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과의사 엘리제-26화 (26/194)

00026  1-5 불가능한 수술  =========================================================================

병원장실은 테레사 병원의 교수실 가운데에 위치해 있었다.

도대체 왜 자신을 데려가는지 몰라 엘리제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따라갔다.

방 앞에 도착한 그레이엄은 노크 후 말했다.

“그레이엄입니다.”

“들어오게.”

불편한 목소리가 안에서 들렸다.

그러고... 그레이엄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 엘리제는 깜짝 놀랐다. 고트 병원장과 함께인 인물을 본 탓이었다.

‘저분은? 황궁 어의인 밴 자작?’

과거 황후였던 그녀는 당연히 황궁 어의인 밴 자작을 알고 있었다.

이번 삶도 그렇지만, 이전 삶 때도 잔병치레가 많았던 그녀를 매번 밴 자작이 치료해줬었다.

‘잠깐? 밴 자작과는 이전 삶이 아니라, 이번 삶의 어릴 적에도 안면이 있잖아?’

어릴 적부터 곧잘 병을 앓았던 그녀는 병원 신세를 자주 졌었고, 보통은 귀족 전문 병원인 로즈 데일 병원을 이용했지만, 황실 십자 병원에서 치료 받은 적도 있었다.

그래서 원장인 밴 자작과도 몇 번 안면이 있었다.

‘날 알아보면 어떻게 하지?’

과연 밴은 그녀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 소녀는?”

“이번에 새로 들어온 도제인데? 왜 그러나, 밴?”

“아니... 내가 아는 어떤 영애와 너무 닮아서...”

“그래?”

“응, 너무 닮았군. 깜짝 놀랐네.”

“어떤 가문의 영애이길래?”

하지만 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뭐, 그냥 닮은 거겠지. 그 영애가 병원의 도제를 할 리가 없으니.”

어의인 밴이 떠올린 것은 연회의 꽃이라 불릴 정도로 화려한 클로랜스 영애였다.

‘아니겠지. 그 영애가 빈민 구제 병원인 테레사 병원에서 도제를 하고 있을 리가 없으니.’

무엇보다 눈빛과 인상이 다르다.

뭔가 못된 심술이 가득하던 클로랜스 영애와 차분하면서 부드러운 분위기의 저 소녀 도제는 아예 느낌이 달랐다.

‘그래도 참 닮았군그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쌍둥이인 줄 알겠어. 내가 그 영애를 마지막으로 본 게 몇 년 전이었더라? 만약 착하게 자랐으면 저렇게 변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외모긴 하지만, 일체의 꾸밈없이 수수한 진료복의 도제 소녀.

그 심술 궂기로 소문난 클로랜스 영애와 동일인물일 리가 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나저나 그레이엄. 도대체 무단결근이라니, 어떻게 된 일인가?”

고트 병원장은 불쾌한 얼굴로 탓했다.

그레이엄은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이유가 있었든, 무단결근은 명백히 그의 잘못이었으니까.

“죄송합니다.”

“내가 자네를 아끼긴 하지만, 이런 식이면 곤란해. 응? 병원 일이 장난도 아니고. 짐 싸고 나가고 싶나?”

“죄송합니다.”

이후 고트 병원장은 한참을 그를 혼냈다.

옆에서 밴 자작이 웃으며 말릴 때까지.

“하하, 이제 그만하게, 친구. 충분히 반성하고 있는 것 같으니. 그리고 ‘그런 대수술’도 해냈는데 잠시 쉴 수도 있지 않겠나?”

그 만류에 고트는 입술을 씰룩거렸다.

또 다른 방식으로 의학에 미친 자신의 친구는 ‘기적 같은 대수술’을 해낸 집도의와 빨리 대화해보고 싶은 눈치였다.

“그레이엄 교수? 오랜만이군. 나 밴이네. 기억하지?”

“네, 자작님.”

제국 의학계의 대부인 밴과 신진 의사인 그레이엄은 당연히 안면이 있었다.

밴이 말했다.

“자네를 정말 보고 싶었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낸 것인가?”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뭐긴? 비장절제술(splenectomy) 말이야! 자네가 집도한 것 맞지?”

