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6 2-4 데임(Dame) 클로랜스 =========================================================================
[2막 : 小和田 雅子???]
[2-4장 : 데임(Dame) 클로랜스 (4)]
***
무감정에 가까운 무뚝뚝한 음성.
익숙한 그 목소리에 엘리제는 고개를 돌렸다.
“론 님?”
엘리제는 놀라 그의 이름을 불렀다.
금발의 푸른 눈. 차갑지만 조각같이 지독히도 잘생긴 얼굴. 그리고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분위기.
론이었다!
“여긴 무슨 일로? 의학연구원에 일이 있으신가요?”
엘리제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하지만 론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의학연구원에는 딱히 일은 없다.”
“그러면 어째서 이곳에? 아시는 분이라도?”
엘리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의학연구원만 딸랑 있을 뿐, 교외에 가까운 곳이다.
변변한 저택이나 가게도 전혀 없어, 황실의 인척으로 추정되는 론 같은 고위 귀족이 방문할 만한 곳이 아닌데?
론이 무뚝뚝하게 답했다.
“널 보러 왔다.”
“네?”
엘리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날? 어째서?
“왜…… 요?”
론, 아니, 황태자는 그 물음에 입을 다물었다.
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녀가 오늘 시험 본다는 사실이 떠올랐고, 생각나서 왔을 뿐이다.
“지난번 오늘 시험을 본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잘 봤나?”
“……아니요. 그냥 그랬어요.”
엘리제는 풀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못 본 것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비교한다면, 그녀보다 고득점을 받은 도제는 없을 테니까.
다만 의사자격시험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다.
무조건 8할 이상을 맞추어야 하는데, 이론이 정립되지 않은 문제들 때문에 불안했다.
최선을 다해 답을 기술했지만, 다른 문제를 다 맞혔다는 보장도 없고, 채점 교수가 그녀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으면 다 오답처리 될 것이다.
그러면 불합격이다.
‘이번이 유일무이한 기회인데.’
다른 이들이야 재시험을 치든지 하면 되겠지만 자신은 아니지 않은가?
“…….”
둘 사이가 잠시 조용해졌다.
엘리제는 시험 걱정 때문에 이리저리 떠들 기분이 아니었고, 황태자는 침울한 그녀를 보며.
‘마음에 안 드는군. 정말로.’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깟 시험이 뭐라고. 저런 얼굴이란 말이야.’
물론 알고 있다.
저 소녀에게 있어, 이 시험은 부황과의 내기가 걸린 중요한 시험이란 것을.
그래서 더 못마땅했다.
‘나랑 결혼하기가 그렇게 싫은 건가.’
어차피 자신의 의지로 결정된 결혼은 아니다. 그래서 소녀가 부황과 그런 내기를 할 때도 신경 쓰지 않았다.
소녀가 내기에 이길 리도 없고, 설사 이겨 자신과 약혼을 취소한다 해도 상관없었으니까.
‘결혼 상대가 클로랜스 가문만 있는 것도 아니고.’
브리티아 섬 북단의 스코트 지방을 지배하는 버킹엄 공작가(家)도, 프랑소엔 공화국을 견제할 수 있는 프러시엔 대공가(大公家)도, 지금은 많이 쇠약해졌지만 한때 서대륙 전역을 지배하던 합스부르엔 왕가(王家)도.
모두 좋은 선택지였다.
어차피 황족, 그것도 황제가 될 이에게 결혼할 ‘대상자’가 누구냐는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니까.
그러니 황태자는 굳이 소녀와의, 클로랜스 가문과의 결혼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그날’ 이후 생긴 자신의 단 하나의 염원만 이룰 수 있다면 충분했다. 오로지 그 하나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황제가 되려는 그였으니까.
하지만…… 저 침울한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상하게 화가 났다.
‘마음에 안 들어.’
소녀가 자신과의 결혼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도, 얼굴이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도. 모두 못마땅했다.
그래서 말했다.
“따라와라.”
“네?”
“따라오라고.”
“론 님?”
“먹을 거라도 사주마. 아니, 딸기 케이크를 좋아한다고 했나? 아니면 망고 푸딩? 바나나 타르트? 원하는 음식은 뭐든지 사줄 테니 따라와.”
저 침울한 얼굴이 못마땅하니, 그녀가 그렇게 좋아한다는 단 음식이라도 잔뜩 먹여야겠다.
그래서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 자신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풀릴 것 같았다.
