에 환자가 있어! 비장에 정면으로 총을 맞고도 멀쩡히 살아나고 있는!”

“무슨... 말도 안 되는?”

고트는 믿지 못하겠단 반응이었다.

밴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정말이라니까! 그것도 자네 테레사 병원에서 수술했어! 내가 확인한 사실이야. 도대체 누군가? 이 기적 같은 수술을 해낸 의사가?”

그 말에 고트는 며칠 전 보고 받았던 내용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좌상복부에 총상을 입은 환자가 왔었다고 했었지? 같이 온 인물이 황실의 문장을 가지고 있어 응급 수술 후, 황실 십자 병원으로 옮겼다고.’

워낙 거물과 동행한 환자라 기억하고 있다.

“혹시... 환자의 이름이? 란돌인가?”

“그래, 란돌 경! 란돌 경은 비장에 정통으로 총상을 입어 도저히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는데, 자네 병원에서 살렸어.”

고트는 입을 벌렸다.

저 종이에 쓰여있는 말도 안 되는 공상이 진짜 정말이라고?

“도대체 그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누구인가?”

고트는 보고받은 내용을 떠올렸다.

그 수술에 참가한 의사가...

“... 그레이엄. 그레이엄 교수가 그 수술을 집도했네.”

도제인 로제도 그 수술에 참가했었지만, 고트는 그녀가 당연히 조수(어시스트)로 참가했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생각이었다.

로제는 이제 병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어린 소녀였으니까.

“허어! 그레이엄! 그 젊은 천재라 불리는 그 의사 말인가? 정말 대단하군!! 대단해!!!”

밴은 감탄을 터뜨렸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 의사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그레이엄을 눈여겨보고 있던 그였다.

조금 더 경험이 쌓이면 황실 십자 병원으로 데려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대단한 수술을 해내다니?

‘당장 황실 십자 병원에 자리를 마련해야겠군. 이런 대수술을 해냈으니 그를 데려오는 것을 아무도 뭐라고 못 하겠지.’

그만큼 그레이엄이 해낸(?) 비장절제술은 대단했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그레이엄 교수를 불러주게. 한번 직접 들어봐야겠어. 어떻게 이런 수술을 생각해내고 해낼 수 있었던 것인지!”

밴은 어린애처럼 흥분해 말했다.

그런데...

고트 병원장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게... 조금 문제가 있네.”

“응? 무슨 말인가?”

고트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말했다.

“그레이엄은... 그날 이후 무단결근 중이네.”

“...!!”

“집에서 틀어박혀 나오질 않고 있어. 마치 뭔가 충격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말이야.”

도통 알 수가 없다는 목소리였다.

***

그레이엄 교수는 정말 무단결근 중이었다.

제자인 엘리제에게도 아무런 말도 없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그녀는 생각했다.

‘혹시... 그때의 수술 때문에?’

설마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딱히 다른 이유가 없었다.

‘그날, 수술 후에도 뭔가 이상하긴 하셨는데.’

당시 수술이 끝난 새벽, 그레이엄은 평소와 달랐다.

뭔가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

덕분에 수술 후 처치를 모두 그녀가 해야 했다.

‘금방 다시 나오시겠지.’

그렇게 생각한 그녀는 그레이엄 없이 병원에서 본인의 일에 열중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혹시 무슨 다른 일이 생기신 건가?’

결국, 그녀는 다음날 팰론 남작가를 방문했다.

팰론 남작가는 서민들이 모여 사는 론도(Londo)의 트라스 지구에 있었다.

“조심하십시오, 아가씨.”

“고마워요, 벨톤 경.”

클로랜스 가문 소속의 젊은 나이츠(knight)인 벤톨이 그녀를 호위했다.

벤톨은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렸다.

“아가씨가 이런 곳까지 직접 오실 필요가 있으십니까? 용무가 있으면 그자를 저택으로 부르면 될 것을.”

“벤톨 경. 팰론 남작님은 제 선생님이세요. 저는 제자이고요.”

엘리제는 답했다.

