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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 엘리제-27화 (27/194)

00027  1-5 불가능한 수술  =========================================================================

모두가 놀라 그녀를 바라봤다.

"처음이 아니라고? 그러면?"

"아, 예전에 직접 집도를 해봤단 뜻은 아닙니다. 이전부터 여러 번 생각해봤던 치료법이란 뜻입니다."

그러면서 엘리제는 말을 이었다.

“저는 이전부터 의사가 되길 바라며 여러 의학서적을 읽었습니다. 현 의학의 기본이 되는 그라함 총론, 각론부터... 여러 책을 공부했습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외과의사 송지현이 아닌, 엘리제는 의학 서적은커녕 로맨스 소설도 잘 안 읽는 소녀였으니까.

제국의 의학 서적을 읽은 것은 병원에 나오기 1주일 전, 벼락치기로 공부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면서 생각했습니다. 몇몇 질환들은 책의 내용보다 이런 방법으로 치료하면 더 좋지 않을까? 이렇게 하면 치료할 수도 있을 텐데. 이런 공상들을 했습니다.“

“... ... .”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16살, 아니, 지금보다 이전이니 그보다 어린 소녀가 의학 서적을 읽고, 이해하는 것도 모자라 새로운 치료 방법을 모색했다고?

‘... 역시 잘 안 믿는 눈치구나.’

엘리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도 자신의 거짓말이 궁색한 것을 안다.

하지만 딱히 더 그럴싸한 거짓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외과의사인 그녀는 애초에 거짓말에 영 소질이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더 밀어붙였다.

“비장절제술은 그런 치료법 중 하나입니다. 아무리 심한 손상이라도, 비장 자체를 절제하고 혈관을 묶으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죠. 면역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지만, 일단은 살려야 하니까요.”

“그래, 무척 좋은 발상이다. 그런데 생각을 하는 것과 직접 수술을 하는 것은 전혀 달라. 너는 어떻게 이 고난도의 수술을 할 수 있었던 거지?”

고트의 물음에 엘리제는 답했다.

이번에도 역시 궁색한 거짓말이다.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해봤습니다. 해부학적 구조를 떠올리며 실제로 비장을 절제해내려면 어떻게 접근을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해봤고, 이번에 그 접근법대로 수술했습니다.”

“...!!!”

설명을 마친 엘리제는 입을 다물었다.

"... ... ."

그리고 방 안에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모두 경악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 입을 열지 못했다.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고트 병원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떻게 책만 보고 그런 비장절제술을 발상하고, 구체적인 수술법까지 고안해낸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다소곳이 서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수술해낸 본인이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하아, 이 소녀가 그라함 백작이나 프레밍에 맞먹는 천재란 말인가? 정말로?'

방금 이야기의 의미는 단 하나.

천재.

소녀가 단순히 재능이 뛰어나다 수준이 아닌, 상상을 초월하는...  일반인의 지각으론 가늠하기 어려운 천재란 뜻이었다.

그리고 의학의 역사상 그런 천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의학의 기초를 마련한 '선구자' 그라함 백작.

그리고 약학과 진단 검사의 혁명을 이룩한 '대 연금술사' 프레밍.

그들도 책 하나를 보면, 열을 꿰뚫는 문일지십의 천재였다고 한다.

특히 대 연금술사 프레밍은 마치 날 때부터 약학을 통달하고 태어난 듯했다고.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그레이엄이 입을 열었다.

"이 아이의 말은 진짜일 것입니다."

"...?!"

"짧은 시간이지만, 제가 선생으로 지켜본 바로는 거짓말할 아이가 아닙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아이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아이는 제가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떤 의사보다도 뛰어난 재능과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

고트의 눈이 흔들렸다.

자존심 강한 그레이엄은 절대 누군가를 칭찬하는 이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극찬이라니?

"도제로 들어오긴 했지만, 사실 이 아이는 저에게 배울 게 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레이엄은 일순 말을 멈추었다.

그의 입가에 아무도 못 알아볼 씁쓸함이 잠시 스쳐 지나갔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저를 능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

밴과 고트는 오늘 몇 번째일지 모를 경악을 하였다.

그레이엄은 제국 의학계에서 촉망받는 뛰어난 젊은 의사였다. 그런데 이 소녀가 그를 능가한다고?

"허허, 허어..."

밴 자작은 연신 헛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몇 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웃음을 멈추고 테이블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이미 차갑게 식은 홍차가 혼란스러운 기분을 진정시켜주었다.

황궁 어의는 소녀를 살폈다.

저 소녀가 그런 천재라고? 저렇게 어리고 작은데?

'대단하군. 대단해.'

그레이엄이 저렇게까지 이야기하는데, 거짓은 아닐 거다.