그렇게 황태자는 멋대가리 하나도 없는, 낭만을 중시하는 귀족 영애였으면 두 손 들고 도망갈 데이트 신청을 하였다.
***
그가 그녀를 데리고 간 곳은 길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던 마차였다.
“올라와라.”
엘리제는 얼떨떨하게 그를 따라 마차에 올랐다.
사실 그의 말을 따라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지만, 그가 너무 당연하다는 듯 이끌어 자신도 모르게 따라와 버렸다.
“어디로 모십니까, 전…… 아니, 공자님?”
마차에 대기하고 있던 황실 시종이 변복한 채 물었다.
린덴은 소녀가 마차에 오르자 답했다.
“디저트 카페.”
“네? 디…… 뭐라고요?”
“론도에서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디저트 카페로.”
황실 시종은 당황했다.
디저트 카페라고? 저 황태자가?
그래도 시종은 속마음을 숨기고 공손히 말했다.
“요즘 론도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 카페는 피카딜리 거리의 카페 레이입니다만, 그쪽으로 모실까요?”
황태자는 뭘 물어 보냐는 듯 바라봤다. 알아서 안내하라는 눈초리.
“네, 그러면 카페 레이로 모시겠습니다.”
“자, 잠깐만요!”
엘리제가 놀라 그들의 대화를 만류했다.
“괘, 괜찮아요. 카페 레이까지는.”
“싫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카페 레이는 최근 론도에서 가장 핫한 디저트 집으로 그녀도 꼭 가보고 싶긴 했었다.
“그건 아니지만. 너무 멀고…… 바쁘실 텐데 괜찮아요. 그냥 주변에서 대충 사주시면 돼요.”
“어쨌든 싫다는 것은 아니군.”
“싫은 건 아니지만…… 그, 그래도 그렇게까지는 괜찮은데…….”
그는 그녀의 말은 깨끗이 무시하고 시종을 바라봤다.
“출발해.”
“네, 공자님!”
그리고 시종은 엘리제를 보며 공손히 말했다.
“출발하겠습니다, 레이디. 이동 중 혹시라도 불편한 점이 있으면 바로 말씀해 주십시오.”
“아, 아…… 네.”
따각따각.
말발굽이 도로에 닿는 소리가 기분 좋게 울리며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언뜻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모두 최고급의 자재로만 이루어진 마차의 내부를 보며 엘리제는 생각했다.
‘무슨 생각이신 거지? 왜 나에게?’
그녀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으나, 그는 전혀 설명해 줄 마음이 없는 듯했다.
그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를 신경도 쓰지 않고 창밖의 풍경만 바라보고 있었다.
‘모르겠다. 나쁜 의도는 아니겠지.’
아니, 설마 맛있는 걸로 유혹 후 납치하려는 걸까? 황실의 문장을 가진 고위 귀족이 그러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엘리제는 창밖을 보는 그의 옆모습을 보며 멍하니 생각했다.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구나.’
그녀는 세 번의 삶을 통틀어 이렇게 잘생긴 남자는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바로 전 남편인 황태자 린덴 드 로마노프!
이 론이란 남자는 가히 그에 비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3황자 미하일도 비슷한 급으로 아름답지만 느낌이 전혀 다르니까.’
3황자 미하일이 화사한 꽃 같다면, 이들 린덴과 론은 조각을 연상시키는 미남이었다. 그것도 신이 직접 다듬은 듯한 조각.
그녀는 그렇게 멍하니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다 문득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시선을 돌렸다.
‘황태자 전하의 인척일까?’
느낌이 비슷한 게 그럴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모르는 그의 인척이 있다는 게 의외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게 한 마디의 대화도 없이 마차는 길을 달렸다.
‘그런데 이상하네. 전혀 불편하지가 않아.’
엘리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타인과의 침묵을 불편해한다.
더구나 이 남자는 진료 때문에 몇 번 봤을 뿐, 정확한 신분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와의 침묵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과 같이 있을 때처럼.
‘왜지?’
고개를 갸웃했다.
어쨌든 그렇게 불편하지 않은, 어쩌면 편안한 침묵 속에서 길을 달렸고, 피카딜리 거리의 카페 레이에 도착했다.
다행히 3층의 자리가 비어 있어 피카딜리 거리의 좋은 전망을 보며 앉을 수 있었다.
남자는 출발하기 전 장담처럼 디저트를 잔뜩 시켜주었다.