그 짧지만 단호한 말에 벨톤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그냥 저는... 아가씨께서 고생하시는 게 싫어서... 이 동네는 길이 안 좋아 마차도 다니기 어렵고, 한참 걸어야 하고...”

엘리제는 살짝 미소 지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요. 좀 걸으면 어떻다고. 저 튼튼해요.”

“에... 그리고 조금 위험할 수도 있고...”

“벤톨 경이 지켜주실 거잖아요.”

그 부드러운 말에 벤톨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무, 물론 그렇습니다! 제가 다 지켜드리겠습니다!!”

엘리제는 쿡쿡 웃었다.

“네, 믿을게요.”

“네! 믿어주십시오!”

사실 벤톨은 이전엔 엘리제를 싫어했었다. 이기적이고 못됐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벤톨뿐 아니라, 클로랜스 가문의 고용인들 모두의 공통된 마음이었다. 모두 못된 아가씨를 싫어했다.

하지만... 어느 날 소녀는 완전히 변했다.

남을 가득 배려하는 성격으로 바뀐 것이다.

처음 고용인들은 그녀의 변화를 일시적인 변덕으로 여기고 믿지 않았다.

소녀가 직접 찾아와 이전 일을 사과해도 한 귀로 흘렸다.

‘하지만 일시적인 변덕이 아니었지.’

시간이 흘러도 소녀는 한결같이 고용인들에게 친절히 대했고, 따뜻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소녀에게 그들은 점차 마음을 열었고, 이제 완전히 소녀를 좋아하고 따랐다.

더구나 가끔 보이는 깊은 마음. 도저히 16살의 어린 소녀라 보기 어려운 깊은 행동들에 감탄이 들었다.

‘역시 클로랜스 가문의 영애랄까?’

이제 소녀는 못된 아가씨가 아닌, 모두에게 사랑받고 아낌받는 가문의 보물이었다.

‘다만 의사가 된다시는 게 걱정이 되긴 하지만...’

벨톤은 속으로 생각했다.

타인의 생명을 살리려는 마음은 대단하지만, 저 여린 몸으로 의사라니?

건강이라도 상할까 걱정이었다.

“아직 멀었을까요?”

“트라스 가(街) 68번지이니,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아, 거기 더러우니 조심하십시오!”

그렇게 조금 더 걸으니 허름한 2층의 건물이 나타났다.

“여기...인 것 같습니다.”

벨톤은 확신이 안 가는 얼굴로 말했다.

주소는 이곳인데, 남작가라고 하기엔 너무나 누추했기 때문이다.

엘리제는 고개를 들어 명패를 봤다.

-팰론 가문.-

흐릿한 글씨로 그레이엄의 성이 적혀 있었다.

맞게 찾아오긴 한 것 같다.

“들어가 선생님을 뵙고 올게요. 정말 죄송하지만... 밖에서 잠시 기다려주시겠어요?”

“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엘리제는 고맙다는 듯 살짝 웃고는 노크를 했다.

“계신가요?”

똑. 똑.

노크 후 기다리니, 삐그덕 낡은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하지만 나타난 이는 그레이엄이 아닌, 부드러운 인상의 노파였다.

“누구시죠?”

“아... 그레이엄 선생님의 제자인 로제라고 합니다. 혹시 이곳이 선생님의 댁이 맞는가요?”

“네, 맞아요. 그런데... 지금 만나시긴 어려울 것 같은데...”

노파는 고민하더니 말했다.

“그래도 일단 들어오시겠어요?”

***

밖에서 본 것처럼 그레이엄의 집은 허름했다. 누추를 넘어, 빈궁해 보이는 모습.

그래도 노파가 정리한 것인지, 나름 깔끔하게 정돈되어있었는데, 빈곤한 와중에도 책이 무척 많았다.

‘전부 의학 서적...’

엘리제는 책들의 내용을 살피며 속으로 감탄했다.

그라함 백작의 교과서는 물론, 고대의 의학사, 최신의 외국 논문들까지. 의학에 관련된 거의 모든 문서가 있는 듯했다.