저 소녀는 정말 천재인 것이다.

그것도 상상을 초월하는!

"레이디 로제라고 했나?"

"네, 편히 불러주십시오."

"그래, 로제."

어의는 잠시 푸근히 웃더니 뜻밖의 말을 하였다.

"이곳 테레사 병원이 아닌, 우리 황실 십자 병원에 와서 일할 생각은 없나?"

"...?!!"

엘리제는 놀란 눈으로 밴 자작을 바라봤다.

황실 십자 병원!

명실상부 제국 최상위의 의료기관으로 최고라 인정받은 의사만이 발을 들일 수 있었다.

그런 곳에 자신을 오라고?

"밴, 진심인가? 저 소녀를 황실 십자 병원으로 데려가겠다고?"

"응, 진심이네."

"하지만 황실 십자 병원은..."

"비장절제술을 집도한 의사라면 충분히 우리 병원에 들어올 자격이 되지."

그 말에 고트는 입을 다물었다.

어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한 번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서 말이야. 이 소녀가 어느 정도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놀라운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

기대심이 담긴 목소리였다.

그런 친우를 보며, 고트는 고개를 저었다.

나이가 오십을 넘어 환갑에 가깝건만, 새로운 의학 지식이나 뛰어난 의사들을 보면 늘 애처럼 흥분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 아이를 황실 십자 병원에 받을 건가?"

"그야 당연히 내 추천으로..."

"아니, 저 아이는 의사 자격증이 없어. 황실 십자 병원은 도제를 거의 받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

밴은 허를 찔린 표정을 지었다.

"의사... 자격증이 없나?"

"의사 자격증은 무슨 의사 자격증이야. 저 아이는 이제 병원에 도제로 나온 지 한 달도 안 됐다니까?"

고트는 혀를 찼다.

하지만 어의는 단순히 해답을 냈다.

"그러면 자격증을 따면 되지."

"뭐?"

"그렇지 않아도 탄신연회 후 올해의 의사 자격시험이 치러질 예정이니까. 그 시험을 봐서 자격증을 따면 될 것 같은데?"

고트는 입을 벌렸다.

"시험 자격은? 연구원에 인증받은 교수 3인의 추천이 있어야 하는데?"

병원에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도제가 곧바로 의사 자격시험이라니! 전례가 없던 일이다.

하지만 어의는 전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랑 자네, 그리고 그레이엄 교수가 추천하면 되겠네. 뭐가 문제인가?"

"그, 그렇긴 하지만..."

고트는 얌전히 대화를 듣고 있는 소녀를 바라봤다.

"저 소녀가 정말 의사 시험을 통과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올해 의사 시험은 황제 폐하께서 특별히..."

그는 말끝을 흐렸다.

얼마 전 전해졌던, 의사 자격시험에 대한 이해 못 할 황명이 떠올라서였다.

'왜 황제 폐하께서 이런 황명을...?'

평소 의사 자격시험은 물론, 의학 연구원의 활동에 아무런 간섭도 없으시던 황제가 특별한 황명을 내린 것이다.

이리저리 내용이 길었는데, 요약하면 이랬다.

-반드시 자격이 되는 도제만 시험에 응시하게 할 것.

-금년에 한해 시험 난이도를 높일 것. 실력이 되지 않는 이가 합격하는 일이 없도록!

'왜 폐하께서 이런 황명을 내리셨을까?'

어째서 이런 황명이 내려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지엄한 황명이기에, 관계자들은 시험 난이도를 높이기 위해 골머리를 앓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밴은 명쾌했다.

"이 정도면 자격이 충분하지 않나? 비장절제술을 해냈는데! 폐하께서도 이런 인재를 뽑으라고 황명을 내린 것일 걸세."

글쎄, 황제의 의도가 정말 그런 것일지는 모를 일이지만, 밴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이런 대수술을 성공한 천재가 응시 자격이 없다면, 이번 연도 자격시험은 아무도 응시하지 못할 것이니까.

'황명 때문에 이번 시험은 특히 어려울 것인데. 이 소녀가 합격할 수 있을까?'

무려 황명으로 난이도를 높이라고 한지라, 이번 시험은 곡소리 나는 문제들로 가득할 것이다.

이러다 합격자가 한 명도 안 나올까 봐 출제자들이 걱정하고 있을 정도.

아무리 천재라도 이렇게 어린 소녀가 합격할 수 있을지 고트 병원장은 의문이 들었다.

"너는 어떠냐? 이번에 시험을 봐도 자신이 있느냐?"

로제는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부족하지만, 기회를 주신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예의 바르지만, 흔들림 없는 목소리에 밴은 눈에 이채를 띠었다.

'과연 이 아이가 초고난도 문제로 구성된 금년 자격시험에서 어떤 성적을 받을지 궁금하구나.'