밴이 상기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정말 대단해! 깜짝 놀랐네. 내 자네를 익히 눈여겨보고 있긴 했지만, 이런 일을 해내다니! 이건 정말 의학사에 길이 남을 수술이야!”

“... ... .”

밴은 흥분해 떠들었다.

그런데 그레이엄의 반응이 이상했다.

뭐라 답을 해야 하는데, 한마디의 말도 없었던 것이다.

“어떻게 그런 수술을 생각해낸 것인가?”

“... ... .”

하지만 역시 답이 없었다.

밴과 고트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 순간, 그가 말했다.

“그건... 제가 아닌, 이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서, 선생님?”

엘리제는 당황해 그를 돌아보았다.

밴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자네가 아닌, 이 소녀에게 물어보라니?”

그레이엄은 대답대신 엘리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

평소의 까칠함과는 다른 부드러운 미소.

그리고 그는 당연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 수술을 집도한 사람은 제가 아니라, 이 아이이니까요. 이 아이에게 물어봐야지요.”

“...!!!”

***

갑작스러운 폭탄선언.

모두가 황당함에 입을 벌렸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고트가 불쾌하단 어조로 물었다.

“농담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지. 이 친구가 이래보여도 황궁 어의야.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농담이라니. 그레이엄, 자네 의학계를 떠나고 싶나?”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럴만했다.

이런 조그만 소녀가 비장절제술이란 대수술을 해냈다고? 농담도 이렇게 안 웃긴 농담이 없었다.

하지만 그레이엄은 진중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정말입니다. 제가 왜 이런 일로 거짓을 말하겠습니까? 저는 어시스트만 섰을 뿐, 집도는 모두 이 아이가 했습니다.”

“...!!”

하지만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밴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그레이엄, 솔직히 말해보게. 정말로 자네가 아닌, 이 소녀가 비장절제술을 해냈다고?”

그레이엄은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밴과 고트를 바라봤다.

“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입니다. 만약 거짓이면 주님께서 저를 저주해도 좋습니다. 정 못 믿겠으면, 당시 수술에 참가했던 보조원에게 물어봐도 좋습니다.”

“...!!”

그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레이엄이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소녀가... 비장절제술을 해냈다고?”

그들의 시선이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소녀에게 향했다.

인형처럼 예쁘지만, 작고 여린.

수술은커녕, 피 한 방울만 봐도 기절할 것 같은 소녀가?

“레이디...”

엘리제는 공손히 답했다.

“로제라고 합니다. 편하게 로제라고 불러주십시오.”

“그래, 로제. 정말이냐? 네가 비장절제술을 집도했다고?”

밴의 물음에 그녀는 그레이엄을 돌아봤다.

“... ... .”

하지만 그는 평소와 같이 까칠한 얼굴일 뿐이었다. 속을 알 수가 없었다.

결국,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 밴과 고트를 바라봤다.

둘, 모두 제국 의학계의 하늘 같은 거성.

‘뭐라고 하지?’

엘리제는 잠시 고민했다.

이제 병원에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소녀가 비장절제술이라니. 그녀 스스로 생각해도 지나치긴 했다.

‘어쩔 수 없었어. 내가 나서지 않으면 환자가 생명을 잃었을 상황이었으니까.’

짧은 순간, 그녀는 고심했다.

뭐라고 해야 할까?

그녀는 금방 마음을 정했다.

‘엘리제, 뭘 고민하는 거야? 언젠가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잖아?’

그래, 알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상황을 마주할 것이란 사실을.

그녀가 환자들의 위급 앞에서 실력을 숨기지 않았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정 이상한 눈초리를 피하고 싶었으면 실력을 숨겼으면 될 일이지만, 그녀의 성격상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황제 폐하와의 내기에 이기려면 차라리 이게 나을 수도 있어.‘

6개월 안에 의사로서 가치를 증명하라는 말도 안 되는 내기.

그 내기에 이겨, 황태자와의 결혼을 피하고, 의사로서 삶을 살려면 압도적으로 뛰어난 실력을 보이는 것은 필수였다.

마음을 정리한 그녀는 입을 열었다.