그리고 손때가 자욱한 것이 이 모든 책을 몇 번이고 정독한 듯한 모습.

의학을 향한 그의 어마어마한 노력이 엿보였다.

“많이 누추하죠? 대접해드릴 게 없어서... 도련님이 즐겨 마시는 커피에요.”

“아, 감사합니다.”

엘리제는 노파가 내준 커피를 마셨다.

“그런데 어떻게 하죠? 오늘은 도련님을 뵙기 어려울 것 같은데...”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어디 아프시기라도?”

“그런 건 아니세요.”

“그러면...?”

“하아.”

노파는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엘리제가 의아한 얼굴을 하는 순간.

“연구에 푹 빠졌어요.”

“네?”

그녀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했다.

연구? 웬 연구?

“며칠 전, 당직을 서고 오시더니... 어마어마한 수술을 봤다고. 그걸 연구하겠다고. 방에 올라가셔서는 안 내려오고 계세요.”

“... ... .”

엘리제는 입을 벌렸다.

설마?

그 수술이란 게?

“이전부터 뭔가에 빠지면 가끔 저러긴 하셨는데. 이번엔 정말 푹 빠지신 것 같더라고요. 정말 기적 같은 수술을 봤다고 하시면서.”

노파는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이해해주세요. 어릴 적 가족분들이 론도에 돈 전염병으로 모두 사망하시고 난 후, 의학밖에 모르는 분이시거든요.”

그 뜻밖의 말에 그녀는 방 한구석에 걸린 그림을 바라봤다.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동생.

행복이 넘치는 가정의 그림이었는데, 그레이엄은 10살도 안 돼 보이는 어린애였다.

까칠한 지금과 다르게, 귀여운 얼굴이 미소짓고 있다.

“20년 전, 론도 대역병 사건으로 유모인 저와 도련님만 빼고 모두 돌아가셨거든요.”

1차 론도 대역병 사건.

머지않은 시기에 일어날 2차 론도 대역병과 동일한 전염병 사건으로 론도에서만 15만 명의 사망자를 낸 대 전염병이었다.

“가족분들을 그렇게 잃으신 도련님은 질병을 정복하는 의사가 되시겠다는 꿈을 가지고, 지금까지 노력하고 계세요.”

그렇게 말하는 노파의 목소리에는 그레이엄에 대한 안쓰러움과 사랑이 가득했다.

엘리제는 왠지 모를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10살도 안 되는 어린 시절, 가족들을 모두 잃은 어린아이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의학의 길을 택했을까?

어려운 형편의 고아가 걷기에 쉬운 길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연구도 거의 끝난 것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쯤 병원에 다시 나간다셨어요.”

“아... 네.”

엘리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특별한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선생님께 안부 전해주세요.”

“네, 조심히 살펴가세요.”

그렇게 그녀는 다소 안도 후, 벤톨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녀가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녀가 팰론 가문을 나와 걸어갈 때, 2층의 창문에서 그녀의 등 뒤를 바라보고 있는 인물이 있었던 것을.

그레이엄이었다.

"... ... ."

그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굳은 듯 그녀의 모습을 바라봤다.

“로제.”

소녀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런 그의 눈동자에는 혼란과 알 수 없는 열망이 일렁이고 있었다.

***

정말로 그레이엄은 다음날 병원에 출근했다.

무단결근한 게 거짓말이었다는 듯, 평소와 다름없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선생님, 오셨어요.”

“그래.”

엘리제의 인사에 그레이엄은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을 정리한 것일까? 아니면 숨긴 것일까?

전일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눈동자에 일렁이던 감정의 소용돌이는 없었다.

“병원장님께서 출근하시면 바로 뵈러 오라고... 지난밤 수술했던 것 때문에...”

“알겠다. 로제, 너도 같이 가자.”

“저도요?”

“그래.”

“저는 어째서...?”

병원장과 황궁 어의가 부른 것은 그레이엄이지, 그녀가 아니었다.

“같이 가자. 할 말이 있으니.”

할 말?

무슨 할 말이 있길래 자신을?

엘리제는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그레이엄은 더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둘은 병원장실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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