단순히 딸기 케이크만 시킨 게 아니라 카페에서 가장 비싼, 3단 트레이 종합 세트를 시켜준 것이다.
당연히 딸기 케이크와 망고 푸딩, 바나나 타르트를 포함시켜서.
“아…… 그냥 케이크 하나면 되는데…….”
“나 돈 많다.”
“네?”
“내가 보기보다 돈이 아주 많으니. 부담 없이 먹으라고.”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던 엘리제가 미소를 지었다.
남자가 나름 농담을 한 것을 깨달은 것이다.
물론 하나도 재미없이, 썰렁하기만 했지만.
어쨌든 시험 스트레스로 너무 피곤하고, 배고파 그녀는 감사한 마음으로 디저트를 먹기 시작했다.
‘맛있어!’
단맛이 입안에 들어오자, 그녀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그래, 역시 스트레스에는 단 게 최고야!
한편 황태자는 디저트에는 포크를 가져가지도 않은 채 그녀만 바라봤다.
‘그래도 잘 먹는 건 보기 좋군.’
늘 불만스러운 그녀지만, 밝아지는 얼굴을 보니 그의 불편한 마음도 조금 풀어졌다.
‘단 음식만 사줄 수는 없으니, 뭘 좋아하는지 더 알아봐야겠어. 설마 단 음식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겠지? 어린애도 아닌데.’
그녀에게 특별한 마음이 있어서 그러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저 저 밝은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아져 그럴 뿐이다.
‘렌 남작…… 이 알려나? 아니, 모르겠군.’
자신의 친우를 떠올린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큰오빠인 주제에 그는 동생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하여튼 매번 도움이 안 되는군. 동생한테 관심도 안 갖고 지금까지 뭐 하고 산 거야?’
가장 믿음직한 측근에서, 한순간에 도움 안 되는 놈으로 전락한 렌 남작이다.
‘크리스. 그래, 그가 좋겠군. 행정부의 관료라고 했나?’
엘리제의 작은오빠, 크리스. 서글서글한 인상이 떠올랐다. 왠지 그라면 렌 남작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무슨 핑계로 부르지? 그와는 딱히 친분이 없는데.’
그는 간단히 답을 내었다.
‘행정부의 관료니, 불러 국정이나 논하자 해야겠군.’
아직 일개 관료에 불과한 크리스가 제국의 황태자와 국정을 논할 필요가 있을 턱이 없었지만, 그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작은오빠인 크리스가 생각지도 못하게 행정부의 차기 실세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둘은 그렇게 물 흐르듯 시간을 보냈다.
엘리제는 아주 맛있게 애프터눈 티 종합 세트를 먹어치웠다. 최근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더 맛있었다.
그리고 감사의 인사를 한 후, 집에 돌아가려 했는데 마침 피카딜리 거리에서 유행하는 연극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호 스피어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연극. 보고 싶다.’
나름 큰 시험이 끝났는데, 그냥 집에 들어가기 아쉬웠다.
그렇다고 차마 저 남자에게 같이 연극을 보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혼자라도 보고 갈까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말했다.
“저 공연을 보고 싶은가?”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고개를 저었으나 얼굴은 완전히 ‘보고 싶어요’였다.
“그러면 보고 가지.”
“저, 정말 괜찮아요!”
그가 정말 표를 끊을 기세라 엘리제는 화들짝 말렸다.
“보고 싶은 것 아닌가?”
“그, 그렇지만……! 그래도……!”
잘 모르는 남자와 연극이라니!
특히 저 연극은 사랑 이야기를 다룬 극이었다. 보통 연인이 같이 보는.
“로, 론 님은 저 공연 보고 싶지 않잖아요. 괜히 저 때문에 억지로 그럴 필요 없어요.”
“누가 그랬지?”
“네?”
“나도 저 공연 보고 싶다.”
엘리제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저 냉막한 얼굴의 남자가 러브스토리 연극을 보고 싶어 한다고?
“정말요?”
“정확히 말하면.”
그가 엘리제의 푸른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너와 같이 보고 싶다.”
“……?!”
그 갑작스러운 말에 엘리제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네, 네?”
“왜? 안 되는가?”
“아, 아니요! 아, 아니…… 그게?”
당황한 그녀는 횡설수설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지?
-너와 같이 보고 싶다.
나랑 같이 보고 싶다고?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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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금요일 09:07분에 올라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항상 감사드립니다!!