“네, 제가 비장절제술을 집도했습니다.”

“...!!!”

그 대답에 그들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자, 자네가 비장절제술을 집도했다고? 정말로?”

“네, 자작님.”

엘리제는 공손히 답했다.

“그러면 수술 소견서를 썼던 것도?”

“네, 제가 썼습니다. 혹시 소견서에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사과를 드립니다.”

“아니, 부족하지 않아. 전혀. 허허... 허허...”

밴 자작은 도저히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지, 연신 헛웃음을 흘렸다.

한편 고트는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난 솔직히 믿어지지가 않는군. 이제 병원에 도제로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되는 것으로 아는데. 이런 대수술을 해냈다고? 말이 안 되지 않나? 자네가 정말로 수술을 해냈다면, 어떤 식으로 수술을 진행했는지 설명해보게.”

엘리제는 답했다.

“비장의 해부학적 위치상 정중절개(midline incision)를 먼저 했습니다."

"왜 중간 복부를 절개하는 정중절개지? 비장은 좌측에 위치해 있는데?“

“비장은 좌측에 있지만, 먼저 가운데 복부에 있는 췌장을 박리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비장의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 다른 장기를 고정하는데도 더 유리하고요.”

“...!”

복부 장기들의 해부학적 위치를 정확히 꿰뚫는 답변이었다.

엘리제는 말을 이었다.

“이후 거즈로 피를 닦아 시야를 확보 후, 위장과 아래 갈비뼈를 위쪽으로 들어 올렸습니다. 이후 췌장 꼬리를 철제 도구로 박리해 시야를 확보 후 비장의 위치를 회전시켜 수술 진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비장을 고정하는 인대를 잘라내었습니다. 이후 비장 동맥과 정맥을...”

그녀는 비장절제술의 진행 과정에 대해 차분히 설명하였다. 현대 지구에서는 표준으로 사용하는 술식이었다.

그 설명을 듣는 고트와 밴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허허! 어떻게 이럴 수가?’

소견서에 적힌 글을 읽었을 때와는 또 달랐다.

마치 아카데미 시절, 대가(大家)의 강의를 듣듯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한 설명이었다.

‘정말... 이 아이가 비장절제술을 해낸 게... 맞다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직접 해보지 않았다면, 단지 상상이나 목격만으로는 절대 이런 세밀한 설명을 할 수 없다.

“정말... 정말... 네가 그 수술을 해냈다고?”

“... ... .”

소녀는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흔들림 없는 그 눈빛은 한가지 사실을 나타내고 있었다.

정말이다. 정말 이 소녀가 그 수술을 해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옆에 서있던 그레이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입니다. 이 아이가 한 말은 하나의 거짓도 없습니다. 제 모든 것을 걸고 보증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렇게까지 이야기를 들은 밴과 고트는 믿을 수 없다는 신음을 흘렸다.

“허허... 이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저런 어린 소녀가 그런 대수술을 해냈다고?”

밴은 소녀를 살폈다.

작은. 그리고 수술은커녕 피 한 방울만 봐도 기절할 것 같이 여린 인상의 소녀.

도제를 하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이런 대수술까지 해냈다고?

‘허허. 저 젊은 천재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안 믿을 수도 없고.’

젊은 천재라 불리는 그레이엄이 자신의 의사 인생을 걸고 황궁 어의인 자신에게 농을 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건 거짓이 아닌, 진실일 것이다. 도저히 받아들이긴 어려웠지만 말이다.

‘수술에 참여했던 다른 보조원에게도 확인해 보는 방법이 있긴 하겠지만.’

확인을 해봐도 왠지 똑같은 대답이 돌아올 것 같았다. 저 그레이엄의 눈동자는 거짓을 말하는 눈빛이 아니었으니까.

결국, 황궁 어의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너는 도대체... 어떻게 이런 수술을 해낼 수 있었던 거지? 이제... 병원에 온 지 한달도 안 된 것 아니었나?”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는 물음.

“... ... .”

엘리제는 그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해야지? 이전에 다른 세계에서 외과의사의 삶을 살았다고?

씨알도 안 먹힐 설명이다.

결국,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비장절제술에 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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