자격시험까지는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벼락치기 같은 집중 공부로 합격하기란 불가능한 시간.

거의 기본 실력만으로 합격해야 하는데... 기이하게도 소녀의 눈에선 긴장이나 주저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은은한 자신감?

'허허, 재미있구나. 앞으로가 기대돼.'

환갑에 가까운 밴은 이제 은퇴를 바라볼 나이였다.

얼마 남지 않은 의사로서의 시간. 왠지 저 소녀와 함께라면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마무리되고 엘리제는 올해 의사 자격시험을 응시하기로 하였다.

'예상치 못하긴 했지만... 잘 됐어.'

그녀는 병원 앞을 홀로 걸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황제와의 내기에서 승리하려면 의사 자격증을 따는 것은 필수였다.

'만약 이렇게 응시 자격을 얻지 못했으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했을 텐데.'

그러면서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아까 그 말이 뭐지? 황제 폐하께서 자격시험에 황명을 내렸다니? 폐하께서 어째서?'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황제는 이 제국의 정상에서 군림하는 이. 그런 그가 의사 자격시험 같은 사소한 일에 관심을 가지고 황명을 내려?

'설마... 나 때문에?'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닐 거다.

설마 그럴 리가.

'그나저나 시험이 정말 얼마 안 남긴 했구나. 따로 공부할 시간은 거의 없겠네. 탄신연회도 코앞이고.'

그녀는 잠깐 자리에 멈추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탄신연회.'

이전 삶, 16살의 탄신연회는 참으로 특별했다.

무수히 많은 일이 있었고, 자신과 황태자와의 약혼이 발표됐었으니까.

그때 그녀는 행복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었다. 그 약혼이 비극의 시작임은 상상도 못 하고.

'됐어. 이번 탄신연회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거야. 폐하께 그렇게 이야기했으니 나와 약혼 발표를 할 일도 없을 거고. 그냥 얼굴만 비치고 바로 돌아오자.'

고위 귀족으로서 탄신연회를 아예 참석 안 할 수는 없다.

그녀는 대충 밥만 먹은 후, 저택으로 돌아와 시험 준비나 하기로 마음먹었다.

'잠깐?'

그런데 그때였다.

한가지 잊어먹고 있었던 사실이 떠올랐다.

'이번 탄신연회 때 태자 전하의 약혼녀를 발표한다고 지난번 공표하셨잖아? 그건 어떻게 하실까?'

그녀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녀와의 약혼과는 별개로, 탄신연회 때 누가 황태자의 약혼녀가 될지 발표하기로 했었다.

'대전 회의 때 언급하신 내용이라 아무리 폐하라도 무르진 못할 텐데. 다들 궁금해하고 있을 테고.'

황태자의 약혼 상대는 모든 귀족의 관심사였다.

모든 귀족이 기대하고 있을 테니, 뭐라고 발표는 하긴 해야 할 텐데?

‘설마 내 이름을 약혼녀로 발표하진 않겠지?’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지난번에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는데, 자신을 약혼녀로 발표하진 않을 것이다.

'모르겠다.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 폐하께서 현명히 처리하시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늘이 맑네. 날씨가 좋구나.'

선선히 바람이 불어와 머리를 살랑였다.

그렇게 시원히 바람을 맞으니, 왠지 좋은 기분이 들었다.

'인제 그만 들어가자. 일해야지.'

그렇게 그녀는 다시 병원으로 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그녀는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병원 앞에 서 있었던 것이다.

"당신은...?"

깊은 금발, 푸른 눈동자.

지독히도 아름다우면서도, 차가운 외모.

"론님?"

이전 비장에 총상을 입은 환자의 수술을 시행할 때 보호자로 왔던 젊은 사내, 론이었다!

남자, 론은 고개를 들어 푸른 눈동자를 그녀에게 향했다.

분명 모르는 사이임에도, 이상하게 익숙한 느낌이 드는 시린 눈동자.

"왔군. 로제라고 했나?"

"아... 네."

엘리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보러 왔어? 왜?

"무슨... 일로?"

평범한 신사복 차림이지만, 저 남자는 무려 황실의 문장을 가진 고위 귀족이다. 어쩌면 황실의 인척일 수도 있는.

'내가 클로랜스 영애인 것을 알고 온 건가?'

황실의 문장을 가지고 있던 고위귀족.

'클로랜스 가문의 엘리제'면 몰라도, '견습의사 로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 ... ."

하지만 남자는 별다른 설명 없이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 불편한 시선에 엘리제는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저...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없다."

"그러면... 왜?"

그 물음에 남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그냥 보러 왔다."

"...??"

엘리제는 그 말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냥 보러 왔다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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